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 문을 열자 묵은 채취가 콧속으로 훅 들어왔다. 골초 운전기사가 모는 택시 뒷좌석에 올랐을 때의 냄새와 비슷한, 일명 ‘쩐내‘였다. 코를 찡긋하며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70대쯤 보이는 한 노인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머리가 없어서 그렇지…. 젊은 분이 오셨네.”
창문 없는 지하, 20평 남짓한 강의실에 마련된 의자 약 50개는 이미 만석이었다. 착석한 여러 남성들의 머리는 정수리가 비었거나, 남은 머리카락이 희끗했다. 여성들의 머리는 짧고, 대개가 일명 ‘뽀글이 파마‘였다.
나를 훑어본 노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탈모 진행으로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다. 하지만 누가 봐도 이 공간에서 가장 젊은 사람은 나였다. 강의실을 꽉 채운 건 70~80대 노인이었다. 이들은 무대에 선 강사의 말에 집중했다.
“우리 아버님 어머님, 여기 강남 테헤란로에 왜 오셨습니까?”
강사의 물음에 노인들은 눈치를 보며 대답을 주저했다. 흰색 야구모자를 눌러 쓴 40대 강사는 분위기 돌파법을 알았다. 그가 앞자리에 앉은 한 노인에게 물었다.
“우리 아버님, 요즘 자녀들이 용돈 좀 주십니까?”
노인은 “안 줍니다!“라고 크게 답했다. 그를 위로하듯 강사는 더 크게 외쳤다.
“부모님 용돈 주는 효자가 대한민국에 몇 명 없어요! 그렇다고 우리 아버님 돈 없다고 치킨집 열어서 닭 튀기실 겁니까? 우리 그런 거 하기 싫어서 여기 모인 거잖아요! 아니에요? 자, 다시 묻겠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여기 왜 오셨습니까!?”
“돈 벌러요!”

떼창에 가까운 노인들의 외침에 강사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돈 문제로 고민 많은 우리 어르신들께 ○○코인을 소개하겠습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잘 알려진 코인이 아니었다. 알트코인(비트코인 이후 등장한 대안 코인)이라 부르는 것도 좀 그런, 듣도 보도 못한 근래 만들어진 코인이었다. 그럼에도 노인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강사는 ○○코인을 현금처럼 쓸 수 있는 곳이라며 신생 웹툰 플랫폼 A업체를 소개했다.
“요즘 웹툰 하나 잘 되면 10억 조회수가 나옵니다. 그러면 또 이 플랫폼에 좋은 작가들이 모이고, 독자들도 많이 찾겠죠? 그러면 영화감독들도 찾아와 2차 콘텐츠 제작도 진행합니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는 건 일도 아니죠. A업체가 잘 되면 ○○코인도 저절로 성장하는 겁니다.”
○○코인은 국내가 아닌 해외거래소에 상장돼 있다고 했다. ‘바이낸스’ 같은 이용자가 많은 유명한 거래소가 아니었다. 역시 듣도 보도 못한 거래소였다. 그럼에도 노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 이해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제 강사는 핵심으로 들어갔다.
“아버님 어머님, 딱 100달러, 큰돈도 필요 없습니다. 우리 돈 10만 원으로 ○○코인을 사서 시작하면, 최대 1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3억 원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정말로 100달러로 100만 달러를 벌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는지, 치킨집 개업 없는 풍족한 노년이 눈앞에 떠올랐는지, 곳곳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강사는 젊은 시절에 비해 지갑이 얇아진 노인들을 공략하는 법을 잘 알았다. 그는 노년의 쓸쓸한 삶에 공감하면서 적은 돈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적당한 개그로 웃음을 주면서 강연장의 사람들에게 소속감도 심어줬다.

강사는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홍보한 코인은 여타의 코인과는 차원이 다른, 폭락 가능성이 거의 없는 코인이라고 노인들을 안심시켰다. 강연이 끝나자 여러 노인이 강사에게 다가갔다. 사인이라도 받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들 강사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토큰포켓? 그건 어디서 다운 받는 거예요?”
“거래소 이름 뭐라고? 순 영어라서 무슨 소린지….”
“달러는 어떻게 환전하는 거예요? 달러로만 코인을 사는 건가?”
노인들은 웹툰 기반 플랫폼을 이해하기는커녕 가상자산 거래소 앱 설치 자체를 힘들어 했다. 그럼에도 서로에게 물으며 앱을 설치하고, 수익구조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 안간힘을 썼다. 한 손에 쥔 A4 용지를 놓지 않고서 말이다.
무슨 내용인가 곁눈으로 종이를 살피자, 아까 내 몸을 훑어봤던 노인이 내 옆구리를 푹 찔렀다. 그는 내게도 똑같은 A4 용지를 내밀었다. 강사가 설명한 A업체 코인의 ‘보상 플랜‘이 적혀 있었다.
- 투자 100달러~1499달러 구간 –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 : 100만 달러 약 13억 원.
- 투자 1500달러~9999달러 구간 –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 : 500만 달러 약 65억 원.
- 투자 10000달러 이상 –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 : 1000만 달러 = 130억 원.
과장된 내용에 내 눈이 커지자 노인이 물었다.
“젊은 분이 여긴 왜 오셨어?”
“그게…. 왜 오긴요. 돈 벌러 왔죠!”
취재를 위해 대충 얼버무렸다. 노인은 내게 집은 어딘지, 누구 소개로 왔는지 등을 자세히 캐물었다. 내 ‘상위 라인‘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상위 라인은 없고, 진지하게 투자를 하고 싶어서 왔다“고 하자 노인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내 라인으로 들어올래요? 나랑 같이 큰 꿈과 비전을 갖고 비즈니스를 할 생각이 있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무 쉽게 긍정을 한 게 오히려 이상했을까? 노인은 다시 나를 아래위로 훑어봤다.
“아까 강사님 말씀 잘 들었죠? 이 사업은 말이야, 너무 큰 욕심을 부리면 안 돼. 처음이니까, 같이 합심해서 월 10억 원 정도 수입을 내보자, 그런 정도로만 생각해야 돼. 발로 뛰어야 한다고. 올라서 차 한잔 하면서 이야기합시다.”
노인은 건물 1층에 있는 베이커리 카페로 날 이끌었다. 주문대에 선 그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나도 같은 걸 주문했다. 가격은 총 6000원. 나는 그가 계산할 줄 알고 가만히 있었다. 그도 가만히 서서 날 바라봤다. 계산원이 어색한 미소로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봤다.
“난 신용불량자라 신용카드가 없어요. 젊은 분이 계산 좀 하지.”
큰 꿈과 비전, 월 수입 10억을 말할 때처럼 그는 당당했다. 커피가 나오자 그는 나를 자리에 앉혀놓고 본격적으로 교육에 돌입했다. 웹툰 2차 저작권이니, 나스닥 상장 같은 고민은 필요 없었다. 구조는 간단했다.
그가 나를 포함해 다섯 명으로 팀을 꾸리는 게 1차 목표다. 그 다섯 명이 또 다섯 명을 꾸리고, 또 각자 다섯 명을 꾸리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월 10억 원‘을 벌 수 있다는, 고전적인 다단계 사기 수법이었다. 그를 계속 기망할 수 없어 솔직히 물었다.
“어르신, 이게 정말 가능하다고 믿으세요?
“안 믿지! 거의 대부분은 사기야”
의외의 대답에 할 말을 잃은 건 나였다. 그가 교육을 다시 이어갔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야! 빨리 시작해서 코인 가격 오르면 적절한 순간에 다 팔고 나와야 돼. 그럼 돈 벌 수가 있어. ○○코인은 아직 초기니까, 아주 좋은 기회야. 근데, 대부분 그 때를 놓쳐! 나도 한 2년간 4억 원 정도 털렸어.”
사기인 줄 알고, 수억 원을 잃었는데도, 그는 왜 테헤란로 곳곳에서 진행되는 ‘코인 설명회’ 현장을 전전하는 걸까.
“털렸으니까, 조금이라도 만회해야지. 내가 잃은 돈 4억 원만 찾으면 나도 그만둘 거야! 여기 사람들 봐봐. 죄다 비슷한 사람들이야.”
그제서야 카페의 다른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카페를 장악한 손님은 노인이었다. 테이블마다 수십억, 수백억 원이 적힌 수익구조 용지가 깔려 있고, 노인들은 상부상조하며 영어로 된 앱을 설치하고 있었다. 서울지하철 2호선 선릉역 주변 카페 풍경이 대체로 비슷했다.

여기까지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코인 다단계 문제는 수년 전부터 언론에 보도됐다. 다단계 성지라 불리는 강남 테헤란로의 ‘꾼’들이 다수의 가난한 노년의 주머니를 털어간다는 식으로 말이다. 소수의 ‘빌런’이 다수의 선량한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구조.
하지만 자세한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 테헤란로를 서성이는 다단계 피해자는 가난한 노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학교수, 사업가, 대기업 직장인, 대학생 등이 촘촘히 엮여 있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한 번 물리면, 그대로 떠나지 않는다. 기필코 누군가를 물기 위해 테헤란로를 서성인다.’
내 상위 라인이 되려는 노인의 말대로다. 돈을 잃은 사람은 본전을 회복하려, 사기라는 걸 알면서도 다시 누군가를 끌어들인다. 바로 ‘좀비화 전략’이다.
대학교수, 사업가라고 다르지 않았다. 1억 원을 털린 교수는 그걸 되찾기 위해, 자기 제자를 끌어들였다. 그렇게 몇 단계를 거치면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 가려내기 어려운 좀비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이 생태계의 영역은 압구정동 피부과에서 제주도 귤밭까지 넓게 펼쳐져 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약 50억 원 털린 사업가부터, 제자를 희생양으로 삼은 대학교수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나봤다. 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딱 하나를 신신당부하며 인터뷰에 응했다.
“우리 가족은 제가 이렇게 된 거 몰라요. 내가 죽으면 죽었지, 우리 가족이 알면 절대로 안 돼요!”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가족 누군가는 이미 좀비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다만 코인 다단계 사업에 물려 돈을 털렸다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풀어본다.
하나 덧붙이자면, 지난해 여름 지하 강의실에서 나를 아래위로 훑어봤던 노인에게 최근 문자가 왔다.
“새로운 투자 기횝니다. 이건 코인이랑 차원이 달라요. 그냥 현금을 넣으면 매일 복리 1%씩 쌓입니다. 이자를 안 찾고 그냥 두면 약 70일 뒤에는 원금의 두 배가 됩니다.”
좀비가 다시 인간이 되는 건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노인을 모아놓고 서울 테헤란로, 창원, 제주 등 전국 곳곳에서 설명회를 열던 웹툰 회사는 2024년 10월께 문을 닫았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