“한국 교회가 번영되었으나 또한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한가운데서 일한다. 사목자들은 성공과 권력이라는 세속적 기준을 따르는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취하려 하는 유혹을 받는다.”
2014년 8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천주교회 사목 방문. 교황은 첫 번째 순서로 한국 주교단을 만나 이렇게 연설했다. 한국 교회의 세속화를 걱정하며, 가난한 자들의 벗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교황의 연설을 두고 종교계와 언론에서는 “부유층과 골프를 치고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일부 사제들의 행태를 지적한 것”(MBN <한국 사회 일깨운 ‘교황의 어록’> 2014. 8. 18.)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성직자들의 골프장 출입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주교관을 나가 빈민촌에서 스스로 밥해먹는 주교들이 어서 나타나기를 빈다. 육체노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성직자들이 많아지길 빈다.”(한국일보 <“사제들은 부자를 위한 교회 만들지 말라는 교황의 말씀 명심해야”> 김근수 기고, 2014. 8. 20.)
하지만 교황의 ‘걱정’에도 한국 신부들의 골프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대구대교구는 골프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팔공컨트리클럽(CC)’을 운영하는 우경개발의 2023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대구대교구 산하 재단인 ‘대구구천주교회유지재단’은 우경개발의 지분 51%를 소유하고 있다.
팔공CC를 둘러싼 논란도 많았다. 교구가 팔공CC를 소유하게 된 과정부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과거 1980년대 대구대교구 사제들이 신군부의 국보위 입법회의에 참여한 이후 대구대교구가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2016년 제기됐다. 골프장 등을 운영할 수 있는 이익을 누렸다는 것이다. 대구대교구는 제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혐의없음(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했다.
팔공CC 운영에도 논란이 있었다. 팔공CC가 30년 동안 280억 원에 이르는 ‘불법 미인가 회원권’ 530여 개를 발행해 운영한 사실이 2019년 드러난 것.
대구시는 불법적인 영업활동에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팔공CC는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불법회원권 발행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체육시설법이 그동안 개정돼 골프장 회원모집 인원제한이 없어졌고, 시정명령을 따를 경우 골프장이 도산할 수 있다며 시정명령은 재량권 남용으로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골프장 문제로 떠들썩했던 대구대교구에서, 이른바 ‘골프 신부’의 업무태만으로 인한 갈등도 발생했다.
“심기열 신부가 어떤 억압된 감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감정을 해소시킬 수 있도록 전문 심리상담가의 상담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2022년 3월 대구대교구는 심기열 신부(34)에게 ‘편집성 성격장애’가 있다고 판단했다. 정체가 비밀에 부쳐진 자문단의 진단이었다. 심 신부를 만나본 적도, 전문의의 진료도 없이, 자문단의 한마디에 교구는 심 신부를 정신질환자라고 낙인 찍었다.
사건의 발단에는 ‘골프 신부’가 있었다. 심 신부는 2021년 1월 A성당 보좌신부로 발령받았다. A성당 주임신부는 심 신부를 사제의 길로 인도한 ‘아버지 신부’다. 어릴 적 다녔던 성당에서 인연을 맺은 스승 같은 존재. 심 신부가 사제의 길을 고민하던 열아홉 살 무렵, 주임신부는 큰 힘이 됐다.
하지만 보좌신부와 주임신부 관계로 다시 만난 그는, 심 신부가 존경하던 어른이 아니었다. 심 신부는 “주임신부가 미사 시간을 변경하면서까지 골프, 당구, 외박을 하는 등 업무태만이 심각했다”고 주장했다.
미사 일정은 전월 말 또는 당월 초에 주임신부와 보좌신부가 상의해 신자들에게 공지했다. 하지만 주임신부가 ‘골프 약속 때문에’ 갑작스럽게 미사 일정 변경을 통지하는 일이 잦았다는 게 심 신부의 주장이다.
“주임신부가 미사 전날이나 당일 아침에 연락해 약속이 있으니 제게 미사를 대신 진행하라는 식으로 통보했습니다. 한 달에 많으면 15일 정도 미사 일정을 바꿨습니다. 신자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신부가 쉬는 날은 월요일이다. 보통 신부들은 월요일에 개인적인 일정을 잡는다. 하지만 A성당의 주임신부는 휴일이 아닌 날에도 미사 일정을 바꾸면서까지 골프 등 취미생활을 즐겼다는 것이다.
미사 일정 변경은 심 신부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급하게 변경된 일정 때문에 강론을 부랴부랴 준비해야 했다.
“보통 저는 저녁 미사를 하고, 다음 날 강론을 준비하고 다른 성당 업무를 마무리했습니다. 당일 아침에 갑자기 미사를 대신 해달라고 하면 새 강론을 부랴부랴 준비해야 합니다. 성당 업무를 제가 전부 처리하게 되는 겁니다.”
심 신부는 당시 종잡을 수 없는 일정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평소 앓던 아토피 피부염 증상이 심해졌고, 두통에 시달렸다.
“제가 (주임신부) 수족 같았습니다. 같은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심 신부는 주임신부가 신자들과 자주 골프 약속에 갔다고 전했다.
“주임신부가 이전에 (다른 성당에서 가까이) 지냈던 신자들과 시간이 맞으면 골프 약속을 가는 식으로 일정을 바꿨습니다. 보통 새벽같이 나가서, 오후 4~5시쯤 돌아왔습니다. 더 늦게 들어오는 날은 저녁 미사 직전에 들어와서 바로 미사를 진행한 적도 있습니다.”
심 신부는 2021년 한 해 동안 주임신부와 미사 변경 문제로 여러 차례 대화했다.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주임신부가 미사 일정 문제로 사과도 했었고, 자신이 변화하지 않으면 벌을 받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계속됐어요.”
심 신부는 자신이 신학생 시절 공부했던 교회법 지침대로 성당이 운영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결국 심 신부는 교구청을 찾아갔다. 사제를 관리감독하는 주교가 이 문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2021년 12월 교구청 면담 자리가 마련됐다. 대주교, 보좌주교 등 요직에 있는 사제들과 주임신부, 그리고 심 신부가 참석했다.
셜록이 입수한 교구청의 면담 기록에 따르면, 당시 A성당 주임신부는 “매달 첫 목요일에 골프모임이 있어서 간 적 있지만 자주 가지는 않았다, 골프는 한 달에 네 번 이상 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면담 이후, 교구가 주임신부에게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결과는 그 반대다. 오히려 심 신부에게 다른 성당으로 옮기라는 인사이동 명령이 떨어졌다. 그 명령에 따라 심 신부가 B성당으로 근무지를 옮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심리상담을 받으라는 교구의 공문을 받았다.
같은 해 4월 심 신부는 갑작스러운 ‘휴양 명령’도 받았다. 교구는 자신들이 지정한 정신과의원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명령했다. 심 신부는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8개월간 ‘지옥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관련기사 : <‘정신질환’ 몰아서 신부 해고…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그는 교구에서 지정한 의원보다 더 규모가 큰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에서 검사와 진료를 받았다. 교구가 주장하는 편집성 성격장애나, 치료가 필요한 정신과 질환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교구는 2022년 12월 심 신부를 ‘면직’했다. 면직 사유도 밝히지 않았다. 심 신부는 2023년 2월 교구를 상대로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면직 사유라도 알고 싶었다.
소송 과정에서 밝혀진 면직 사유는 ‘불순명(不順命)’. 명을 따르지 않은 죄다. 교구는 자신들이 지정한 정신과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이를 보고하라는 명을 따르지 않았다며 심 신부를 면직했다. 심 신부에게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이 없다는 심리검사 결과는 철저히 무시됐다.
재판부도 심 신부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1심, 2심 재판부 모두 사건을 ‘각하’했다. 종교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니 알아서 해결하라는 취지였다. 심 신부는 다시 한번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려 상고한 상태다.
지난 10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도 접수했다. 인권위는 12일 만에 ‘초고속’으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사인(私人)에 의한 인권침해 행위는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않습니다”라는 것이 이유였다.(관련기사 : <인권위마저… 아무도 ‘해고’ 신부에게 답하지 않았다>)
대구대교구의 사정을 잘 아는 C 신부에게 심 신부의 면직 과정에 관한 견해를 물었다.
C 신부는 심 신부가 문제 제기한 주임신부의 미사 일정 변경에 대해 “거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추석, 설, 성탄절 등이 겹치면 일정을 바꾸는 일이 가끔 있지만, 신부가 놀러 가면서 미사 일정을 바꾸는 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다.
“가끔 사정이 있으면 양해를 구하더라도, 자주 있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어떻게 보좌신부에게 하루에 미사 두 번 다 하라고 합니까. 특수한 경우라면 몰라도, (주임신부) 본인이 할 일은 해야 합니다.”
심 신부의 면직 처분에 대해서는 안타깝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직업과 달리, 사제는 면직되면 성직자 신분이 박탈돼 어느 곳에서도 신부로 일할 수 없다.
“교구청의 아량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C 신부는 교구청의 면직 결정에 “사회에서도 바른 소리를 하면 괘씸죄에 걸린다”며, “새파란 젊은 신부가 20년 넘은 경력을 가진 신부를 고자질한다고 (교구에서) 안 좋게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취재 중 들은 교구 측 인사의 답변이 떠올랐다. 대구대교구는 아동 성추행 신부, 여직원 성추행 신부, 노래방 ‘도우미’ 논란 신부에게도 면직 처분을 내리지 않았다.(관련기사 : <아동성추행 신부도 안 잘렸는데… ‘괘씸죄’가 더 큰가>) 성직자국장에게 대체 면직 기준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인간은 나약하니까 잘못을 저지를 수 있잖아요.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다시 사제로 살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참사회의를 거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거죠.”
하지만 그런 기회가 유독 심기열 신부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성직자국장이 덧붙인 이 말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심 신부는) 한 번도 잘못했다, 죄송하다는 말 자체를 안 했습니다.”
지난 10월 대구교구의 공식 입장과 사건 관계자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다. 총대리주교는 “재판(소송) 중인 사건이라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면서 “성직자국장의 설명을 교구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밝혔다.
심기열과 함께 생활했던 주임신부에게, 골프 약속 등으로 업무에 태만했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해당 신부는 “심 신부에게 부담을 줄 만큼 (골프나 당구 등을) 한 적이 없다”며, “미사 일정은 조정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사무처장은 “그 신부(심기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입에 담고 싶지 않다”며, “종교 내부 사안이라서 기자님도 접근을 조심하셔야 한다, 그 사람(심기열) 말은 믿지 말라”라고 말했다.
지난 3일 주임신부의 골프 문제에 대해 추가적인 취재를 위해 성직자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편파적으로 글 쓰는 걸 보면서 내가 말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취재를 거부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