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 이명선 기자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거의 모든 직원의 휴대폰을 도청했다. 통화 내용은 물론이고, 문자 메시지, 주소록, 실시간 위치정보, 앱 로그 등 직원 스마트폰의 모든 걸 훔쳐봤다.
심지어 스마트폰 카메라를 원격 조정해 직원들의 사생활을 실시간으로 엿보기도 했다. 양 회장은 이를 통해 여성 직원의 일상을 염탐하고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양진호 회장이 광범위하게 도청을 하는 등 정보통신망법을 위반했다고 공익신고한 A씨는, 양 회장의 지시로 만들어진 도청프로그램을 캡처한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자료를 7일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했다. 이에 따라 수사기관의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A씨는 국민권익위원회에 도청 증거자료를 제출하기에 앞서 진실탐사그룹 <셜록><프레시안><뉴스타파>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했다.
확보된 증거에 따르면 양 회장은 2012년부터 직원들의 휴대전화를 도청했다. 회사가 불법으로 직원 휴대폰을 엿듣고, 엿보는 식으로 확인된 피해 규모는 약 10만 건에 이른다. 통화 3만4000여 건, 문자메시지 2만7000여 건, 주소록 약 3만2000여 건, 통화녹음 파일 3000여 건 등 양 회장은 권위주의 시절 정권의 정보기관처럼 직원들의 정보를 불법 수집했다.
주요 도청 피해자는 위디스크를 운영하는 (주)이지원인터넷서비스, 파일노리 운영사 선한아이디, 양 회장 소유의 필터링 업체 뮤레카에서 일하는 직원들이다. A씨가 공개한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피해 직원은 최소 70여명이다. 이들의 스마트폰이 모두 털렸다는 의미다.
이들 70여명이 수많은 타인과 통화하고, 문자메시지 주고 받았다는 걸 감안하면 실질적 피해자의 규모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다.
양진호 회장은 어떻게 직원들의 스마트폰을 도청했을까? 그의 준비는 집요하고 철저했다.
양진호 회장은 2011년 말께부터 사내 메신저 개발을 추진했다. 메신저 이름은 ‘하이톡’이다. 이때 양회장은 유능한 개발자 고OO을 채용해 그에게 도청프로그램 개발을 지시했다. 도청은 ‘하이톡’ 사내 메신저 프로그램에 보이지 않게 해킹 소스를 끼어 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양 회장은 직원들에게 ‘하이톡’을 설치하도록 지시했는데, 이때 도청 프로그램 ‘아이지기’ 애플리케이션이 몰래 설치되도록 조치했다. ‘하이톡’을 설치한 직원들은 자신의 스마트폰이 도청되는 걸 알지 못했다.
‘아이지기’는 양 회장 회사에서 2009년부터 개발이 시작됐다. 청소년 유해물 차단 서비스를 목적으로 개발되었지만, 나중에 자녀 안전을 확인하는 프로그램으로 달라졌다.
‘아이지기’ 애플리케이션의 주요 기능은 도청 프로그램과 다르지 않았다. 자녀의 전방 후방 카메라를 원격으로 촬영해서 주변을 살피고, 실시간 위치 추적을 하고, 주변 소리를 원격으로 녹음하도록 했다.
‘아이지기’가 법적 규제로 상용화가 무산되자, 양 회장은 이 기술을 악용해서 직원들을 불법 사찰하는데 활용했다.
관리자용 도청 프로그램 이름은 ‘아이지기(베타)’였다. 관리자용 프로그램은 모바일과 PC버전 2개 존재했다. 두 버전은 자료는 모두 공유됐다. 모바일 버전에는 통화내역, 문자, 주소록, 위치, 카메라, 녹음, 앱로그, 통화녹음, 등록 아이콘이 있었다. 각 아이콘을 누르면 미리 등록한 직원의 휴대폰을 사찰할 수 있는 구조다.
가령 ‘홍길동’ 직원이 지금 어디서 무얼하는지 알고 싶다면, 그의 이름을 입력한 뒤 ‘카메라’ 버튼을 누르면 그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문자’를 누르면 홍길동의 문자메시지를 모두 확인 가능할 수 있다. 주변 소리를 담는 ‘녹음’ 기능도 관리자가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도청 프로그램이 깔린 스마트폰은 걸어다니는 CCTV이자 녹음기였다.
PC에서는 도청 자료를 자세히 확인할 수 있었다. 문자를 수신 발신한 시각, 문자 내용, 통화 수신 발신한 시각과 시간, 상대편의 전화번호, 통화 녹음 파일, 앱로그(사용자가 어떤 앱을 사용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록)를 표로 상세히 확인 가능하다.
도감청 프로그램을 통해 직원을 사찰해왔던 사람은 양 회장이었다고 A씨가 증언했다.
A씨는 2013년 10월께 양 회장으로부터 “직원들에게 특이사항이 있으면 보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회장 지시 직후 한 임원에게 관리자용 도청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할 수 있는 URL를 문자로 전달 받았고, 이를 설치하면서 도청 등 불법행위가 벌어지는 걸 처음 알았다”고 고백했다.
그렇다면 양진호 회장은 왜 스마트폰 도청이라는 강수를 두면서까지 임직원들을 감시했을까? A씨의 증언은 이렇다.
“양 회장은 2011년 불법 영상물을 유통시킨 혐의로 구속됐는데, 그때 직원들이 자신의 정보를 외부에 흘렸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부 직원 감시에 대한 양 회장의 강박은 구속 이후부터 생겼다.”
A씨는 양 회장이 직원 감시와 통제를 위해 회의 때 메모도 못하게 했다고 밝혔다.
“양 회장은 회의 시간에 개인 수첩을 못 쓰게 하고, 메모도 못하게 했다. 회의를 머리로 외워야 했다. 외부조직과 통화할 때 대포폰을 무조건 쓴 것도 증거를 남기기 싫어하는 양 회장 성향 때문이었다.”
양 회장의 교사로 2012년 집단폭행을 당한 B교수도 도청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B교수가 양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장을 보면 “양 회장이 모든 전화내역을 도청한 것으로 보이고, (양 회장이 직접) ‘모든 내용을 내 전화기로 볼 수 있다, 심지어 카카오톡은 지워도 복원된다’고 협박했다”고 나온다.
또 B교수는 “양진호의 부인 박모 씨로부터 ‘자신의 2주간의 모든 대화 내용을 양진호가 가지고 있고, 전화도 도청한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소장에 밝혔다.
B교수는 2017년, 도청 프로그램 개발자로 추정되는 전모 씨를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한 번도 전 씨를 소환하지 않고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양 회장에게 폭행을 당하는 동영상 속 피해자인 위디스크 전직 직원 강모씨도 도청 의혹을 제기했다.
강 씨가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밝힌 내용은 이렇다.
“양진호가 미리 앱설치 프로그램에 해킹툴을 심어두고 앱 설치 시 그 휴대폰의 모든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감찰 및 보관까지 할 수 있게 만들어서, 내가 회사 게시판에 글을 등록했을 때 사용한 IP로 먼저 대략적인 주소를 알아내고 과거에 위치추적된 기록을 맵핑시켜 글 작성자가 나일 것으로 추정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다른 사람들도 당시 도청 정황을 알려줬다. 양진호 소유 회사에 다니던 장모 씨는 2013년 10월 31일 어떤 회사 측에 아래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걸로 도청 증거자료에 나온다.
“회사 정리가 잘 되어서, 4일에는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씨는 정말로 당시 저런 문자를 보냈을까. 8일 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그런 문자를 이직할 회사 측에 보낸 적이 있습니다.”
장 씨는 전화통화에서 “당시 회사에서 메신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직원들이 해당 프로그램을 직접 써보고 문제점이 있으면 보고하라고 해서, 나도 꽤 자주 사용했다”고 밝혔다. 도청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는 그는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도청 피해를 당하지 않은 직원들도 있다. 이들은 모두 아이폰을 쓰는 사람들이다. 아이폰에는 도청프로그램이 깔리지 않았다. A씨는 “이 사실을 미리 안 일부 임원들은 아이폰으로 휴대전화를 바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