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탄핵심판 취재에도 차별이 존재한다. 헌법재판소 브리핑룸 앞자리에는 법조기자단만 앉을 수 있다. ‘전용 좌석제’다.
탄핵심판 변론기일 때마다 헌재가 법조기자단의 편의를 봐주고 있는 것.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헌재가 사실상 차별행위에 앞장서고 있다.

헌재는 윤석열 탄핵심판이 열리는 대심판정 영상을 브리핑룸으로 실시간 중계하고, 기자들은 브리핑룸에서 화면을 보면서 취재를 한다. 헌재는 법조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매체별 전용 좌석을 지정해두고 있다.
앞쪽 네 번째 줄까지 46개 좌석으로, 비(非)출입기자들은 사용할 수 없다. 헌재는 브리핑룸 문 앞에 ‘법조 출입기자단 좌석배치도’를 붙여놨다.
헌재는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이 본격 진행됨에 따라 브리핑룸 이용 언론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을 이유로, “효율적인 브리핑룸 사용을 위해 출입기자 간사단과 협의하여 기자실 개념의 좌석지정제(법조 출입기자 대상)를 실시“한다고 공지했다.
법조기자단에 속하지 않은 기자들은 아무리 서둘러 와도 소용이 없다. 법조 출입기자가 아니면, 브리핑룸 앞자리는 절대 앉을 수 없으니까. 사실상 ‘법조 출입기자들’만을 위한 특혜였다.

선착순으로 앉을 수 있는 한정된 ‘비지정석’ 자리를 두고 비출입기자들은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실제로 탄핵심판 변론기일이 열리는 시간보다 서너 시간씩 일찍 와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비출입기자들만 경쟁하는 것도 아니다. 매체마다 한 명의 기자만 취재를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법조기자단 소속 매체 기자들이 지정석은 물론 비지정석까지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는 지난 6일 오전 8시 헌재로 직접 찾아가 봤다. 윤석열 탄핵심판 6차 변론기일이 열리기 두 시간 전. 정문 앞 안내소에서 출입증을 발급받아야 브리핑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명함을 제시하며 출입증 발급을 요청했지만 기다리라는 말밖에 듣지 못했다. 그 사이, 셜록 기자보다 늦게 온 수십 명의 기자들은 출입증을 발급받아 브리핑룸으로 속속 들어갔다.
결국 미디어오늘 기자까지 가세(?)해 재요청을 거듭한 끝에 출입증을 받을 수 있다. 출입증을 발급받고 브리핑룸에 들어가기까지 1시간 45분이 걸렸다.
오전 9시 45분경 셜록 기자가 브리핑룸에 도착했을 때, 좌석은 이미 만석이었다. 헌재는 좌석이 부족한 경우를 대비해 대강당에서도 변론 영상을 시청할 수 있도록 열어놓고 있다. 하지만 대강당에선 공보관 브리핑을 듣거나 질의를 할 수 없다. 또 오후 6시가 지나면 대강당 문을 닫아버린다. 브리핑룸과는 취재환경상 엄연한 차이가 있다.

언론사들끼리 좌석지정제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노력도 있었다. 지난 1월 김예리 미디어오늘 기자가 주축이 돼, 좌석지정제에 문제의식을 가진 언론사 22개가 모였다.
좌석지정제에 문제의식을 가진 언론사(22개)
국내언론 : 노동법률·뉴스어디·뉴스타파·매일노동뉴스·미디어오늘·민중의소리·시사인·일요시사·진실탐사그룹 셜록·조세일보·천지일보·코트워치·쿠키뉴스·프레시안
해외언론 : PTS(대만공영방송)·도쿄신문·라디오프랑스 인터네셔널·러시아 스푸트니크·인민망·홋카이도신문·TV도쿄·TV아사히
좌석지정제 혜택을 받는 언론사는 42개다. 좌석지정제에 문제의식을 가진 언론사 기자들은 지난달 20일, 법조기자단에 좌석지정제를 철회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법조기자단은 지난 3일 브리핑룸 좌석지정제 유지 여부를 투표로 부쳤다. 투표 결과 좌석지정제 유지가 31표, 철회는 6표에 그쳤다.
22개 언론사 기자들은 ‘지정석이 있는 매체의 기자들은 지정석에만 앉고, 나머지 비지정석까지 앉는 것은 막아달라’고 요청했지만, 그것도 거절당했다.
*좌석지정제 혜택 언론(42개) : KBS·MBC·SBS·JTBC·TV조선·채널A·MBN·YTN·연합뉴스TV·OBS·CBS·BBS·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문화일보·세계일보·국민일보·서울신문·한국일보·한겨레·경향신문·내일신문·연합뉴스·뉴시스·뉴스1·머니투데이·뉴스핌·한국경제·매일경제·서울경제·조선비즈·헤럴드경제·파이낸셜뉴스·아시아경제·아시아투데이·이데일리·이투데이·더팩트·뉴스토마토·오마이뉴스·법률신문

셜록은 국가인권위원회에, 헌재의 브리핑룸 좌석지정제 운영에 대한 진정을 제출할 예정이다. 김보경 셜록 기자와 김예리 미디어오늘 기자가 진정인으로 나섰다. 피해자엔 진정인을 포함해 박채린 뉴스어디, 오혁진 일요시사 기자 등이 이름을 올렸다.
셜록은 법조기자단 폐쇄적 운영 문제를 직접 진정해, 인권위의 의견표명을 이끌어낸 경험이 있다. 인권위는 2022년 2월,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 등에서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대우를 하지 않도록 관행이나 제도를 개선하라는 의견을 밝혔다.
당시 인권위는 “언론사 간 차별적 대우로 인한 평등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특정 언론사의 취재에만 편의를 제공하고 중소 및 신생 언론사의 취재는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이나 검찰청, 헌재와 같은 공공기관을 출입하는 데에, 왜 사조직인 법조기자단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걸까. 취재 편의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특종’을 매개로 언론과 유착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법조기자단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셜록과 미디어오늘, 뉴스타파는 법조기자단 개혁을 위해 소송도 진행했다. 지난 2021년 3월 미디어오늘은 세 언론사를 대표해 서울고법을, 셜록과 뉴스타파는 서울고검을 상대로 각각 ‘기자실 사용 및 출입증 발급’ 거부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약 3년 8개월 만에 소송전은 막을 내렸다. 바라던 결과는 아니었다. 셜록은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최종 패소했다.
셜록은 법조기자단 개방화를 위한 헌법소원도 2021년 청구했다. 법조기자단 개방화를 위한 헌법소원을 심리 중인 헌재. 그런 헌재가 브리핑룸 ‘전용좌석제’ 시행을 통해 법조기자단 중심의 폐쇄적인 공보 시스템에 앞장서고 있는 꼴이다.

셜록은 지난 10일 헌재 공보관실 담당자에게 반론을 요청했다. “헌재가 법조기자단 지정석 제도를 운영하는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 “사조직인 법조기자단에 브리핑룸 운영 권한을 위임한 건지” 물었다.
담당자 A는 하루 뒤인 11일 “별도의 상주 출입기자실이 없는 헌법재판소의 청사 사정과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심리기간 동안 매일 상주하는 ‘헌재 출입기자’의 요청을 고려하여 브리핑룸 내 일부 좌석에 대해 ‘출입기자실 기자석’ 개념의 지정좌석제를 시행하고 있다, 박근혜 탄핵심판 사건 때도 동일하게 운영한 바 있다”고 답했다.
이어 A는 브리핑룸 운영 권한 위임에 대해 “헌재는 해당 권한을 헌재 출입기자에 위임하지 않았다, 다만 브리핑룸 운영과 관련하여 헌재 출입기자 간사 등의 협조 요청이 있을 경우 검토한다”고 설명했다.
지정좌석제 운영의 법적 근거에 대한 답변은 없었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