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지리산 출신 장덕순(가명)은 중학교 졸업 후 서울 봉제공장으로 향했다. 보따리 장사도 하며 억척스레 살았다. 겨우 밑천을 마련해 시작한 의류사업이 승승장구. ‘강남 사모님’이 됐다. 압구정동에서 피부관리를 받던 어느 날, ‘코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압구정동 피부과에서 관상가를 만나고 돌아온 날, 장덕순(가명, 1961년생)은 비트코인을 검색했다. 2016년 그날, 비트코인 하나가 100만 원 미만이었다. 한참 뒤 다시 A피부과를 찾았다. 이번엔 원장이 말했다.

“그 관상가가 비트코인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하대….”

다시 검색해봤다. 비트코인 하나가 약 700~800만 원대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장덕순의 심장이 빨리 뛰었다. 차분해야 했다. 성급하게 움직여 ‘강남 사모님’이 된 게 아니다.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마음으로, ‘매수’ 버튼 누르려는 걸 참고 또 참았다.

장덕순은 공부를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유튜브를 봤으며, 전문가를 직접 찾아가 따로 강의도 들었다. 그렇게 약 1년을 보내고 무릎을 쳤다. 장덕순은 2019년부터 비트코인 등을 사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비트코인 1개 가격은 1000만 원이 넘었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먼 훗날 돌아보면 그날이 가장 싼 날일 테니 말이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3월, 비트코인 가격이 500만 원대까지 폭락했다. 승부수를 던질 때였다. 장덕순은 딸의 적금을 해약할 정도로 흥분했다. 공포에 던진 승부수는 일명 “열 배 보상“으로 돌아왔다. 주변에 “장덕순이 코인도사가 됐다“는 말이 돌았다. 피부관리 받을 때가 아닌데, 압구정동 A피부과 원장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그 관상쟁이가 코인 투자자를 데리고 왔는데, 난 도무지 무슨 이야긴지 모르겠네. 우리 장 사장이 와서 한번 들어봐. 좋으면 나도 좀 알려주고.”

장덕순은 어느새 강남에서 유명한 ‘코인도사’가 돼 있었다 ⓒpixabay

장덕순은 2021년 3월, A피부과 의자에 앉았다. 코인 투자자 이수민(가명, 40대 남성)이 옆자리에 앉았다. 얼굴을 천장으로 한 채 피부관리를 받는데, 이수민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장님, 스테이킹(staking) 시스템 들어보셨죠?”

이수민은 기선제압이라도 하듯 전문용어를 툭 던졌다. 장덕순은 속으로 웃었다. ‘내가 코인 공부를 한 게 얼만데….’ 순진한 척 장덕순은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다이비스라는 디파이 플랫폼에 코인을 보내면 10일 만기 상품으로 하루에 1%씩 이자를 줍니다.”

은행에 돈을 맡기고 이자를 받는 방식을 생각하면 된다. 즉, 개인이 갖고 있는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다이비스‘라는 회사에 맡기면 은행처럼 하루 1% 이자를 준다는 뜻이다. 은행이 고객의 예금으로 대출 등의 사업으로 수익을 얻는 것처럼, 가상자산 업계도 코인을 예치받은 뒤 여러 사업으로(디파이 플랫폼) 수익을 나눈다는 의미다.

장덕순은 공부를 많이 해서 이수민의 말을 곧바로 이해했다. 해외에 관련 업체가 여럿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장덕순은 이수민과 마주 앉아 본격적으로 사업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덕순은 처음엔 “소소하게 약 2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을 ‘다이비스‘라는 업체에 보냈다.

이자가 날마다 1%, 하루 200만 원씩 꽂혔다. 일주일이 지나니 이자 수익만 1400만 원에 이르렀다. 장덕순은 “10일 만기 상품이니 사흘 뒤 수익 2000만 원을 거두고 예치한 코인을 뺄” 생각이었다. 그런데 8일째 되는 날 ‘다이비스’ 계정이 닫혔다. 그동안의 이자는 물론이고 예치한 코인도 찾을 수 없었다.

이수민은 “곧 시스템이 복구된다“며 장덕순을 안심시켰다. 2주일이 지나도 시스템은 복구되지 않았다. 이수민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장덕순을 찾아왔다. 그는 새로운 사업을 이야기했다.

“사장님, PTD라는 디파이 플랫폼 들어보셨습니까? 여긴 다이비스와 비교도 안 되는 대기업이에요. 제가 마카오에서 열린 콘퍼런스에도 다녀왔는데요….”

말이 청산유수였다. 그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어야 했는데, 그게 그렇게나 어려웠다. 장덕순의 머리에 자꾸 다이비스에서 잃은 2억 원이 떠올랐다. 전체 자산에 비하면 엄청난 손실이 아닌데, 하필 그 순간에 다 잊은 줄 알았던 속옷 장사의 기억이 떠올랐다.

‘2억 원을 모으려면, 속옷을 몇 장 팔아야 하는 거야. 하나 팔면 1000원 정도 남았으니까…. 그때 내가 그 고생을 해서 돈을 벌었는데, 2억 원이면….’

장덕순은 결심했다. 아니, 미끼를 물고 말았다.

“PTD 사장을 데리고 오세요. 내가 그 양반한테 설명을 듣고 투자를 결정할 테니까.”

서울 강남 테헤란로에서는 ‘코인 다단계’를 설계하는 일명 ‘꾼’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자료사진 ⓒ셜록

장덕순은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한 빌딩에서 ‘제니 킴‘을 만났다. 이름은 김지영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꼭 영어 이름을 썼다. 비서 이복희는 ‘재키 리‘, 투자 담당자 박도수는 ‘마이클 박‘이었다. 제니 킴이 장덕순에게 설명을 했다.

“PTD에 코인을 예치하시면 매일 1%이자, 그것도 복리도 드립니다. 약 70일 정도만 예치하시면 원금의 두 배가 됩니다. 사장님, 다이비스는 잊으시죠. 거기서 잃은 원금 PTD에서 금방 회복하면 됩니다. 빨리 시작하는 게 최선입니다.”

코인으로 100달러씩 투자하는 사람 다섯 명을 모집하고, 그 다섯 명이 또 다섯 명을 모집하고…. 이렇게 몇 단계를 거치면 ‘스페셜 등급‘이 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딱 들어보니 다단계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장덕순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장덕순은 제니 킴의 말을 끊었다.

“됐습니다! 그런 거 다 필요 없어요!”

자리를 박차지 못한 장덕순의 입에서 엉뚱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귀찮게 무슨 사람을 모집하고 그럽니까? 그냥 다섯 명분 해봤자 500달러, 그 밑으로 25명 해봤자 2500달러… 뭐 이런 거잖아요! 그냥 제 돈 다 때려넣을게요. 10억 원 정도 넣으면 바로 스페셜 등급 가는 겁니까?”

장덕순은 비트코인 19.3개, 이더리움 164,9개, 도지코인 22만 개, 파일코인 240개 등 2021년 5월 기준 약 13억 원 어치의 코인을 PTD에 예치했다. 정확히 그해 5월 5일부터 하루 1% 이자가 복리로 쌓이기 시작했다.

정확히 1개월 뒤인 6월 5일 계약을 해지하고 예치한 코인을 모두 찾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손해를 본 2억 원에 더해, 수억 원의 이득도 얻을 수 있었다. 덧없는 기대였다. PTD 시스템은 정확히 5월 23일 닫혔다. 이자는커녕 예치한 코인도 찾을 수 없었다. 제니 킴은 다이비스 이수민과 똑같은 말을 했다.

“지금 시스템 복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다단계 사기꾼들은 코인과 돈이 어느 규모로 쌓이면, 시스템을 닫아버린다. 테헤란로의 고전적인 수법이다. 한 번 닫힌 시스템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모든 건 판박이였다. 이수민이 제니 킴으로, 다이비스가 PTD로, 하루 1% 이자가 ‘하루 1% 복리 이자‘로, 2억 원 잃은 장덕순이 13억 원 잃은 장덕순으로 교체됐을 뿐이다.

장덕순이 투자한 13억 원 상당의 코인은 2025년 2월 기준으로 따지면, 약 40억 원 가치에 해당한다.

손쉽게 쌓아올린 욕망의 집. 잿더미가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pixabay

지리산 출신 여성 중에서 자신이 가장 많은 돈을 벌었다고 믿는 장덕순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몇 번을 울었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맨손으로 우뚝 선 자신을 스스로 속였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루 1% 이자라니, 그것도 복리로….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그런 건 없어요. 피땀 흘려 일한 내가 누구보다 더 잘 알죠. 그런데 제가 그걸 믿었어요. 바보같이….”

장덕순은 2억 원을 잃은 순간보다, 그걸 되찾겠다고 다시 그 판에 뛰어든 게 가장 부끄럽다고 했다. 자신을 속인 건, 제니 킴도 마이클 박도 아닌 자기 욕심이었다는 걸 그는 눈물로 인정했다.

요즘 장덕순은 그 옛날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으로 떠나던 날,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보부상 아주머니의 말을 자주 생각한다. 누구처럼 완판을 해보진 않았지만 “부지런히 댕기면 안 죽고 먹고는 산다“는 그 말. 바보 같던 그 말이 알고 보니 가장 현명한 말이었다.

거리에서 속옷 팔던 장덕순도 그렇게 살며 재산을 일궜다. 부지런히 댕기면서 말이다.

이 공장 저 공장 다니며 동생들 공부시키고, 서울 아파트 한 채씩 사준 장덕순은 동생들에게 신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5남매 중에서 장덕순이 가장 가난하다. 동생들은 신 같은 언니가 코인 다단계 사기로 돈을 잃었다는 걸 모른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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