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원.’ 이 돈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버스기사가 있다. 법원도 버스기사의 해임을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운전기사들이 받은 수익금을 전액 회사에 납부하리라는 신뢰는 버스회사와 운전기사 간 신뢰의 기본이다.”

800원 횡령으로 노사 간 신뢰까지 언급한 법원. 같은 논리를 법원에 적용해보면 어떻게 될까? 판사들이 세금으로 해외연수를 갔다 오고는 결과보고서조차 제출하지 않았다면? 한 사람당 수천만 원을 받고 사실상 ‘공짜 유학’을 다녀온 거라면?

세금을 낭비하지 않을 거라는 국민과 공직자 간 ‘신뢰’를 깨트린 판사들은 어떻게 됐을까?

800원 횡령으로 노사 간 신뢰까지 언급한 법원. 같은 논리를 법원에 적용해보면 어떻게 될까? ⓒ셜록

지난 1월부터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최근 5년간 국비로 해외연수를 다녀와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판사들을 추적했다.

셜록의 ‘취재망’에 포착된 판사는 총 6명. 강○○, 김○○, 연○○, 이○○, 권○○, 이★★. 이들 6명의 판사들은 국비로 해외연수를 다녀와 기한 내(3개월)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결과보고서 제출 의무는 해외연수의 성과를 검증하기 위한 것. 그런 보고서조차 제출하지 않았으니, 이들 판사들이 해외연수에서 뭘 배웠는지 검증할 길도 없다. 미국까지 가서 세금 수천만 원을 쓰고는 기본적인 ‘숙제’도 내지 않았으니, 국민 입장에서는 세금을 ‘먹튀’당한 것과 다름없다.

6명의 ‘먹튀판사’들은 국비로 해외연수를 다녀와 기한 내에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주용성

강○○ 판사(사법연수원 36기)는 부산고등법원 소속 시절인 2020년 2월 24일부터 같은 해 12월 23일까지 미국 휴스턴대학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강 판사는 해외연수 경비로 약 1335만 원을 썼다.

현재는 판사 옷을 벗고, 경북 포항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변호사 사무실 홈페이지 내 강 전 판사의 프로필에는 해외연수 이력이 버젓이 적혀 있다. 홈페이지만 봐서는, 강 전 판사가 결과보고서도 제출하지 않고 세금으로 ‘공짜유학’를 다녀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김○○ 판사(사법연수원 35기)는 서울서부지방법원 소속 시절인 2020년 2월 24일부터 같은 해 12월 23일까지 미국 페퍼다인대학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김 판사는 해외연수 경비(학비 포함)로 총 2540만 원 정도를 썼다. 김 판사는 현재 제주지방법원에서 근무 중이다.

연○○ 판사(사법연수원 37기)는 수원지방법원 소속 시절인 2020년 2월 24일부터 같은 해 12월 23일까지 미국 UC버클리대학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연 판사는 해외연수 경비(학비 포함)로 총 2540만 원 정도를 썼다. 연 판사는 현재 광주지방법원에 있다.

이○○ 판사(사법연수원 34기)는 서울동부지방법원 소속 시절인 2020년 2월 24일부터 같은 해 12월 23일까지 미국 조지메이슨대학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이 판사는 해외연수 경비로 1334만 원 정도를 썼다. 이 판사는 현재 의정부지방법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권○○ 판사(사법연수원 39기)는 서울북부지방법원 소속 시절인 2021년 8월 16일부터 2022년 8월 15일까지 미국 칼럼비아대학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권 판사는 해외연수 경비(학비 포함)로 5262만 원 정도를 썼다. 권 판사는 현재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 판사는 인천지방법원 소속 시절인 2021년 9월 6일부터 2022년 6월 26일까지 미국 인디애나(블루밍턴)대학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이 판사는 해외연수 경비(학비 포함)로 1443만 원 정도를 썼다.

이들 판사 6명이 각자 약 9개월 이상 미국에 머물면서 쓴 해외연수 경비 총액은 1억 4457만 원.

‘먹튀판사의 공짜유학’ 인포그래픽 ⓒ셜록

해외연수 결과물 제출은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임과 동시에, 법원 내규에 명시된 의무이기도 하다.법관 및 법원공무원의 해외연수 등에 관한 내규’ 제15조(연수종료보고 등) 2항에는 “국비 해외연수자는 연수종료일부터 3개월 이내에 연수결과보고서 등을 법원행정처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고 쓰여 있다.

그런데도 징계는 없었다. 대법원 윤리감사1심의관실은 지난 2월 12일 셜록에게, “최근 5년간 해외연수 결과보고서 미제출을 사유로 한 법관 징계 내역은 없다”고 밝혔다.

수천만 원의 국비로 해외연수를 다녀와 결과보고서도 제출하지 않았지만, 징계를 받은 판사는 단 한 명도 없는 것.

환수 조치는 이뤄졌을까? 해외연수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판사 6명 중 2명(권○○, 이★★)만 연수비용 일부를 환수당했다. 이 둘이 쓴 해외연수 비용은 약 6700만 원. 이중 총 1657만 원(권○○ 1276만 원, 이★★ 381만 원)이 환수됐다.

그렇다면, 나머지 판사 4명은? 이들 판사 4명은 해외연수 비용을 한 푼도 환수당하지도 않았다. 이들 판사 4명이 약 10개월 동안 미국에 체류하면서 세금으로 쓴 해외연수 경비는 총 7751만 원이다.

‘먹튀판사’ 4명은 해외연수 비용을 한 푼도 환수당하지도 않았다. ⓒ셜록

문제는 또 있다. 법원이 이들 판사 4명을 아예 환수대상자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슨 논리일까? 뒤늦게 만들어진 환수 규정을 소급적용 하지 않기 때문. 법원은 2020년 10월 ‘법관 및 법원공무원의 해외연수 등에 관한 내규’를 개정했는데, 이때 해외연수 경비 환수 조항이 추가됐다.

그런데 개정된 내규가 시행되는 날(2021년 1월 1일) 이후에 출국하는 대상자부터 환수 규정을 적용한다는 부칙을 달아놨다. 2021년 이전에 해외연수를 다녀온 판사들이 결과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도, 환수 조치를 할 수 없게 해둔 거다.

대법원은 “4명의 판사는 환수 규정이 시행되기 전인 2020년 2월에 출국한 법관들이다, 해당 법관들로부터 연수경비를 환수할 근거 규정이 없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검찰도 변화하는데, 법원만 예외 부칙을 이용해 비용 환수 규정을 피해가고 있다. ⓒ셜록

검찰과도 비교되는 대목이다. 검찰도 ‘검사 국외훈련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국외훈련을 다녀온 검사는 연구논문을 제출해야 한다. 셜록의 취재 결과, 2019년부터 2023년 사이 발행된 ‘국외훈련 검사 연구논문’에서 표절 논문 6건이 확인됐다.

약 1년 6개월 간의 추적 보도와 신고 끝에, 셜록이 발견한 5명의 전·현직 ‘표절 검사’ 전원은 국외훈련비 약 2800만 원을 환수당했다. ‘논문 표절’을 이유로 검사 국외훈련비를 환수한 최초의 사례였다.

그 뒤에도 셜록은 ‘표절 검사’ 한 명을 추가로 찾아냈다. 권익위 신고 이후 약 5개월 만인 2025년 3월, 훈련비 일부 환수가 이뤄졌다. 셜록이 만들어낸 두 번째다. (관련기사 : <[해결] 셜록이 또 해냈다… 검사 ‘공짜유학’ 훈련비 환수>)

셜록 보도 이후, 법무부는 제도 개선 측면도 노력하고 있다. 법무부는 ‘검사 국외훈련 운영규정’을 개정해 국외훈련비 환수 규정을 명확하게 명시했다. 또 국외훈련 논문심사에 필요한 ‘기관전용 표절검사서비스’를 1400만 원 주고 구입하기도 했다.

검찰도 이렇게 변화하는데, 법원만 예외 부칙을 이용해 비용 환수 규정의 소급적용을 피해가고 있다.

셜록은 지난달 11일 의정부지법을 찾아 이○○ 판사의 반론을 들으려 시도했다. ⓒ셜록

셜록의 취재가 시작되자, 일부 ‘공짜유학’ 판사들은 뒤늦게 결과보고서를 제출했다.

김○○ 판사는 3월 6일에, 연○○ 판사는 3월 8일에 결과보고서를 각각 대법원에 제출했다. 이들이 해외연수를 다녀온 지 약 4년 3개월 만이다.

대법원은 결과보고서 미제출 사유도 몰랐다. 대법원은 셜록에게 “법원행정처는 보고서 미제출 시 제출을 독려하거나 (2021년 이후) 규정에 따른 경비 환수 조치를 취하는 것 외에, 미제출 사유를 따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연수비용 자진 반납 의사에 대해서도 질의했으나 “자진반납 의사는 확인된 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징계 계획에 대해서도 “법관의 징계는 대법원 윤리감사관의 소관 업무로 법원행정처가 이에 관한 답변을 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셜록은 지난달 6일부터 이들 판사들의 반론을 듣기 위해 취재를 시도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와 소속 법원 공보실, 변호사사무실 등에 질의서를 보냈다. 광주지법, 의정부지법, 제주지법 공보담당 판사는 “연수결과보고서 제출과 관련된 업무는 각급 법원이 아닌 법원행정처에서 담당하고 있으므로, 해당 부서에 관련 질의를 해달라”고 동일하게 답변했다.

직접 법원도 방문했다. 지난달 11일 의정부지법을 찾아 이○○ 판사의 반론을 들으려 시도했다. 기자는 법원 앞에서 약 세 시간 가까이 기다렸지만, 이 판사를 만나지 못했다. 지난달 13일 이○○ 판사 재판부 소속 직원과 연락이 닿았지만, 현재까지 반론을 듣지 못하고 있다.

유일하게 한 판사와 연락이 닿았다. 지난 13일 김○○ 제주지법 판사와 어렵게 전화 연결을 할 수 있었다. 김 판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본인의 입장을 밝혔다.

“개인적으로 답변하기엔 적절한 내용이 아닌 걸로 판단해 법원(법원행정처 의미) 차원에서 (셜록 질의에) 대응하는 것으로 정리됐습니다. 결과보고서는 제출했고, (뒤늦게 제출한) 상세한 사유는 나중에 법원을 통해 말하겠습니다.

‘연양갱 도둑’ 재판을 보면 법원의 ‘내로남불’이 더 와닿는다 ⓒ셜록

아래는 이○○ 판사가 속한 의정부지법 재판부에서 나온 한 판결문의 일부다. 이 판사는 미국으로 연수를 가서 세금 약 1334만 원을 쓰고 결과보고서는 제출하지 않은 사람이다.

“징계처분대상자 A는 ’18년 5월 초순 부식보관 창고에서 연양갱 280개가 분실된 사실, ’18. 5. 25.(금) 불상자가 병영식당에 침입하여 삼겹살, 햄 등을 절취하다가 도주한 사실 등을 보고받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용의자로 의심되는데도 지휘계통 보고하거나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고 임의로 귀가 조치시켰다.”(의정부지방법원 2023구합17675 판결문 중)

군부대에서 ‘연양갱 도둑’으로 의심되는 용의자를 신고하지 않았다고 징계를 받은 군인. 그는 징계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기각했다. 판결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군 기강 확립, 군인과 군 조직에 대한 국민적 신뢰 제고, 유사 사례 재발 방지 등의 공익이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하여 원고 A가 입게 될 불이익에 비하여 적다고 할 수 없다.”

재판부는 ‘연양갱 도둑’을 잡지 못했다고 “군 조직에 대한 국민적 신뢰”까지 운운하며 징계가 정당하다 판단했다. 이 판결을 내린 재판부 판사 세 명 중 한 명이 이○○ 판사다. 이런 엄격함을 본인과 ‘공짜유학’ 판사들에게 적용한다면?

정작 법원은 내규를 어기고 해외연수 결과보고서를 나 몰라라 한 판사들에겐 아무 징계도 하지 않았고, 환수 조치에도 예외를 뒀다. 법원이 깨트린 ‘국민적 신뢰’는 누가 책임져야 하나.

김보경 기자 573dofvm@sherlock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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