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는 살인죄로 처벌한다. 정의가 살아 있는 한. 그러나 법원은 내 아이를 죽인 사람에 대해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죽었는데, 살인자는 없었다. 엄마는 거리로 나섰다. 그동안 계절은 일곱 번 바뀌었다.
그리고 어제(7일), 법원에서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피고인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합니다.”
억울하게 죽은 시우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는 판결이었다.
2023년 2월 7일, 열두 살 시우는 세상을 떠났다. 사망 당시 시우의 몸에는 200군데가 넘게 찍힌 흉터가 발견됐다. 연필, 컴퍼스, 가위 등으로 찔렸다. 심지어 알루미늄 봉과 플라스틱 옷걸이에 수차례 맞아 온몸에는 퍼런 멍이 남아 있었다. 사망 당시 시우의 체중은 29kg. 초등학교 2학년 남아 평균(31kg)에도 못 미쳤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시우를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건 계모와 친부였다. 원심은 계모 A에게 ‘아동학대치사죄’로 징역 17년을 선고했다. 살해 의도가 없었다고 판단해 ‘아동학대살해죄’는 적용하지 않았다.
반전은 대법원에서 일어났다. 대법원은 지난해 7월 A에 대한 판결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아동학대살해죄를 다시 다툴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었다.(관련기사 : <“살해의 미필적 고의 있다” 대법원, 시우군 사건 ‘반전’>)
그렇게 해서 7일 열린 파기환송심.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설범식 부장판사)은 의붓아들 시우를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계모 A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시우가 쓴 일기장은 이번 재판에서 중요한 열쇠가 됐다. 일기에는 계모가 지속적으로 신체·정신적 학대를 가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시우는 일기장에 신년 목표를 남겼다. 집에서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가족들과 행복하게 한 해를 보내야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 다만 특이점이 있다. ‘순종하기’. 그리고 ‘빨리 없어지기’. 열두 살 아이의 신년 계획이었다.
시우의 일기는 2020년 5월에 시작해 2023년 1월에 끝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내용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왜 그렇게 엄마가 변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에 내가 너무 말썽 피워서, 아님 열 살이어서, 아님 ○○(동생) 재우고 있어서, 아님 엄마가 힘들어서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들뜨는 걸 어떻게 할까? 나는 어디에 쓸모 있어 태어난 걸까? 궁금하다.(2020년 5월 9일)
일기의 주인공은 시우다. 엄마의 ‘변화’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이때 등장하는 엄마는 2018년부터 함께 산 계모 A다. 시우는 화내는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2020년(일기)에는 시우의 생생한 자기 생각이 담겨 있어요. 그런데 이후에 작성된 일기를 보면 ‘빨리 죽어야 된다’ 이런 이야기가 많이 등장해요. 나는 빨리 없어지고 죽어야 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행복하다, 이런 식으로.”
송미강 부모따돌림방지협회 대표는 일기장에서 “시우의 ‘자아’가 상실되는 과정이 보인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연세대학교 상담학 박사로, 지인정신분석상담연구소 소장이다. 그는 2023년 2월 시우의 사망 사실이 알려진 초기부터 사건에 주목했던 사람이다.
나는 죽어야 된다. 내가 있으면 모든 게 다 불행해진다. (…) 빨리 죽자. 제발, 빨리.(날짜 미기입, 2022년 12월 28일 이후로 추정)
2년 만에 시우는 전연 다른 내용의 일기를 썼다. 죽음에 관한 구체적인 진술과 불안정한 심리가 엿보였다. 그동안 시우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시우가 쓴 일기에 그 답이 있었다.
나는 오늘 저녁 먹고 나서 쓰레기 20리터짜리 두 봉지 재활용 큰 박스 두 개에 안에 재활용들을 버리고 와서 손 씻고 나서 샤워를 하고, 아버지가 ○○(동생) 장난감 정리하라고 하셔서 나는 정리하고 다 마른 이불을 개고 나서 일기를 썼다. 쓰레기, 재활용, 신발 정리, 설거지들은 내 역할이다. 보람이 있었다. 늘 하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우유를 먹고 잠을 잤다.(2020년 11월 9일)
시우는 집안일을 도맡았다. 쓰레기를 버리고, 분리수거하고, 신발을 정리하고, 설거지하고, 이불을 개고, 동생 장난감을 정리했다. ‘보람’ 있는 일이자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던 시우. 여기에 계모 A는 코멘트를 덧붙였다.
“제발 가족 좀 소중히 생각해라.”
다른 페이지에서도 계모 A의 답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못 자고 기다리다 나는 새벽 2시까지 채점하고, 넌 자고. 넌 또 날! 실망시켰네! 살고 싶지 않다, 정말.”
“너 요즘 들뜨고 정신 나가는 이유가 학교에 가서인 것 같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엄마 지금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정신 차리고 말을 줄이고 행동 조심 안 하면 넌 이제 (정신)병원으로 가.”
A는 검찰 조사에서 “시우가 부족한 점을 이야기하면 그런 점을 고치면 좋겠다, 라고 의견을 쓰기도 하면서” 시우와 “소통했다”고 진술했다.
그가 늘 부정적인 메시지만 남긴 것은 아니다. A는 “어느 날은 응원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인천지방검찰청 증거기록으로 제출된 일기는 총 121페이지. 이중 긍정적인 메시지가 적힌 페이지는 단 3장이었다.
“시우야~ 언제나 영원히 사랑해~ 엄마의 1호 아들”
“시우야, 엄마 핸드폰에 시우는 내 보물 1호 아들이라고 되어 있어.”
송 대표는 A의 극단적인 태도는 “사랑일 수 없다”고 말했다.
“거짓된 애정을 주는 거예요. 아이들이 그 순간은 ‘이게 진짜인가’ 하고, 또 그런 사랑을 받고 싶잖아요. 감질나게 하는 거죠. 학대당한 아이한테는 얼마나 큰 희망이 되겠어요. 아이를 채찍과 당근으로 조련한 셈이에요.”
어머니, 사랑해요. 내일 마사지해드릴게요. 저, 어머니 제일 많이 생각하는 것 아시죠? 힘내세요!(이쁜 어머니)(날짜 불명)
아픈 허리를 가지고 병원 가는 길에 동생들 위해서 떡과 뻥튀기를 사시고 편의점에 가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정말 본받고 싶었다. 나도 크면 희생하면서 살아야겠다, 어머니를 위해서.(2023년 1월 30일)
시우는 신체·정신적 학대를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계모 A에게 애정을 표현했다. 친모와 연락은 완전히 차단되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A였다.
송 대표는 “오랜 가스라이팅으로 자아가 사라지고, 우상화된 가해자에게 완전히 함몰돼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학대받은 아이들한테 많이 나타나는 양상이에요. 내가 나쁜 아이이고, 우리 부모는 좋은 사람이니까 ‘내가 잘하면 부모도 좋은 사람이 될 거야’ 하면서 부모를 옹호해요. 그런 생각이 강화되면 가해자를 신격화해서 숭배하고 찬양하면서, 누군가한테 도움을 구한다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죠.”
시우는 당시 계모와 친부,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두 명과 살고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학교도 가지 못했고, 이후에는 계모 A가 ‘홈스쿨링’을 결정해 등교할 수도 없었다. 집에 갇혀 성경 필사를 하고, 집안일을 도울 뿐이었다.
오늘 나는 락스를 가지고 화장실을 깨끗이 청소하였다. 보니까 타일 사이사이에 먼지와 실리콘으로 타일을 이은 부분에도 핑크색 물곰팡이가 있었다. (…) 앞으로 토요일마다 화장실 청소를 해야겠다.(2021년 11월 13일)
일기장에 나타난, 시우가 집에서 해야 하는 일은 이러하다. 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동생 장난감 정리, 설거지, 화장실 청소, 엄마 마사지, 동생들 혹은 엄마 밥 챙겨주기 등이다.
A는 용돈을 받고 시우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한 일이라고 검찰 조사에서 해명했다.
오늘 아침 반성시간에도 그 틈도 못 참고 방 밖으로 나와버렸다. 정말 주책없는 나다. 그래서 5분 후 어머니께서 의자에 말하신 대로 (나를) 묶고 나가셨다. 묶인 채로 있었던 게 아직도 생각난다. 정말 끔찍했다. 그래서 다시는 어머니께서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절대로 안 할 것이다.(2022년 11월 26일)
어머니께서 나한테 뭐 하시지도 않았는데 내가 움찔거려가지고 어머니께 혼났다. 나도 왜 그렇게 위협을 느끼는지, 예전처럼 어머니께 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없는지를 잘 모르겠다. 내 몸이 예전에 나 같지가 않다. 제발 내 몸이 어머니에게 편안히 다가갈 수 있는 몸으로 바꼈으면 좋겠다.(2022년 12월 17일)
A가 행한 신체·언어적 폭력이 직·간접적으로 드러나는 대목들도 있다. 그러나 시우는 폭력에 대해 인지하기보다는 더욱 더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 사랑하고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사세요. 사랑하고 스트레스 많이 드려서 죄송합니다. 또 저를 사랑해 주시고 병○ 같은 정신병자인 저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2022년 12월 5일)
피학대아동이 상처를 주는 부모학대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려 자신이 학대받아 마땅하다는 부정적인 생각하고 있음을 밝혔다.(고미영 <학대받은 아동에 대한현상학적 연구> 일부, 2004년)
시우는 문제의 화살을 계모가 아닌 자신에게 돌렸다. 스스로를 ‘정신병자인 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라고 서술하며, 계속해서 애정을 갈구했다.
저녁시간은 최악이었다. 그 이유는 ○○(동생)와 □□(동생)가 싸웠는데, 거기서 엄마가 폭발해서 ○○도 때리고 그다음 나도 때렸다. 또 다 나 때문이라고 하셨다. 또, 내가 빨리 죽으라고 하셔서 나는 빨리 무슨 교통사고 나서 죽을 것이다. 필리핀에서 오토바이 치였을 때처럼 말이다. 내가 빨리 없어지고 죽어야 다른 사람이 행복하니까 빨리 죽을 것이다. 엄마의 말처럼 내가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 그냥 빨리 죽어야겠다.(2022년 12월 24일)
애정을 갈구하던 시우의 생각은 ‘자신이 사라져야 가족들이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죽음에 관한 서술은 시우가 집 안에 고립되면서 더욱 자주 등장했다.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착취당하는 아이를 본 주변 이웃들이 의심이 간다고 생각할 때 (피해 아동을)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죠.”
송미강 대표는 “이웃들이 시우를 조금 더 유심히 들여다보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표했다. 시우는 친모로부터, 학교로부터 격리돼 있었지만, 집안일을 하며 외출을 했기 때문에 이웃들과 마주쳤을 거라는 주장이다.
사회가 시우를 조금 더 일찍 발견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었다. 학교도 전화로만 시우의 안전을 확인할 것이 아니라, 직접 방문해서 아동의 상황을 파악했다면 어땠을까.
시우는 초등학교 5학년 2학기에만 1차례 질병결석을 하고, 4차례 ‘가족 동반 체험학습’을 이유로 체험학습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실상은 그와 달랐다. 강제로 성경을 필사하고, 무릎 꿇고, 회초리로 맞는 등 신체·정신적 가혹행위가 이어졌다.
“우리 사회가 아동학대 사건이라고 하면 주목하기는 하는데, 어떻게 예방할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불모지인 것 같아요.”
아동학대 사건은 사람들의 분노와 공감을 이끌어내지만, 사후 대책에 대한 논의는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하는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부터 매년 약 44명의 아이들이 아동학대로 죽는다(2023년 기준). 폭력에 굴레에 갇힌 아이들은 오늘도 구조를 기다린다.
한편, 7일 계모 A에게 ‘아동학대살해죄’를 적용해 징역 30년을 선고한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자신의 학대로 피해 아동에게 또 다시 중한 학대를 가할 경우 아동 사망 위험 내지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그럼에도 중한 학대와 엄벌을 계속해 사망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원심은 살해의 미필적 고의가 없었다고 보고 무죄로 판단했는데 원심판결에 영향을 미친 법리 오해의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일기장에도 주목해 “피해 아동은 학대당할 때마다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리고 용서를 구하며, 피고인의 애정을 갈구하는 내용을 빼곡하게 기록했다”며, “피고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등 사망 무렵에는 12세 아동이 작성했다고 상상하기 어려운,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내용이 기재돼 있으나 피고인은 철저히 냉대하며 학대를 지속했다”고 지적했다.
시우의 친부는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의 형이 확정됐다.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