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등장한 그에겐 커피보단 약이 급해 보였다. 180cm의 키에 몸은 호리했으나 흐릿한 눈빛엔 초점이 없었다. 얼굴에서도 혈색을 찾기 어려웠다.
“병원에 가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상당히 안 좋아 보이는데요….”
취재보다 그의 치료가 먼저라는 생각에, 기자 명함을 건네기도 전에 제안했다. 장우진(가명, 50세) 씨는 고개를 저었다.
“다들 안 좋아 보인다고 하는데, 이런 지 꽤 됐으니까…. 실제로도 안 좋긴 한데, 견뎌야죠.”
장 씨는 코인 다단계에 빠져 사업체와 현금 약 15억 원을 잃었다. 그는 “어떻게든 정신줄은 부여잡으려 노력한다”고 했지만, 재산보다 그의 멘털이 심하게 털린 듯했다.
“마음이 무사할 리가 있겠습니까? 차비도 없어서 여기까지 1시간을 걸어왔는데…. 커피 한 잔 사줄 수 있습니까?”

경남 창원 토박이인 장 씨는 평생을 중산층으로 안정적으로 살았다. 나고 자란 창원에서 대학까지 공부하고 결혼해 자식을 낳아 키웠다. 아버지에게 기계 부품 제조업 공장까지 물려받았으니, 선대로부터 이어진 지역기반도 탄탄했다.
삼형제 중 둘째인 그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은 건 성실한 기질 때문이었다. 장 씨는 고교 졸업 후 주말과 대학교 방학 때면 아버지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다른 노동자와 똑같이 시급을 받아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다. 목장갑에 작업복을 마다 않는 장 씨가 가업을 잇는 건 아버지에겐 당연한 선택이었다.
고향 창원을 평생 떠나지 않은 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장 씨는 도전이나 모험보다는 안정을 지향하며 살았다. 다만 그는 새로운 기술과 문화에는 호기심이 많았다.
장 씨는 2017년 가상자산 코인을 처음 접했다. 흥분해 대박을 좇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는 천천히 블록체인 등을 공부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투자처는 늘 생긴다는 걸 그는 빨리 이해했다.
조심스런 성격답게 그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을 조금씩 사들였다. 크게 오르거나 떨어진다고 흥분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은행에 적금 하듯이 여윳돈으로 투자했다.
“제가 투자한 돈은 총 6000만 원이었는데, 이게 2022년엔 2억 원으로 불어났죠. 좋고 나쁜 느낌은 별로 없었어요. 제가 노년에 쓸 돈으로 여기고 있었으니까요. 그 즈음부터 동네가 좀 이상해지기 시작했죠. 평생 농사짓던 노인이 삽 내려놓고 스마트폰으로 코인거래소를 들여다볼 정도였으니까, 말 다한 거죠.”
강남 테헤란로에서 시작된 코인 다단계 사기의 물결은 2022년께부터 점차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테헤란로의 다단계 꾼들은 지역에서 설명회를 열었다. 구미, 울산 등에서 터를 잡고 시작한 다단계 업체도 있을 정도다.

다단계 업자들은 노인들의 지갑을 집중 공략했다. 지방 중소도시의 60~70대는 물론이고, 평생 농사짓던 시골 노인들까지 코인을 말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등 누구나 익히 하는 가장자산이 아닌 듣도 보도 못한 코인, 다단계 꾼들이 설계한 신상품이었다.
“노인들이 안타깝고 한심해 보였는데, 제가 거기에 걸려들 줄은 몰랐죠.”
지역 중소도시의 힘은, 특히 장 씨처럼 평생을 한 지역에서 산 사람의 밑천 중 하나는 끈끈하고 오래된 인맥이다. 장 씨는 친한 친구의 소개로 ‘KOK플레이’라는 업체가 발행하는 ‘KOK코인’을 알게 됐다. 친구는 자기 가상자산 지갑을 보여주며 적금처럼 코인을 투자하는 장 씨를 비웃었다.
“‘KOK플레이’ 플랫폼에 코인을 예치하면 많게는 한 달에 20% 이자를 주는데, 넌 왜 바보처럼 코인을 갖고만 있냐? 우리 장 사장, 사업만 하더니 영 코인 세계를 모르네….”
초등학교 때부터 평생을 알고 지낸 친구였다. 가족여행도 함께할 정도로 결혼 이후에도 관계가 좋았다. 그 친구가 허튼 말을 할 리 없었다. 장 씨는 KOK코인을 비롯해 약 4억 원대의 코인을 친구가 소개한 플랫폼에 넣었다.
역시 좋은 친구였다. 4억 원의 코인은 투자 1년도 안 된 2022년 초, 15억 원의 가치로 불어났다. 코인 4억 원이 15억 원이 됐다고 바로 현금화 하는 사람은 무척 드물다. 다수의 사람은 “더 오르겠지” 하는 생각에 버티기 마련이다.
장 씨도 다르지 않았다. “끝까지 먹겠다”는 욕심도 있었고, “코인은 어차피 내 노후자금”이라는 오래된 생각도 작동했다. 어쨌든 약 네 배 상승한 가상자산은 장 씨의 기분을 좋게 했다. 어느 순간 KOK코인은 1000분 1 토막으로 쪼그라들었다. 15억 원이 약 150만 원이 된 것이다.
극적인 폭락이어서 장 씨는 스마트폰이 고장 나 화면에 오류가 뜬 줄 알았다. 스마트폰을 흔들어보고, 손바닥으로 쳐보고, 껐다 켜보기도 했다. 역시 150만 원이었다.
장 씨는 스마트폰을 사장실 바닥으로 내던졌다. 폰은 그대로 박살이 났다. 화분 하나도 바닥으로 던졌다. 놀란 직원들이 사장실로 들어왔다. 1000분의 1 토막의 폭락보다 더 극적인 변화는 따로 있었다.
“뭐랄까요…. 그 순간부터 너무나 익숙한 내 자신이 전혀 다른 존재가 된 거 같았어요. 내 자신이 나한테 너무 낯선 거예요. 저 정말 열심히 살았거든요.”

수사기관에 따르면 ‘KOK플레이’에 투자했다가 피해를 입은 사람은 전국에서 약 90만 명에 이르고, 피해액은 4조 원대로 추산된다. 장 씨는 “바보처럼 당한 90만 명에” 자신이 포함됐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문제의 코인을 소개한 친구와는 당연히 절교했다.
장 씨는 사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근무시간에 KTX를 타고 서울 테헤란로로 향했다. 이 코인 저 코인 다단계 설명회장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원금 회복 욕망이 가슴에서 끓어올랐다.
사장이 다단계 판을 기웃거리니 사업이 잘 될 리가 없었다. 직원들은 전화를 걸어 사장을 찾았지만, 장 씨는 그런 직원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니들도 코인 다단계로 돈 벌면 되지, 왜 바보처럼 사장을 귀찮게 하고 그래? 평생을 월급쟁이 노동자로 사는 게 그렇게 좋아?’
장 씨는 결국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공장을 정리했다. 현금 약 10억 원이 생겼는데, 이걸 코인 다단계에 다시 넣었다. 돈은 쭉쭉 녹아내렸다. 마지막 카운터펀치는 중국 연변에서 온 ‘제니 킴’에게 얻어맞았다.

2023년 초, 제니 킴은 비서 재키 리와 함께 창원에 왔다. 제니 킴은 중국에서 가져온 ‘PTD’라는 코인 다단계 플랫폼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했다. 노년층을 중심으로 사람들 약 40명이 모였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장우진 씨도 이 설명회에 참여했다.
현장에서 자신에게 ‘KOK플레이’를 소개한 친구를 만났다. 그 역시 모든 걸 잃었는지 무척이나 누추하고 피곤해 보였다. 평생 단짝이었던 둘은 말도 섞지 않고, ‘코인여왕’ 제니 킴의 설명을 들었다. 제니 킴은 코인을 맡기면 하루 1% 이자를, 그것도 복리로 준다고 했다.
그때부터 제니 킴은 코인의 여왕보다 높은 여신으로 보였다. 창원을 시작으로 강남 테헤란로, 부산 등 제니 킴이 개최하는 여러 설명회를 쫓아다녔다.
“드디어 원금을 찾을 기회라 생각했죠. 한 70일 정도 투자하면 투자금의 두 배가 되니까요. 근데, 제가 그동안 늘 욕심을 내서 ‘끝까지 먹겠다’는 생각으로 버티다 망했으니까… 이번엔 70일까지 가지도 말고 한 달만 해먹고 빠지고 결심했죠.”
장 씨는 PTD에 약 2억 원을 투자했다. 제니 킴은 장 씨가 1%의 복리 이자를 1개월간 먹게 내버려 둘 인물이 아니었다. PTD는 2023년 5월, 장 씨가 투자한 지 열흘 만에 문을 닫았다.
제니는 “전산에 오류가 생겼을 뿐”이라며 “또 다른 코인 (다단계) 플랫폼 FTD에 투자해 원금을 회복하자”고 제안했다. 장 씨는 깊이 생각했다.
‘그래, 이번에도 내가 한 박자 늦었구나. 1개월까지 가지 말고 열흘만 투자해 이자 받고 빠져나오자. 복리로 하루 1%이자, 열흘만 굴려도 10%가 넘지 않나….’
장 씨는 다시 제니 킴이 소개한 FTD 플랫폼에 약 1억 원을 투자했다. 제니 킴은 장 씨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 새 플랫폼은 이번엔 열흘도 못 가고 일주일 만에 닫혔다. 장 씨는 또 돈을 잃었다.(관련기사 : <마카오에서 두바이까지… ‘코인여왕’ 제니 킴의 정체>)
“이번은 진짜겠지… 진짜겠지… 하면서 2년간 약 20억 원을 다단계에 넣었는데, 돈을 벌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지금은 카드도 다 막힌 신용불량자구요. 이혼당하고… 차비도 없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모든 걸 잃었다는 장 씨는 인터뷰 말미에 반전의 말을 했다.
“근데, 지금도 돈 생기면 다시 코인 다단계 하고 싶어요. 자꾸 생각나요. 중독이요? 중독 맞죠. TV에서 보던 도박중독이랑 비슷한 거 같아요.”
그는 무척 아파 보였다. 다른 무엇보다 그가 자살하지 않을까 걱정됐다. 무례일 수 있지만 나는 그에게 “꼭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시라”고 제안했다. 다단계 중독 치료보다 심신안정이 우선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를 창원에서 마지막으로 본 게 2024년 12월이었다. 코인 다단계 사기를 고발하는 프로젝트 ‘테헤란로의 좀비들’을 시작하면서 그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그는 가까운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지금은 멘털 많이 회복했습니다. 저 지금 강남에 와 있는데, 이쪽으로 한번 오실래요?”

그가 있다는 서울지하철 2호선 선릉역 5번 출구 인근의 한 빌딩으로 갔다. 넓은 강의실에 100여 명이 모여 강연을 듣고 있었다. 이번엔 코인이 아니었다. 의료상품을 판다는 또 다른 다단계 설명회였다. 강연장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장 씨가 말했다.
“제 문제가 뭔지 드디어 파악을 했습니다. 실체가 없는 코인이 아니라, 이런 유망한 물류에 투자를 해야 했는데…. 이러면서 배우는 거죠.”
장 씨 얼굴은 3개월 전과 다르게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다단계 설명회 현장으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밀려 들었다.
박상규 기자 comune@sherlock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