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500일 기념 여행비를 털어 버스를 빌렸습니다. 이 시국에 무슨 여행인가요. 같은 처지인 분들, 바람이라도 피하고, 기저귀라도 편하게 갈아봐요!”

윤석열 탄핵 촛불집회에 ‘키즈버스’가 나타난다. 집회에 참석한 영유아와 보호자를 위한 작은 ‘베이스캠프’가 한 시민의 선의로 생겨날 예정이다.

자신을 ‘16개월 지우맘’이라고 소개한 권순영(44) 씨. 그는 오는 14일 아이들과 함께 국회 앞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위해 사비로 45인승 버스를 빌렸다. 10일 직접 만든 포스터로 홍보도 하고, 단톡방을 만들어 함께할 사람들을 모았다.

11일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권 씨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윤석열 탄핵 키즈버스 포스터 ⓒ윤탄핵촛불참가한영아부모방

Q. 지난 7일 국회 앞 촛불집회에 다녀오셨나요?

“네. 그날 나갔어요. 아기랑 저랑 둘이 갔어요. 애기 아빠는 토요일 날 일을 하거든요. 한 5시 반쯤 도착했던 것 같아요. 집이 서대문인데 거의 2시간 걸려서 도착했어요. 지하철을 타고 당산역에 내려서 걸어갔어요. 사람이 너무 많아가지고 (국회까지 못 가더라도) 근처 어디라도 좀 가보려고 하다 보니까 5시 반쯤 도착해서, 9시쯤까지 있다가 집에 갔어요.”

Q. 현장에 어머님처럼 혼자 아기를 데리고 나온 다른 어머님들도 계셨나요?

“그때 그걸 살펴볼 여력은 안 됐는데, 제 눈에 띄지는 않더라고요. 어딘가 분명히 있을 것 같은데, 눈에는 안 띄었어요. 주변에 지나다니시는 분들은 저한테 ‘아기 추워서 어떡해요’ 이런 얘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Q. 그때 상황을 좀 더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집에서 출발한 때부터 밖에서 한 6시간 있었어요. 근데 유아차를 일부러 안 가지고 나왔거든요. (집회 현장에 사람이 많으면) 못 움직일 것 같아가지고. 저는 ‘어딘가 기저귀 갈 곳 정도는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는데 갈 곳이 없었어요. 지하철역 화장실도 줄이 너무 길어가지고, 찾아가는 것도 일이고 줄 서는 것도 일이고.

아기 밥도 먹여야 되는데 사람이 많으니까 식사하는 곳에도 줄을 서 계시고, 카페에도 사람이 가득가득하고, 또 인터넷이 잘 안 돼서 어디 검색해서 가기도 어렵고 그런 어려움이 있었죠.”

9일 탄핵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국민의힘 당사로 행진하고 있다 ⓒ셜록

Q. 결국 기저귀도 못 가셨던 거예요?

“다행히 그날 (기저귀가) 빵빵할 정도로 싸지는 않아서, 그냥 버텼어요. 추운데 옷 벗기기도 조금 그래가지고. 집에 가는 길에, 집 근처 지하철역은 좀 한산하니까 거기서 해결하고 집으로 갔죠. 저 같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을 거예요.

(다음 주말에도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데) 도저히 그 상황을 다시 반복할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누가 (아기) 기저귀 갈 곳만 좀 마련해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키즈버스나 키즈천막 같은 것. 누가 (촛불집회) 주최 측에 문의해보라고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집회에는 아이들만 오는 게 아니잖아요. 어르신들도 많고 장애 있으신 분들도 많고 그런데, 아이들을 위한 천막만 마련해달라고 하면 좀 이상할 것 같은 거예요. 우리만 배려해달라는 느낌이 들어가지고.

그럼 (버스보다는) 천막이 좀 저렴하니까 직접 마련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건 또 아이 데리고 가는 엄마 입장에서, 설치하기가 여의치 않을 것 같았어요. 바닥도 깔아야 되고. 이런 생각 끝에 ‘그러면 그냥 버스가 제일 안전하고 편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한 거죠.”

Q. 그래서 사비를 들여서 버스를 대절해야겠다, 생각하신 거예요?

“네. 그거 말고 방법이 없었어요. 모금을 해서 추진하기에는 당장 (돌아오는) 토요일이니까 시간이 그렇게 여유롭지도 않고, 또 혹시 호응이 없을 수도 있잖아요. 일이 복잡해지니까, 그냥 심플하게 ‘내가 하나 빌리고 필요한 사람들한테 같이 쓰자고 해야겠다’ 이 정도의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집회에 오지 못하는) 시민들이 커피 같은 것도 막 선결제 해주시잖아요. 그런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커피 선결제도 하고 이러는데 나는 내 애 데리고 가는데 버스 하나 빌릴 수 있지’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대단한 시민들이 많아가지고, 별로 망설이지 않고 결정했던 것 같아요 여행은 봄에 가면 되니까요.

Q. 45인승 버스면 대절 비용도 만만찮을 것 같은데요.

“하루 빌리는 데 70만 원이더라고요. 기사님이 추가비용은 안 받으신대요. 원래 기름 값이랑 기사님 식사비 이런 게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냥 기본비용만 받으시겠다고.”

Q. 사비로 버스를 대절해서라도 이 집회에 꼭 나가겠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뭘까요?

“다 비슷한 마음이셨을 텐데, 계엄이 선포된 날 너무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나라가 이렇게 망하려나 보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라를 망하게 하려나 보다. 이게 무슨 일일까?’ 이런 생각 때문에 너무 마음이 어수선했어요. 근데 그날은 (바로 국회로 달려갈) 엄두를 못 냈어요.

토요일(7일) 날은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안) 표결하는 날이었잖아요. 일말의 희망 같은 게 있었어요. 그래도 국민의힘 의원들 중에 어느 정도 멀쩡한 사람들은 시민들의 이 분노에 호응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러려면 한 명이라도 더 국회 앞으로 나가야 된다, 그런 생각에 미쳤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으로 ‘모르겠다, 일단 (아기를 꽁꽁) 싸서 나가보자’ 이런 생각이었죠.”

3일 밤 국회 본청 진입을 준비하는 계엄군 ⓒ연합뉴스

Q. 카카오톡 ‘윤탄핵 촛불 참가한 영아 부모방’ 이것도 어머님이 만드신 거예요?

“네. 저 혼자만 쓰려고 버스를 대절하는 건 아니니까.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해서 같이 사용하려고 큰 버스를 빌린 거거든요. ‘이런 게 있으니까 필요할 때 오세요, 용기 내서 우리 함께해요’라고 알려야 되잖아요. 그래서 알리게 됐고, 그 단톡방은 원래 집회 현장에서 버스 위치를 좀 안내해드리려고 만든 방이었습니다.”

Q. 포스터도 어머님이 직접 만들어서 홍보하셨던 거예요?

“네. 제가 그런 일을 하거든요.”

Q. 14일에 아기와 함께 집회 현장에 나올 어머님들한테 꼭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집회에 나오고 싶어도 아이가 있으면 생각할 게 너무 많고, 준비할 게 너무 많아서 생각이 복잡해지는 거예요. 몸이 쉽게 무거워지는 거죠. 저한테도 그런 게(키즈버스가) 필요했고 다른 영유아 부모님들한테도 ‘이런 베이스캠프가 있으니까 용기 내서 가자, 그래서 지금 혼란스러운 정국을 국민들이 바로잡는 데 우리도 힘을 보태자, 함께하자’ 이렇게 얘기하고 싶었어요. 다른 분들한테도 용기가 되는 버스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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