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소방관 이기영(38) 씨는 구조대로 출근한 첫날부터 ‘쉽지 않은 일’임을 직감했다. 화재사고뿐만 아니라 교통사고, 산악사고, 수난사고 등 참담한 현장에서 그는 늘 ‘최초 목격자’였다. 기억들은 지워지지 않았다. 잠 못 드는 밤이 늘어났다.
그래도 비상벨은 울렸다. 출동 사이렌이 울리면 다시 각성했다. 이번에는 교통사고 현장이었다.
교통사고 현장은 참혹하다. 요구조자가 온전한 모습으로 구조를 기다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차가 찌그러져 다리나 팔 등이 끼어 있다. 심지어는 토막 난 시신을 수습해야 하는 현장이기도 했다. 구조대는 구겨진 차체에서 사람들을 꺼내는 작업을 했다.
요구조자를 꺼내기 위해서는 구겨진 차를 다시 펴야 했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장비를 넣어 왼쪽을 펴면 반대로 오른쪽이 더 파고든다. 다시 오른쪽을 펴면 또 다른 쪽이 파고든다. 그러면 요구조자의 비명은 배가 된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다리가 절단되려고 하는데. 그런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침착하게 작업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지옥에서 들릴 것 같은 그런 비명이거든요. 그 소리가 한동안 계속 귓가를 맴돌아요, 집에 와서도.”
기영 씨는 생존자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마음에 공감했다. 그래서 더 신속하게, 더 아프지 않게 구조하려고 애썼다.
때로는 공감이 독이 됐다. 시신을 보면 이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화재 현장에서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돌아가신 분들은 몸에 불이 붙어서 돌아가신 거예요. 그러면 저도 모르게 생각하게 돼요. 그 상황에서 창문을 깰 수 있는 도구가 없었을 거고, 문은 찌그러져서 안 열렸겠다. 이 사람은 나오려고 노력을 했을 거고, 몸에 불이 붙었을 거고, 문을 두드리다가 돌아가셨겠구나 하는 게 머릿속에 그려져요.”
그는 2022년 현대프리미엄 아울렛 화재 현장에 투입됐다. 지하주차장 1층에서 시작된 불은 약 8시간 만에 꺼졌다.
기영 씨는 그 검은 연기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구했다. 그는 샤워실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그는 유독가스를 마셔 쓰러져 있었다. 거구의 남성을 대원 4명이 겨우 끌고 나왔다. 그는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그래도 불길 속으로 걸어갔다. 내부는 한치 앞도 안 보였다. 오직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만 보였다. 그때 의지가 되는 건 내 옆에 있는 동료다. 그래서 더 긴장하게 된다. 동료의 안전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부에서 출입구를 못 찾고 뱅뱅 돌고 있었거든요. 그때 공기호흡기에서 삐 소리가 들려요. 그러면 5분 안에 무조건 탈출해야 되거든요. 내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유가족들 고통스러워하는 울음소리가 떠오르고, 현장에서 발견해야 할 잔인한 사체들이 떠오르고, 못 구했다는 불안감도 엄습하고, 복합적이에요.”
기영 씨는 다행히 출입구를 찾아 동료들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날 화재 현장에서 지하실에 근무하던 근로자 8명 중 7명이 숨졌고, 1명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아무리 훈련을 받아도 그게 어떻게 마음속에서 잊혀지겠어요.”
그는 일상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피로가 몰려와도 잠에 들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공포와 두려움을 뛰어넘어 보람을 주는 일이었다. 기영 씨는 심리적인 지원을 받으면 해결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대전소방본부에서 운영하는 ‘찾아가는 심리상담실’에 참여했다. 이는 소방공무원에게 발생하는 외상후 스트레스, 우울증, 불면증 등을 예방 및 완화하고자 마련된 심리지원 프로그램이다. 전문 상담사 7명이 본부 및 5개 소방서를 찾아가 심리지원을 돕는다.
기영 씨는 그곳에서 대화를 나누고, 명상하는 법을 배우고, 복식호흡으로 스트레스를 낮추는 법을 배웠다.
“기영 씨, 되게 불안해요. 병원 가서 약 처방도 받았으면 좋겠어요.”
상담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상담사는 이런 말을 했다. 심리치료뿐만 아니라 약물치료도 병행해야 한다고.
기영 씨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어도, 전쟁이 나거나 지구가 멸망하면 좋겠다고 말하기는 했어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겨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사고’가 터졌다. 여느 때와 같은 하루. 술병을 반쯤 비운 그의 머릿속에 강렬한 충동이 일었다. 이 답답함을 풀어야겠다고. 그는 공업용 커터칼과 넥타이를 준비했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 다급하게 달려오는 구조대원들이 보였다.

동료들의 손에 구조된 기영 씨는 두 번째 삶을 사는 기분이다. 당시에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다만 3년간 억누른 감정이 한 번에 터진 것 같다고 추측할 뿐이었다.
“만약 이 직업이 아니었더라면 개인적인 일들이나, 금전적인 일들, 가족적인 일들이 생겨도 이겨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머니와 형은 굿을 해야 한다고 그를 설득했다. 아버지는 지금도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은 모른다. 정신과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는 정도만 알렸다.
기영 씨는 그때 처음 약물치료를 시작하며 못 잤던 잠을 다 잤다. 약을 먹으니 잠만 자고, 일어나면 밥을 먹고, 약 먹고 다시 잠을 잤다.
한 달 동안 약 10㎏이 빠졌다. 가게를 운영하시는 어머니도 한 달간 쉬며 그의 곁을 지켰다. 새벽에 자다가 깨면 거실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였다. 그는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며칠 뒤 어머니는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건강은 조금씩 회복됐다. ‘사고’로부터 두 달이 지났을 때는 외부에서 동료들도 만나고, 강아지와 산책을 다녔다. 휴식 4개월째를 지나면서 국내외로 여행도 다녔다. 소방서와 멀어질수록 불안, 압박감, 공포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는 해외여행을 특히 좋아했다. 비행기를 타는 순간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전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집은, 그리고 대한민국은 어디를 가도 현장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병가와 연가를 몰아쓰고 6개월이 지나 복직했다.

“아무리 소방관이고, 특수부대 출신이고, 내 숙명이라고 해도 내가 마음이 병들어가고 있는 걸 그냥 외면하고 살 뿐이에요. 어딘가로는 터져요. 참혹한 현장을 그렇게 보면서 괜찮을 수가 없어요. 술에 의존을 하든, 참다가 속이 다 곪아버리든.”
그는 ‘사고’ 이후 소방관에 대한 심리적 지원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최근까지도 대전 지역 소방관 중에서 자살한 사람이 1년에 한 명 이상은 있었다”며, “대외적으로는 부채 문제, 가정사로 알려졌어도, 직장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져 있을 거라고 말이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무안 제주항공 참사에서 소방관들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문제가 대두됐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충격적인 사건 이후 나타나는 지속적인 정신적 고통을 뜻한다.
179명이 희생된 사고 현장은 참담했다. 희생자들의 주검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 그날의 잔상은 투입된 소방관들의 머릿속에 박혔다. 현장을 취재한 언론들은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보도하기도 했다.
“저도 냄새로 현장을 기억하는 편이라서 공감이 되더라고요. 탄 냄새, 피 비린내, 부패한 냄새 같은 거요. 참혹한 현장에 다녀오면 그 냄새가 머리카락, 코털까지 다 배어 있어요. 그렇다고 마스크를 쓸 수는 없죠. 가족들이 다 보고 있으니까요. 그분들은 요구조자가 살아 있기를 바라면서 신고했을 테니까요.”
국가트라우마센터는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무안국제공항에 현장 상담실을 운영했다. 하지만 찾아오는 소방관은 거의 없었다. 기영 씨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찾아갈 수가 없죠, 거기(현장)에 유가족들이 있는데. 소방관은 슈퍼맨이어야 돼요. 아빠들이 슈퍼맨은 아니지만, 자식들한테는 그렇게 보이기를 바라는 것처럼요. 그래서 우리끼리, 아니면 스스로 해결해야 된다는 생각이 큰 것 같아요. 남들한테 도움받기보다는요.”

소방청은 소방관들을 대상으로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기영 씨가 참여했던 ‘찾아가는 심리상담실’, 힐링캠프 등이 있다.
“힐링캠프라고 해서 도자기 만들기, 1박 2일 숲 체험 이런 프로그램들이 있어요. 그런데 사실 (소방관들이 참가) 지원을 잘 안 하죠. ‘비번’인 날 참여한다는 게 일을 또 하는 느낌이거든요.
찾아가는 심리상담실 같은 경우에는 심리치료로 해결이 되는 사람한테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는 약물치료도 함께 받아야 했던 상황이라 효과적이지는 않았어요.”
소방청이 발표한 ‘2023년 소방공무원 마음건강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방공무원 5만 2570명 중 2만 3060명(43.9%)이 PTSD, 문제성음주, 우울, 수면문제를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관이 겪은 주요 스트레스는 수면장애(27.2%), 문제성음주(26.4%), PTSD(6.5%), 우울(6.3%) 순으로 높았다.
기영 씨는 현재 적응장애, 우울장애, 강박장애,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 수면장애에도 시달리고 있다. 그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정신적 외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24시간 일하고 이틀 쉬는 ‘당비비(당직-비번-비번)’ 형태로 근무한다. 과거에 비하면 나아졌다. 이전까지는 이틀은 주간, 이틀은 야간, 이틀은 쉬는 교대근무 형식이었다. 이 때문에 수면 패턴이 일정하지 않다. 수면장애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다.
“교대근무는 생체리듬을 교란해 수면장애와 피로를 유발하고, 건강에 부차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면부족은 이성적인 감정처리나 활동을 방해하고 행동장애, 정신장애까지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나쁜 수면의 질은 우울, 불안, 초조로 대사 장애, 각종 질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소방공무원의 수면의 질과 우울과의 관련성> 이미영, 2022)
문제는 또 있다. 업무 특성상 충격적인 장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들은 가장 먼저 재난 현장에 투입되고, 가장 늦게 떠난다. 그곳에서 직접적인 부상이나 생명의 위협을 경험하고, 요구조자들의 고통, 훼손된 신체 등을 목격한다.
그러나 그때의 고통을 동료들과 공유하지 못한다. 괜찮다고 잊어버리라고 말하던 선배들은 매일 퇴근하고 술을 마신다. 완전히 취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간다.
누구 하나 입에 올리는 사람이 없고, 외면할 뿐이다. 주변 가족이나 친구들과는 더욱 공유하기 어렵다. 그 속에서 고립감을 느끼며 혼자 고통을 삭인다. 그 속에서 나만 나약한 인간이라고 질책하기도 한다.

“어차피 내가 PTSD를 겪는 직업을 갖고 있다면, 다른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없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기영 씨는 부족한 인력 문제를 지적했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사정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열악하다. 구조대에서 화재진압팀으로 복직한 그의 팀에는 6명이 있다. 출동이 걸리면 차량 2대가 나간다. 선발대에 4명, 후발대에 2명. 그 6명이 최소한의 인원이다. 그는 적어도 8명이 한 팀이 되어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내부에 진입하는 사람, 차량에서 대기하는 사람, 무전기 잡고 통솔하는 사람, 무거운 호스를 펴고 잡고 있는 사람, 살수하는 사람까지 6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휴가를 쓸 때 다른 팀에서 인원을 한 명 데리고 와야 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형참사 발생하면 팀원들이랑 연구해야 되죠, 새로운 장비 들어올 때마다 공부해야 되죠, 수난사고는 스쿠버를 할 줄 알아야 되고, 산악사고는 지도를 볼 줄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소방관 한 사람한테 요구하는 역량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너무 많아요.”
부족한 인원으로 인해 소방관 한 명은 여러 명의 몫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개인 시간에도 계속해서 공부를 하고,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고된 업무에도 기영 씨가 소방관을 포기하지 않는 건 ‘작은 보람’들,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저는 소방관이 공무원이 아니고 한 달에 (월급을) 100만 원만 준다 해도 소방관 할 거라고, 친구들한테 그랬었거든요. 그 정도로 정말 이 직업을 사랑해요.”
동물을 구조하거나 실종자를 수색하는 작업에 성공했을 때, 돌아오는 감사 인사 한마디에 며칠간 누적된 피로가 풀리기도 했다.
“소방관 중에 강한 사람들 있죠. 훈련해서 체력 좋은 사람들 있어요. 그래도 결국은 다 사람이에요.”
현장에서는 타협할 수 없다. 생명을 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안전은 지켰지만, 기영 씨 본인의 안전은 지키지 못했다. 동료들이 구조한 그의 두 번째 삶. 그는 또 다른 소방관들을 구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소방관한테 형식적인 심리 지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아픈 사람이 안 나타났으면 좋겠고, 나처럼 ‘멍청한 짓’ 하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병원 가는 게 절대 창피한 일 아니라고. 우리가 아픈 건 당연한 거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끝>
취재 김연정 기자 openj@sherlockpress.com
사진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