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광학원 임시이사회가 구성된 지 넉 달. 학교 밖으로 쫓겨난 공익제보자 복직도 아직, 제보자 상대 보복소송 취하도 아직, 옛 재단 관련자들에 대한 인사조치도 아직이다.
넉 달째 ‘아직’인 것들밖에 없지만, 반대로 아주 신속한 결단을 내린 것이 있다. 바로 진실탐사그룹 셜록에게 건 ‘입틀막’ 소송을 2심으로 끌고 가겠다는 결정. 일광학원 임시이사회는 지난달 22일, 셜록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및 정정보도 청구소송에 대해 항소했다. 심지어 학교 정상화를 위해 서울시교육청이 선임한 임시이사회가 내린 결정이다.
벌써 1년째 이어지고 있는 셜록의 <이상한 학교의 회장님> 프로젝트. 우촌초등학교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 공익제보 이후 5년째 이어지고 있는 제보자 탄압 문제를 다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학비가 비싼 사립 초등학교’인 우촌초(서울 돈암동 소재). 이규태(75) 일광그룹 회장은 우촌초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일광학원의 전 이사장이다.
2018년 조세포탈, 뇌물공여,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10개월에 벌금 14억 원의 형을 확정받은 바 있는 인물. 그는 스마트스쿨 사업을 명분 삼아 학교 돈에 손을 대려다 공익제보자들의 신고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제보자들에게는 해임 등 중징계가 돌아왔다. 일광학원과 이 회장은 무더기 고소・고발과 소송으로 제보자들을 공격했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기자님, 기사가 나가면 이규태 회장은 분명 고소할 겁니다.”
취재 초기, 제보자들은 기자를 걱정했다. 빈말이 아니란 건 익히 알고 있었다. 과거 이 회장의 비리에 대해 보도한 방송사 기자들은 곧장 명예훼손 고소장을 받았다. 언론뿐만 아니라 서울시교육청 감사관들에게도 고소장이 날아갔다.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제기했다.
셜록을 상대로도 마찬가지였다. 취재 과정에서 기자가 전화, 문자메시지, 우편, 방문 등 23차례나 반론권을 보장할 때는 응하지 않다가, 보도가 시작되자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일광학원은 셜록을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신청을 했다. 결과는 ‘조정 불성립’. 그리고 이규태 회장은 조아영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 했다. 동시에 일광학원은 셜록을 상대로 3000만 원의 손해배상과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형사고소 건은 ‘무혐의 불송치’로 종결됐다. 그리고 민사소송 1심의 선고는 지난달 15일 나왔다. 수원지방법원 제12민사부(재판장 신민석 부장판사)는 셜록의 보도 대부분 허위사실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손해배상 책임도 일절 인정하지 않았다.

“원고(일광학원)의 전 이사장인 이규태는 통상 3억 원 정도 소요되는 스마트스쿨 사업 예산을 24억 원으로 산정하고 범행을 모의한 A업체에게 용역대금을 되돌려받은 수법으로 교비를 횡령하였다”고 보도한 것이 허위사실 적시에 해당한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일광학원의 셜록 상대 소송(2024가합15134) 1심 판결문 중)
다만 재판부는, 공익제보자 해고 사유에 대한 일광학원 쪽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해고가 아닌 계약만료’라는 식의 주장. 재판부는 셜록 기사 중 해고자 수에 대한 부분을 일부 정정하라고 판결했다.
일광학원과 셜록의 민사소송 1심이 진행되는 동안, 일광학원 이사회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바로 이사 모두가 서울시교육청이 선임한 ‘임시이사’로 교체된 것. 지난해 9월 서울시교육청이 일광학원과의 ‘임원취임승인 취소’ 행정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덕분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임시이사회 선임은 학교 정상화의 시작. 학교 정상화를 위해 선임된 임시이사회라면 언론이나 공익제보자들을 향한 ‘보복성’ 소송전은 중단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하지만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역시나’로 끝났다. 일광학원 임시이사회는 지난달 22일 셜록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 1심 판결에 ‘항소’했다.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와 이양기 교사에 대한 지속적인 탄압이 허위사실’이라는 입장을 유지했고, 3000만 원의 손해배상 등 1심에서 패소한 부분 전체를 2심에서 다시 다퉈보겠다고 나섰다.

항소를 결정한 사람, 바로 한혜빈 임시이사장(서울신학대 명예교수)다. 1월 15일 1심 선고 이후, 일주일 뒤인 22일 법원에 항소장이 제출됐다.
일광학원 임시이사회는 지난해 12월 13일 ‘소송·고소 사건 진행은 이사장에게 위임하되, 항소·상고 포기와 소송 제기 및 취하 등 중요한 사항은 이사회에서 심의·의결’하는 것으로 결정한 바 있다. 그날 이후 현재까지 임시이사회는 개최되지 않았다. 한혜빈 이사장은 이사회를 열어 항소 포기를 논의하는 대신, 직권으로 항소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어째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한혜빈 이사장이 누구인지 따져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셜록은 한 이사장이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과 여러 인연으로 얽혀 있는 ‘측근’이란 사실을 밝혀내 보도했다.(관련기사 : <서울교육청은 왜? 이규태 측근을 우촌초 이사장에>)
그들의 첫 번째 인연의 고리는 ‘서울신학대’다. 한혜빈 이사장은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남편인 유석성 교수도 서울신학대에서 일하며 총장도 역임했다. 이규태 회장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신학대 서기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두 번째 인연의 고리는 ‘일광그룹’이다. 한헤빈 이사장은 2012년부터 현재까지 일광그룹 산하 일광복지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일광복지재단의 초기 이사장도 이규태 회장이고, 현재도 그의 가족들이 일광복지재단 이사로 있다.
세 번째 인연의 고리는 바로 ‘일광학원’ 그 자체. 한혜빈 이사장의 남편 유석성 전 서울신학대 총장은, 한 이사장이 선임되기 직전까지 일광학원의 이사였다.
심지어 이들 사이에 거액의 ‘돈 거래’도 있었다. 2018년 한혜빈 이사장의 남편인 유석성 전 총장은 우촌초 행정실 직원 유현주 씨의 계좌로 7000만 원을 입금했다. 이규태 회장이 내야 할 14억 원의 벌금을 마련하기 위해 융통한 돈이었다.(관련기사 : <종교에 돈거래도 얽혔다… 우촌초의 비정상적 정상화>)

‘가재는 게 편.’
일광학원 임시이사회의 상황이 이대로라면, 이런 비판을 피할 길이 있겠나. 옛 재단의 폐단을 수습하라 했더니, 엉뚱하게도 ‘입틀막’ 소송을 계승하겠다는 임시이사회. 한혜빈 이사장의 자격을 검증하는 데 완전히 실패한 서울시교육청은 책임을 비껴갈 수 없다.
공익제보자들은 아직도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고, 이규태 회장과 함께 비리에 연루된 직원들은 아직도 학교에 남아 있다. 학교 정상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지만, 아직, 아직, 아직이다. 그 와중에 이사회 개최도 없이 신속히 결정했다는 거라곤, 셜록을 상대로 한 항소뿐.
“학생의 꿈, 교사의 긍지, 부모의 신뢰”
서울시교육청이 내건 교육지표다. 묻고 싶다. 지금 일광학원과 우촌초에 꿈이, 긍지가, 신뢰가 어디 있는지.
한편, 셜록도 일광학원과의 소송 1심 판결에 항소했다. 일광학원의 항소가 언론의 입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 셜록의 항소는 공익제보자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1심 재판부가 일광학원의 ‘꼼수 해고’ 주장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 그 부당함을 끝까지 주장할 계획이다.
지난 4일 전화로 한혜빈 이사장의 반론을 들었다.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한 경력기술서에 일광복지재단 이력을 누락한 이유를 묻자 “다른 복지재단 활동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기자) 얘기를 들으니 생각났다”고 말했다. 고의로 누락한 게 아니라는 취지다.
이규태 회장과 서울신학대 시절부터 이어진 오랜 인연에 대해서는 “아주 옛날 고릿적 얘기”라며 “개인적인 관계는 없다”고 밝혔다.
셜록과의 ‘정정보도 청구’ 1심 판결에 대해 독단적으로 항소를 결정했냐고 묻자, “그렇게 했다”면서, “다른 이사들도 의견을 거의 공유한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지난 7일에는 유석성 전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규태 회장과의 관계를 물었다. 2018년 이규태 회장의 벌금 14억 원 중 일부를 빌려준 사실이 맞냐고 묻자, 유 총장은 “나중에 통화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통화 직후, 유 전 총장에게 카카오톡 메시지와 문자메시지로 질문을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