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가수 응원봉 물결이 ‘윤석열 탄핵집회’를 형형색색 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그 시작은 지난 7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가 불성립된 날이다. 지금껏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집회문화를 1030 여성들이 이끌어나가는 ‘혁명’이 벌어졌다.

응원봉 집회의 중심에는 ‘탄핵DJ’ 김지호(52)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연대사업국장이 있었다. 10일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김 국장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잠은 잘 주무십니까?”

김 국장에게 건넨 첫 질문이다. 김 국장은 “잘 잤다”면서, 하지만 입술이 다 터졌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아이돌 가수 응원봉 물결이 ‘윤석열 탄핵집회’를 형형색색 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김지호 제공

김 국장은 지난 7일 응원봉을 든 젊은 여성들이 집회 현장으로 밀려 들어왔던 때를 떠올렸다. 윤석열 탄핵 집회 현장은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의 사전집회에 이어, 이날 오후 3시부터 본격적인 집회가 시작됐다. 사전에 약속된 발언자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윤석열 탄핵’ 구호를 외쳤다.

오후 5시 국회 본회의가 시작됐다. 김건희 특검법 표결 이후,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를 거부하고 집단 퇴장했다. 현장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무대 앞을 빠져나와, 국회 정문을 향해 행진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집단 퇴장하고, 국회 정문을 향해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행진이 시작됐어요. 그리고 응원봉 부대가 무대 앞쪽으로 알록달록한 빛을 내면서 쭉 밀고 들어왔죠.

응원봉 부대가 무대 앞뒤 전광판을 꽉 채웠을 무렵, 김 국장은 생각했다.

‘아, 이들에게 환대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김 국장은 지금부터 ‘달려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첫 곡을 틀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였다. 응원봉 부대는 ‘떼창’을 하면서 화음을 쌓아올렸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2016년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이 학교 측의 일방적인 단과대학 설립을 반대하며 농성을 진행하던 중 다같이 불렀던 노래다. 당시 학생들이 경찰과 대치 속에서 스크럼을 짜고 노래 부르는 모습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때부터 젊은 여성들의 투쟁을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이 노래는 여성들의 새로운 사회적 갈망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노래를 시작했을 때부터 젊은 여성들이 더 이상 기성세대처럼 참지 않겠다는 흐름이 느껴졌어요.”

응원봉 집회의 시작을 알리는 첫 곡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였다. ⓒ김지호 제공

이날 응원봉 부대의 ‘다시 만난 세계’ 떼창 장면은 국회에서도 언급됐다. 지난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정청래 위원장(더불어민주당, 서울 마포구을)은 해당 영상을 재생했다. 노래 가사를 읽어 내려가며, 정 위원장은 울컥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응원봉을 든 젊은 여성들은 윤석열 탄핵 집회의 새로운 구심점이 됐다. 민중들의 손에는 횃불, 라이터, 촛불 대신 이제 꺼지지 않는 불빛 ‘응원봉’이 들려 있다.

젊은 여성들이 사회운동을 계속해왔던 분들보다 오히려 더 절실하고 완강하게 싸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은 일상적으로 늘 차별을 느끼고, 여러 혐오나 위험에 노출되면서 2중, 3중으로 우리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잖아요. 이런 분들이야말로 사회를 바꾸고 싶고, 정치적인 변화에 갈망이 있을 겁니다.

김 국장은 기성세대들도 ‘촛불 세대교체’를 반갑게 맞이했을 거라고 봤다. 사회운동을 이끌던 중장년 세대와 단체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대중을 포괄하진 못했다. 하지만 이제 미래세대가 그 중심에 서게 됐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응원봉 부대에 화답하듯, 형형색색 불빛을 손에 들고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지난 9일에는 건설현장 등에서 사용하는 ‘경광봉’을 든 집회 참가자들이 등장했다.

“노동조합원들도 자녀들에게 응원봉을 빌리거나, 중고거래를 통해서 응원봉을 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단체들은 응원봉 공동구매를 진행하자는 요청이 쇄도합니다. 뭐라도 빛이 나는 것을 들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다들 하시는 것 같아요.

민중들의 손에는 횃불, 라이터, 촛불 대신 이제 꺼지지 않는 불빛 ‘응원봉’이 들려있다. ⓒ셜록

젊은 여성들의 ‘응원봉’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응원봉은 단순히 빛을 내는 물건이 아닐 것이다.

“응원봉은 자신의 ‘최애(가장 좋아하는)’를 상징하는 소품이잖아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상징하는 물건을, 흐트러지지 않는 결심과 각오를 손에 들고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김 국장은 DJ 역할을 자처했다. 당시 국회의사당 앞은 주최 측 추산 100만 명이 넘는 인파로 가득 찼다. 인터넷은 물론, 전화도 제대로 터지지 않았다. 선곡을 이어가기 위해, 열악한 통신 상태 속에서 묘책을 찾아야 했다.

“이날 음악감독 노트북에 예전 행사 때문에 음악을 담아둔 폴더가 있었어요. 다행이었죠. 그 한정된 노래 중에서 최선을 다해 노래를 틀어야 했습니다. 한 곡이 끝나면, 다음 곡을 즉흥적으로 찾아야 했죠.”

응원봉 부대는 김 국장이 선정한 노래에 맞춰 “윤석열 탄핵”을 외치며 집회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노래 제목을 적은 휴대전화 화면을 들어올리며 선곡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난 9일부터 김 국장은 응원봉 집회의 열기를 이어가기 위해 구글폼 링크를 통해 ‘신청곡’을 받는다. 신청곡 수는 한 시간 만에 700곡을 돌파하더니, 현재(10일 기준) 1만 6000여 명이 노래를 신청했다.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가 소외되지 않게 민중가요를 틀어달라고 했고, 반대로 기성세대는 아이돌 노래를 신청했어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거죠.”

김 국장은 9일부터 전 세대가 어울리는 집회를 만들기 위해, 민중가수들을 초청해 ‘민중가요 배우기’ 코너를 시작했다.

“응원봉을 들고 팔뚝질을 하는데 잘 하시더라고요.”

지난 7일 탄핵 집회 이후, ‘탄핵 플레이리스트(탄핵 플리)’도 만들어졌다. 집회에서 틀었던 노래를 모았다. 미리 숙지하고, 집회 현장에서 한 목소리로 노래하기 위함이다.

김 국장의 선곡 기준은 세 가지다. ‘떼창’ 하기 좋은 노래, 추위를 날려버리는 노래, 윤석열 탄핵을 앞당기는 노래. 김 국장은 앞으로 노래 선정에 더욱 신중을 기할 예정이다. 누구나 신나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로 국회의사당 앞을 가득 채우려고 한다.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있다. 윤석열 탄핵 집회는 얼마나 계속 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눈 앞에 선 우리의 거친 길을 응원봉이 모여 밝게 비추고 있다. ‘알 수 없는 미래와 벽에 가로막혀도, 포기하지 않는 시민들이 옆에 있기에 사람들은 오늘도 집회에 나갈 것이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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