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운명을 직면한 곳에는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눈길 위 발자국이 장례식장으로 안내했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마주하기까지의 거리는 스무 걸음에 불과했다. 그 짧은 절대 고독의 시간. ‘홀로 떠나는 길이 무섭진 않았을까’ 생각했다. 안양장례식장 출입문을 통과하자, 저 멀리 찢어지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빈소에 도착해 그의 사진을 마주했다. 사진 속에서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평소 그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썼던 사진이었다. 익숙했던 그의 모습은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영정사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옆에는 믿기 어려운 글자가 쓰여 있었다. ‘故(고) 김인규’.

의료법인 백제병원(이하 백제병원)의 비리를 세상에 알린 공익제보자 김인규 씨. 그가 지난 4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48세. 당일 오후 2시경 직장 동료가 심정지 상태의 김 씨를 발견했다. 사망 추정 시각은 오전 10시 30분경이다. 김 씨는 기계설비 회사에 다녔다.

백제병원의 비리를 세상에 알린 공익제보자 김인규 씨가 2월 4일 세상을 떠났다 ⓒ셜록

김 씨의 아내 장미정(가명) 씨가 빈소를 지켰다. 상주(喪主)는 올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여덟 살 아들. 장 씨는 기자의 두 손을 잡고 소리 내어 울었다. 장 씨는 최선을 다해 입을 열었지만, 온전한 문장을 만들지 못했다. 장 씨의 부르튼 눈 사이로 눈물이 하염없이 비집고 나왔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하다가….”

장 씨 곁을 어린 아들이 지켰다. 아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엄마에게 휴지를 건넸다.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슬픔이었다. 지난 5일의 일이다.

김인규 씨의 아내 장미정(가명) 씨와 여덟 살 아들이 빈소를 지켰다 ⓒ셜록

빈소 앞엔 근조화환 수십 개가 놓여 있었다. 지인뿐만 아니라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김 씨를 추모했다. 김인규 씨가 공익제보자로서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저희는 가족처럼 지낸 사이었어요. 2월에 같이 가족여행을 가기로 해서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갑작스럽게 소식을 들었죠. (…) 저희는 학교폭력, 아동학대 예방 등 공익신고를 기반한 단체라서 김인규 선생님이 이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저희뿐만 아니라 요양보호시설 또 노인학대 등 다방면으로 많은 분들한테도 도움을 주시고요. 형편도 어려우셨을 텐데 상금도 갖지 않고 공익신고자들한테도 나눠주시고요. 선생님이 그동안 하셨던 선행이 밝혀지지 않은 게 많아 속상합니다.”(박경진 아동학대신고의무자인권지킴이 아이즈 공동대표)

공익제보자 김인규 씨 빈소 앞엔 근조화환 수십 개가 놓여 있었다. ⓒ셜록

김인규 씨가 걸어온 지난 삶이 그를 증명한다. 김인규 씨의 모친은 2019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김 씨는 백제병원의 잘못으로 어머니를 잃었다고 판단했다.

백제병원은 충남 논산시에서 가장 큰 병원인 백제종합병원과, 논산시로부터 위탁받은 요양병원 논산시립노인전문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김 씨의 모친은 2016년 11월 논산시립노인전문병원에서 입원했다가 낙상사고를 당했는데, 병원은 검사도 하지 않은 채 환자를 방치했다.

사고 3개월 후에야 김 씨는 그동안 병원이 알리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됐다. “모친의 좌측 고관절이 부러지고, 엉치뼈 쪽은 깨져 염증이 심했다”는 사실을. 그동안 병원이 김 씨 모친에게 한 대처는 진통제인 타이레놀 처방과 얼음팩 제공뿐이었다.

2017년 1월 이후 김 씨의 모친은 백제종합병원에서 네 차례 수술을 받았다. 2018년 3월 다른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이어갔지만, 결국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관련 기사 : <노인 환자는 뒷전..‘대리진료’하며 요양급여 챙겨>)

이때부터였다. 김 씨가 공익제보자의 삶으로 들어선 건. 김 씨는 지난 7년 동안 백제병원을 집요하게 취재했다. 어머니의 피해만 살펴본 게 아니다. 백제병원에 의한 의료사고 피해자들을 수소문해 함께 힘을 모으기도 했다. 이 외에도 무자격자 수술, 과잉진료, 의사면허 불법 대여, 허위 의무기록지 작성, 간병인 학대 등의 의혹을 추적했다.

“대한민국 의료현실과 허점에 대해서 누군가는 행동하며 목소리를 내야 하기에, 시간을 쪼개서 여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대한민국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자 및 노인 인권 문제 등 의료 현실은 너무나 막막하고 안타깝습니다.(…)

그동안의 여러 시민단체와 함께 노력하고 목소리를 낸 덕분에 조금이나마 국민들이 알게 되고 조금씩 개선도 되었지만, 너무나 더디고 오래 걸립니다. 국민의 관심과 목소리가 뭉칠수록 힘이 커지고, 의료 문제점도 점점 더 많이 개선될 겁니다.

저는 오늘도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외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누구나 환자가 됩니다. 누구나 아플 수 있습니다.’, ‘세상은 바뀔 수 있습니다.’”(김인규 씨의 페이스북 프로필 소개 중)

공익제보자 김인규 씨는 백제병원의 잘못으로 어머니를 잃었다고 판단했다. ⓒ주용성

공익제보자의 삶에 들어서면서, 김인규 씨는 고초도 많이 겪었다. 백제병원은 법적 대응을 택했다. 돈 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니까.

‘김인규 하나쯤은 법으로 거뜬히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백제병원은 김인규 씨를 형사고소했다. 김 씨가 백제종합병원에 “온수가 안 나온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는 이유에서였다. 뒤이어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이번엔 김 씨 때문에 병원의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했다.

형사 사건에선 김 씨가 이겼다. ‘무혐의’로 사건 종결. 그럼에도 병원 측은 민사소송을 이어갔다. 5000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민사소송에선 병원이 이겼다.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은 병원 측 주장을 받아들여 김 씨에게 200만 원을 손해배상하라고 판결했다.(관련 기사 : <“온수 안 나와” 지적한 환자 가족 고소한 병원>)

그럼에도 김 씨는 멈추지 않았다. 더 적극적으로 백제병원 비리를 세상에 알렸다. 2018년 ‘환자안전의날’(9월 17일)엔 보건복지부를 찾아가 ‘안전사고 사례 발표’를 했다. 그다음 해엔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청렴정책 국민모니터단’으로 활동했다. 2020년엔 공익제보자를 지원하는 호루라기재단에서 ‘올해의 호루라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인규 씨는 의료법인 백제병원의 비리를 제보한 공을 인정받아 2020년 ‘올해의 호루라기상’을 받았다 ⓒ김인규

김인규 씨는 그동안 진실탐사그룹 셜록과도 남다른 인연을 맺어왔다. 셜록은 지난 2020년부터 <논산의 자랑, 백제병원의 배신> 프로젝트, 총 15편의 기사를 통해 백제병원의 각종 비리 의혹을 보도했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 바로 김인규 씨의 제보였다.

3년이 지난 2023년, 셜록은 김 씨를 다시 만났다. ‘패소자 부담 원칙’으로 인해 위축되는 공익소송 문제를 지적하는 <정의 비용 : 법원의 이상한 계산법> 프로젝트를 진행했을 때였다. 당시도 김 씨는 백제병원에 대한 공익신고와 공익소송을 이어가고 있었다.(관련 기사 : <돈 없으면 덤비지 마! ‘올인’ 소송법이 한국을 망친다>)

사실 김 씨가 아무리 간절하게 싸워도, 돌아가신 어머니가 살아 돌아오진 않는다. 밤새 증거 자료를 만들어서 공익신고를 한다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김 씨는 백제병원과의 지난한 싸움을 꿋꿋이 이어갔다.

“누군가는 알려야 하잖아요. 병원에서 불법이 일어나고 있다고.”

셜록이 백제병원으로부터 법적 ‘공격’을 받았을 때였다. 셜록 기자는 보도 직후인 2020년 민사소송을 당했다. 병원 측은 약 2억 원의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약 3년의 소송 끝에, 셜록의 최종 승리로 끝났다. 그동안 백제병원과의 소송전에 본인이 가장 지쳤을 법한데도, 김인규 씨는 셜록의 승소 소식을 누구보다 기뻐했다.

백제병원과 민형사 소송을 한 언론사나 피해자 중 모든 민형사 협박 소송을 이긴 최초이자 최고의 기록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뜻깊은 승리입니다. (…)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셜록의 모든 기자 및 관계자분들께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2023. 2. 28. 김인규 씨가 보낸 문자메시지)

공익제보자 김인규 씨는 2020년 ‘논산의 자랑, 백제병원의 배신’ 프로젝트 때부터 셜록과 남다른 인연을 맺어왔다 ⓒ주용성

평소에도 김 씨는 셜록을 향한 깊은 애정을 보여왔다. 페이스북 프로필에는 셜록의 프로젝트 기사 링크를 제일 첫 번째로 소개해놓았다. 첫 보도로부터 약 5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링크 하단에는 아예 “진실탐사그룹 셜록 ‘논산의 자랑, 백제병원의 배신’ 연재기사 = ‘공익제보자’에서 근무”라는 문구를 달아놓기도 했다.

때때로 주고 받는 문자메시지 하나에도 타인을 향한 응원과 격려의 말을 빼놓지 않는 사람이었다. 길고 긴 싸움에, 누구보다 응원이 필요한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으면서도.

“김보경 기자님의 글은 우리의 마음을 잘 다독여주고 어루만져주시는 것 같아서 더욱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큰 힘이 됩니다. 고마워요!! 복 받으실 거예요~^^ 좋은 일 가득한 3월 되시길요~”(2023. 2. 28.)

“아무것도 안 하면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해보죠!! 김 기자님도 무더위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파이팅요^^”(2023. 8. 21.)

때로는 선물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초록색 페트병에 담긴 고로쇠 물 한 상자가 셜록 사무실로 배달됐다. 그다운 선물이었다. 몸에 좋은 물 마시고 앞으로도 좋은 기사 쓰라고.

“늘 고생하시는 셜록 기자분들과 같이 나눠드시고, 김보경 기자님은 꼭 세 병 이상 챙기십쇼!!! ㅎㅎ ^0^ 김 기자님 외 모두 잘 드시면 되어요. 기획 <검사가 ‘살려준’ 의사들>도 많이 응원하겠습니다. 의료 쪽이 많이 어려운 분야라 더욱 힘드실 거예요. 물론 비리 검사가 핵심이긴 한데 그래서 또 공감되네요~! 자!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혹시라도 제가 도울 일 있음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이만 저는 물러갑니다^^”(2024. 1. 18.)

공익제보자 김인규 씨가 지난해 셜록에 보낸 고로쇠 물. 그다운 선물이었다. ⓒ셜록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도 김인규 씨를 “정의를 향해서 열정과 노력으로 세상을 바꾸려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최정규 변호사는 김 씨가 백제병원의 부정수급 문제 등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경찰청에 공익신고 하는 데 함께했다.

“저는 1월 31일에 김인규 선생님과 마지막 통화를 했어요. 그래서 부고를 더 믿기 어려웠어요. 김인규 선생님은 누구보다 용기 있게 공익제보 활동을 하셨어요. 본인도 민사소송을 당해서 그런지, 다른 공익신고자들도 굉장히 많이 도와주셨다고 하더라고요. 가장 따뜻하게 공익신고자들을 조력해온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조충원 씨는 의료사고 피해자 가족 모임에서 김인규 씨를 알게 됐다. 조 씨의 경우 친언니가 의료사고 피해를 겪은 후, 수술실 CCTV 설치 법제화 촉구 등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조 씨는 김인규 씨를 이렇게 기억했다.

인규 씨는 되게 적극적인 사람이에요. 어떤 불의에 대해서도 그냥 넘어가지 않아요. 저는 이런 사람들이 있어야 사회가 바뀐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행동을 해야지만 언젠가는 바뀔 수 있잖아요.

그리고 인규 씨는 인간적으로도 싹싹한 사람이고요. 자기가 보기에 (누군가를) 안 됐다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해요. 인간적으로 말 한마디라도, 아니면 명절 때 뭐 하나라도 보내주고요. 본인도 힘든 상황에 있는데도 마다하지 않고 항상 애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유가족은 지난 7일 경기 화성시에 있는 함백산추모공원에 김인규 씨를 안치했다.

유가족은 2월 7일 경기 화성시에 있는 함백산추모공원에 김인규 씨를 안치했다 ⓒ유가족 제공

김인규 씨는 이런 사람이었다. 병원이란 거대 권력과 싸우면서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 스스로를 다독였던 사람. 주변 사람들에게 안부 연락 하나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사람. 그리고 다른 사람의 슬픔도 자신의 아픔처럼 여기는, 그런 귀한 사람.

진실을 위해 싸워온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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