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삶을 건 두 법조인의 행동으로 법원과 검찰이 출렁인다. ‘판사 블랙리스트’를 세상에 알린 이탄희 판사, 검찰 내 성폭력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 두 젊은 법조인의 용기와 도전이 법원과 검찰을 칼날 위에 세웠다.
‘반성과 혁신으로 다시 태어날까, 치부와 부끄러움을 덮고 살던 대로 살까.’
이제 법원과 검찰이 결단할 차례다. 진실을 폭로한 두 법조인은 이미 긴 시간 고통을 겪었다. 그 시간보다 더 긴 고통의 터널이 눈앞에 보였지만 두 법조인은 뚜벅뚜벅 여기까지 왔다.
판사 블랙리스트 파문과 검찰 성폭력 사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 이탄희 판사와 서지현 검사가 진실을 말했을 때, 가해자들은 부인하거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 진상조사로 사실을 밝혀야 하는 ‘윗분’들은 오히려 진실을 은폐했다.
- 그들은 더 높은 곳으로 영전했거나 박수 받으며 조직을 떠났다.
조직에선 불이익을 감수하고 진실을 말한 두 사람을 음해하는 말이 돌았다.
“검은 머리 짐승은 애초에 (조직에) 들이는 게 아니다.” – 이탄희 판사를 향한 음해
“인사에서 물 먹고 분풀이로 글을 올렸다.” – 서지현 검사를 향한 음해
누구보다 법과 양심을 지켜야 하는 두 조직에서 이 모든 걸 어긴 ‘검은 머리 짐승’은 과연 누구일까?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검찰이 진상조사단을 꾸리기로 한 지금, 사법부에서 벌어진 일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판사 블랙리스트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지 약 1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은 사법부처럼 재조사를 거치지 않고 모든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두 엘리트 판사의 엇갈린 선택
판사 블랙리스트가 세상에 알려진 배경에는 비슷하게 살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다른 선택을 내린 두 엘리트 판사가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A판사(1962년생)와 이탄희 판사(1978년생). 둘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고, 20대 중반에 사법고시를 합격했다. 여기까지는 사법부 내에서 그리 특별한 이력은 아니다. 둘은 법관으로 임용된 후부터 좋은 평가를 받으며 일명 ‘엘리트 코스’를 걸었다.
한참 선배인 A판사가 당연히 먼저 치고 나갔다. 사법연수원 18기인 그는 서울형사지방법원, 서울고법 등을 거쳐 2005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일했다. ‘법관의 꽃’이라는 고법 부장판사 자리에는 2011년에 앉았다. 2015년에는 사법부 핵심 요직으로 통하는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됐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일하던 2010년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선정한 ‘올해의 우수 법관’ 20명 안에 들기도 했다. 그는 2015년부터 2년간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냈다.
이탄희 판사는 사법연수원 34기로 2008년 수원지방법원에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중앙지법 형사부를 거쳐, 제주지법과 광주지법 등에서 일했다. 2014년에는 해외연수 법관에 뽑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했다.
이탄희 판사는 2013년 광주지법에서 일할 때 광주지방변호사회가 선정한 우수·친절 법관 5명에 선정됐다. 그는 2017년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기획팀장으로 일했다.
이 판사는 수원지법 안양지원에서 일하던 2017년 2월 9일 법원행정처 기획제2심의관 겸임 발령을 받았다. 드디어 이 판사가 출세의 길에 접어든 순간이다. 법원행정처는 아무나 갈 수 없는 법원 내 핵심 요직이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용훈·양승태 대법원장 시절(2005년 9월~2017년 9월) 행정처에서 근무한 전·현직 판사 456명(연인원)” 전원이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으로 승진했다.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비참한 상황은 출세로 향하는 급행 열차에 올라탄 그 순간에 나타났다. 정식 근무 전에 인사차 법원행정처를 방문한 2월 14일, 이탄희 판사는 A판사 방을 찾았다. 삶의 궤적이 비슷한 두 판사의 길은 이날을 기점으로 확연히 달라진다.
범죄를 지시한 판사
A판사는 이 판사에게 말했다.
“판사님, 법원행정처는 정보를 취합하는 소스가 엄청나게 넓습니다. 예를 들면, 연구회 모임에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 내용도 다 알고 있어요. 판사님께서 (앞으로 이용할) 행정처 기조실 컴퓨터에 보면 비밀번호가 걸려 있는 파일들이 있을 겁니다. 그 비밀번호를 판사님이 어차피 다 풀 거 아니에요? 거기에 판사들 뒷조사한 파일들이 나올 텐데, 그러더라도 놀라지 마세요. 좋은 취지에서 한 거니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판사 블랙리스트(뒷조사 파일)가 처음 언급된 순간이다. 직권남용죄가 적용될 수 있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시하다니. 법원행정처와 A판사는 이탄희 판사가 요직이라는 미끼를 물고 지시대로 움직일 거라 확신했을까?
A판사는 멈추지 않고 더 노골적인 지시를 내렸다. 국제인권법학연구회 와해 로드맵에 따른 구체적인 실천을 이 판사에게 지시했다. 이탄희 판사는 괴로웠다. 여러 정황과 말을 종합하니 보이지 않는 손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출세를 보장할 테니, 판사들 성향과 동향을 파악하라. 이미 준비된 로드맵에 따라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켜라.’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아무나 올 수 없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법원행정처에서 빠른 성공의 길을 다질 수 있다. 눈감고 모른 척하면 끝, 얼마나 쉽고 좋은(?) 길인가.
이탄희 판사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는 A판사에게 ‘범죄 지시’를 받은 지 이틀 만에 법원에 사직서를 냈다. 1971년 박정희 정권에서 법관 독립이 위태로울 때 사직서를 내고 싸웠던 선배 판사들처럼, 사표를 던져 사법부 개혁을 촉구한 2003년 박시환 서울지법 부장판사(훗날 대법관이 된다)처럼, 이탄희 판사 역시 사직서를 던지고 배수진을 쳤다.
길은 물론이고 생각도 복잡하지 않았다. 그는 부당한 지시가 아닌 법과 양심을 따르기로 했다. 줄을 잘 서 승승장구하는 길이 아닌, 좋은 재판을 하는 법관으로서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려 했다.
양심을 따른 판사
이제 법원행정처가 복잡해졌다. 이들은 이탄희 판사의 결단에 거짓말과 조직적 은폐로 맞섰다. 작년 3월 24일 꾸려진 판사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에서 A판사는 이런 취지로 진술했다.
“이탄희 판사에게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비밀버호가 걸려 있는 파일이 있다고 이야기 한 적 없습니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의 비밀번호 파일에 대해서도 전혀 모릅니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의 다른 판사들도 입을 맞췄는지 비슷한 취지로 말했다.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한 파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획조정실의 업무성격상 판사들의 동향을 파악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전직 대법관이 포함된 진상조사위는 이탄희 판사의 말을 배척하고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섣부른 판단을 내렸다. 진실을 말한 이 판사만 이상한 사람이 된 꼴이다. 전국의 많은 법관이 재조사를 요구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이런 목소리를 외면한 채 임기를 마치고 박수 받으며 법원을 떠났다.
이 판사를 향해 “검은 머리 짐승”이란 모욕적인 말이 법원 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재조사를 요구한 법관들을 “사법권력을 장악하려는 선동 세력” “정치판사”로 낙인 찍기도 했다. 보수성향 신문 등 일부 언론은 국제인권법역회를 이념서클처럼 매도했다. 이탄희 판사는 육아휴식을 신청해 법원을 떠났다.
해가 바뀌어 추가조사위원가 밝힌 내용은 정반대였다. 법원행정처 기조실 컴퓨터에서는 판사들을 뒷조사한 파일 등이 무더기로 나왔다. 진상조사위 조사를 앞두고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대책회의를 열고 진실을 은폐, 축소한 사실도 확인했다. 추가조사위의 보고서에는 조폭 영화의 한 장면처럼 A판사가 총대를 메는 풍경도 나온다.
“A판사가 이탄희 판사에게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는 취지의 실언을 하는 바람에 이번 사태가 야기된 것에 따른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행정처 내부 분위기가 강하였고, A판사는 그런 법원행정처 내부의 분위기와 요청 때문에 위와 같이 대처한 것으로 보임.”
법원행정처의 조직적 은폐
무엇보다 놀라운 건 A판사는 2015년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으로 일하면서 연구회 산하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 회원들의 움직임을 몰래 상세히 파악해 법원행정처장(당시 박병대 대법관)에게 문건으로 보고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인사모 회의 참석자의 발언, 논의 주제는 물론이고 분위기와 뒤풀이 합류한 법관까지 적시됐다.
A판사는 법원행정처의 요청을 받고 2016년에도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맡았다. 그는 변함업이 동료 법관의 움직임을 파악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했다. 결국 A판사는 수년 동안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들을 속이고 ‘프락치’처럼 활동한 셈이다.
법원행정처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를 위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짜고 실행에 옮겼다. 그럼에도 법원행정처는 그 연구회 소속 두 핵심 인력을 중용했다. 법원행정처는 무엇을 노린 걸까? 한 판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두 판사가 법관으로서 능력이 좋은 건 많은 사람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와 별개로 법원행정처의 목적 역시 명확하다. 국제인권법연구회 핵심 인사를 통해 계속 판사들을 사찰하고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거부하기 어려운 법원행정처 요직을 주면서 충성을 유도한 거다.”
이탄희 판사는 유혹과 모욕을 견뎠다. 좋은 자리를 주겠다는 조직과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법과 양심을 따랐다. 그 덕에 사법부의 치부가 드러났다. 무엇보다 이탄희 판사는 사직서를 던져 좋은 법관이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지켰다. 그는 지금 수원지법 안양지원에서 재판을 하고 있다.
오직 법과 양심을 따른다는 법관의 제1원칙을 어긴 A판사는 인사조치에 따라 지금 대기발령 상태다. ‘범죄 지시’가 있던 그날 이후 두 판사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다. 비슷한 길을 걸었던 두 엘리트 판사는 그날 이후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이탄희 판사와 서지현 검사는 자기 자리를 걸고 진실을 말했다. 사법부와 검찰이 앞으로 어떤 길로 갈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그나저나 판사 블랙리스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요즘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