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쌀쌀한 아침 공기에 코 끝이 차가워졌다. 멀리서 박선유(47) 씨가 보였다. 바람에 코트자락이 휘날렸다. 박선유 씨는 시린 두 손을 매만지며 걸어왔다.
“어우, 너무 춥죠?”
3월 10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역 앞. 박선유 씨는 두 번째 ‘첫 출근’을 위해 마을버스에 몸을 실었다. 해고 4년 만에 다시 우촌초로 돌아간다.

우촌초는 대한민국에서 학비가 가장 비싼 사립초등학교다. 2002년부터 일광학원이 인수해 운영 중이다. 박선유 씨는 이곳 행정실 직원이었다.
박선유 씨는 다른 교직원들과 함께, 2019년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서울시교육청에 제보했다. 일광학원은 박선유 씨를 과학실무사로 전보시켰고, 2021년 해고(파면) 징계를 내려 학교에서 쫓아냈다.(관련기사 : <“무릎 꿇고 빌게 될 것” 회장님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해고장에 이어 고소장도 날렸다. 일광학원은 박선유 씨를 교비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사건은 불송치(혐의없음)로 종결됐다.
박선유 씨는 4년간 모욕과 설움의 시간을 견디고, 드디어 학교로 돌아간다. 지난달 20일 일광학원 임시이사회가 박선유 씨 복직을 결정했다. 직책은 과학실무사. 과학실 한 켠에 박선유 씨 책상이 마련됐다.

“이제 두 번째 싸움 시작이에요. 전투력이 급상승했어요.”
해고 이후 4년 만의 출근. 긴장될 법도 한데, 오히려 박선유 씨 두 눈은 더 반짝였다. 그는 학교로 돌아가기 전 머리를 새로 염색하고, 손톱에 보라색 매니큐어를 칠했다. 학교로 돌아가서 기죽지 않고 두 번째 ‘투쟁’을 준비하려는 박선유 만의 의식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말 처음 복직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속에 갖가지 감정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걱정이 많아서 지난 금요일까지는 잠을 못 잤어요. 새벽 2시부터 자다 깨다 반복하는 거예요. (재단 쪽에서) 또 저를 괴롭힐 거라는 심리적 압박감 때문인 것 같아요.”
아직 우촌초에는 일광학원 전 이사장인 이규태(75) 일광그룹 회장의 측근들이 근무하고 있다.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 피고인 신분으로, 이 회장과 함께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직원들이다.

박선유 씨의 불안은 막연한 ‘상상’이 아니다. 일광학원은 박선유 씨를 해고하면서, 그가 이규태 회장의 지시로 이사회 회의록에 대리 서명한 행위, 2억 5000만 원 교비 횡령 등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중앙노동위원회는 해임(파면) 사유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일부 징계사유는 이규태 전 대표의 지시에 따라 실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없고, 이 사건 근로자가 인정된 징계사유로 인해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사실도 객관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중앙노동위원회 판정문)
일광학원은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으로 맞섰다. 하지만 1심, 2심 재판부 모두 부당해고가 맞다고 판결했다.
그러는 사이 우촌초에도 변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일광학원 임시이사회가 구성됐다. 서울시교육청이 일광학원과의 행정소송에서 승소한 결과다. 구 재단 이사회는 전부 쫓겨났고, 그 자리는 임시이사로 채워졌다.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이 드디어 복직의 희망을 품을 때쯤, 또 위기가 찾아왔다. 한혜빈(71) 일광학원 임시이사장은 박선유 씨 부당해고 행정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가기 위해 상고장을 제출했다. 또 서울시교육청이 공익제보자들을 복직시키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일광학원 임시이사회는 공익제보자 복직을 ‘보류’했다.
알고 보니 한혜빈 임시이사장 부부는 이규태 회장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한 이사장의 남편은 서울시교육청에 의해 임원취임 승인이 취소된 일광학원 구 재단 유석성 이사(서울신학대 전 총장)였다.

한혜빈 이사장은 13년째 일광그룹 산하 일광복지재단 이사를 맡고 있고, 남편 유석성 전 총장 역시 일광그룹 산하 사단법인 포사람 대표이사로 12년째 재직 중이었다. 유석성 전 총장은 이규태 회장에게 ‘벌금’으로 쓸 돈 수천만 원을 빌려줬다는 돈거래 의혹도 있다.
셜록은 지난달 10일부터 한혜빈-유석성-이규태 세 사람의 인연과 돈 거래 의혹에 대해 보도했다. 한혜빈 이사장은 지난달 21일자로 이사직을 사퇴했다.(관련기사 : <[해결] 셜록 보도 11일 만에 ‘이규태 측근’ 이사장 사퇴>) 그리고 한 이사장의 사임서가 제출된 날(2월 20일), 박선유 씨 복직이 의결됐다.
아직 마음을 놓을 순 없다. 재징계 가능성 때문이다. 임시이사회는 한혜빈 전 이사장이 결재한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고 박선유 씨를 복직시키는 대신, ‘재징계’를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해고’가 부당하다면 다른 징계를 내리겠다는 말이다.
“박선유 씨 복직은 좋은 소식입니다. 다만, 어렵게 복직한 제보자에게 또 다시 보복성 징계나 괴롭힘이 벌어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도 일광학원 측을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참여연대)

참여연대의 걱정에도 다 이유가 있다. 먼저 복직한 공익제보자가 겪은 일들 때문이다. 우촌초 공익제보자 이양기 전 교감(59)은 2022년 10월 과학전담교사로 복직했다. 이 전 교감도 해임당했지만, 오랜 싸움 끝에 대법원 판결에 따라 학교로 돌아갔다.
지난해까지 이양기 전 교감은 과학전담교사로 근무했다. 과학실에 다른 교사 수업이 있는 시간에는 별도의 업무 공간이 없었다. 학교 측에 교무실 책상 자리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다른 수업이 있는 시간에는 운동장이나 옥상을 빙글빙글 돌며 배회했다.(관련기사 : <2년 반 만에 복직한 학교… 그 교사의 책상은 없었다>)
지난해 1월 이양기 전 교감은 느닷없이 ‘경고장’을 받기도 했다. 2023년 7월 의결한 징계를 6개월이나 지나 통보받은 것이다. 일광학원은 경고를 빌미로 사학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것을 공익제보자에 대한 불이익조치로 보고, 경고처분 취소와 사학수당 지급을 지시했다.

“우리 신랑이 저한테 그랬어요. ‘나는 부처다’ 생각하고 견디래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복직 대신 퇴사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박선유 씨에게는 굳이 험난한 길을 가야 할 이유가 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일광학원 임시이사회는 또 다른 공익제보자인 최은석(57) 전 교장과 교직원 유현주(47) 씨 복직을 이행하지 않았다. 최은석 전 교장은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다. 유현주 씨는 일주일 내내 쉬는 날 없이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다.
“유현주 선생 손가락, 팔 여기저기 죄다 데인 상처가 많더라고요. 보면 속이 상하죠.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나머지 공익제보자들을 기다리며 버텨내야 하는 ‘두 번째 싸움’. 다행히 박선유 씨에게 동료가 있다. 바로 이양기 전 교감. 교무실 책상도 없이 운동장을 배회하고, 부당한 경고장을 받으면서도 버틴 그였다.
“사실 학교에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그만둬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박선유 선생이 복직하니까 힘을 얻어요. 아군이 온다고 생각하면 좋죠.”

마을버스는 굽이굽이 산길을 지나 우촌초가 있는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박선유 씨는 마을버스에서 내린 뒤, 가파른 오르막길을 거침없이 올라갔다. 아파트 상가 건물로 들어가더니 4층으로 올라갔다. 상가를 빠져나와 더 걸었더니 우촌초가 보였다.
그를 따라 비밀통로처럼 복잡한 출근길을 걷다보니 숨이 찼다. 박선유 씨에게도 학교로 돌아가는 길이 이처럼 어렵고 복잡했을 것이다. 숨이 차고 지치는 순간도 분명 있었겠지만, 박선유 씨는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우촌초 교문 앞에 도착했다.
“갈게요. 다음에 봬요.”
아침 햇살이 박선유 씨 얼굴을 따뜻한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박선유 씨는 잠시 손인사를 건네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 또 다른 공익제보자들을 기다려야 할 곳, 어긋난 시간들을 바로잡고 다시 시작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