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신청서를 바라보는 루렌도 부부는 비장했다. A4 용지 13장짜리 난민신청서로 가족의 운명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사정을 알 리 없는 어린 네 자녀는 해맑기만 했다. ‘혹시 문제를 일으키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부부는 아이들이 있는 난민인정심사 대기실 쪽을 자꾸 바라봤다. 지난 1월 3일의 일이다.
공항에서의 난민신청 절차는 이렇다. 우선, 난민신청서를 작성하면, 난민인정심사가 시작된다. 공항에서 하는 난민인정심사는 난민심사를 본격적으로 하는 단계가 아니다. ‘이 사람이 난민심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여부만 판단한다.
여기서 ‘회부 결정’이 나면 출국장을 벗어나 진짜 난민심사를 받게 된다. ‘불회부 결정’을 받으면 강제송환될 위기에 처한다.
‘전 재산을 털어 새 삶을 살려고 왔는데…’
퇴로가 없는 루렌도는 신청서 앞에서 펜을 꽉 움켜쥐었다. 떨리는 손으로 신청서에 답을 달기 시작했다. 질문 항목은 16번까지였지만, 상세질문이 많았다. 80여 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루렌도는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답하기 쉬운 학력, 생년월일, 직업, 여권정보 등을 쓸 때는 거침없었다.
뒤로 갈수록 질문이 복잡해졌다. 근무 정보, 가족 중에 특정 조직에 가입사람이 있는지 여부에 대해 적어야 했다. 80여개 질문을 답하는 일은, 생사 기로 앞에 80여번 서는 일 같았다.
난민신청서 페이지를 뒤로 넘길수록 의문 사항이 많았다. 하지만 답을 해 줄 출입국 직원은 자리에 없었다. 포르투갈어-한국어 통역사만 있었다. 결국 통역사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통역사님. 제가 신청서 질문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도 잘 몰라서요. 밖에 있는 직원에게 물어보고 올게요.”
통역사는 자주 문밖으로 들락거렸다. 포르투갈어를 자유롭게 쓰는 통역사조차 포르투갈어로 적힌 난민신청서에 적힌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경험이 많지 않은 눈치였다. 통역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루렌도는 일단 모르는 질문을 건너뛰며 답을 적었다. 아는 것부터 다 채워놓고, 모르는 것은 나중에 적으려 했다.
루렌도가 봤을 때 난민신청서 핵심 질문은 14번이었다. ‘왜 난민을 신청하는지’ 묻는 질문이었다. ‘난민 신청 이유가 인종, 종교, 국가, 정치적 이유, 특정 사회 집단 소속 중 무엇이냐’ 묻는 질문 앞에서 루렌도는 잠시 망설였다.
다섯 가지 항목 중에서 ‘국가’에 펜을 올려두고 고민했다. 신청서를 적기 시작하고 1시간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그때 통역사가 갑자기 루렌도에게 말을 걸었다.
“잠깐만요.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14번 포함해서 질문이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 물어보고 다시 올게요. 일단 체크하지 말아주세요. 잠깐 신청서 좀 가져갈게요.”
신청서는 군데군데 빈칸으로 남았지만, 루렌도는 마지막 장에 이름과 날짜를 적고 그 아래 서명까지 다 한 상태였다. 서명 위에는 ‘양식을 완료했고, 질문을 온전히 이해한 것을 확인했다”고 적혀 있었다.
그때가 루렌도가 난민신청서를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통역사는 “물어보고 다시 오겠다”고 했지만, 신청서 없이 혼자 돌아왔다.
난인인정심사 고작 ‘2시간’… 인터뷰, 통역, 수정 시간 포함
난민인정심사 인터뷰는 출입국 직원이 한국어로 물으면, 통역사가 루렌도에게 통역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루렌도는 최대한 성심성의껏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앙골라로 강제송환 시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 루렌도는 출입국 직원을 간절하게 바라봤다. 출입국 직원은 피곤해 보였다. 지난 1월 4일의 일이다.
인터뷰실은 난민인정심사 대기실 바로 옆에 있었다. 출입국 직원, 통역사, 루렌도 이렇게 셋이 인터뷰실로 이동했다. 바테체는 따로 인터뷰했다. 방식은 같았다. 이 공간에서 ‘루렌도 가족이 과연 난민심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출입국 직원이 결정한다.
2017년 기준 인천공항에서 난민 신청을 한 사람은 184명. 이 중 20명만 회부결정을 받았다. 10명 중 1명꼴이다.
루렌도는 앙골라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탄압 정책(Operation Resgate)으로 벌어진 일에 대해 설명했다. 난민을 신청하는 직접적인 이유였다. 외국인을 집에 숨겨주는 일, 도로에서 세차하는 일까지 단속하는 그 법은 루렌도 같은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에게 엄격하게 적용됐다. 외신 기사에서도 확인된다. 하지만 출입국 직원의 반응은 건조했다. 루렌도의 말에도 표정 변화가 없었다.
“루렌도 씨, 차별은 앙골라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한국에도 인종차별은 똑같이 있어요.”
“그 뜻이 아닙니다. 저희는 죽을 수도 있어요. 앙골라로 가면 죽어요.”
인터뷰는 1시간 30분 정도 만에 끝났다. 출입국 직원은 인터뷰실 밖으로 나가 보고서를 출력하고 다시 인터뷰실로 돌아왔다. 통역사는 완성된 심사보고서를 루렌도에게 통역하기 시작했다.
심사보고서는 한국어로 적혀 있었다. 루렌도 입장에서는 한국어는 외계어나 다름없었다. 보고서에 자기가 한 얘기가 제대로 적혔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보고서 수정 작업에서도 통역사는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어로 적힌 보고서를 통역사가 보고 통역하면, 루렌도는 그걸 들으면서 자신이 말한 것과 다른 부분이 무엇인지 지적했다. 통역사는 다시 루렌도의 말을 통역해서 전달했다.
출입국 직원이 실제로 보고서를 고쳤는지는 알 수 없다. ‘수정해 주리라’ 믿을 뿐이었다. 루렌도는 촉각을 곤두세워, 통역사가 하는 말에 집중했다.
“당신은 상점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이었습니다.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잠깐만요. 그 내용은 틀렸어요. 전 상점을 운영한 적 없어요. 통역해서 다시 전달해 주세요.”
자신이 말한 내용이 잘못 전달된 부분은 제법 있었다. 루렌도는 잘못 전달된 이야기를 고쳐달라고 통역사를 통해 요청했다. 루렌도는 앞서 인터뷰에서 “노점상 단속 과정에서 갑자기 도로 쪽으로 도망친 노점상 아주머니를 피하려다 (운전하던 택시로) 경찰차를 들이받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그 내용이 잘못 전달된 것이다.
수정까지 포함해 인터뷰는 총 2시간 진행됐다. 질의응답, 출입국 직원의 보고서 작성, 수정 시간까지 모두 합한 결과다. 통역 시간을 제외하면 1시간 남짓 걸린 셈이다.
루렌도 처지에서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좋은 결과가 나오길 루렌도 부부는 손 모아 기도했다. 회부 결정을 받고 비로소 ‘진짜 심사’를 받는 10명 중 1명이 되길 바랐다.
출입국, ‘불회부 사유’ 안 밝혀… 통역사가 전화상으로 설명
인터뷰가 끝난 다음날인 1월 9일, 한국 직원이 루렌도 부부를 불렀다. 난민신청서가 접수되면, 일주일 안에는 회부 여부를 통보해야 한다. 그날은 난민인정심사 대기실에 입실하고, 딱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회부 결정을 받아야 난민법상 ‘난민 신청자’ 지위를 부여받는다. 그전까지는 ‘난민 신청자’로 불리지도 않는다. 모든 결정이 바로 이날 결정된다.
출입국 직원은 루렌도 부부를 불러 세우고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루렌도 부부는 그런 출입국 직원을 한참 바라봤다. 출입국 직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수화기로 잠시 통화를 이어가던 출입국 직원은 루렌도에게 수화기를 넘겼다. 루렌도는 수화기 너머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 전화 상대방의 정체는 바로 통역사였다. 당황했다.
“전 통역사입니다. 출입국 직원이 한 말을 전합니다. 당신들의 상황은 한국에서 규정한 난민 조건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통역사가 전화로 ‘불회부 결정’ 통보를 했다. 루렌도는 납득할 수가 없었다. 루렌도와 바테체는 끝내 ‘불회부 결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듣고 눈물이 났다. 결정 사유가 적힌 문서를 전달하는 것도 아니었다. 통역사가 현장에서 얼굴을 바라보며 사유를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수화기 너머 사람이 가족의 운명을 결정짓는 통보를 구두로 전한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유라도 알려주실 수 있나요? 왜 불회부 결정이 났습니까? 이의 신청하고 싶습니다.”
루렌도는 이의신청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통역사는 수화기를 통해 루렌도 말을 다시 출입국 직원에게 전달했다. 출입국 직원의 표정은 더 굳어졌다. 부정적인 답변이 통역사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였다. 역시 루렌도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왜 불회부 결정이 났는지’ 답해 주지 않았다
사실 루렌도 가족이 한국에 도착하고 한국 정부로부터 받은 서류는 아무것도 없다. 난민신청서 사본, 난민인정심사 보고서 사본, 난민인정 불회부 결정서 등 어떤 것도 받지 못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입국을 불허하면서 이미 루렌도 가족의 여권을 빼앗았다.
끝내 출입국 직원은 루렌도의 이의 신청을 거절하고, 사실상의 구금 시설인 ‘송환 대기실’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루렌도는 거절했다. 인천공항 제1터미널 46번 게이트 생활을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집에서 성폭행이 벌어졌을 가능성은 적지 않나요?”
과연 루렌도가 난민인정심사 과정에서 “수정해달라” 말한 부분은 제대로 고쳐졌을까?
의문을 품게된 것은 출입국 관계자의 말 때문이다. 자신을 ‘인천공항에서 난민인정심사 일을 가장 오래 도맡아온 사람’이라고 소개한 그는 루렌도가 하지 않은 말을 했다. 루렌도가 난민인정심사 과정에서 수정을 요청했던, 그 내용이다.
“이 사람은 별도의 가게를 유지하고 있었어요. ”
출입국 관계자의 설명에 대해 루렌도의 견해를 다시 들었다. 루렌도는 강하게 부인했다. 당시 인터뷰실에 있었던 포르투갈-한국어 통역사에게 “‘상점을 운영한다’는 보고서 설명은 틀렸다”고 분명히 전했다고 했다.
루렌도가 가게를 운영했는지 여부는 중요하다. 노점상 단속과 루렌도가 연관됐을 가능성, 노점상 단속 때문에 난민을 신청한다는 추측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역사에게 그 보고서 내용이 틀리니 수정해달라고 했어요. 2018년 6월 19일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가지고 있던 자가용으로 지난 작년 7월부터 택시 운전을 하기 시작했어요. 사고가 일어난 11월 6일, 그때 단속을 피하는 노점상 아주머니들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지, 저는 전혀 노점상과 관련이 없습니다.”
출입국 관계자는 경찰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한 바테체 증언도 믿지 않았다. 발생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아이들이 자고 있는 집’에서 사건이 벌어진 것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 네 명이 방에서 자고 있고, 저녁 8시에 집안에서 성폭행이 일어났다? 통상적으로 성폭행은 항거불능 상태에서 밀폐되고 은신한 상태에서 가혹행위를 하면서 벌어지지 않습니까? (집은) 일상적으로 범행이 일어날 만한 그런 장소 자체가 아니에요. 발생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봅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쪽에서 보는 난민인정심사의 판단 기준은 ‘발생가능성’이라는 말을 여러 번 썼다. 출입국 관계자는 루렌도 가족의 사연은 작위적이고, 난민법을 악용한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속된 말로 애들을 볼모로 소송 진행하지는 말자는 겁니다. 인권단체나 언론에서 ‘난민 신청 왔는데 입구에서부터 들여보내주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말을 만들면 행정처를 코너에 넣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저희가 봤을 때 실상은 그것과 동떨어져 있고, 결과도 확신을 가지고 있어요.”
출입국, 정보공개청구 거부… 인터뷰실 ‘카메라’, 진실 알고 있다?
모든 진실은 카메라가 알고 있다. 난민인정심사 인터뷰실에는 카메라가 있었다. 카메라 렌즈가 루렌도를 향해 있었다. 만약 카메라가 꺼져 있었다면, 인터뷰실에서 벌어진 사실을 증명할 방법은 없다. 녹음도 녹화도 없이 인터뷰가 진행된 셈이다.
영상이 공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루렌도 가족을 변호하는 사단법인 두루의 이상현, 최초록 변호사는 난민심사 불회부결정 취소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법무부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난민신청서와 난민인정심사 보고서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결과는 ‘요청 거부’였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청구인이 입국 불허된 외국인이어서 정보공개청구 적격이 없습니다.”
소송으로 다투려 해도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법무부의 외국인청이 관련 자료를 소송 전까지 공개하지 않아, 루렌도 가족 같은 난민 신청을 원하는 사람들은 목격하거나 들은 것에 의존해 소송을 준비해야 한다. 기적적으로 공익변호사를 만나도 힘든 싸움이 되는 이유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출입국항 난민신청 제도와 출국대기실 운영형태 개선을 위해서 법무부장관에게 아래와 같이 권고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6년 9월 법무부장관에게 ‘출입국항 난민신청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를 한 적이 있다. 난민인정심사는 형식적 요건 중심으로 최소화하고, 명백히 난민이 아닌 경우가 아닌 한 난민인정심사에 회부하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하도록 권고했다.
당시 인권위는 구두로 불회부 결정을 통지하는 것도 문제 삼았다. 난민인정심사 회부결정 결과에 대해서는 신청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언어로 쓴 문서로 통지하라고 권고했으며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절차를 따로 마련하라고 전했다.
법무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난민신청제도를 악용할 수 있고, 국경관리가 안 될 것이며, 심사의 속도와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인권위 권고를 사실상 거부했다. 다만, 앞으로 불회부 통지서 교부하고 송환대기실(출국대기실)에 대한 법적근거 마련하겠다고는 약속했다.
법무부가 말한 최소한의 약속은 지켜졌을까.
아니다. 법무부는 ‘불회부 통지서를 교부하겠다’고 했지만, 루렌도 가족은 받지 못했다. 재작년 상황과 달라진 것은 송환대기실로 강제 이동되는 일이 줄었다는 점이다. 송환대기실로 가지 않은 사람들은 대신 공항 터미널을 떠돌게 됐다.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합니다.”
지난 1월 31일, 바테체는 처음으로 출국장을 벗어났다. 병원에 가기 위해서다. 아파서 긴급하게 상륙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면, 운수업자의 신청을 받아 긴급 상륙을 허가할 수 있도록 우리 법에 나와 있다. 공항을 빠져나간 것은 아니다. 인천공항에서 마련된 1차 병원에서 간단하게 검진만 했다.
의사가 밝힌 소견은 “CT 촬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40일 만에 출국장을 빠져나왔지만 바테체는 웃음기 하나 없었다. 복통이 점점 심해져 제대로 몸을 펼 수조차 없다. 바테체는 진료를 마치자마자 다시 ‘46번 게이트’로 돌아가야만 했다. 다른 선택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