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침묵하지 않기 위해 지금 침묵하지 않겠습니다.”(인천대 학생 130인 일동)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윤석열의 내란. 무장한 계엄군 앞에 맨몸의 시민들이 맞섰다. 촛불과 응원봉으로 밤을 밝힌 시민들이, 민주의 빛으로 독재의 어둠을 밀어냈다.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시민들의 ‘말’도 쏟아져 나왔다. 그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수많은 시국선언이 각계각층 전국각지에서 쏟아져 나왔다. 대한민국의 2024년 12월은 선언의 계절이다.

시국선언문에는 독재의 주술에 취한 내란세력에 대한 뜨거운 분노와 결연한 저항, 국민을 배신한 대통령을 향한 싸늘한 경고와 준엄한 명령이 한 글자 한 글자 무겁게 담겨 있다. 새로운 계절, 새로운 세대에도 오래도록 기억돼야 할 문장들을 시국선언 속에서 찾았다.

지난 3일 밤 국회 진입을 준비하는 계엄군 ⓒ연합뉴스

지난 밤 우리는 보았다. 아직도 대한민국을 떠도는 전두환의 유령을.”(광주대 교수 일동)

기습적인 비상계엄 선포 이후 대한민국에 무슨 짓이 벌어졌는지 시민들은 모두 지켜봤다. 국회에 나타난 헬기와 계엄군.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려는 군인들과 그들을 막아선 시민들. 계엄군의 군홧발에 짓밟힌 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였다.

“비상계엄 선포는 시민들의 피와 땀으로 세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이다.”(한국YWCA연합회)

“우리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동안 일구었던 민주주의라는 가치마저 망가뜨리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동국대 학생 108명 일동)

“우리는 그의 본질을 깨달았다. 윤석열은 (…)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행동하는 사회연대경제인 일동)

시민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정지되었다”(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고 개탄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그날 밤. 시민들은 “‘코리아 프라이드’가 무너지는 순간”을 목격하며 “대한민국은 야만사회로 전락”(대전공동체운동연합)했다는 사실에 참담함을 느꼈다.

“민주정부 50년 성과를 졸지에 파탄시킨 귀신 들린 자의 판단이 국가와 민족을 세계의 조롱거리로 만들었으니 참으로 통탄스럽다.”(예수 삶을 따르는 길동무)

“언제라도 다시 군사독재가 가능한 국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간이었습니다.”(옥스퍼드대 한국 학생 및 동문 연구자 41인)

지난 10월 1일 광화문 국군의날 시가행진 윤석열 ⓒ대통령실 제공

“국민과 언론의 자유를 빼앗는 자. 헌법을 위반한 자.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자.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바로 헌정 질서 파괴, 반국가세력입니다.”(해방이화 제56대 총학생회)

내란사태의 중심에는 ‘우두머리’ 윤석열이 있다. 시민들은 “그의 행태에서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독재자를 본다”(감리회목회자모임 새물결)며 분노했다.

시민들은 “국가가 비상상황이라는 윤 대통령의 시국 인식은 실상 자신과 가족의 범법행위가 드러나고 있는 개인적 비상상황의 자각일 뿐”(기독교윤리실천행동)이라는 점을 너무도 잘 알았다. “계엄령은 대통령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충동적 발악”(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교회와사회위원회)이란 본질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가릴 수 없었다.

“한강 작가는 우리가 무사유와 무감각에 빠질 때 퍼져가는 잔인성과 폭력성을 경고했습니다. 그 경고는 지금 윤석열 정권하에서 적나라하게 현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한국의 현실과 미래를 걱정하는 해외 교수-연구자)

“지도자가 우매함에 빠져서 자신의 길만을 고집할 때 그것이 공동체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며 정의와 평화를 훼손하는지 우리는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교회개혁실천연대)

“본인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한다고 했으나, 역사의 시계 바늘이 뒤로 돌아간다는 절망감에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국민의 고통은 어찌 헤아리지 못하는가?”(카이스트 교수 일동)

지난 3일 밤 계엄령 선포에 국회 앞으로 모여든 시민들 ⓒ연합뉴스

“그가 저지른 행동은 피 흘려 일군 이 땅의 민주화를 역행시킨 명백한 ‘내란죄’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이렇게 뒷걸음치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인제대 교수·연구자·직원 일동)

윤석열은 비상계엄 선포를, 대통령의 권한에 따른 ‘통치행위’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그날 밤 벌어진 일들을 지켜본 시민들은 모두 안다. 그것은 “헌법 정신에 명백히 위배되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시대착오적인 범법행위”(충남대 총학생회)라는 것을.

시민들은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를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행위이자 우리가 쌓아온 민주주의와 인권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범죄행위”(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로 규정했다.

“민주화 역사의 유산을 파괴할 뿐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사유로 강조하였던 ‘자유민주주의’에 명백히 반하는 행위인 것이다.”(한밭대 교수평의원회 평의원 및 교수 일동)

“비상계엄선포가 다양성의 공존을 파괴하고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내란 획책이라는 점에서, (…) 일본제국주의의 폭력성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였다.”(식민역사문화청산제주회의)

“제2, 제3의 계엄을 획책하여 국가와 국민 모두를 또 다시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지 심각하게 우려한다. 친위 쿠데타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서울대 교수·연구자 일동)

지난 12일 윤석열은 한마디의 반성도 없이 ‘계엄은 대통령의 통치행위’임을 주장했다 ⓒ대통령실 제공

“이제 윤석열의 시간은 종말을 고했다. (…) 자신이 새로 쌓은 ‘용산궁’만을 옹위하며 벌인 대통령 놀이는 끝났다.”(윤석열 퇴진을 위한 1만 그리스도인 선언자 일동)

내란 우두머리인 윤석열. “더 이상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여수시민긴급시국기자회견)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자신이 왕이라고 생각하는 파렴치한 대통령과 공직자들은 국민에게 필요없다”(한신대 신학대학원·일반대학원 신학과 학생 일동)는 시민들은 “당신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한국작가회의)라고 선언했다.

“자신의 반대자들을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자들로 묘사한 윤 대통령의 언동은 실상 자기실현적 예언이나 마찬가지이다.”(한양대 대학원 사학과 원우회)

“명백하게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으로 중대한 헌정위기를 초래한 대통령은 주권자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것으로 한시도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촉구하는 헌법·행정법 연구자 일동)

시민들은 “더 이상은 기다려주거나 너그러운 마음과 태도로 한 번 더 기회를 주지 않겠다”(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나눔의집협의회)는 마음으로, “윤석열에게 남은 것은 즉각적인 체포와 구속, 처벌뿐”(제주지역 노동조합 대표자 일동)임을 분명히 했다.

“자리에서 물러나 처벌을 기다리십시오. 그것이 당신들에게 남은 유일한 역사적 사명이자 헌법적 의무입니다.”(전국 법학전문대학원 학생 1014인 일동)

시민들은 매일 밤 국회 앞에 모여 “윤석열 탄핵”을 외쳤다 ⓒ셜록

이제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섰으니 멸망이 오늘이며 하늘의 심판을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기독연구원 느헤미야/느헤미야 교회협의회)

총을 멘 군인들은 맨손의 시민들 앞에서 결국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여의도에서, 전국 곳곳에서, 나서고, 모이고, 맞섰다.

피로써 지킨 민주주의를 사수할 것”(목포시민비상시국회의)이라는 의지로, “폭압적 통치는 역사와 시민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한국교회 인권센터)이며 “너희의 교만함과 무지함은 결국 너희를 무너뜨릴 것”(한국기독교장로회 생명선교연대)임을 단호히 선언했다.

“다시 신발 끈 단단히 묶고 아스팔트로 나설 것이다. 오만한 권력의 심판장은 언제나 광장이었다.”(경남지역 대학 민주동문회 연합)

“우리는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매지 않을 것이다.”(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사회선교모임)

“약탈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더는 우리를 겁박하지 못하게 하자.”(옥바라지선교센터)

교사들은 “윤석열이 어째서 여전히 대통령인지 학생들이 묻는다면, 우리는 교사로서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전국교직원노동조합 1만 5225명 일동)라고 질문하며, “우리를 믿고 따를 학생들에게 부끄러운 교사가 될 수는 없다”(공주대 사범대 406인 일동)며 광장으로 나왔다.

대통령은 자신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며 민주주의의 역사를 망쳐버렸지만, 오히려 시민들은 자신의 소명과 본분을 지키며 가장 순수한 분노를 문장에 담았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처방전은 고쳐져야만 한다. (…) 그것이 약사의 엄중한 숙명이자 책임이다.”(약사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얌전히 ‘입틀막’ 당하지 않을 것이다. 감히 국민을 ‘처단’하겠다는 포고문 겁박에도, 놀라거나 겁내지 않을 것이다.”(카이스트 구성원 270명 일동)

“우리가 신뢰하는 건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은 윤석열의 양심이 아니라 국민들이 피로 지켜낸 민주주의와 법치의 원리다.”(윤석열 구속 처벌을 촉구하는 예술인 일동)

2024년 12월 새로운 세대의 저항의 언어를 상징하는 ‘응원봉’ ⓒ셜록

“촛불을 다시 붙였습니다. 폐허에 꽃을 피울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상담심리전문가·임상심리전문가 1200명 일동)

광장에서는 또 한 번의 혁명이 이뤄지고 있다. 야만적인 내란의 혼돈 속에 너무도 이성적인 모습으로 손수 평화를 되찾아가는 시민들의 모습은, 서로를 놀라게 하고 감동하게 했다.

시민들은 “국민이 목숨을 바쳐 일구어온 민주주의는 그런 얕은 수에 무너지지 않았다”(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고 당당히 선언하며, “위대하지만 평범한 국민들의 힘으로 윤석열의 불장난은 끝났습니다”(해병대예비역연대)라고 서로에 대한 존경을 표현했다.

“언어의 낭비 앞에 국민은 속지 않았다. 대통령이 말하는 ‘국가’는 오로지 ‘국민’의 것이다.”(서울연극협회 이사회)

시국선언에 나선 시민들의 시선은 ‘새로운 사회’를 향해 있다. 지금 광장에서는 ‘윤석열 탄핵’과 ‘윤석열 처벌’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라는 걸 안다. “윤석열이 응분의 책임을 지는 것은 사태의 종결이 아닌 민주주의를 향한 첫 걸음”(북미 대학원생 및 연구자 일동)인 것이다.

시민들은 “더 나은 민주사회를 만들기 위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나 싸워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한국기독교장로회 전국여교역자회)을 알고, “‘윤석열 탄핵’의 짧은 구호를 진정 몸으로 살아 내려 한다”(158개 교회 및 단체 연명)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모든 이들이 편히 잠들 수 있는 밤을 원합니다. 대통령다운 대통령을, 정의로운 나라를 원합니다.”(간디고 학생/청소년 시국선언)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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