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환경 탓에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한 아버지는 술을 드시면 지인들에게 이런 자랑(?)을 하곤 한다.
“니 그거 아나? 우리 아(아이)가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친다. 교사 되는 기 을매나 어려운지 알제?”
아무리 취해도 “공고에서 국어를 가르친다”고 말하는 법이 없다. 언제나 ‘공고’를 뺀다. 내게 이렇게 물으신 적도 있다.
“한구야, 니 공고 말고 일반고에서 가르치면 안 되나? 일반고 국어교사는 더 되기 어려운 기가?”
오늘은 이런 아버지에게 아들이 공업고등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하는지 알려드리고 싶다. 벌써 10여 년이 훌쩍 지난 추억이자 오늘도 반복되는 그 일은, 가수 아이유와 깊은 관련이 있다.
“You can do it!”
“I can do it!”
2010년대 초, 그 시절 이 두 문장이 날마다 공고를 흔들었다. 당시 정부는 공교육을 마치면 자연스럽게 이중언어를 구사할 수 있도록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일을 추진했다.
“우리 아(아이)들이 한국말도 잘 모하는데, 무슨 수업을 영어로 하라 캅니꺼? 때려치우라 카이소.”
선생님들의 원성은 컸지만, 방학마다 누군가는 직업 영어 연수 현장으로 보내졌다. 우리 공고에서도 국어, 체육, 전자, 화공 등 과목과 상관없이 뜻이 비슷한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영어교육팀’이 만들어졌다. 나도 여기에 포함됐는데, 우리의 목표 중 하나는 학생들을 위한 ‘3분 영어’ 영상 제작이었다.
“샘들, 우리는 ‘아(아이)들이 이것도 모르겠나’ 싶을 정도로 쉬운 영어 문장을 영상으로 제작해야 합니더. 야들이 좋아할랑가 모르겠네예.”
공고에 온 아이들은 대체로 영어 과목을 꺼린다. 영어 자체를 읽을 줄 모르는 아이들도 있고, 외계어쯤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대학보다는 취업 현장으로 향하는 공고 학생들은 어렵고 힘든 영어를 굳이 배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은 물론 시험을 쳐도 같은 번호만 찍는 학생도 많다.
이런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어교육 영상을 만든다? 영어교육팀은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영상의 길이는 3분을 넘기지 않을 것.
둘째, 아이들이 보고 싶게 만들 것.
셋째, 실생활에 필요한 내용으로 만들 것.
우리 교사들은 식당에서 음식 주문하는 법, 차표 끊는 법 등 다양한 상황에 맞춰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현장에서 직접 촬영도 했다. 이렇게 제작된 ‘3분 영어’는 매주 화요일 1교시 시작 전 모든 교실에서 방영됐다.
초기 반응은 좋았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학생들이 직접 출연하는 것에 관심을 보였다. 영상에는 이런 장면도 들어갔다.
교사 : “모니터에 있는 얼굴이 어떤 표정일까요?”
학생 : “웃고 있어요.”
교사 : “웃다, 영어로 뭘까요?”
학생 : “smile, smile, smile!“
초등학교 저학년 혹은 유치원에서나 배울 법한 영어를 고등학교에서 영상으로 제작하다니. 누군가는 ‘설마 이렇게 쉬운 걸 모를까’ 반문하겠지만, 정말로 모르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
영상을 재미있게 보던 아이들도 같은 교사가 반복적으로 출연하고, 그것도 한 주에 몇 번씩 반복해서 봐야 하니 금세 흥미를 잃어갔다. 급기야는 영상을 틀자마자 자는 아이까지 생겼다.
국어교사가 영어를 가르치는 것도 버거운데, 아이들까지 관심을 놓으니 맥이 풀려버렸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라믄, 우째 하면 (3분 영어 영상) 볼 낀데?”
자고 있던 서준이(가명)가 고개를 들며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샘 말고 아이유 나오면 볼게요.”
이 말에 다른 아이도 고개를 들고 말했다.
“서준이 니 미쳤나? 우리 같은 따라지 학교에 아이유가 나오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샘, 그냥 대충 만들고 치아요.”
자신이 다니는 곳을 “따라지 학교”라 부르는 아이들. 안타깝고 답답했지만, 동시에 내면에서 오기 같은 게 훅 올라왔다.
“진짜 아이유가 ‘3분 영어’에 나오면 니 어떡할래?”
내 물음에 서준이가 답했다.
“그라믄 절~대 안 졸고 졸업할 때까지 ‘3분 영어’ 다 볼게요.”
“알았다. 그라믄 내가 우째든지 아이유 영상 담아 올 끼다.”
교실에 있는 아이들 누구도 정말로 아이유가 영상에 나오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아이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죄 짓는 것도 아니고, 지방 공고에서 학생들을 위한 교육 영상 하나 찍겠다는데, 이렇게 거룩하고 멋진 일에 우리나라 최고 가수가 동참해주지 않겠나. 샘이 가능하게 만들어보께. 기대해라잉.”
아이들에게 덜컥 말을 뱉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일단 여러 인맥을 동원해 SBS 인기가요 공개방송이 있는 날 방송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 뒤 선생님들께 이 사실을 알렸다.
“그라믄 방송국 들어가서는 우짤 긴데요. 아이유가 쉽게 찍어주지도 않을 낀데예.”
“아이유는 무슨, 거기 가수들한테 말 걸 수 있는 기회라도 있을랑가예?”
우려의 말이 쏟아졌다. 포기하느냐, 아니면 도전하느냐 기로에서 체육 선생님이 말했다.
“걍 한번 가보지예. 도전해보고 안 되믄 그냥 마는 기고, 안 해보는 것보다는 안 낫십니꺼?”
선생님들 눈빛에 묘한 생기가 돌았다. 3분 영어의 슬로건은 ‘l can do it’이었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말과는 반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은 우리 아이들에게 작은 힘이라고 주고 싶었다.
우리는 팀원 8명, 원어민 교사 1명, 학생 3명까지 섭외해서, 서울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실패 가능성이 컸기에 학교 예산은 따로 요청하지 않고, 모든 걸 자비로 해결하기로 했다.
대구에서 총 5시간을 이동해 SBS에 도착한 뒤, 또 3시간을 더 기다려 드디어 인기가요 촬영 현장 안으로 입장했다. 미로 같은 방송국에서 우리의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일단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물었다.
“혹시 가수 아이유 대기실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손가락이 한 곳을 가리켰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곳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아이유는 이미 무대에 올랐는지 대기실 쪽에서 만날 수가 없었다. 우리는 한참을 서성이며 기다렸다.
얼마쯤 지났을까, 드디어 저쪽에서 TV에서만 보던 가수 아이유가 나타났다. 나는 고개를 푹 숙여 인사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기요, 죄송한데요. 저희는 대구의 공고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사인데예. 애들을 위해 교육영상을 찍으러 왔는데, 좀 도와주이소.”
국어교사인 내가 그렇게 말을 더듬는 줄은 몰랐다. 지방 사투리가 그토록 어색하고 부끄러웠던 적도 없었다. 그래도 준비한 말을 다 해야만 했다.
나는 학생들의 영어교육을 위해 작은 영상을 만들었으나, 지금 망해가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아이유 당신이 우리를 도와준다면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등의 말을 두서없이 길게 쏟아냈다. 다시 없을 기회여서 최대한 간곡히 부탁했다.
할 말을 마치고 아이유 씨의 표정을 살폈다. 아이유 씨는 우리 교사들이 무안함을 느끼지 않도록 흔쾌히 웃으며 영상 촬영을 허락했다. 아이유 씨는 카메라를 보면서 외쳤다.
“○○공고 학생 여러분, 여러분들은 할 수 있습니다. You can do it!”
이날 아이유 외에도 카라, 2AM, 린, M4, 브레이브걸스, FT아일랜드, 나인뮤지스, 미스에이, 케이윌, 빅뱅 등 여러 가수들이 우리 학교의 ‘3분 영어’에 기꺼이 출연했다.
해당 영상을 서준이 반에서 상영하자 큰 박수가 쏟아졌다. 교단에 선 뒤 그토록 큰 박수를 받은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학생만이 아니라 부장 선생님도 우리를 칭찬했다. 갓 교사가 된 20, 30대 선생님들이 만든 3분 영어는 우리 학교의 자랑이 됐다. 교육청에서는 사례 발표 요청까지 했다.
앞의 ‘smile’ 사례에서 웃은 독자들은 이번에도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어쩌면 나의 아버지는 고작 “You can do it!”이란 문장 하나 때문에 서울까지 올라간 아들을 안타깝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많은 독자들 역시 “설마 고교생이 그걸 모르겠느냐”고 속으로 반문하고 있을 터다.
고백하자면, 공고에서 일을 시작한 초기에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위에서 언급한 상황처럼, 이를 테면 “설마 공고 애들이 이것도 모를…” 하며 말끝을 흐리는 누군가의 반응을 접하면 저절로 마음이 쪼그라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마음은 거의 사라졌다. 우리 학교에는 한국말이 익숙하지 않은 다문화 가정 아이도 있고, 마음이 아프거나 외부적 환경 탓에 학교 수업 자체를 힘겨워하는 학생도 있다.
아이유의 “You can do it” 영상 이후 10여 년이 흘렀다. 그 사이 아이유는 더 멋진 가수가 됐다. 나의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같은 학교에서 종종 일부의 아이들에게 ‘가나다라…’를 비롯한 읽기와 쓰기 수업을 한다. 자괴감이 들지 않느냐고? 천만의 말씀.
누구는 잠 잘 거 다 자면서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해도 수능 만점 받고 서울대 갔을 때, 나는 고작(?) 지방 국립대에 들어갔다. 촘촘히 비교하자고 들자면,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 비해 ‘따라지 인생’일 수밖에 없다.
사람에 따라 실력에 편차가 있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smile’을 모르면 가르치면 되고, 한글 읽기에 서툴면 함께 공부하면 된다. 그게 학교와 교사인 내가 할 일이다. 교사로서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버거울 때면, 영어 문장 하나 때문에 서울로 향했던 교사 초년 시절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곤 한다.
그 시절 공고 교실에서 “You can do it!” “I can do it!”을 메아리처럼 주고받았던 나의 제자들도 이젠 모두 30대가 됐다. 그 한 문장 외운 게 삶에 얼마나 보탬이 됐을지 잘 모르겠다. 다만, 살면서 혼자 넘기 힘든 거대한 벽을 마주할 때면 속으로 “난 할 수 있다”를 작게 되뇌어보길 바랄 뿐이다.
요즘 내가 종종 그러하듯이 말이다.
지한구 교사 longlong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