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힘을 주고 들어올린 선우의 두 팔은 관중석에서 보일 정도로 부들거렸다. 얼굴이 창백해, 저러다 쓰러지면 어쩌지 싶었는데, 결국 코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선우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선수, 포즈 다운!”

사회자의 최종 신호가 떨어졌다. 무대 위에 선 선수 12명은 으르렁거리는 포즈로 심사위원들에게 자신의 몸을 뽐냈다. 선우는 손으로 코피를 훔치고 자세를 잡았다. 근육을 선명하게 보이기 위해 다시 온몸의 힘을 쥐어짰다.

“와~ 3번! 팔 근육 끝내주네!”
“3번! 허벅지 봐라! 완전 말이네!”
“3번 선수 몸이 예술이네, 예술!”

보디빌딩 대회 고등부 부문에 출전한 선수들 ⓒ지한구

나는 관중석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상관없었다. 제자가 생애 첫 무대에서 피를 쏟으며 힘을 짜내는데, 선생이 무언들 못하겠는가. 이렇게 외쳐야 심사위원들의 시선이 한 번이라도 더 선우에게 쏠릴 테니, 마땅히 할 일이기도 했다.

고교생이 무슨 헬스냐 싶겠지만, 학업중단 비율이 높은 우리 공고에선 꽤 중요한 수업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 정을 붙이려면, ‘닥치고 국영수’보다는 좋아하는 수업이 필요했다. 학교는 아이들의 흥미를 끌 법한 ‘자기성장 프로젝트’를 기획했는데, 국어교사인 내가 헬스반 운영을 맡았다.(관련기사 : <‘제자들과 함께 100일의 약속.. 공고 교사의 목마른 변신’>)

2023년 우리 공고생들의 도전을 MBC, SBS 등 여러 매체에서 소개했고 대구광역시교육청도 관심을 보였다. 그만큼 우리 학교의 헬스반은 좋은 성과를 남겼다. 이만큼 했으면 됐다고 나 스스로도 만족했다. 헬스반이 종료된 그해 겨울부터 나는 다시 배불뚝이 아저씨로 돌아갔다. 이대로 살아도 나쁘지 않았다.

2024년 학교는 헬스반을 ‘헬스부’로 승격시켰다. 학교의 정식 동아리가 된 것이다. 나는 늘어난 뱃살을 쓰다듬으며 ‘이젠 체육선생님이 맡겠지’ 생각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헬스부 운영 책임은 나에게 떨어졌다.

일은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갔다. 2024년 3월 신학기, 신입생 열 명이 헬스부를 지원했다. 1학년 때 헬스반에 참여했던 2학년 여섯 명도 다시 운동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교사지망생 시절, 국어선생님이 되면 아이들과 윤동주의 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읊을 거라 여겼다. 내가 순진했다. 나는 한국의 교육 현실과 고교생의 삶과 공고의 높은 자퇴율을 몰랐다. 학교에서 헬스트레이너 역할을 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

헬스부에서 운동을 시작하기 전, 교사와 학생들의 모습 ⓒ지한구

정신을 차려보니, 헬스부원 열여섯 명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기대의 눈빛이 반, 배불뚝이 선생님이 우리를 제대로 지도할 수 있을까 의심하는 눈빛이 반이었다. 밤하늘보다 내 눈앞이 더 캄캄했다.

“느그들 잘 들어라. 앞으로 7개월 뒤, 2학기 10월에는 모든 사람이 보디프로필을 찍는데이. 보디빌딩 대회도 참가할 기니까, 맘 단단히 묵으라. 단 한 명도 예외는 읎다. 알긋나?”

아이들에게 ▲보디프로필 촬영 ▲보디빌딩 대회 출전 ▲헬스트레이너 자격증 획득(3학년) 3대 목표를 제시했다. 2023년에도 같은 목표를 세웠는데, 이를 완수한 학생은 동연이(가명) 한 명뿐이었다. 이번엔 ‘전원 목표 달성’을 목표로 했다. 학생들이 산만해지거나 방황하지 않도록 분위기도 잡아야 했다.

보디프로필 촬영은 동기부여 차원에서 중요했다. 여러 실패를 겪고 공고에 온 아이들의 내면엔 열패감 같은 게 많다. 나는 과거가 어떠하든 아이들이 스스로 장기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 몸을 움직이고, 결과를 자기 눈으로 확인하길 바랐다. 보디프로필 촬영 날짜를 10월 셋째 주로 못 박았다.

이 목표를 달성하면, 보디빌딩 대회 출전은 저절로 풀릴 터였다. 몸의 변화를 느끼고 만족한다면 대회 출전이라는 욕망은 저절로 생길 테니 말이다. 마지막 세 번째 목표는 나의 몫이었다.

“야들아, 올해 샘이 헬스트레이너 자격증(생활스포츠지도사 2급)을 따보께. 느그도 3학년 되믄 딸 수 있으니까, 샘이 먼저 해보고 방법을 알리주께.”

헬스는 꽤 위험한 운동이다. 요령 없이 과욕을 부리면 근육과 인대는 물론, 허리를 다치기도 한다. 아이들과 함께 안전하게 운동하려면 자격을 갖추는 게 필요했다. 이런 목표를 향해 헬스부 활동이 시작됐다.

원하는 몸을 만든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음식을 가려서 먹고, 강도 높은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야만 한다. 성인에게도 힘든 이 과정은, 고교생에겐 몇 배나 괴로운 일이다. 학교급식, 편의점 컵라면, 햄버거 등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니, 아이들의 처지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방과후 학교 운동장에서 헬스부 아이들과 운동을 마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지한구

헬스부 1학년 아이들은 매수 수요일 단체로 운동을 했다. 나도 아이들과 함께 방과후에 운동장 달리기, 팔굽혀펴기, 스쿼트를 했다. 금요일에는 2학년 포함 모든 헬스부원이 함께 운동했다. 음식 조절과 개별운동은 자율로 맡겼다.

성인들의 다이어트 결심이 대개 작심삼일로 끝나는 것처럼, 헬스부에서도 이탈자가 나왔다. 학기 초반, 1학년 학생 한 명이 운동을 그만뒀다.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었다. 남은 아이들은 오늘도 어제처럼 운동하고 식단을 조절했다.

7월이 됐다. 우리 학교에 정식 헬스부가 생겼다는 소식이 대구 보디빌딩 협회에 전해졌다. 전국체전 보디빌딩 고등부 예선전에 참가를 권하는 연락이 왔다. 나는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대구 보디빌딩 협회에서 전국체전 예선전에 도전하라는데, 느그 생각은 어떴노?”
“몇 명 뽑는데예?”
“대구에서 세 명.”

흥분한 동연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샘, 대박! 우리가 체전 예선을 나갈 수 있다는 말입니꺼? 당연히 나가야지요.”

동연이는 헬스를 처음 할 때부터 전국체전에 나가고 싶어 했다. 다소 겁먹은 1학년들과 달리 2학년 아이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성진(가명)이도 적극적이었다.

“샘! 전국체전 입상하면 한체대(한국체육대학) 입시에서 가산점 받심니더. 제 꿈이 한체대라예!“

한체대는 운동하는 아이들에게 서울대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헬스를 통해 최고 대학을 가겠다는 성진이의 표정이 비장했다. 2학년 형준이(가명) 목표를 밝혔다.

“샘. 저는 피트니스 코리아 입상을 목표로 하고 있십니더. 여기에서 입상하면 대구보건대학교 입시에 큰 도움이 된다고 들었십니더.”

한체대면 어떻고, 대구보건대면 어떤가. ‘고교 중퇴’를 줄여보고자 시작한 헬스부 활동에서 스스로 꿈을 꾸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그렇다고 단단한 결심과 의욕만으로 일이 풀리는 건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1학년 석훈이(가명)는 학업 성취도는 낮았지만, 누구보다 헬스부 활동에 집중했다. 자기만의 길을 찾은 듯이 10월의 보디빌딩 대회 출전을 열심히 준비했다. 하지만 석훈이는 5월 학교에서 축구를 하다 다리를 크게 다쳐 119 구급차에 실려갔다. 3개월 깁스 생활은 불가피했다. 성진이는 다리 깁스를 한 채 상체 운동을 이어갔지만 대회 출전은 무리였다.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시간이 흘러, 학기 초에 약속했던 ‘결실의 10월’ 다가왔다. 쇠붙이를 깎고 갈던 공고 실습장은 보디프로필 촬영실로 꾸며졌다. 사진작가 섭외도 마쳤다. 이젠 물릴 수도 되돌릴 수도 없었다. 작심삼일을 극복하고 컵라면의 유혹을 이겨낸 아이들은 이날을 위해 현수막도 제작했다. 문구는 이러했다.

‘헬스반, 전설의 시작!’

보디프로필 촬영을 하던 날, 헬스부는 단체 사진을 찍었다 ⓒ지한구

다소 과한 느낌이었지만, 나는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따랐다. 아이들은 웃옷을 벗고 카메라 앞에 섰다. 1년간 담금질한 몸, 그러니까 밤새 게임을 하거나,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자고 싶은 대로 자면 절대로 빚어질 수 없는 근육이 카메라 셔터가 터질 때마다 반짝반짝 빛났다.

보디프로필 촬영에 학생 11명이 참여했다. 2023년에는 1명만 촬영한 걸 감안하면, 무려 10배나 늘어난 셈이다. 이렇게 1차 목표를 얼추 달성했다.

곧바로 ‘2024 피트니스 코리아 대회’가 열렸다. 고등부 보디빌딩 대회는 총 세 가지 부문으로 나뉘는데, 비기너-노비스-엘리트가 그것이다. 비기너에는 생애 첫 대회를 출전한 선수, 노비스 부문은 대회에 입상한 적 없는 선수, 엘리트 부문은 입상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 출전할 수 있다.

우리 헬스부에서는 1학년 3명과 2학년 4명, 총 7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동연이는 대회 입상 경력이 있었기에 엘리트 부문에 출전하고, 나머지 학생은 모두 비기너-노비스 부문에 나섰다. 성인인 나는 클래식 보디빌딩에 참가하기로 했다.

보디빌딩 대회 당일, 수분을 끊은 상태에서 준비를 하려니 정신이 혼미했다 ⓒ지한구

대회 당일, 많은 학생이 출전하다 보니 챙겨야 할 게 한둘이 아니었다. 간식과 운동기구, 돗자리, 보충제 등 신경 써야 할 것은 많고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특히 수분을 끊어서인지 몸에 기력도 없고,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선수복인 삼각팬티(?) 한 장만 입고, 컬러 크림을 바르며 서로의 몸을 꼼꼼히 체크했다.

대회 직전, 선우가 출전 소감을 밝혔다.

“제 몸이 한 번도 단단했던 적이 없십니더. 중학교 때까지 매일 무기력하게 살다가 헬스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예. 입상은 못 하더라도 무대에 서는 게 목표입니더.“

드디어 시작된 대회, ‘비기너 부문’부터 출발했다. 전체 열두 명이 출전했는데, 우리 헬스부 학생이 여섯 명이었다. 순위는 개인별 자유포징 30초, 단체 보디빌딩 규정 포즈 일곱 가지를 비교 심사해 매겨진다. 결승 무대에는 다섯 명만 설 수 있다.

최종 결과는? 놀랍게도 우리 학교 헬스부 아이들이 1, 2, 3위를 휩쓸었다. 1위는 2학년 형준이였다. 사회자가 형준이를 호명했을 때, 나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형준아~. 엄마하테 잘해레이!”

관중석에선 웃음이 터지더니 연이어 다른 외침이 메아리처럼 퍼졌다.

“그래. 엄마한테 잘해라!“
“맞다. 엄마하테 잘 하는 게 최고데이!”

나의 제자들이 보디빌딩 대회 비기너 부문에서 1, 2, 3위를 휩쓸었다 ⓒ지한구

사실 관중석엔 형준이 어머니가 와 계셨다.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아마 형준이가 공고에 입학했을 때 엄마는 적지 않게 실망했을 것이다. 자기가 원해서 공고에 입학하는 아이는 거의 없으니 말이다. 나는 형준이 어머니에게 아들 자랑을 마음껏 하고 싶었다.

2024년 피트니스 코리아 대회에서 우리 학교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비기너 부문 석권을 비롯해, 성진이가 노비스 부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동연이는 엘리트 부문 3위에 올랐다.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금 100만 원의 주인공은 형준이었다. 며칠 뒤, 우리 학교 교문에는 이런 현수막이 걸렸다.

‘영남공고 헬스부, 꿈의 무대에 서다.’

인문계열 고교에서 서울대 몇 명 보냈다는 현수막을 이런 맛에 거는 걸까? 출퇴근길에 현수막을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저절로 웅장해졌다. 하지만 헬스부 최고의 스틸컷은 따로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선우는 상을 받지 못했다. 누가 봐도 선우의 몸과 근육 상태는 순위에 들기 어려웠다. 하지만 선우는 1년간 포기 없이 열심히 노력했고, 계획한 대로 무대에 올랐다.

교문에 펄럭이는 현수막보다 설레는,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장면은, 입상이 어려운 줄 알면서도 무대에 올라 코피를 쏟으며 부들부들 힘을 주던 선우의 모습이다. 

2024년 최고의 선수로 뽑힌 형준이는 사실 2023년 보디빌딩 대회를 스스로 포기했었다. 그때 형준이는 “무대에 설 용기가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형준이는 포기와 실패의 경험을 딛고 스스로 일어선 거다.

나와 함께 2023년 대회에 나갔던 동연이는 2024년 우리 학교 전교 부회장을 했다. 성적도 학과에서 제일 좋았고, 기능사 자격증도 7개나 땄다. 필기시험을 통과한 자격증만 10개가 넘는다. 나는 아이들과 약속한 대로 헬스트레이너 자격증(생활스포츠지도사 2급)을 땄다. 이렇게 헬스부는 서로에게 한 약속 세 개를 모두 지켰다.

아이들의 자퇴를 막아보고자 시작한 헬스부 활동. 웃어야 할지 아니면 울어야 할지, 표현할 길이 난망한 일도 생겼다. 함께 운동했던 헬스부 1학년 학생 두 명이 우리 학교를 떠났다. 학업중단이 아니다. 둘은 인문계열 고교로 전학을 갔다.

아이가 스스로 원해 노력해서 공고를 떠나는데 마음껏 축하를 해야 할지, 교사로서 박수를 쳐주면 이 학교에 남은 아이들은 그런 내 모습을 어떻게 볼지, 내 마음은 한없이 복잡했다. 각자의 길을 응원하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슴이 헛헛한 건 어쩔 수 없었다.

2024년 헬스부 아이들의 결산. 우리는 처음 목표한 대로 보디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지한구 제공

2025년, 나는 또 헬스부를 맡았다. 공고를 지키고, 남은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단단히 만들어주는 게 여전한 나의 책임이다. 올해 헬스부에서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마음껏 시도하고 실패할 생각이다.

요즘 나는 심심하면 스마트폰 사진앱에서 헬스부 아이들의 ‘비포-애프터’ 사진을 보며 킥킥 웃곤 한다. 아마 아이들도 내 사진을 보며 킥킥거릴 거다. 아래는 아이들이 공개에 동의한 사진이다.

형준이 헬스부 전후 모습. ⓒ지한구 제공
한체대 진학이 꿈인 성진이의 헬스부 전후 모습. ⓒ지한구 제공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보디빌딩 대회에서 상을 받은 동연이 ⓒ지한구 제공
태훈이의 헬스부 전후 모습 ⓒ지한구 제공
무대에서 코피를 쏟았던 선우의 헬스부 전후 모습 ⓒ지한구 제공
나 지한구의 헬스부 전후 모습 ⓒ지한구 제공

영남공고 지한구

지한구 교사 longlong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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