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들의 비밀 대책회의는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이 크게 타오를 때 열렸다. 사법부 상징인 대법원 청사에 모인 이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고영한 대법관(법원행정처장)과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을 비롯한 실장들. 사법부 핵심 요직인 법원행정처 소속 고위 법관이 모두 참석했다. A판사는 자신이 준비한 비밀 문건 두 개를 보고했다. 외부 유출이 금지된 두 문건의 제목은 이렇다.
‘인사모 관련 공동학술대회(1)’
‘인사모 공동학술대회 대책(2)’
고작(?) 공동학술대회 대책 문건이 대외비라니. 대법관도 참석한 행정처 고위 판사들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2017년 1월 그때, 회의는 여러 차례 열렸다. 이들이 논의한 대외비 문건의 핵심 내용은 착착 진행됐다.
몇 개월 뒤 드러난 진실은 전국의 많은 판사를 충격에 빠트렸다. 행정처 판사들이 비밀 회의를 통해 진행한 일은 놀라웠다. 법관의 독립과 자유를 규정한 헌법 제103조에 위배되는 행위로도 볼 수 있었다.
충격은 지금까지 진정되지 않았다. 대책회의가 열린 그때로부터 딱 1년이 지난 지금, 논란은 ‘판사 블랙리스트’ 파일 존재 여부로 이어졌다. 양승태-김명수 전현직 대법원장이 검찰에 고발되는 사법부 초유의 사건으로도 커졌다.
일각의 우려 대로 판사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면? 그 내용에 따라 사법부의 누군가는 법의 심판대에 설 수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책임자들처럼 말이다.
그 공동학술대회가 뭐길래 일이 이토록 커졌을까.
법원 내 판사들의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는 2016년 가을부터 공동학술대회를 추진했다. 연구회 내 소모임 ‘인사모(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가 주축이 되어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과 공동으로 2017년 상반기 개최를 논의했다.
학술대회의 핵심 주제는 대법원장 권한 축소 등 법관인사제도 개혁. 독일, 미국 사례를 통해 한국 사법개혁 방향을 모색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의 대법원장은 대법관 제청권, 전국 법원장 임명권 등 모든 판사의 전보, 승진, 재임용 등 인사권을 쥐고 있다. 권한이 막강한 대법원장은 ‘제왕’이라 불리기도 한다. 대법원장을 보좌하면서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는 출세로 향하는 요직으로 통한다.
전국 판사들은 ‘제왕’과 법원행정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 한 명을 정점으로 촘촘한 위계질서, 사법부 관료화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오래전부터 법원에서는 제왕적 대법원장 권한 축소와 법원행정처 개혁 목소리가 나왔다. 그래야만 개별 법관이 ‘윗분 뜻’이 아닌 법과 원칙에 따라 재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많은 시민이 촛불을 들고 부조리한 권력을 심판하며서 새로운 세상과 체제를 꿈꾸던 바로 그때. 법원 내부에서도 젊은 판사들을 중심으로 변화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공동학술대회도 그 중 하나다.
법원행정처로 상징되는 법원 수뇌부는 이런 분위기와는 180도 다르게 움직였다. 이들은 공동학술대회에 거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학술대회 저지 혹은 축소를 위한 이들의 움직임은 집요했다. 은밀하고 치밀했으며, 때로는 노골적이고 대담했다. 이들의 목표를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개혁 요구를 차단하라. 대법원장에게 권한이 집중된 현 체제를 사수하라.’
비밀 문건을 준비한 A판사가 총대를 멨다. 그 역시 법원행정처 소속 고위 인사다. 첫 번째 대책 문건에는 공동학술대회 저지-축소를 위한 방안이 이렇게 적혀 있다.
‘회장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운영위원회 구성원들을 일대일로 접촉해 공동학술대회 안이 부결되도록 유도한다.’
‘운영위원회를 설득하여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신 인사모 명칭으로 공동개최하도록 한다.’
‘공동학술대회를 7~8월로 연기한다.’
‘(외부에서 여는 공동 행사가 아닌) 연구회 자체 학술대회로 축소하고 이미 (발표, 토론자로) 섭외한 교수 2명은 발표에만 참여시키며 외부 광고(언론보도)는 금지한다.’
행사 주관, 개최 시기와 장소, 방법, 언론노출 등 그야말로 공동학술대회 저지-축소를 위한 모든 게 망라된 종합대책이다. A판사는 여러 경로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압박했다. 연구회 회장, 운영위원, 회원 등에 직접 전화를 하거나 제3자를 통하는 방식으로 계획을 관철하려 했다.
“외부와 연계된 행사는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학술대회를 꼭 해야 한다면) 발표문 수위를 낮춰 주십시오.”
A판사의 움직임은 어느 정도 효과를 보는 듯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일각에서 공동학술대회를 연구회 단독 행사로 축소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개최하는 안이 논의 됐다.
한 선배 법관이 국제인권법연구회 기획팀장을 맡은 B판사에게 전화를 한 건 그 즈음이다.
“행정처 높은 분 이야기인데요. 공동학술대회를 대법원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답니다. 웬만한면 행사를 안 했으면 한다고 하네요.”
“높은 분”의 뜻은 통하지 않았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1월 23일, 계획대로 공동학술대회를 열기로 했다. 3월 25일 오후 연세대학교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행사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약 2개월. 행정처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음 날인 1월 24일 “높은 분”이 B판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판사님, 국제인권법연구회 기획팀장이죠? 3월에 열기로 한 공동학술대회를 철저히 법원 내부 행사로 치러 주십시오. 특히, 언론에 보도되지 않게 해 주시고요.”
‘높은 분’은 비밀 문건을 준비한 A판사였다.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B판사님을 비롯해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 두 명을 제가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추천했습니다. 앞으로 저와 행정처에서 같이 일할 수도 있습니다.”
법원 서열의 핵심이자, 장래가 보장된다는 행정처에서 일할 수도 있다니. A판사는 일종의 ‘당근’을 던진 셈이다. 2월 9일 법관 정기인사 발표가 법원 내부 게시판인 코트넷에 떴다.
‘B판사 2월 20일부터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기획제2심의관 겸임.’
여전히 공동학술대회 개최는 변함이 없었다. 그 즈음 법원행정처는 다른 대책 카드를 만지기 시작했다. 두 번째 비밀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적극 대처하는 방안으로 국제인권법연구회 전체 차원의 조치를 하는 안. (구체적인 내용은 추후 상세 검토해야 함)’
연구회 전체를 겨냥한 조치란 일종의 ‘채찍’이었다. ‘전문분야연구회 중복 가입 해소 조치’가 그것이다.
법원에는 국제인권법연구회를 비롯해 총 15개 전문분야연구회가 있다. 판사들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자유로운 모임이다. 이들 연구 모임 중 국제인권법연구회는 가장 늦게(2011년) 생겼다. 앞의 다른 연구회에 중복 가입된 회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전문분야연구회의 구성 및 지원에 관한 예규’에 따르면 연구 모임 중복 가입은 원칙적으로 금지다. 하지만 예규는 10년 넘게 사실상 방치 상태였다. 법원행정처는 이 예규 등을 근거로 2월 13일 오후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에 관한 공지문을 코트넷에 올렸다.
‘전문분야연구회에 중복가입한 법관은 3월 5일까지 가장 관심 있는 분야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는 탈퇴해야 함. 3월 6일 이후에도 중복가입 돼 있으면, 나중에 가입한 연구회에서는 탈퇴하는 것으로 전산처리함.’
알아서 중복가입을 정리하지 않으면 ‘강퇴’한다는 공지. 회원 감소를 유도해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약화시키는 조치였다. 여러 판사가 반발했다.
‘채찍’이 공지된 다음 날인 2월 14일. B판사는 겸임 근무 시작 전 인사차 법원행정처 A판사의 사무실을 찾았다. 둘만의 독대. A판사는 이런 말을 했다.
“판사님, 법원행정처는 정보를 취합하는 소스가 엄청나게 넓습니다. 예를 들면, 연구회 모임에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 내용도 다 알고 있어요.”
더 놀라운 이야기가 이어졌다.
“판사님께서 (앞으로 이용할) 행정처 기조실 컴퓨터에 보면 비밀번호가 걸려 있는 파일들이 있을 겁니다. 그 비밀번호를 판사님이 어차피 다 풀 거 아니에요? 거기에 판사들 뒷조사한 파일들이 나올 텐데, 그러더라도 놀라지 마세요. 좋은 취지에서 한 거니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판사를 뒷조사한 일명 ‘판사 블랙리스트’ 파일이 있다니. 이제 그 파일 관리 업무를 맡아야 한다니. B판사는 충격을 받았다. 그날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A판사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B판사에서 이런 지시를 했다.
“연구회 회장에게 연락이 왔는데요. 그쪽에서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행정처에서 반반논리를 준비했으니, B판사님이 이걸 연구회 측에 즉시 전파를 하세요.”
B판사는 그 연구회 간부인 기획팀장이었다. A판사는 이걸 알면서도 그에게 연구회의 반발을 무마하라는 지시를 했다. B판사는 괴로웠다. 잠시 뒤, A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못하겠습니다. 그런 일 지시하시니 스트레스가 큽니다.”
그날 밤, B판사는 자신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는 전임 법원행정처 기획제2심의관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다.
“법원행정처는 국제인권법연구회를 타깃으로 하는 정책을 이미 세웠습니다. 그 정책 결정을 뒤집을 수는 없어요. B판사님도 그걸 그걸 따라야만 합니다.”
집으로 돌아간 B판사는 다시 불면의 밤을 보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대법원 규칙으로 설치된 공식적인 연구회인데 그걸 타깃으로 하다니. 이건 직권남용죄가 되는 불법인데. 그런데 이미 정책결정이 되어서 나는 그걸 반드시 따라야 한다니…’
2월 16일 아침이 날이 밝았다. 길은 복잡하지 않았다. B판사는 ‘판사가 불법적인 일을 할 수는 없다. 좋은 판사로 남자’고 다짐했다. 그는 법원행정처에 전화를 걸었다.
“그만 두겠습니다. 법원을 떠나겠습니다.”
B판사는 근무하던 법원으로 출근해 사직서를 냈다. 이렇게 B판사는 출세가 보장된다는 법원행정처를 스스로 버렸다.
법원행정처는 당황했다. 분주하게 B판사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B판사는 그날 정오께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과 통화했다. 임 차장은 사직을 만류했다.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눴다.
B판사 – “A판사님께서 국제인권법연구회에 개입하라는 지시를 저에게 했습니다.”
임종헌 차장 – “그건 내 책임 아닙니다.”
B판사 – “그럼 A판사님께서 독단적으로 했다는 말입니까? ‘언론보도 나지 않게 해달라’는 말을 차장님 의중 없이 어떻게 합니까?”
임종헌 차장 – “꼭 무산시킨다기보다 (공동학술대회를) 좀 조용하게 하면 좋잖아요.”
B판사 – “저를 (법원행정처로) 데려올 때부터 연구회 관련 부수적인 목적이 있지 않았나요? 일종의 ‘일석이조’ 효과를 노린 거 아닙니까?”
임종헌 – “그래!”
이 판사는 실망하고 분노했다.
“그냥 조용히 사직서만 처리해 주십시오. 법원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제가 알게 된 내용은 그냥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이후에도 법원행정처 쪽은 이틀 동안 행정처 소속 수많은 판사들을 통해 B판사의 사직을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B판사 아내의 사무실로 전화를 하고, 집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임종헌 차장도 아내를 통해 거듭 만류했다. B판사는 결국 한발 물러섰다.
“법원행정처 근무 발령을 취소해(겸임 해제) 주시면 원래 일하던 법원으로 돌아가 재판 업무를 하겠습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에 개입하지 말아주십시오.”
고영한 법원행정처장과 임종헌 차장은 2월 20일 오전 10시께,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B판사 인사 관련 그간의 경위를 보고 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법관들의 반대 기류가 강해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 시행을 보류해야 한다”는 내용도 대법원장에게 보고됐다.
중복가입 해소조치는 유보한다는 공지가 코트넷에 떴다. B판사는 법원행정처 출근 2시간 만에 원래 근무하던 법원으로 돌아가라는 인사가 났다. 이 내용은 코트넷에 공지되지 않았다.
약 2주 뒤인 3월 6일, B판사 인사 조치 관련 문제가 언론에 보도됐다.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다음날 곧바로 코트넷에 해명글을 올렸다.
“법원행정처는 B판사에게 연구회 활동 관련 어떠한 지시를 한 적이 없습니다. 법원행정처 근무를 희망하지 않아 겸임해제 발령을 했습니다. 구체적인 사유는 개인의 인사 문제로서 해당 판사가 공개를 원하지 아니하므로 언급할 수 없습니다.”
이 해명은 하루 만에 거짓으로 드러났다. B판사가 다음날 직접 코트넷에 글을 올렸다.
“법원행정처가 저에게 관련 경위가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지 정식으로 확인한 사실이 없습니다. 제가 (법원행정처에서) 경험한 걸 어떤 방식으로 공개할지 고심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많은 판사들이 공정한 조사기구를 꾸려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과 판사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를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인복 사법연수원 석좌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총 7명의 진사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이들 중 5명이 현직 판사, 두 명은 사법연수원 교수였다. 조사위는 총 26일간 활동한 뒤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전체 법관들에 대한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존재할 가능성을 추단케 하는 다른 어떠한 정황도 확인되지 않았음.’
이 결론은 많은 판사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법관들은 “A판사가 만든 대책 문건에도 이미 판사들 개개인의 동향 및 표결 성향 예측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음에도 그건 전체 판사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모순이다”라고 반발했다. 게다가 조사위는 중요한 물증인 법원행정처 컴퓨터를 조사하지도 않고 섣부른 결론을 내렸다.
B판사는 진상조사위에 “판사들 뒷조사한 파일이 컴퓨터에 있다고 A판사가 내게 말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A판사는 이를 부인했다. 그는 동료 법관에게 “당시 내가 B판사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학술대회 대책문건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문건은 기조실 컴퓨터로 작성하지 않았다. 내가 직접 작성했다”라고 말했다.
전국의 판사회의에서는 “A판사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진상조사위는 더 조사하지 않고 ‘판사 뒷조사 파일은 그 대책문건이다’라고 결론을 냈다”고 진상조사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많은 판사들은 전국법관대표회의를 통해 재조사를 요구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이를 거부했다. 그는 작년 9월 임기를 마치고 법원을 떠났다.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판사 블랙리스트 재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재조사위는 문제의 컴퓨터를 개봉했다.
판사 블랙리스트는 정말 존재할까? 판도라 상자가 열렸으니, 진실이 드러나는 건 시간 문제다.
사법부 고위층은 무엇이 두려웠길래 문제를 이렇게 키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