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끝나려나 싶었는데, 찬물을 확 끼얹은 기분이에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을 이런 때 쓰는 걸까. 일광학원이 공익제보자 복직을 보류했다. 옛 재단 이사들이 내린 결정이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선임한 임시이사회의 결정이다.
서울시교육청 지난해 11월 일광학원에, 공익제보자 박선유, 최은석, 유현주를 복직시키라는 권고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다음 달 일광학원 임시이사회는 공익제보자 복직을 ‘보류’했다. 교육청의 권고를, 교육청이 선임한 이사회가 거절한 셈.
“지금 비리에 가담한 이규태 회장 측근들은 학교에 남아 있는데, 왜 우리는…. 우리가, 서울시교육청이 학교에 읍소를 해야 하나요? 법적으로 보면 당연히 복직하는 게 맞잖아요.”

어느새 한 손으로 꼽아 셀 수 없을 만큼 세월이 흘렀다. 서울 돈암동에 있는 우촌초등학교 행정실 직원 박선유(47) 씨. 그는 6년 전인 2019년 5월 다른 교직원들과 함께, 전 재단 이사장 이규태(75) 일광그룹 회장의 비리 의혹을 서울시교육청에 제보했다.
공익제보 이후 2021년 8월, 박선유 씨는 학교에서 쫓겨났다. 해고(파면)였다. 우촌초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일광학원은 두 가지 ‘구실’을 붙였다.
첫 번째는 ‘이사회 회의록 위조’. 일광학원 이사회 회의록을 행정실 직원이던 박선유 씨가 열리지도 않은 이사회 회의록을 작성하고, 이사가 아닌 사람이 서명했다는 말이다. 박선유 씨는 부인하지 않았다.
“이규태 회장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어요.”
이규태 회장은 우촌초를 인수한 사람. 10년간 재단 이사장을 지내고 물러났지만, 그 뒤로도 이사회는 늘 그의 측근들을 중심으로 채워졌다. 박선유 씨는 학교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전 이사장’ 이규태 회장의 지시에 따랐다.
2006년 11월부터 2020년 1월까지, 13년 이상 이사회는 정상적으로 열리지 않았다. 이사회를 열지 않고도 임의로 회의록을 작성해 행정실 직원들이 서명하는 식으로 운영돼온 것. 그게 행정실 직원들의 편의나 이익을 위한 일이 아니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서울시교육청도 박선유 씨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대신, 일광학원 이사회 전원의 임원취임 승인을 취소했다.
일광학원은 그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대리서명으로 작성된 가짜 회의록’. 실무 직원을 해고할 때는 그게 아주 잘못된 일이었다가, 반대로 이사들을 보호할 때는 또 별일 아닌 게 되는 변화무쌍한(?) 논리다.
4년간 끌어온 행정소송은 지난해 9월 서울시교육청의 승소로 끝났다.

일광학원이 박선유 씨를 해고하며 내건 두 번째 이유는 ‘교비 횡령’이다. 일광학원은 박선유 씨가 동료 유현주 씨(47)와 공모해 2억 5000만 원 상당을 횡령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학교 법인카드로 화장품을 사거나, 밤에 술값으로 마구 썼다는 것이다.
박선유 씨는 하루아침에 ‘비리 직원’ 취급을 당하며 해고됐다. 그는 지방노동위원회로 향했다. 지방노동위원회는 박선유 씨 손을 들어줬다. 누명은 대부분 인정되지 않았다.
일광학원은 횡령 내역을 약 2200만 원 치밖에 제출하지 않았다. 애초에 주장한 횡령액에 비해 10분의 1도 되지 않는 액수. 일광학원은 왜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지 이유조차 설명하지 못했다. 일광학원이 제출한 교비횡령 근거 자료는 지출 품목만 나열되어 있을 뿐, 박선유 씨가 횡령했다고 입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광학원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변은 없었다. 2022년 6월 중앙노동위원회도 해고는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일부 징계사유는 이규태 전 대표의 지시에 따라 실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없고, 이 사건 근로자가 인정된 징계사유로 인해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사실도 객관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중앙노동위원회 판정문)
일광학원은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2022년 6월 중앙노동위원회 부당해고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5월 1심 재판부는 부당해고가 맞다고 판결했다. 일광학원은 또 항소를 제기했다. 2심 재판부도 지난달 박선유 씨 손을 들어줬다.

해고장 다음엔 ‘고소장’이었다. 일광학원은 2022년 12월 박선유 씨를 업무상 횡령으로 고소했다. 2015년 1월부터 2020년 7월까지 총 213회에 걸쳐 1400만 원 상당의 학교 법인카드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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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학생과 학부모, 또는 교직원 간식 비용을 문제 삼았다.
박선유 씨는 서울성북경찰서에서 일곱 차례 조사받았다. 8년 전 영수증과 지출내역부터 하나하나 살펴보며,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기억해내야만 했다.
“만 원짜리, 2만 원짜리 영수증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조사를 다섯 시간씩 받았어요. 사소한 지출 내역을 기억하지 못하면 횡령으로 인정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죠.”
경찰은 박선유 씨를 지난해 6월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 결정했다.
‘역시나’ 그대로 받아들일 일광학원이 아니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이의신청을 했다. 하지만 검찰도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해고와 고소. 그리고 각종 처분과 판결에 대한 이의신청과 재심 청구, 불복 소송, 항소 결정 등으로, 일광학원은 박선유 씨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박선유 씨는 혼신의 힘을 다해 버텼다. 떳떳하게 모욕을 버텨냈다. 공익제보를 한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언젠가 학교로 돌아갈 거라는 믿음도 굳건히 지켜왔다.
공익제보 이후 6년이 지났다. 지난해 10월 서울시교육청은 일광학원 옛 재단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 이사회 전원을 임시이사로 교체했다. 드디어 복직의 길이 열리나 싶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서울시교육청은 일광학원에 공문을 보내, 공익제보자 박선유, 최은석, 유현주를 복직시키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박선유 부당해고 관련 1심 소송결과(박선유 1심 : 법인 패소)를 감안하여 소송 취하 또는 화해·합의를 통해 조속히 마무리해 복직 등의 신분회복이 될 수 있도록 조치하여 주시고, 전 교장 최은석에 대해서도 (…) 공익제보로 인해 신분상, 재정상 불이익 받은 사항들이 모두 회복될 수 있도록 복직 등 조치해 주시고“(서울시교육청이 일광학원에 발송한 ‘공익제보자 복직 등 신분회복 조치 요구’ 공문, 2024. 11.)
일광학원 임시이사회는 12월 16일 열린 회의에서 공익제보자 복직을 ‘보류’ 결정했다. 서울시의회 이소라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재판 중인 사건이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재판 자료를 보완해 차기 이사회에서 논의하겠다는 거다.
‘재판 중인 사건이 있다’며 박선유 씨 복직을 보류한 임시이사회. 하지만 현재 일광학원에는 비리 의혹으로 이규태 회장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는 교직원들이 버젓이 근무 중이다.
박선유 씨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실망을 분노로 바꾸는 결정 역시 임시이사회가 했다. ‘부당해고’가 인정된 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겠다는 것.
“벌써 (해고된 지) 4년째인데, 끝까지 가겠다는 거잖아요. 복직시켜주기 싫은 거죠.”
지난 4일 일광학원 임시이사회는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했다. 1심, 2심 모두 부당해고를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승리였다. 학교 정상화란 관점에서 보자면 환영해야 할 소식에, 임시이사회는 오히려 대법원 상고로 대응했다.

“작년 10월 임시이사회가 구성되고 너무 조용한 거예요. 한동안 아무 소식이 들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불안했는데, 직감이 적중했죠. 임시이사장이 이규태 회장 측근이라니….”
‘상고장’ 제출은 임시이사회 개최 없이 한혜빈(71) 일광학원 임시이사장(서울신학대학교 명예교수)이 결정했다. 한혜빈 이사장은 이규태 회장과 여러 관계로 얽혀 있다.
한혜빈 이사장은 일광그룹 산하 일광복지재단에서 2012년부터 13년째 이사로 활동 중이다. 한 이사장은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한 경력기술서에 이 사실을 쓰지 않았다.
한혜빈 이사장의 남편인 유석성(74) 전 서울신학대 총장은 한 이사장이 선임되지 직전까지, 학교법인 일광학원의 이사였다. 남편이 쫓겨난 자리에, 부인이 들어온 셈. 또한 일광그룹 산하 재단법인 포사람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관련기사 : <서울교육청은 왜? 이규태 측근을 우촌초 이사장에>)
또 한혜빈은 교수로, 남편 유석성은 총장으로 서울신학대에 몸담고 있던 시절, 이규태 회장은 서울신학대 서기이사였다. 유 전 총장은 이규태 회장에게, 벌금으로 낼 돈 7000만 원을 빌려준 정황도 있다.(관련기사 : <종교에 돈거래도 얽혔다… 우촌초의 비정상적 정상화>)
서울시교육청은 한혜빈-유석성-이규태의 관계를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다. 이규태 회장과 친인척 관계 여부는 검증해야 하지만, 이사의 가족관계는 검증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공익제보 한 지 벌써 6년이에요.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은 복직 결정은커녕, 이규태 측근을 임시이사장 자리에 앉혔죠. (공익제보자가) 학교로 당연히 돌아가야 하는데, 아직도 달라진 게 없어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대체 누가 학교 비리를 제보하겠어요?”
이규태 측근인 한혜빈 이사장을 선임한 서울시교육청이 원망스러웠다. 제대로 검증도 못하고, “몰랐다”고만 하는 교육청. 그럼 공익제보자는 누굴 믿고 기다려야 하는 걸까.
20일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한혜빈 이사장 선임에 대해 “인사 검증 실패”를 인정하고, 우촌초 정상화에서 “공익제보자 권리 회복이 먼저”임을 확인했다. 이소라 서울시의원의 시정질의에 대한 답변이다.
박선유 씨는 내일도 마트에 출근한다. 복직을 기다리는 동안 생계를 위해 해온 일이다. 언제쯤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공익제보 이후 6년간 기대와 실망 사이를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렸던 박선유 씨에게, 서울시교육청은 ‘사필귀정’의 결말을 선물할 수 있을까.
한편 일광학원과 이규태 회장 측은 취재 초기인 지난해 1월,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23회에 걸친 반론 요청에 모두 응하지 않았다. 이규태 회장은 지난해 11월 추가 보도를 위한 반론 요청에도 “스토킹으로 신고하겠다”는 등의 말만 남기고 반론 취재를 거부했다.
그동안 일광학원은 셜록을 상대로 한 정정보도 청구소송 소장과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신청서 등을 통해, ‘해당 교원들은 서울시교육청에 공익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것이 아니며, 비위행위 사유로 인하여 사립학교법에 근거한 교원징계절차에 따라 파면, 해임된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한혜빈 이사장은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한 경력기술서에 일광복지재단 이력을 누락한 이유에 대해, “다른 복지재단 활동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기자) 얘기를 들으니 (일광복지재단 이력이) 생각났다”고 해명했다. 이규태 회장과의 인연에 대해서는 “옛날 고릿적 얘기”라며 “개인적인 관계는 없다”고 밝혔다.
유석성 전 총장에게도 이규태 회장과의 관계에 대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질의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