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의 죄명은 ‘가스방출죄’였다. 변호사 생활 십수 년간 그런 죄명의 사건은 처음이어서 신기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누구나 말은 해도 아무도 본 적 없는 용(dragon)을 나 홀로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는 뇌병변 장애로 거동이 어려운 70대 노인이었다. 기초생활수급비로 혼자 살았다. 사는 것을 괴롭게 여기던 그는 자살을 결심했다. 가정용 가스레인지에 공급되는 가스를 마시면, 연탄가스를 마실 때처럼 사망에 이를 거라 믿었다.

가스레인지의 중간 밸브를 연 채 오른쪽 버너 점화 손잡이를 돌렸다. 그리고 술에 취한 상태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제가 죽으려고 가스를 틀어놨습니다.”

노인은 죽지 않았다. 그는 가스방출죄로 기소된 피고인이 되고 말았다. 가스방출죄는 법정형이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로, 벌금형이 없다. 피고인은 중년부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불편한 상태였는데, 이제는 자살을 하려다 구속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그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제가 죽으려고 가스를 틀어놨습니다.” 노인은 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가스방출죄 피고인이 되고 말았다. ⓒpixabay

나는 그의 공소장을 유심히 살폈다. 사건 당일 그의 집에선 가스는 방출되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변호사 이전에 주부였기에 가능한 경험적 확신이었다.

부엌에서 국이나 물을 끓일 때, 종종 끓는 물이 넘쳐 가스레인지의 불이 꺼지곤 했다. 그 순간 옆 화구에 다른 음식을 하느라 가스레인지 불이 켜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 불이 꺼진 화구에서 가스가 계속 새어 나왔다면 폭발이나 대형 화재가 났을 텐데, 그런 적은 없었다.

버너의 점화 손잡이를 돌려놓기만 해도 가스가 방출된다면, 가정용 가스레인지가 지금처럼 전 국민에게 보급되지는 않았을 터다.

검찰의 주장대로 가스가 정말 새는지 가스레인지 안전장치에 대해서 검색해봤다. 국내 시판 가정용 가스레인지에는 ‘열전대’라는 자동소화안전장치가 의무적으로 장착된다. 가스레인지 불꽃이 점화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가스가 외부로 유출이 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였다.

즉, 가스레인지의 중간 밸브를 열고 버너 점화 손잡이를 돌려놨다 하더라도 점화가 안 된 상태라면 가스는 새지 않는다. 가스 방출은 불가능하다.

나의 피고인이 가스를 방출하려 했다는 가스레인지를 직접 보고 제원을 확인하고 싶었다. 빌라와 단독주택이 이어진 비좁은 골목을 지나 그의 집에 도착했다. 독거노인인 피고인이 사는 집은 국가가 보증금을 지원해주는 곳이었는데, 방 한 칸에 좁은 싱크대 공간이 전부였다.

그에게 “혹시 가스레인지를 구입했을 때 포장했던 상자를 갖고 있느냐”고 물었다. 작은 것 하나도 쉽게 버리지 않는 것은 가난이 준 습관이었다. 덕분에 그의 냉장고 위에는 가스레인지 상자가 그대로 있었다. 상자에는 제품의 스펙 등 제원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방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그가 매일 먹는 약 봉지가 가득했다. 하얀 냉장고에는 빽빽하게 글이 적혀 있었다. “죽고 싶다 매일 매일…”로 시작하는 글은 누군가에게 쓰는 편지 같기도 했다.

‘가스방출죄’로 기소된 노인의 집에 있던 냉장고. 흰 냉장고에는 글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몬스테라

노인의 방 한쪽 구석에는 전기장판 위에 이불이 펼쳐져 있었다. 그가 매일 자는 곳이었다. 그의 방 벽은 달력 하나 없이 깔끔했는데, 유일하게 못 박아 걸어둔 것이 있었다. 그와 닮은 모습의 남성 사진이었다.

“제 영정 사진입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인생이라서, 좀 젊었을 때 미리 찍어뒀습니다.”

그는 매일 자신의 영정사진 아래에서 잠들고 일어났다. 혼잣말로 시작해 혼잣말로 끝나는 일상을 보내고, 누군가에게 어떤 말이든 하고 싶은 밤이 되면 종이나 냉장고에 글을 썼다.

그가 영정사진 아래에서 잠들고, 수급비를 아껴 자신의 장례비를 모아뒀다고 해도, 정작 그가 세상을 떠나면 쉽게 발견되기 어려울 듯했다. 그는 완전히 혼자니까. 그가 자살을 시도하면서 자꾸 경찰에 연락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를 돕고 싶었다. ‘가스방출죄 입법 취지가 실현될 정도로 유의미한 가스는 새지 않았다’는 게 핵심. 하지만 일반재판으로 하면 주장과 입증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자고 말했다. 노인은 내가 그의 집까지 찾아와 준 사람이기 때문이었는지,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했다. 국민참여재판 신청서에 이름을 적는 그의 손은 그가 가진 뇌병변 장애 때문에, 바람에 손수건이 날리듯이 떨렸다. 한참이나 종이를 잡고 넘실거리던 그가 겨우 이름 석 자를 적었다.

나는 가스레인지를 만든 회사에 연락해, 노인이 사용하는 가스레인지에도 안전장치가 설치돼 있는지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23일 뒤 회신이 왔다. 그의 가스레인지에도 ‘자동소화안전장치가 장착돼 있어 점화되지 않은 상태에는 가스가 공급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자살시도 방법을 잘못 선택한 셈이다.

사실조회 회신결과가 온 후 검사는 가스레인지 제조회사에 “피고인의 가스레인지에 자동소화안전장치가 잘 작동하는지에 대한 감정촉탁신청을 하겠다”고 했다. 이걸 진행하려면 노인의 집에서 가스레인지를 떼내어 제조회사에 보내야 했다.

얼마 뒤 검찰에서 “피고인에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는 연락이 왔다. 내가 연락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노인이 또 세상을 등지려 했을까봐 걱정됐다. 하루만 더 연락이 닿지 않으면 그의 집을 가보려 했는데, 마침 수원의 한 정신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노인께서 농약을 마셨습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또 한 번 응급상황이 발생했다는 소식이었다. ⓒpixabay

다행히 이번에도 목숨을 건졌다. 경찰이 그를 발견했다. 그는 응급실에서 위세척 등 치료를 받고,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

그에게는 가족이 없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보호자가 돼 정신병원 입원에 동의한 상태였다. 사실상 강제입원. 노인은 6개월간 정신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그의 삶에 작은 희망이라도 주고 싶고, 누군가는 당신을 돕는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이렇게 노력하는데, 농약을 마시다니…. 힘이 빠졌다.

그가 있는 정신병원으로 갔다. 상담할 자리가 없어서 폐쇄병동 안으로 들어갔다. 치료프로그램을 마치고 줄을 지어 이동하던 환자들이 내가 앉은 자리로 와 어린아이처럼 서류를 만지기도 했다.

정신병원 측은 그를 국민참여재판에 출석시킬 수 없다고 했다. 노인의 건강상태 때문이 아니었다.

“노인을 법원까지 데려가고, 재판이 끝날 때까지 한참을 기다린 후에, 다시 병원까지 데리고 올 인력이 없습니다.”

법률상 피고인 없이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할 수는 없다. 나는 “노인을 법원까지 데려다 주기만 한다면, 그 이후엔 내가 직접 병원으로 모셔다 드리겠다”고 정신병원에 부탁했다. 이렇게 나는 사회복지사 역할까지 맡았다.

가난이 준 습관 때문인지 노인은 가스레인지 박스를 버리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다. ⓒ셜록

몇 번의 고개를 넘어 드디어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가스레인지 회사에서 보낸 감정결과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가정용 가스레인지는 점화가 되지 않는 이상 밸브를 열고 버너 손잡이를 돌려 놓아도 가스가 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재판이 쉽게 마무리될 리 없다. 검찰은 다른 증거를 들고 나왔다. 피고인의 집으로 출동한 경찰관과 소방관이 “가스 냄새를 맡았다”라고 증언했다는 거였다. 나는 화엄경에 나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글을 파워포인트로 띄웠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뜻인데, 그들이 피고인의 방에서 가스 냄새를 맡았다고 생각한 건 “가스가 누출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기 때문이라는 취지였다.

피고인의 힘겨운 최후진술까지 끝나고 배심원 평결과 선고를 기다렸다.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변론 종결 이후 몇 시간 뒤에 선고가 나온다. 새벽 2시에 선고가 나온 적도 있다.

피고인은 선고가 나올 때 반드시 법정에 있어야 하므로, 법원에서 대기한다. 하지만 변호인은 그럴 필요가 없어 대개 선고를 기다리지 않고 법원을 떠난다. 하지만 이번엔 선고 이후, 내가 그를 정신병원에 데려다 줘야 했다. 물론 나의 피고인이 무죄를 선고받거나 법정구속을 피한다는 걸 전제로.

나는 노인과 함께 법정 복도에서 몇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저녁이 되니 법원 복도에도 불이 꺼지고 어두웠다. 캄캄한 복도에서 오래 침묵을 지키기가 어색하면 서로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살면서 언제가 제일 좋았어요?”
“버스기사 할 때… 운전할 수 있었을 때….”

지금은 전동휠체어에 의지하는 몸이 됐지만 과거에는 운전기사를 하며 여기저기 자유롭게 다녔다고 했다. 이런 대화를 하며 한참을 보내니 법원 경위가 “이제 선고한다”며 그에게 법정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에게 유죄가 선고돼 구속되면 병원으로 모셔 가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할 텐데. 어두운 복도에 혼자 남으니 마음이 무겁게 내려 앉았다. 얼마 뒤, 노인이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무릎이 바닥에 닿을 듯이 심하게 비틀거리면서 법정에서 나왔다. 그는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형사보상청구’ 안내문이었다. 무죄다. 울컥해서 그를 안아줬다.

노인의 벽을 장식하는 건 자신의 영정사진뿐이었다. 노인은 영정 아래에서 매일 잠들었다. ⓒ셜록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마세요.”

법원 밖에는 비가 내렸다. 나에게는 차가 없었다. 장애가 있는 노인을 데리고 정신병원이 있는 먼 곳까지 가려니 막막했다. 택시를 부르려는 순간, 전화가 걸려왔다. 사정을 알고 있던 동료 국선전담변호사 두 명이 법원 앞에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었다. 참 좋은 사람들이다.

덕분에 노인을 무사히 정신병원까지 모실 수 있었다. 노인은 정신병원 앞에서 몸을 뒤틀면서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날이 법원에 대한 그의 마지막 기억이기를 바랐다. 자꾸만 삶을 끝내려 시도하는 그가 조금 더 힘을 내어 살아내 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동안 카카오톡 친구로 있던 그의 상태가 ‘알 수 없음’으로 변한 것은 그때로부터 몇 년 지난 뒤였다.

몬스테라 작가 monstera0930@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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