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노크도 없이 거칠게 방문을 열고 들어온 건 일요일 아침이었다.
“몇 신데 아직도 자냐? 엄마가 들어준 적금 5000만 원, 그거 얼른 깨서 다시 줘봐.”
평소보다 한 옥타브 올라간 목소리에 쫓기는 듯한 눈빛, 여기에 자기도 모르게 튀어 나온 경상남도 억양까지. 엄마가 발동 걸렸다는 증거다. 이쯤되면 누구도 말릴 수 없다.
“5000만 원을 갑자기….”
“엄마가 그 돈이 없어서 그러겠냐? 네 돈 불려서 주려고 그러는 거지!”
엄마의 가슴엔 ‘지리산권에서 현금을 가장 많이 만져본 여자‘라는 자부심이 있다. 몇 년 전 “돈을 얼마 정도 벌었느냐“고 물었을 때, 엄마의 대답은 이랬다.
“글쎄…. 자기가 얼마를 벌었는지 안다면 그 사람을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

돈에 관해서라면 엄마는 의대생 딸, 아들보다 똑똑했다. 그런 엄마가 5000만 원 때문에 적금을 깨라고 요구하다니. 이게 다 코인 때문이다. 엄마는 현금 자산을 모두 코인에 ‘몰빵‘한 상태였다. 딸의 일요일 늦잠을 방해한 2020년 그날,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이 폭락했다. 폭락은 엄마에게 기회였다.
“병에 대해서는 의대생인 네가 잘 알겠지만, 돈은 엄마가 더 잘 아니까 의심하지 마! 몇 배로 불려서 줄 테니까, 넌 가만히 지켜보기나 해.”
적금을 해약하고 엄마에게 돈을 입금했다. 딸은 가상자산에 관심이 없었다. 얼마 뒤 엄마는 가상자산 지갑을 보여줬다. 5000만 원은 약 2억 원이 돼 있었다. 이 돈은 이듬해인 2021년 봄 약 10억 원으로 불어났다.
“고스란히 줄 테니까, 너 시집갈 때 써라. 상속이라 생각하고 더는 엄마한테 손 벌리지 말고.”
딸은 경이로운 눈으로, 환갑의 나이에 코인으로 대박 친 엄마를 바라봤다. 딸의 눈길을 받은 엄마 장덕순(가명, 1961년생)의 내면은 지리산 고향 마을의 봄꽃처럼 뭉게뭉게 부풀어 올랐다.
차라리 그때 딸의 5000만 원이 ‘0원’이 됐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사기꾼에게 생돈 수십 억 원을 털리는 일은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 엄마는 요즘 부질없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강남 사모님’이 코인 다단계에 빠진 이야기는 그녀의 삶 전체와 연결돼 있다.
아버지는 맞딸 장덕순 포함 아이 5명을 낳고 일찍 돌아가셨다. 수학을 잘해 중학교 내내 1등을 했던 장덕순은 더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친구들이 고교에 입학하던 봄날, 장덕순은 지리산을 떠나 서울 영등포의 봉제공장으로 향했다.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보부상 아주머니를 만났다. 장덕순이 물었다.
“그 무거운 등짐 다 팔면 얼마 벌 수 있어요?”
“다 팔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것네. 그래도 부지런히 댕기면 안 죽고 먹고는 산다.”

이 대화를 끝으로 17세 장덕순은 고향을 떠났다. 22살까지 꼬박 봉제공장에서 일했다. 그래야 고향의 동생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여러 직장을 거치다 지인의 소개로 속옷 장사를 시작했다. 빚을 얻어 영등포에 매장도 크게 열었다. 9개월 만에 사기를 당해 가게 보증금 등 투자금을 모두 떼이고 빚만 3500만 원 남았다. 1980년대 당시 서울에서 웬만한 집 한 채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2부 이자로 월 70만 원씩 내면서 원금을 갚으려면…. 눈앞은 캄캄한데, 장덕순에게 남은 건 “수북하게 쌓인 빤스“뿐이었다. 장덕순은 낮에는 직장에서 경리로 일하고, 밤에는 거리에서 빤스를 팔았다. 빚을 갚으려면 부끄러움 따위 잊어야 했다. 장덕순은 거리에서 외쳤다.
“유행도 안 타고, 때도 안 타는 ○○○ 빤스 사세요~.”
이 멘트가 재밌는지 한 젊은 여성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빤스 10장 정도 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향 마을 중학교 동창이었다. 자기보다 공부를 못했던 친구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해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장덕순은 도망치고 싶었으나, 거리에 쌓인 빤스가 발목을 잡았다. 친구는 반가운 건지, 비웃는 건지 연신 환하게 웃었다. 덕순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허공에 대고 외치고 또 외쳤다.
“빤스 사세요~. 유행도 안 타고, 때도 안 타서, 오래 입을 수 있는 빤스 사세요!”
친구는 한참을 미소 짓다가 떠났다. “빤스 대신 팬티라는 고급스런 말을 썼다면” 덜 부끄러웠을까. 이 어색한 만남이 장덕순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장덕순은 다짐을 했다.
‘우라질,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장사로 1등을 찍어보자.’

거리에서 속옷을 팔아본 여자는 어떤 장사든 할 수 있었다. 지인을 통해 가죽장갑 100켤레를 외상으로 받아왔다. 원가는 8000원, 매장 판매가격은 약 2만 8000원이었다. 장덕순은 방문판매를 하며 한 켤레 1만 8000원, 두 켤레 3만 5000원에 팔았다.
열흘 만에 가죽장갑을 다 팔자 거래처 사장은 이번엔 원가 5만 원짜리 가죽점퍼 100벌을 외상으로 내줬다. 보따리에 점퍼를 싸짊어지고 지하철, 버스로 집집마다 다니며 팔기 시작했다.
고향을 떠나던 날 보부상 아주머니를 무시했건만, 자신이 딱 그 처지가 됐다. 지리산에서 뛰어논 덕분에 체력이 좋았지만, 점점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요양차 집에서 쉬며 신문을 읽다 재밌는 문구를 발견했다.
“○○지역이 ‘골프8학군‘으로 거듭나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1990년대 초반. 좀 산다는 사람들은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신도시 개발지역의 졸부들도 골프채를 쥐었다. 골프가 뭔지도 몰랐던 장덕순은 제주도로 향했다. 제주도 한 골프장 정문에 도착하니,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캐디들이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캐디가 이토록 많으면 골프 치는 사람은 얼마나 많다는 걸까.
“동대문시장에서 골프옷을 떼서 일단 제주도 골프장으로 밀고 들어갔죠. 수도 없이 쫓겨났습니다. 부자들 드나드는 골프장에서 좌판을 깔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래도 계속 찾아갔죠. 관리자들 주머니에 뇌물도 좀 찔러주고….”
그렇게 장덕순은 제주도 일대 골프장을 하나씩 접수해 나갔다. 골프옷은 불티나게 팔렸다. 골프장 고객 중에는 사장님들이 많았다. 당연히 의류업체 넘버원도 여럿 있었다. 장덕순의 실력을 본 사장들이 제안을 했다.
“우리 공장에 재고가 쌓여 있는데, 좀 팔아보실래요?”
장덕순은 좌판 생활을 접고 제주도와 서울에 매장을 크게 열었다. 이 공장 저 공장에서 물건이 마구 도착했다. 이제는 좀 옷 판다 하는 상인들이 물건을 싸게 사려 장덕순을 찾아왔다. 장덕순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도매를 하고” 있었다.
장사는 혼자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 남편은 벌써 사표를 내고 아내의 운전기사 역할을 했다. 장덕순은 자신이 공장 다니며 고등학교, 대학 졸업장 따게 해준 동생 네 명과 그 배우자들을 불러모았다.
“한자리에 모아 놓고, 계좌 잔고랑 월급 내역을 다 까라고 했죠. 다들 겨우 먹고살고 있더라고. 그래서 제가 ‘다 때려치우고 다들 내 밑에서 일하라‘고 했어요. 싫다는 동생도 있었는데, 돈으로 질러서 주저앉혔죠.”

장덕순은 네 동생에게 서울 시내 아파트 한 채씩을 사줬다. 다들 ‘첫째 언니‘을 말을 잘 듣기 시작했다. 그렇게 장덕순 지휘 아래 가족회사가 탄생했다.
한국의 옷 공장, 여러 매장은 남편과 동생들에게 맡기고 ‘넘버원’ 장덕순은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를 돌았다. 중국에선 공장을 돌리고 베트남에선 땅과 아파트를 구입했다. 미국 부동산 투자는 기본이었다.
장덕순은 강남에 아파트, 빌딩을 가진 사모님이 됐다.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한 상처 때문에 딸, 아들 교육에 열을 올렸다. 남매는 나란히 의대에 진학했다. 못 배운 설움과, 거리에서 속옷 팔던 모욕이 희미해졌다. 이젠 얼굴의 주름과 기미를 없앨 차례였다.
압구정동 A피부과 의자에 누워 관리를 받는데, 옆에서 유명 관상가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이 어쩌고… 이더리움이 저쩌고… 바이낸스가 이러코… 블록체인이 저러코…”
정말이지 딱 이렇게 들렸다. 관상가의 말은 한마디로, 어쨌든 ‘코인이 돈이 된다‘였다. 장덕순은 코웃음을 쳤다.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요. 붕어빵 하나 못 사먹는 코인인가 뭐시깽인가가 뭔 돈이 된다고….”

말은 이렇게 했지만, 관상가의 속삭임은 귓가에 남았다. 관상가의 소개로 피부과에 젊고 팽팽한 한 남자가 나타났다. 이 남자는 ‘제니 킴’이란 여자를 장덕순에게 소개했다. 제니 킴은 이름과 달리 중국 땅 연변에서 왔다고 했다.
저 멀리 백두산 너머에서 온 제니 킴은 지리산 출신 장덕순을 상대로 작업을 치기 시작했다.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진 두 여자의 독한 대결. 비트코인 약 20개 등 수십억 원이 줄줄 녹기 시작했다.
☞ 다음 이야기 <연변 제니 킴 vs. 지리산 갑부… 피눈물의 코인전쟁>으로 이어집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