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수의사 최은호(가명) 씨는 하루 여섯 곳의 구제역 ‘살처분’ 현장에 투입됐다. 소 130여 마리에게 안락사 주사를 놓았고, 그들과 눈을 마주쳤다. ‘빨리빨리 죽이라고 쪼아대는’ 지시에 모두가 무감각해지는 이곳은,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끔찍한 지옥이었다.
현장 밖은 바깥대로 열악했다. 보상팀은 폭주하는 민원에 시달렸고, 언론과 상부기관의 재촉에도 들볶였다. 방역팀은 특히 인력부족과 과로, 잦은 부상으로 힘들어했다.
예방접종 업무에도 공무원이 투입됐다. 농가를 돌며 구제역 예방주사를 놓는 일. 주사는 수의사가 놓지만, 몸부림치고 도망 다니는 소를 잡는 일 등 공무원들은 ‘별짓을 다’ 한다.
소똥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소를 잡으려다 밟히기도 한다. 임한국은 주사기를 들고 따라다니다, 주삿바늘에 다리를 찔리기도 했다. 괜찮을까 싶었지만, 찔렸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급하게 하다 보니까 결국에는 가장 쉽게 동원할 수 있는 게 공무원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 우리는 백신도 안 맞고 갔어요.”
상주시 공무원 배완식의 말이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작성한 살처분 참여자 트라우마 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당시 살처분에 동원된 공무원은 전국에서 50만여 명. 그중 189명이 다쳤고, 과로 또는 교통사고나 화재로 사망한 공무원만 10명이었다.

이후 공무원들이 직접 살처분 현장에 투입되는 상황은 잘 생기지 않았다. 방역을 용역으로 외주화한 게 컸다. 모두가 피하고 싶어 하는 일, 때로는 살아 있는 동물을 구덩이 안으로 집어넣는 일은 용역업체에 소속된 사람들이 맡았다. 대부분 이주노동자였다.
공무원이 직접 살처분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무원들은 ‘정신을 놓고’, ‘기계처럼’ 동물을 죽이는 일에 여전히 동원됐다.
2020년 상주에서 조류독감으로 닭을 50만 마리 넘게 살처분했을 때, 배완식은 현장에 들어가는 작업자들의 명단을 확인하는 일을 했다. 무슨 일을 하러 왔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공무원이 했던 일을 외주화했을 뿐, 뭘 해야 하나 우왕좌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을 그냥 현장에 보내니 일이 안 되잖아요. 그들도 노동자 아닙니까?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데, 업무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투입되니까, 그 사람들도 다 피해자죠. 방역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도록 지자체나 중앙에서 제도적으로 준비를 해야 하지 않았나 싶어요.”
살처분 현장을 겪은 사람들은 바이러스가 발생했다는 뉴스만 들어도 가슴이 내려앉는다고 했다. 우리 지역으로 오면 어떡하나 싶은 두려움, 같은 일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겁부터 났다. 그 트라우마를 어떻게 견뎠을까. 임한국의 대답에 짙은 체념이 깔려 있다.
“그러니까 따로 방법이 없고 시간이 해결해주는 거죠.”
그러나 세월이 약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2011년 1월 30일 이른 아침, 배완식은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동료의 딸이 건 전화. 동료의 부음이었다.
지난밤에도 함께 야근을 한 터였고, 그와 대화를 나눈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도 ‘이제 그만 퇴근하자’는 말이었다. 동료는 좀 이따 가겠다며 그를 먼저 보냈다. 이미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동료가 죽었다는 말에, 배완식은 진짜냐고 묻고 또 물었다. 동료의 딸이, 다른 동료들이 여러 번 확인해주고 나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상주시청 근무를 시작할 때 처음 만나, 매일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짬뽕을 먹어가며 17년을 함께 일한 동료였다.
상주시 보건공무원인 ‘김 주사’. 당시 마흔다섯이던 그의 사망원인은 급성 심장마비였다.
그가 사망한 2011년 1월은 상주시 전체에 비상이 걸린 때였다. 2010년 11월 경북지역에 대규모 구제역이 발생했고, 상주시는 부랴부랴 방역초소 21개를 설치했다.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에 시청 공무원 전체가 방역업무에 동원됐다. 김 주사는 국도 근처 방역초소로 배정받았다.
김 주사는 두 번째로 방역초소 근무를 하다 허리를 다쳤다. 차들이 자주 다니지 않아, 소독액을 뿌리는 족족 길 위에 얼어붙었다. 그는 빙판길에 염화칼슘을 뿌리다 크게 넘어졌다.
통증에도 바로 병원에 가지 못했다. 모두 힘들게 일하고 있었고, 또 방역업무에 갑자기 동원됐기 때문에 원래 하던 보건업무가 밀려 있던 탓이었다. 통증을 참아가며 업무를 계속했고 허리 부상은 낫지 않았다. 일주일 뒤 결국 입원해야 했다.
퇴원하자마자 또 일이었다. 낮에는 입원해 있는 동안 밀린 보건업무를 해치웠고, 밤에는 방역초소에서 근무하는 동료들을 찾았다. 유독 열심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축산과에 근무하던 2003년 상주에 돼지콜레라가 발생했다. 감염된 돼지를 비롯해 농가의 돼지 200여 마리를 살처분하는 현장에 투입됐고, 그는 매몰작업을 무척 힘들어했다. 작업이 끝난 뒤에도 돼지 울음소리가 들리는 환청에 시달렸다.
(고인은) 2003년도 농축산과 근무 당시에는 “구제역 살처분에 종사하면서 머릿속에 소·돼지 울음소리가 환청이 들리고 꿈자리에서도 나타나는 등 정신적인 질환을 앓고 있어 힘들다”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2012년 국가유공자요건비해당결정처분취소 소송 소장 일부)
“머리 잘린 돼지들이 번개치는 밤”이었고 “죽어도 죽어도 돼지가 버려지지 않는 무서운 밤”(김혜순 시 ‘피어라 돼지’ 중)이었다.
그는 잠을 자지 못했다. 혼자 병원에 다녔고, 그래도 안 되자 ‘소와 돼지의 극락왕생을 비는 천도재를 지내고 나서야 안정을 되찾았다’는 걸 가까운 동료들은 알고 있었다.

2011년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김 주사는 방역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동료들에게 구제역은 ‘재앙’이라며 ‘힘을 모아’ 방역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허리가 다 낫지 않았지만 방역초소에 문제가 생기면 두말하지 않고 달려갔다.
그날, 그러니까 사망하기 이틀 전에도 야식을 사들고 초소에 갔다. 노즐이 얼어붙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밤늦게 달려가 막힌 노즐을 수리하고 물통에 소독액을 부어주는 등 방역작업을 도왔다. 배완식은 그날을 곱씹었다. 그날 가지 않았더라면…. 생각할수록 억장이 무너졌다.
“구제역이 터졌을 때 예전 일이 떠올라서 힘들어했고요…. 동료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어요.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고요. 그러니까 넘어지고 다칠 정도로 더 열심히 했던 거고요. 자기 근무가 아닐 때도 도와주러 갔던 거예요.”
공무원의 순직에 경북도지사도 장례식장을 찾았고, 청와대에서도 연락을 해왔다. 그러나 마땅히 받아야 할 예우와 지원은 받지 못했다. 끝내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무원 노조는 공무원사상자 대책과 해결방안을 위한 정부 요구안에 ‘순직 공무원 국가유공자 선정’을 포함하고, 장례가 끝난 뒤 김 주사의 국가유공자유족 등록신청을 했다.
세 달 만에 신청은 기각됐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과로와 공무수행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판결문이나 사실조회에는 김 주사가 현재 하고 있는 보건업무의 내용과 초과근무내역서, 2011년 방역 근무에 동원된 횟수만을 물었다. 판결문에는 김 주사가 어떻게 일했고, 어떤 마음으로 방역 초소에 갔는지 드러나지 않았다.
혼자 겪어야 했던 트라우마와 ‘2003년 살처분 업무 수행 과정에서 정신질환을 호소한 적이 있다’는 동료들의 증언은 ‘객관적인 자료’가 되지 못했다.
재심 역시 기각됐다. 이유는 전과 같았고, 판결문은 짧았다. 간결한 문장과 객관적인 근거에는 김 주사의 오랜 트라우마와 사명감이 담기지 않았다. 담기지 못한 것들은 배완식 마음에 억울함으로 고스란히 박혔다.
“판결문을 보면 아주 단조로운 질문이라 자세한 내용을 담을 수가 없는 거죠. 언제부터 근무했고, 몇 번 일했고 하는 것들은 몇 줄이면 끝나요.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거든요.
재난 상황이 생기고 거기 동원되는 바람에 그렇게(목숨을 잃게) 된 건데, 본질은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은 거예요. 김 주사 혼자 트라우마를 겪고 괴로워했던 것들을 어디에 담고, 그걸 누가 들어줄지 싶어요. 법정에서는 그런 것까지 봐주지 않잖아요. 억울하죠.”

2010년 말부터 2011년 초까지 한 해에 10명이 죽고 나서야, 공무원은 살처분에 동원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15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소와 돼지와 닭과 오리가 죽임당하고, 누군가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
살처분이 아니라 감염병 예방을 해야 한다고,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해왔지만 감염병과 관련된 체계적인 제도가 생겼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다. 살처분이라는 ‘쉬운 방법이 있으니까 그냥 계속 쓰는 것’뿐이다.
상주시 공무원들은 이주노동자가 ‘희생한 대가’로 공무원들이 ‘손을 줄인 것’ 아니겠냐고 한숨을 쉬었다.
“한 번 지나가면 잊어버리고, 그다음에 똑같은 일을 또 반복하는 거죠. 그때도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투입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과연 뭐가 달라져 있을까….”
작년 한 해 돼지 2000만 마리, 닭 10억 마리가 고기가 됐다. 살처분된 동물은 모두 가축, 지금은 공장식 축산업 아래에서 태어나 밀집 사육되는 동물들이다.
올 겨울 조류독감으로 오리 6만 3000마리가 죽임당했다. 2019년에 처음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지난 1월 한 지역에서만 두 번 발생해 9300마리가 죽임당했다. 2023년에는 소 감염병인 럼피스킨이 발생해 5480마리가 죽임당했다.
죽임당했다는 것은 누군가 ‘죽이는 일’에 동원됐다는 것을 뜻한다. 인격이 무너지는 일이 ‘형벌처럼 되풀이'(<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마리아 투마킨, 2023)되고, 그때마다 다시 트라우마를 입는다. <끝>
정윤영 르포작가 freaks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