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이메일이 도착한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아침, 나는 부산 해운대 인근 호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전날 밤, 부산경남 왓슨(정기유료독자) 모임에 참석해 약 한 달 만에 음주(맥주 두 잔)를 해 머리가 아팠다. 메일함을 열었을 때 눈에 들어온 제목은 이랬다.
“2024 제15회 미디어공공성포럼 언론상 <본상> 수상”
메일을 열지도 않고 2~3초 만에 휴지통으로 보냈다. 숙취에 잘못 본 건 아니다. 보나마나 뻔한, 내 업무와 상관 없는 보도자료여서 개봉할 이유가 없었다. 곧바로 서울행 KTX 타러 부산역으로 향했다.
사흘 뒤인 2월 17일 아침, 같은 제목의 이메일이 또 도착했다. 무슨 보도자료를 이렇게 열심히 보내나 싶어 메일을 열어봤다.
“다시 한번 2024 제15회 미디어공공성포럼 언론상 <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관련 메일을 보냈는데 아직 수신이 안 된 것으로 확인돼 다시 보냅니다. 언론상 시상식이 오는 27일(목)에 있습니다. 시상식에 참석하실 수 있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보도자료가 아닌, 나한테 수상을 알리는 메일이었다. 수상작은 내가 2024년 초에 보도한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의 범인 추적기, ‘범인은 서울대에 있다’ 프로젝트였다.(프로젝트 첫 기사 : <“이번 시즌 먹잇감인가요?” 놈들이 텔레그램에서 웃었다>)

바로 답장을 보냈다.
“메일 확인이 늦어 죄송합니다. 영광스런 상을 주신다니, 냉큼 참석해야죠!”
실무적인 일로 한 차례 더 메일과 답장을 주고 받았는데, 미디어공공성포럼 측의 마지막 메일은 이랬다.
“네, 섬광과 같은 빠른 답신, 고맙습니다!^^”
상 주겠다는데 왜 빠르게 반응하지 않겠는가. 대개의 언론상은 기자가 먼저 자신의 보도 성과를 적어 심사기관에 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물론 타인 추천도 많다. 자천, 타천으로 신청서를 받은 뒤 심사가 진행되는 방식이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미디어공공성포럼 쪽에 내 보도를 추천하지 않았다. 심사 대상에 오른 줄도 몰랐다. 최초의 메일을 휴지통으로 보낸 이유다. 이렇게 쓰니까 뭔가 쿨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수상 사실을 안 직후 나는 굉장히 ‘핫’ 했다.
‘답신 독촉’ 메일을 받은 2월 17일 오전 내내 나는 할 일을 미루고 구글과 네이버를 오가며 이걸 검색했다.
“미디어공공성포럼 상금”
아무리 검색해도 상금이 얼마라고 시원하게 알려주는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내 검색 실력을 의심하며 검색어를 살짝 바꿔봤다.
“미디어공공성포럼 시상식 상금”
“미디어공공성포럼 본상 상금”
결과는 같았다. 나는 지난 2019년에도 미디어공공성포럼이 주는 상을 받았다. 그래서 이번엔 먼 하늘을 바라보며 기억을 곱씹었다.
‘상금이 얼마였더라….’

잘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보다는 기록이 더 정확하니, 이번엔 내가 주로 거래하는 국민은행 앱을 켜고 계좌를 뒤져봤다. 특별한 기록이 없었다. 생각은 이렇게 이어졌다.
‘혹시 다른 은행 계좌로 받았나… 아니면 회사 계좌로 받았나….’
은행 계좌가 한두 개도 아닌데, 이걸 언제 찾나 싶어 포기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상금에서 의연해진 건 아니다. 계좌 뒤지는 걸 포기했을 뿐이지, 기대까지 버린 건 아니었다. 현금으로 받았다면 계좌에 기록이 없는 건 당연하니까. 일단, 시상식을 기다리기로 했다.
시상식을 앞두고 진실탐사그룹 셜록 후배들에게 “부끄러우니 절대로 시상식에 오지 마라, 나 혼자 다녀오겠다”고 단단히 알렸다. 역시 쿨한 듯 보이지만, 나에겐 다 계획이 있었다. 상을 받으면 보통 동료들에게 밥을 산다. 근데, 상금이 얼만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을 초대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살면 ‘마이너스 인생’ 벗어나기 어렵다.
2월 27일 시상식 당일, 오랜만에 단정한(?) 재킷에 검은색 구두를 신었다. 존경하는 언론학자 분들이 주는 상이니 평소보다 격식을 차렸다. 모든 행사는 오후 5시에 끝났다. 상패와 붉은색 장미 꽃다발을 받았다.
미디어공공성포럼은 ‘범인은 서울대에 있다’를 본상으로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딥페이크를 활용한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 및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시민사회의 관심을 고양하고 미디어 공공성 향상에 기여했다.”
‘명태균 게이트’ 최초 보도로 함께 상을 받은 박현광 뉴스토마토 기자와 꼼장어로 저녁을 먹으며 자축했다. 박 기자가 “요즘 셜록은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고민을 말했다.
“이전 직장 오마이뉴스 다닐 때도 그랬는데, 저는 정치 분야에 약합니다. 정치부 기자로 국회도 출입했는데, 권력의 작동 방식을 잘 모르겠더라구요. 제가 그쪽에 약하다 보니, 명태균 게이트나 윤석열 탄핵 같은 굵직한 이슈에서 셜록이 제대로 힘을 못 썼네요. 셜록이 성장하면 그 분야를 좀 키워야겠어요.”
주목받던 신생 매체들이 근래 판판이 무너져 문을 닫았다. 셜록은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명태균’ 이슈에 별다른 대응을 못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는 거대한 정치 이슈다. 많은 기자를 거느린 방송사, 속보를 잘하는 통신사들이 이슈를 주도할 수밖에 없다. 다가오는 조기대선 국면 역시 비슷할 거다.

불안하고 힘든 시절이다. 미디어공공성포럼 시상식에 앞서 ’12.3계엄사태 이후, 민주주의 위기와 극복’을 주제로 간담회가 열렸다. 김성해 대구대 교수가 발표를 했는데, 마무리 발언이 기억에 남는다.
“어린 시절, 농사 짓던 아버지를 도와 저도 밭고랑을 갈아봤습니다. 소를 몰아서 쟁기질을 하는데, 저는 아무리 해도 아버지처럼 반듯하게 밭갈이가 되지 않고 이리저리 비뚤배뚤이더라구요.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눈앞에 있는 소 엉덩이를 보지 말고, 저 멀리 있는 산을 기준으로 소를 몰아야지! 그래야 밭이 똑바로 갈린다’. 이 말처럼 요즘은 먼 목표를 보고 가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나와 셜록에게 하는 충고로 들렸다. 셜록이 ‘범인은 서울대에 있다’를 보도했을 때도 세상은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그때도 많은 사람의 눈길을 끄는 핵심 이슈는 따로 있었다. 그럼에도 셜록은 “딥페이크 성범죄의 심각성과 피해자의 고통”에 집중해 보도를 했다.
결국 미디어공공성포럼의 학자들은, 눈앞의 유행을 좇거나 시류에 한눈 팔지 말고 우직하게 나아가라고 상까지 주며 셜록에 조언한 셈이다. 셜록이 해야 할 일, 잘하는 일에 집중하라는 의미다.
시상식 끝난 지 며칠이 됐는데도 동료들은 ‘밥 사라’는 말이 없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할 일을 하고 있다. SNS로 소식을 접한 ‘셜록의 친구’ 왓슨(정기유료독자)들도 많은 축하를 건넸다. 알고 보니, 나만 본질이 아닌 상금에 한눈을 팔고 있었다.
앞으로도 종종 이리저리 흔들리고 비뚤배뚤 걷겠지만, 먼 산을 바라보려 노력해야겠다. 그러다 보면 또 이렇게 큰 상을 받는 날이 오겠지.
그래서 상금이 얼마였냐고? 내가 지금까지 길게 말하지 않았나. 그건 본질이 아니다. ‘셜록이 잘해서 좋은 상을 받았다.’ 여기에 집중해주시길.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