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을 때면 죽음이 가로지른 현장이 떠올랐다. 유족들의 울부짖음, 생사의 기로에 선 요구조자의 비명, 싸늘한 주검이 된 어떤 이의 슬픈 눈, 살인자와 한 공간에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 방 안에 불을 꺼도 생각이 꺼지지 않는 밤은 길어졌다.

‘슈퍼맨’은 3년간 불면에 시달렸다. 시끄러운 머릿속을 잠재우는 방법은 술뿐이었다. 소주 반 병을 마셨다. 머리 끝까지 생각이 가득 찼다. 체한 듯한 느낌. 답답한 마음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공업용 커터칼과 넥타이를 준비했다.

그날의 ‘사고’로 그는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됐다 ⓒ셜록

“형, 미안해. 나 때문에 괜히 죄책감 갖지 말고, 부모님 잘 부탁해. 정말 미안해.”

친형과 나눈 통화가 자신의 유언이 되기를 바랐다. 고요한 집안. 용암처럼 뜨거운 피가 흘러내렸다. 허벅지를 타고 전해지는 온기에 체기가 가시는 것 같았다. 그제야 조금 숨이 트였다.

가만히 죽음을 기다렸다. 눈을 떠도 앞이 뿌옇게 흐려질 때쯤 현관 쪽이 소란해졌다. 익숙한 목소리와 얼굴들. 함께 일하는 소방서 동료들이었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하면 마음에 면역력이 얇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니까 금전적인 문제, 가정적인 문제, 작은 스트레스도 크게 반응하게 되고, 그러다가 ‘사고’가 터진 것 같아요.”

이기영(38) 씨는 2023년 11월 30일 동료들에 의해 구조됐다. 병원으로 바로 이송된 그는 손목 힘줄을 봉합하고, 정신과로 인계됐다. 그때부터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했다.

소방 공무원 합격까지 1년. 기영 씨는 그때 꿈을 다 이룬 듯했다 ⓒ셜록

그는 2015년 소방공무원 공채로 뽑혀 화재진압팀에서 근무했다. 화재 현장에서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했다.

소방관이 되기 전에는 다른 제복을 입었다. 그는 군사학과를 졸업하고 부사관으로 복무했다. 기영 씨는 보람 있는 하루를 살고 싶었다. 그 길이 소방관이었다. 일은 고됐지만 가치 있는 매일이었다.

일상에 전환점을 맞은 건 이듬해인 2016년이었다. 그는 구조대로 발탁됐다. 화재진압 대원들이 화재 진압과 1차 인명 구조를 했다면, 구조대는 각종 재난사고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활동을 한다. 화재사고뿐만 아니라 교통사고, 산악사고, 수난사고 등 더 많은 현장으로 출동해야 했다.

“구조대 첫날부터 ‘이거 너무 힘들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영 씨가 구조대로 처음 나간 현장은 2층 가정집이었다. 연락이 안 된다는 가족들의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가족들이 문 좀 열어달라며 발을 구르고 있었다.

굳게 잠긴 문을 뒤로하고 사다리에 올랐다. 현관문을 부수면 비용이 더 들기 때문이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2층 창문을 여는 게 기영 씨의 몫이었다. 창문을 열자 보인 건 사람의 발. 그것도 새파랗게 변해버린 발이었다. 기영 씨는 상황을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망설였다.

창문 너머에는 잊을 수 없는 그 사람이 있었다 ⓒ셜록

주저하는 모습에 눈치 챈 선배는 “문부터 따”라고 지시했다. 이번에는 사다리에서 내려와 가족들이 있던 현관으로 돌아갔다. 양손에는 장비를 챙겼다. 두려움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난생 처음으로 시신을 직접 목격했다. 그리고 꼭 그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고리가 떨어졌다. 현관문을 열어젖히니 후끈한 공기가 빠져나왔다. 한겨울에 보일러를 틀어둔 모양이었다. 퀴퀴한 냄새가 밀려왔다. 그리고 방안에는 인기척 없이 누워 있는 시신이 있었다.

“어떻게 됐냐, 거기?”

선배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가족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울음소리. 기영 씨는 비명 같기도 짐승의 울부짖음 같기도 한 그 소리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시신을 직접 목격한 것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절규하는 사람들의 울음소리. 찢어질 듯한 비명이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저희는 (출동 나갔다) 돌아오면서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를 해요. 애써 외면하는 거죠. 저는 굉장히 불안하고 무섭고 답답한데, 현장 이야기를 못 하니까 더 답답한 거죠.

기영 씨는 심리적으로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혼자 있을 때면 귓가에 가족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이따금씩 퍼렇게 변한 발이 눈 앞에 지나가기도 했다. 방 안에 들어섰을 때 풍긴 냄새가 콧속에 남아 있는 것도 같았다. 반면 동료들은 태연하게 일상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지금 내가 나약해서 괴로운 거다. 내가 처음이라 어려운 거다.’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 선배도 있었다. 출동이 출동을 잊게 한다고. 참혹한 현장에 다녀와 생각에 잠겨 있다가도 출동 벨소리가 울리면 다시 긴장하고 상황에 몰입하게 된다고.

그래도 사이렌은 울렸다. 충격적인 기억에서 잠깐 멀어지는 순간이었다 ⓒ셜록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라는 기대가 무너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출동 벨소리에 몰두하는 건 사실이었지만, 혼자 있을 때면 그를 괴롭히는 현장은 늘어나기만 했다.

“제가 소방관으로 10년 정도 일했거든요. 대전에서 나고 자라 여기에서만 근무를 했으니까 어디를 지나도 현장이 떠올라요. 여기에서는 어떤 분이 돌아가셨고, 여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고.”

머릿속에 가득 찬 기억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도, 동네를 산책하는 길목도 언젠가 다녀왔던 현장이었다.

그날은 아파트로 출동을 나갔다. 신고자는 아들. 그는 부모님이 이혼했다고 소개하며,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나러 갔는데 연락이 안 된다고 말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집 앞에서 기영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영 씨는 위층에서 로프를 타고 7층으로 내려갔다. 창문을 여니 버티컬블라인드가 쳐져 있고 한기가 느껴졌다. 한여름에 에어컨을 계속 틀어놓은 듯했다. 블라인드를 걷자 비릿한 피 냄새가 풍겼다.

창문을 넘어 들어가니 얼굴에 형체가 사라진 할머니가 누워 있었다. 그 옆에는 혈흔이 묻은 도끼가 있었다.

창문을 열자 풍긴 지독한 피비린내 ⓒpixabay

“이, 이거 아무래도 살인사건 같은데요.”

무전으로 상황을 보고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피해자만 발견했지 아직 가해자는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살인범이 집 안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여름이지만 등골이 오싹해졌다.

‘누가 뒤에서 칼로 찌르지 않을까? 빨리 문 따야겠다.’

로프를 타고 선배 한 명이 창문을 넘어 들어왔다. 두 사람은 옆구리에 빠루를 차고 베란다를 지나 거실로 진입했다. 현관문을 열어 동료들의 진입을 돕기 위함이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기영 씨를 확 잡아챘다.

긴장하고 있던 몸을 웅크리며 소리를 질렀다. 뒤를 돌아보니 버티컬에 발목이 걸려 있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때 소파 옆 검은 형체가 기영 씨의 눈에 들어왔다. 소파 옆에 기대 눈을 감고 있는 할아버지였다. 그 옆으로는 농약 두 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위기 상황에 처했던 수많은 최초 대처자가 흔히들 그렇듯이 몇 초에 불과한 이 시간이 최초대처자의 삶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구조대의 SOS>(댄 윌리스, 불광출판사, 2016) 일부)

소방관은 참혹한 현장을 가장 먼저 목격하는 ‘최초 목격자’다. 이들은 시신을 마주하기도 하고, 잔혹한 현장에 노출되기도 한다. 또, 살인현장에서 범인의 표적이 될지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찰나의 순간들은 그의 삶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셜록

기영 씨는 살해 현장만큼 무서운 건 수난사고라고 설명했다.

“수심 한 5m(미터)까지는 햇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조금 따뜻하기도 하고, 볕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 이상으로 내려갈수록 온몸에 냉기가 돌아요.”

그날은 누군가 다리 위에서 물속으로 뛰어내렸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몸 주변으로 냉기가 감쌌다. 아무리 훈련을 해도 발을 바닥에 디디면 펄이 올라왔다. 모래가 시야를 가려 눈 앞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기영 씨는 우주 공간에 혼자 떠 있는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장비에 의지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도 겨울이라 한여름보다는 시야가 나왔다. ‘재수가 좋으면’ 손에 물컹한 게 걸릴 것이다.

그때였다. 물속에 눈을 부릅뜬 남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남자는 꼿꼿하게 서서 기영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놀라서 일단 물 위로 올라왔어요. 올라와서 여기 있다고 말해서 특수구조팀에서 끌어낸 거죠. 발견을 또 제가 한 겁니다.”

현장의 기억들은 잘 소화되지 않았다. 얹힌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unsplash

그는 감이 좋았다. 현장에서 시신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일이 많았다. 누군가는 소방관이 천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영 씨에게는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긴장을 해도 실제로 마주쳤을 때의 충격을 완전히 대비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동료들과 현장에서 느낀 두려움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도 없다. 다들 묻어두고만 사니까. 기영 씨는 그날의 일도 가슴에 묻었다. 홀로 지워내야 하는 일이 또 하나 늘었다.

억누른 감정들은 불면 증세로 나타났다. 눈을 감아도 사건 현장이 보이고, 들리고, 느껴졌다. 가슴이 두근거려서 이불을 뒤척이고, 악몽에 시달려 잠에서 깨기도 했다.

“그는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고, 설사 한두 시간 힘들게 잠이 들어도 악몽에 시달리고, 주기적으로 불안 발작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 곧이어 그에게는 진단되지 않는 전형적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생길 것이고, 이 한 순간이 그의 인생을 규정해버려 어떻게 마음을 치유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무기력함 때문에 감옥에 갇힌 기분이 들 것이다.”(<구조대의 SOS> 일부)

기영 씨를 잠 못 들게 하는 건 시신뿐만이 아니었다.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2018년 퓨마 한 마리가 탈출했다. 대전소방본부와 경찰특공대가 동원됐다. 수색에 투입된 인원만 200명이 넘었다. 경찰특공대는 실탄을 장전하고 투입됐다. 소방대원들에게는 손도끼가 주어졌다. 총이라곤 마취총뿐이었다.

기영 씨는 운좋게 사냥이 취미인 선배와 한 조가 됐다. 함께 수색하던 중 어느새 시야에서 선배가 사라졌다. 평소에도 멧돼지를 잡으러 다니는 선배니 산 타는 것쯤은 우스웠다. 산 위쪽로 올라간 선배를 대신해 기영 씨는 아래쪽을 수색했다.

한참을 찾던 중 주변이 고요해졌다. 기영 씨의 발소리만 들렸다. 이상하게 등골이 서늘했다. 뒤를 돌아보니 3m 거리를 두고 퓨마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퓨마가 덤벼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일을 하다 보면 죽음이 그렇게 멀리 있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그래서 문제인 것 같기도 해요.” ⓒ셜록

기영 씨는 조금 전 핸드폰으로 찾아봤던 행동요령을 기억했다. 퓨마를 만났을 때는 소리 지르고 몸집을 크게 해서 위협적으로 보여야 했다. 그는 양팔을 들어올리고 몸집을 키운 채 소리를 질렀다.

퓨마는 놀란 기색도 없이 그를 빤히 노려보며 천천히 걸음을 뗐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처음 느꼈다. 현장에서 몸을 지킬 수 있는 게 손에 들고 있던 도끼뿐이었다는 것도 끔찍한 일이었다. 지금도 기영 씨는 퓨마를 마주치는 꿈을 꾼다. 그러면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깬다.

“제일 잠 못 들게 하는 건 안타까운, 구할 수 있었는데 못 구한 현장이에요. 내 탓이 아닌 걸 알거든요. 객관적으로 봐도 내 탓이 아닌데, 그래도 내 탓 같아요.

하루는 원룸으로 향했다. 딸이 자살을 기도한 것 같다는 어머니의 신고였다. 현장으로 향하며 신고자와 연락했다. 어머니 목소리는 차분했다. 며칠 전에도 자살기도 한 적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번에도 시도에 그쳤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현장에 출동하니 어머니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문고리를 따고, 평소처럼 현관문을 확 젖히려 했다.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게 문이 서서히 열렸다. 그 너머에 목을 맨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늘어진 긴 생머리 틈으로 나를 노려보는 듯했다. 그는 천장에 매달려 뱅뱅 돌고 있었다.

‘내가 조금 더 빨리 왔으면…’

시신이 돌고 있다는 건 목을 맨 지 몇 분 안 됐다는 의미였다. 조금 더 빨리 오지 못했다는 자책이 어깨를 짓눌렀다. 정말 몇 분만 더 빨랐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 옆으로 어머니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기영 씨는 지워내지 못한 기억 속에 살고 있다 ⓒ셜록

“자살 징후자가 있기도 한 것 같아요. 같은 호실에서 계속 출동이 와요. 본인이 신고하는 경우도 있고, 주변에서 하는 경우도 있고. 돌아가시지 않고 시도만 하던 분들이었는데, 그런 분들도 언젠가 돌아가시더라고요. 그게 자살 징후거든요.”

그는 위급한 상황이라고 직감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했다. 그리고 똑같은 문고리를 고물상에서 구해왔다. 신속하게 문고리를 따는 연습을 했다.

기영 씨는 현장을 다녀오면 자신을 더 몰아세웠다. 더욱 각성 상태로 밀어넣고, 더욱 빠르게 판단하고, 신속하게 사람을 구할 수 있도록. 소방관이 서툴러서는 안 되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면 안 되니까.

직업이 소방관인데, 힘들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게 쉽지 않아요. 소방관은 강인해야 된다, 이런 이미지도 있고. 외적으로는 티를 못 냈죠. 선배가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냐고 물어보면, 그냥 잠을 못 잔 것 같아요, 라고 대답하는 정도였어요.”

수면장애 때문에 하루 겨우 두세 시간 잘 수 있었다. 그런 날이 이어지자 결국 기영 씨는 술의 힘을 빌렸다. 술은 빨리 잠들 수 있게 도와줬다. 대신 새벽에 깨우는 일이 많았다. 결과적으로 수면의 질은 더 떨어졌으나 피곤해도 잠에 들 수 없고 고통스러워하는 시간이 줄었으니 그걸 됐다. 일상은 점점 무너졌다.

☞ 다음 이야기 <묻어둔 감정이 ‘사고’로 터졌다… 소방관은 누가 구할까>로 이어집니다.

취재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사진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