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석 테이블 두 개가 가로로 길게 붙어 있는 회의실. 9명이 둘러 앉아 자리를 채웠다. 중장년의 얼굴들이 대부분. 그들의 시선은 테이블 가운데로 향했다. 그곳에는 태블릿PC로 열심히 상대방의 말을 받아 적는 청년 여성이 있었다. 그는 직접 말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입을 바라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오늘 제가 더 챙겨야 할 부분에 대한 의견을 모아보고 싶습니다.”

지난달 5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이소라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은 우촌초 공익제보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102분 동안 이소라 의원은 제보자들의 말을 메모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제보자들의 질문에도 하나하나 답변했다.

이소라 의원은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을 만난 유일한 정치인이다. 정치권에서 우촌초 제보자들의 복직과 학교 정상화 해결 의지를 밝힌 유일한 사람. 적어도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보도가 시작된 지난해 1월부터 현재까지는 그렇다.

지난 6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이소라 의원을 만났다. ⓒ셜록

그는 왜 우촌초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이소라 의원은 셜록이 보도한 공익제보자 이양기 전 교감(59) 사연을 접했다.

일광학원 전 이사장인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의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 의혹을 2019년 폭로한 뒤 해고된 이양기 교감. 그는 오랜 법정투쟁 끝에 과학전담교사로 어렵게 복직했지만, 학교 측은 교무실 책상 한 자리 주지 않으며 그를 따돌리고 괴롭혔다.(관련기사 : <2년 반 만에 복직한 학교… 그 교사의 책상은 없었다>)

“이양기 전 교감이 복직했지만 교무실에 책상이 없어서 운동장을 배회했다는 내용을 보고 울컥했습니다. 공익제보자들의 신분 회복을 위해 서울시교육청이 애쓴 건 알지만, 그동안 관심이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소라 의원은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이다. 2019년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이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를 서울시교육청에 신고한 이후 겪은 불이익을 알게 되고 분노를 느꼈다.

우촌초 사례를 보면서 21세기에 아직까지 이런 일이 일어나고, 그 누구도 쉽게 건들지 못했던 상황에 대해 분노를 느꼈어요. 정치권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일광학원이 운영하는 우촌초. 대한민국에서 학비가 가장 비싼 사립초등학교다. ⓒ셜록

시작은 지난해 11월 행정사무감사였다. 이 의원은 우촌초 공익제보자 최은석 전 교장(56)을 증인으로 불렀다. 공익제보 이후 5년 동안 공익제보자들이 어떤 불이익을 겪고 있는지, 복직하지 못한 제보자들은 어떤 삶을 사는지 교육청 관계자들 앞에서 직접 말할 기회를 마련했다.

이소라 의원은 우촌초 사학비리의 중심인 일광학원 전 이사장,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도 증인으로 불렀다. 하지만 이 회장은 나오지 않았고, 이 의원은 지체 없이 과태료 처분을 요구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들에게 우촌초 문제를 빠짐없이 언급하며 질의한 것도 이 의원이었다. ▲3년간 하지 못한 감사 문제 ▲공익신고자 복직 문제 ▲보복성 소송 철회 문제 ▲이규태 전 이사장의 우촌초 출입 의혹 문제 ▲한혜빈 임시이사장의 이규태 전 이사장 측근 의혹 문제 등을 지적했다.

감사 이후에는 우촌초 문제 해결과 관련된 서울시교육청 각 부처 관계자들을 모두 한자리에 불러 협의회도 열었다.

“우촌초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의 개선 의지가 조금은 보여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이소라 의원은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이 받은 불이익을 접하고 분노해 우촌초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셜록

이소라 의원이 변화를 만든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 지난달 20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장 시정질문에서 이소라 의원은 우촌초 정상화의 문을 열었다.

당시 셜록은, 학교 정상화를 위해 서울시교육청이 선임한 일광학원 한혜빈 임시이사장이 이규태 회장의 측근이라는 사실을 보도했다. 한혜빈 이사장은 일광그룹 산하 일광복지재단의 이사였다. 그리고 남편은 일광학원 구 재단 유석성 이사였고, 그는 이규태 회장에게 벌금으로 쓸 돈 수천 만 원을 빌려줄 만큼 가까운 사이다.

이소라 : “교육감은 교육청에서 계속 (일광학원) 신경 쓰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건 석고대죄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사 실패잖아요.”
정근식 : “실패. 검증 실패죠.

지난해 행정사무감사에서 우촌초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에 대해 “모른다”는 말만 다섯 번 반복했던 정근식 서울시교육감. 정 교육감은 한혜빈 이사장 선임에 대해 “검증 실패”라며 교육청의 책임을 인정했다.

지난해 8월 법원에서 만난 ‘피고인’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 200억 원대 ‘고액체납자’인 이 회장은 깍듯한 의전을 받으며 최고급 벤츠 마이바흐 차량에 올랐다. ⓒ셜록

“서울시교육청이 추천한 인사(한혜빈 임시이사장)의 일광복지재단 경력을 교육청 내부에서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시정질문이 있던 날, 한혜빈 임시이사장은 이사직 사임계를 제출했다. 같은 날, 공익제보자 박선유 씨 복직도 결정됐다.(관련기사 : <[해결] 셜록 보도 11일 만에 ‘이규태 측근’ 이사장 사퇴>)

한혜빈 이사장의 사임으로, 임시이사회에 한 자리 공석이 생겼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3일 임시이사 선임안을 사학분쟁위원회에 제출했다. 오는 24일 심의∙의결할 예정이다.

이소라 의원은 후임 이사로 “학교법인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선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임시이사회를 구성한 겁니다. 임시이사회가 적극적으로 우촌초 문제 개선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학교 정상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움직임을 보여야, 또 다른 비리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거니까요.

최은석 전 교장은 아직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20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우촌초 정상화에 대한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의 답변에 귀 기울이고 있는 모습. ⓒ셜록

아직 과제는 남아 있다.  바로 우촌초 공익제보자들의 ‘완전한’ 복직이다. 일광학원 임시이사회는 최은석 전 교장(56), 교직원 유현주(47)의 복직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미 국민권익위원회와 서울시교육청이 두 분을 공익제보자로 판단하고 보호하고 있었는데, (일광학원 임시이사회가 이들의) 신분 회복을 거부한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공익제보 이후, 구 재단 이사회는 최은석 전 교장의 임기를 줄여 ‘임기만료’라며 학교에서 내쫓았다. 대신 단축한 임기만큼 급여를 주고는 정상적인 퇴직 절차라고 주장했다. 최은석 전 교장은 원로교사 채용을 심사해달라고 신청했지만, 일광학원은 거절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이를 ‘부당한 거부 처분’이라고 결정했다.

일광학원 임시이사회 역시 구 재단의 결정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최은석 전 교장은 복직 대상자가 아니라고 봤다. 또, 신규 임용도 거부했다.

임시이사회의 최은석 신규임용 거부 결정은 공익제보를 위축시키는 행위입니다. 누가 또 공익제보를 할 수 있을까요. 공익제보자 신분 회복은 당연히 이뤄져야 합니다.”

일광학원 임시이사장이 사임계를 제출한 날, 공익제보자 박선유의 복직도 결정됐다. 이제 유현주와 최은석이 학교로 돌아갈 차례다. ⓒ셜록

행정실 직원 유현주 씨 복직도 나중으로 미뤘다. 그는 공익제보 이후, 이규태 회장과 일광학원으로부터 열 건이 넘는 보복성 고소∙고발과 소송을 견뎌왔다. 대부분 ‘혐의 없음’ 또는 유현주 씨의 승소로 끝났다. 아직도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도 있다.

반면 ‘스마트스쿨 사업’ 비리로 이규태 회장과 함께 재판을 받는 ‘피고인’ 신분인 직원들은 학교에 버젓이 출근하고 있다. 2021년 시작된 1심 재판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일광학원 임시이사회의 법인 업무를 맡은 직원도 그중 한 명이다.

이소라 의원은 서울시교육청에 공익제보자 ‘우선 복직’이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소라 의원이 사학비리 문제를 파고들수록, 여기저기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사학비리에 관한 추가 제보 메일이었다. 우촌초 공익제보자들과 비슷한 사연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가 메일함에 도착했다.

“학교에 어떤 비리가 있어도, 구성원들은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럴수록 정치권이 나서야 하지 않겠어요?

취재 조아영 기자 jjay@sherlockpress.com
사진 최규화 기자 khchoi@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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