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빈 원정대’ 소속 정인복(가명) 대원의 목소리엔 허탈함이 묻어 있었다. 정 대원은 지난 1월 대한민국의 ‘두 얼굴’이 담긴 대법원 판결문을 우편으로 받았다.
“우리같이 힘없는 사람들은 법원이 판결을 내리는 대로 따르는 것이 답 아니겠습니까. 김홍빈 대장이 현충원에 모셔져 있고, 스포츠영웅으로 헌액되고, 체육훈장 청룡장까지 받은 사람인데도, 국가는 구조비용 책임을 우리 대원들 떠넘긴 거잖아요. (대법원에) 상고까지 다 해봤는데도 안 되는데….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2025. 2. 24. 전화 인터뷰)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고(故) 김홍빈 대장. 김 대장은 히말라야 8000m급 14좌 봉우리를 세계 최초로 모두 등정한 장애 산악인이다. 2021년 7월 19일, 그는 히말라야 14좌 중 마지막인 브로드피크(8047m) 등반을 성공한 후 하산하던 중 실종됐다.
윤석열 정부는 김홍빈 대장을 ‘국가사회공헌자’로 인정해, 그의 위패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봉안했다. 김 대장은 2021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장(1등급 훈장)을 받았고, 같은 해 12월에는 ‘2021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에 헌액됐다.
하지만 ‘김홍빈 원정대’는 구조비용 책임을 두고 2022년 5월 대한민국 정부에게 소송을 당했다. 하산 중 실종된 김 대장을 수색하고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든 헬기 비용을 내놓으라는 것.
김홍빈 원정대를 향한 정부의 소송은 그동안 논란이 돼왔다. 세계적인 산악인이 성취한 명예는 국가가 나눠갖기를 원하면서, 그를 구조하는 데 든 비용은 개인에게만 짐 지우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관련기사 : <산악영웅’ 잃은 원정대에 윤석열 정부는 소송을 걸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심에서 절반 정도의 구조비용만 돌려받으라는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이후 다시 항소했다. ‘구조비용 약 6800만 원을 전부 받아내야 한다’는 취지였다.

지난 1월 24일, 대법원은 ‘김홍빈 원정대’의 패소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구조비용 전체(약 6800만 원)를 광주광역시산악연맹과 원정대 소속 5명이 나눠서 갚아야 한다‘고 본 항소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소송이 시작된 지 약 2년 8개월 만이다.
정부의 구조비용 청구 소송에 근거가 된 법은 ‘영사조력법’이다. 영사조력법 제19조에 따르면 재외국민은 영사조력 과정에서 자신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드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다만, 예외가 있다. ‘긴급히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 상황’ 즉, ‘해외위난상황’에 처했을 경우다.
하지만 항소심 법원은 “망 김홍빈의 추락·실종 사건 후 김홍빈 원정대원들은 생명·신체에 피해를 당할 수 있는 해외위난사항에 처하였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면서도, “구조비행에 들어간 구조비용이 통상적인 이송비용보다 과도한 비용이 지출된 경우로 일부 상환을 각 요구할 수 있다”고 봤다.
김홍빈 원정대 구조비용 청구 소송 판결은, 2021년 1월 영사조력법 신설 이후 ‘최초’이자 ‘유일한’ 판례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이번 판례를 근거로 해외위난상황에 처한 개인에게 수천만 원의 구조비용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개인들은 그 비용을 알아서 갚아야 하는 상황에 놓일지도 모른다. 바로 김홍빈 원정대가 그랬던 것처럼.

‘김홍빈 원정대’의 법률대리인 김한나 변호사(법무법인 금성)는 이번 대법원 확정판결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 사건의 경우 국위선양 중에 해외위난사항에 처하게 된 것이므로, 개인 영리 목적 등의 사유로 국외 체류 중에 해외위난사항에 처하게 되는 경우와 달리 취급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공익성이 인정되는 경우 국가가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예외사항으로 규정하지 않아, 입법 미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국회에서도 ‘영사조력법’ 개정 노력이 있었다.
민형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광주 광산구을)은 지난해 6월 국민이 국위선양을 하다가 해외에서 사고를 당했을 경우 국가의 비용 부담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영사조력법 개정안, 일명 ‘김홍빈 대장법’을 대표발의했다.
“재외국민이 국위를 선양하는 행위 중 발생한 사건·사고로서 그 행위로 상훈법에 따른 훈장 또는 포장을 수여받은 경우 국가가 신체·재산 보호에 드는 비용을 부담할 수 있도록 한다. 개정규정은 2021년 4월 20일 이후에 발생한 사건·사고부터 적용한다.”
지난해 8월 2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 당시, 외교부 등 관련 부처는 관련 법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는 의사를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지난 제21대 국회 외통위 수석전문위원 검토보고서에서 외교부, 법무부, 법제처가 각기 제시한 의견들을 종합적으로 감안하여 제안한 수정안의 내용과 유사하여 관계부처들은 수용 가능하다는 의견입니다.“(2024. 8. 20.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 강인선 외교부2차관 발언)

하지만 일부 국회의원들이 반대 의사를 밝히고 나서면서 법안 통과는 무산됐다. 해당 법안이 ‘특정 사례’만을 위한 법으로 보인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김기웅 국회의원(국민의힘, 대구 중구남구)은 “범위를 명확하게 넓혀서 해외에서 국위선양 중에 이런 일을 당하신 분들에 대해서 국가가 일정 부분을 부담해준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너무 특정 케이스에, 그것도 훈장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니까 법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홍기원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평택시갑) 또한 “개인에 대한 구상권 문제는 안타깝기는 하지만 사건 하나만을 위한 법을 만드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홍빈 대장법’은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 사이 대법원에선 ‘김홍빈 원정대 소송’ 판결을 확정지었다. 김홍빈 원정대를 ‘법적으로’ 도울 수 있는 길은 사라졌다.
전문가의 관점에서도 이번 ‘김홍빈 원정대 소송’은 안타까운 지점들이 있다. 아무리 법적 근거가 있다 해도, 김홍빈 원정대를 상대로 소송을 선택한 한국 정부의 판단을 ‘최선’이라 보기는 어려우니까.
재외국민 보호 분야의 전문가인 문현철 호남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지난해 7월 인터뷰 당시 “인도주의적 외교력을 통해 해결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휴머니티에 공감대가 있는 파키스탄 정부가 (김홍빈 원정대 구조 활동을) 도와주면, 향후 한국에 와 있는 파키스탄 사람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한국 정부가 도와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가장 훌륭한 모습은 외교력으로 해결해내는 것이죠. 휴머니티를 서로 공감하는 두 나라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문 교수가 말한 ‘외교적 해결’ 사례가 바로 반년 전에 있었다. ‘몽블랑 조난 사건’이다.
지난해 9월, 한국인 등반가 두 명은 프랑스 몽블랑(4807m)을 등반하다가 조난당했다. 프랑스 샤모니 산악구조대(PGHM)는 구조 헬기를 띄워 이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로부터 이틀 전엔 한국인 두 명으로 구성된 다른 등반팀을 헬기에 태워 구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산악인들에게 구조비용을 청구하지 않았다. 주프랑스대사관은 지난해 9월 셜록에게 “모든 비용은 주재국 정부(프랑스)의 부담으로 구조작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외교부는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구조비 청구 소송 말고, 문제를 해결하는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외교부가 직접 증명한 꼴이다. 그런데 왜 김홍빈 원정대의 경우에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었을까.
지난해 ‘김홍빈 대장법’을 발의했던 민형배 의원은 이번 대법원 판결을 두고 “재외국민이 국위 선양 행위 중 발생한 사건·사고에 대해서는 국가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며, “개인의 영리 목적이 아닌 만큼 정부의 구상권 행사는 타당하지 않다”고 재차 지적했다.

김홍빈 대장에게 훈장을 주고 현충원에 그의 위패를 봉안한 대한민국. 그리고 김홍빈 원정대를 구조하는 데 들어간 비용 수천만 원을 내놓으라며 건 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간 대한민국.
개인이 성취한 명예는 당연하게 나눠 가지면서, 그 비용은 소송까지 감수하며 개인에게 모두 전가하려는 두 얼굴의 대한민국. 모순의 가면을 쓴 대한민국의 얼굴이 대법원 판결문에 영원히 남았다.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