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생’ 김성수는 밤낮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철판을 자르고 용접했다. 내가 근무를 마치고 동료 교사와 맥주 한잔 할 때도, 가족들과 캠핑을 갈 때도 성수는 학교에 남아 철을 만지고 조립했다. 공고 국어교사인 내게 성수는 그렇게 기억돼 있다.

열일곱 살 나이에 지겹고 지칠 법도 한데, 성수는 3년간 묵묵히 공고 작업실을 지켰다. 그 김성수의 이름이 다시 호명된 건, 성수가 졸업한 지 2년 가까이 흐른 2022년 11월 국어수업 때였다. 수업 시작 직후 진우(가명)가 물었다.

“샘요. 김성수 선배가 누굽니꺼? 오늘 현수막 걸렸던데요.”

나도 출근길에 성수 이름이 새겨진 교문의 현수막을 봤다. ‘제68회 졸업생 김성수, 국제기능올림픽 철골구조물 직종 금메달 획득!’

“김성수! 잘 기억해라잉. 성수는 너희들의 꿈인 기라. 국제기능올림픽 1등! 바로 세계 1등이 느그 선배인 기라! 그 선배가 메달을 따고 모교에 온다카이 이 얼마나 멋진 일이고?”

나는 목소리 톤을 한껏 올려 성수를 치켜세웠다. 공고생이란 이유로 무시당하고 ‘따라지’ 인생 취급 받던 학생의 역전 드라마, 그 모든 서사가 이 학교에서 벌어졌다는 걸 아이들에게 길고 장황하게 이야기했다.

우리 공고를 2021년에 졸업한 성수는 이듬해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2022년 국제기능올림픽 철골구조물 직종에서 금메달을 땄다. 대구 직업계 고등학교 중에서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건 우리 공고가 최초다.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2022년 국제기능올림픽 특별대회 철골구조물 직종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영남공고 졸업생 김성수 ⓒ대구시교육청 제공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중학생 3학년이던 성수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성수는 우리 학교와 다른 공고 진학을 두고 고민 중이었다. 동료 선생님은 손짓, 발짓은 물론 간절한 눈빛까지 보내며 성수가 우리 학교를 선택하도록 설득했다.

벌써부터 성수의 손기술과 집념을 알아봤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신입생 확보는 모든 직업계 고교의 생존이 걸린 중요한 문제다. 동료 선생님은 중학생 성수를 앉혀놓고 국제기능올림픽을 설명하며 “네가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성수야, 샘 말 잘 들어라잉. 지금 공부 모해도 개안타! 우리 학교 와가 기계만 잘 만져도 성공할 수 있데이. 기능 선수해가 전국대회 메달도 따고, 세계대회 나가서 메달 따면 연금도 나오는 기라. 그라믄 니 인생 완전 핀다 아이가!”

중학교에서 입시 홍보를 해본 공고 교사라면 누구나 해봤을 법한 이상적이고도 아름다운 희망 제시. 일반고로 치면 “우리 학교에서 국영수만 잘 하면 서울대 갈 수 있다”고 홍보한 셈이다.

서울대 입학이 쉽지 않듯이,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국내 대회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된 후, 다시 세계 여러 나라의 대표들과 겨뤄 1등을 해야 한다.

성수는 공고 입학 후부터 ‘기능반’에 들어가 기술 연마를 시작했다. 기능반은 말 그대로 국제기능올림픽 출전을 최종 목표로 하는데, 학업과 훈련을 병행해야 해서 여간 고된 게 아니다.

서울대를 목표로 하는 일반고의 여러 학생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학교-학원-독서실을 돌 듯이, 기능반 아이들은 하루를 작업실에서 시작해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다시 작업실에서 늦게까지 훈련과 연습을 이어가야만 한다.

학업 성적이 상대적으로 낮거나 대체로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걸 싫어해 공고에 온 아이들에게 이 과정은 더없이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호기롭게 기능반에 들어왔다가 몇 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하지만 성수는 우직했다. 큰 불평 없이 작업실에서 그날의 과제를 분석하고 철을 잘라 붙이는 연습을 이어갔다. 성수는 재학생 시절 이미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땄고,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영남공고 졸업생 김성수. 성수는 태극마크 새겨진 정장에 금메달을 목에 걸고 모교를 방문했다. ⓒ영남공고 제공

올림픽이나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 선수 곁에는 늘 코치나 감독이 있는 것처럼 성수 옆에도 지도교사가 있었다. 이 선생님 역시 성수와 똑같이 출근해, 주말이나 방학을 가리지 않고 기능반 작업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저절로, 혹은 우연으로 챔피언이 탄생하는 경우는 없다. 성수와 지도교사는 함께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성수는 고교 2학년이던 2019년에 지방기능경기대회 은메달, 전국기능경기대회 금메달을 땄다. 국가대표 자격도 그해 획득했다. 고교생 신분으로 올림픽에 나갈 수 있었지만,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다. 팬데믹이 끝나고 처음 열린 대회에서 성수는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최고 기술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묵묵히 쇠를 깎던 성수는 끝내 세계챔피언이 돼 학교로 돌아왔다. 가슴에 태극기가 새겨진 양복에 금메달까지 목에 걸었으니, 그야말로 금의환향이다.

학교 환영행사장에는 교장선생님은 물론이고 많은 학생이 몰렸다. 교육감은 축전을 보냈다. 단상에 오른 성수는 담담한 소감을 밝혔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5년간 목표를 향해 달렸는데, 결국 제가 이 자리에 서게 됐네요.”

한 아이가 번쩍 손을 들고 가장 궁금한 걸 물었다.

“질문 있십니더! 혹시 상금은 얼마나 받십니꺼?“

하계-동계올림픽과 마찬가지로 국제기능올림픽 수상자에게도 여러 혜택이 있다. 메달리스트에게는 상금(금메달은 6720만 원)과 훈포장이 수여되고, 남성의 경우 산업기능요원 복무라는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국가기술자격 산업기사 자격시험이 면제되고, 계속 종사장려금(매년 505만~1200만 원)이 은퇴 시까지 지급된다.

국제기능올림픽 선수단이 서울 여의도 광장, 마포, 서소문, 시청, 세종문화회관까지 카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1981년의 모습이다. ⓒ국가기록사진

1980년대를 기억하는 분들은 분명히 떠올릴 수 있을 거다. 국제기능올림픽 수상자를 태운 ‘오픈카’가 서울 여의도광장(현 여의도공원)을 출발해 마포-서소문-서울시청-광화문까지 행진하던 카퍼레이드 풍경을 말이다.

많은 시민이 대로변으로 쏟아져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수상자를 맞았고, 고층 빌딩에선 반짝반짝 빛나는 꽃가루도 떨어졌다. 권위주의 시대의 동원과 연출이었어도, 개발도상국 시절의 한국은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입상한 기술자들을 뜨겁게 맞이했다.

한국은 하계-동계-장애인올림픽을 막론하고 올림픽 종합우승을 차지한 적이 없다. 하지만 국제기능올림픽에선 이야기가 다르다. 한국은 1967년 스페인 마드리드 대회 첫 참가 이후, 10년 만인 1977년 대회에서 첫 종합우승에 올랐다. 이후 2015년까지 1위는 거의 대부분 우리나라가 차지했다. 요즘엔 주로 중국이 우승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3위권을 벗어나지 않는다.

세상은 달라졌다. 국제기능올림픽 수상은 이제 뉴스에서도 단신 정도로 다뤄진다. 꽃가루 뿌려지던 거리의 카퍼레이드와 사람들의 환호는 이제 추억을 넘어 ‘그때를 아십니까’ 정도의 역사 속 풍경이 됐다.

이제 이 땅의 많은 사람은 기술자를, 몸 써서 일하는 사람을 그리 존중하지 않는다. 세상의 변화는 자연스런 일이다. 서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 역시 달라진다. 이젠 멸시의 언어가 돼버린 ‘직업계고’, ‘공고’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게 보이는 게 한둘이 아니다.

중학교 3학년 성수를 앉혀놓고 열변을 토했던 동료 선생님의 말씀을 자주 떠올린다.

“지금 공부 모해도 개안타! 우리 학교 와가 기계만 잘 만져도 성공할 수 있데이!”

공부를 못해도 기계를 잘 다루면, 무엇이든 하나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하지만 이젠 우리 사회의 어른 누구도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마을에서도, 미디어에서도 듣기 어려운 말이 돼버렸다.

국제기능올림픽 선수단이 서울 여의도광장, 마포, 서소문, 시청, 세종문화회관까지 카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1981년의 모습이다. ⓒ국가기록사진

우리가 과거의 추억으로 보내버린 건 카퍼레이드만은 아닐 터다. 우리가 진정으로 잃어버린 건 기계만 잘 만져도 성공할 수 있는 세상, 공부는 조금 못해도 열심히 몸을 움직이면 먹고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싶다. 

교사로서 사회생활을 하며 이런저런 모임에 가면 “올해 우리 학교는 서울대 몇 명 보냈다”, “의대에 몇 명 진학했다”를 말을 종종 듣는다. 공고에서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솔직히 위축될 때가 많다.

하지만 성수가 금메달을 딴 뒤로는 스스로 용기를 내곤 한다. 최근 나는 한 모임에서 이런 멘트를 날렸다.

“그 학교 아가(아이가) 의대에 갔습니꺼? 정말 대단하네예! 근데 그 학교에서 올림픽 금메달 딴 아 있습니꺼? 동네 1등, 아니 전국 1등 그런 거 말고 세계챔피언 말입니더! 우리 학교에서 제대로 공부하고 기술 배워가, 세계챔피언 됐다 아입니꺼!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세계 1등이 최고 맞지예? 글로벌시대인데 국제적으로 좀 놀아야지예! 안 그렇습니꺼?”

이 순간, 내 마음속에서 김성수는 꽃가루 날리는 거리에서 카퍼레이드를 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내가 꽃가마를 탄 기분이 들었다.

영남공고 지한구

지한구 교사 longlong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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