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소장측, “이사장 조카인 것 알지 못했고, 학과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뿐
(* <베이비뉴스>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기획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건 단연 ‘정유라 이대 부정입학 사건’이다. 비선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특혜를 받아 입학하고, 출석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도 학점을 챙겼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성난 민심은 결국 촛불을 들었다.
정유라가 떵떵거리며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건 뒤를 봐줬던 교수들 덕분이다. 정권 실세 입김이 무서워서였다. 어떤 교수는 비속어 투성이인 보고서를 손수 고쳐줬다. 다른 교수는 단 한 번도 과제를 낸 적 없는 정유라에게 B 학점을 주기도 했다. 최경희 전 이대 총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느닷없이 정유라 사건을 다시 얘기하는 것은, 육아정책연구소 백선희 소장도 교수 재임 시절 이와 유사한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학교 이사장 조카가 학교 대학원에 입학했고, 백 소장은 그에게 학점 특혜를 줬다.
하지만 백 소장의 삶은 학교를 나와서도 탄탄대로였다. 경미한 징계인 구두 경고를 받긴 했다. 하지만 백 소장은 ‘이사장 조카 학점 특혜 사건’ 징계 결정이 나오고 얼마 안돼 더 좋은 자리로 갔다. 백 소장은 2017년 12월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 소장 자리에 올랐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15년, 서울신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 당시 이사장의 조카 A 씨가 들어왔다. A 씨는 프로 골프 선수 출신이었다. 골프 강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대학원장은 바로 백선희 교수. 그는 2015년 박 씨에게 사회복지개론을 가르쳤다.
사회복지학과 슬로건은 ‘사람중심의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따뜻한 사회전문가를 양성한다’다. 하지만 이런 포부는 이내 궁색해졌다. 사람중심의 공동체를 이끌어갈 인재를 만들겠다는 사회복지학과 일부 교수들은 공동체가 아닌 이사장 조카 A 씨의 뒤를 봐주느라 바빴다.
A 씨가 입학할 때부터 장학금을 받았다는 증언도 나오는 상황이다. 2015년 무렵 서울신학대 사회복지대학원은 정원미달 상태였지만, 학교는 A 씨에게 장학금을 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A 씨는 그럼에도 골프채를 놓을 생각이 없었다. 선택한 방법은 교수들을 말로 구슬리는 것이었다.
“교수님, 제가 현직 골프 선수여서요. 수업 참석이 어렵습니다.”
A 씨는 교수들과 강사들을 찾아다니며 골프 때문에 수업에 못 나와도 양해해달라고 부탁했다. 학칙에 위반되는 일이었다. <서울신대 대학원 학칙시행세칙> 제23조에 따르면 “수강신청한 과목은 3/4이상 출석하여 수강하지 않으면 출석실격이 되어 ‘F’ 처리된다”고 나와 있다.
◇ “제가 골프선수라…” 출석일수 못 채운 이사장 조카에게 학점 특혜
A 씨의 안하무인 태도에 강사들은 교수들보다 엄격하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원칙대로 처리하겠다고 했다. 출석하지 않으면 F를 주겠다고 했다. F를 준 강사가 실제로 있었고, F를 주겠다고 엄포를 놓아서 A 씨의 출석을 유도하기도 했다고 증언하는 강사도 존재한다.
다만, 교수들은 엄격하지 않았다. 당시 총장의 아내 B 교수와, C 교수, 대학원장이었던 백 소장은 결국 이 건으로 학교로부터 구두 경고를 받았다. A 씨가 3/4 이상 출석하지 않았음에도 F 처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교육부에 알려지고 나서야 나온 징계였다.
학생들은 A 씨가 학점 특혜를 받고 있는지 오랜 기간 알지 못했다. 학교는 부정한 특혜를 준 사실을 교육부에 들키자 그때서야 부랴부랴 조치했던 것이다. 학생들은 그럼에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서울신대 내에서 ‘제2의 정유라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학교는 쉬쉬했다. A 씨를 가르쳤던 한 강사의 증언이다.
“수업 첫날 골프 얘기를 하면서 출석을 봐달라는 식으로 얘기하더라고요. 전 제 철칙상 안 된다고 분명히 얘기했어요. 그 후 그 학생이 어느 정도 출석하기 시작해서 그에 걸맞은 성적을 줬고요. 당시 소문으로는 그 학생이 수업에 안 들어가는데 학점을 받았다고 저도 들었습니다. ”
같은 학과 대학원 학생들은 A 씨가 입학 후 1년간 학교에서 잘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나자 그 사정을 직접 묻다가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A 씨는 학생들에게 ‘백선희 소장을 비롯해 몇몇 교수들에게 학점을 받았고, 여태 과제로 출석을 대신해왔다’는 충격적인 말을 전했다.
“학생들이 단도직입적으로 ‘지난 학기에서 누구 수업 들었냐’고 물었어요. 그러니까 백선희 교수 비롯해서 백 교수랑 친한 교수 몇 명을 얘기를 했어요. 그러면서 했던 말이 ‘학부에서 골프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서 (출석을) 과제로 대체했다’라는 말을 했던 겁니다.”
학생들의 말대로 실제로 A 씨는 서울신대에서 골프를 가르쳤다. 대학원생이 교양과목 강사로 뛴다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A 씨의 아버지이자 당시 이사장의 처남이 강사 자격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A 씨는 아버지 수업에서 보조강사 식으로 활동했다.
서울신대에는 골프장이 없었다. 그럼에도 학교는 임시로 수업 공간을 만들어줬다. 풋살장을 골프 연습장처럼 만들어 A 씨가 골프를 가르칠 수 있게 학교는 배려(?)했다. 이 모습은 사진으로도 남아 있다. 서울신대에 일했던 한 교수의 말이다.
“전 총장은 총장 연임을 위해서 이사회를 움직이려고 했어요. 이사들 가족들 취직 도와준다는 얘기도 돌았고요. 그리고 전 총장 아내 B 교수가 백선희 소장하고 친하게 지냈습니다. 백 소장이 그런 학교 사정을 모를 리 없었을 겁니다. “
◇ 백선희 “학업 스트레스 받는 A 씨 위해 배려했던 것”
정유라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A 씨의 ‘출석 점수 무마 청탁’ ‘학점 특혜’ 사실을 세상에 드러낸 것은 용기 있는 학생들 덕이었다. A 씨가 변칙적인 방법으로 학점을 취득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몇몇 다른 학생들은 대학원장이었던 백선희 소장을 찾아가서 따졌다.
하지만 백 소장은 면담하러 온 학생들에게 납득할 수 없는 말을 전했다고 학생들은 기억했다. A 씨의 학점 특혜에 대해서 해명하라는 학생들의 호소에 “학교생활에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도와준 것뿐이다”라고 백 소장이 말했다는 것이다. 특혜를 줬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백 소장의 답변이 구차한 변명으로 들렸다. 대학원장인데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교육부에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교는 뒷북 대응을 했고, 그렇게 해서 결정 난 징계 수준도 고작 ‘구두 경고’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 분노했다.
A 씨는 일이 벌어지고 한참 후에 제적처리 됐다고 사회복지학과 관계자가 전했다. 2018년 1월이 되서야 바뀐 대학원장을 중심으로 학과 교수들이 모여 ‘부당한 방법으로 학점을 취득한 A 씨 학점을 취소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심의 의결했고, 학교는 얼마 안 있다가 A 씨를 제적시켰다고 했다.
사실 교육부가 움직이자 학교가 뒤늦게 움직인 것이다. 학교 비리를 알리던 한 교수가 A 씨의 학점 특혜 의혹을 비롯해 여러 건을 밝히면서, 교육부는 2018년 8월부터 반년간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학교는 중징계 8건, 경징계 9건, 경고 28건, 2억 1천여만 원 환수를 통보받았다고 전해진다.
◇ 대학 측, ‘경고조치’ 교육부에 공문… 하지만 그해 말 국책연구소장 선임
학교에서는 ‘학점 특혜’ 문제가 다시 수면 위에 떠올라도 백 소장에게는 관련 없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백 소장은 이미 학교를 떠나고 없었다. 문재인 정부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정책운영위원을 역임하다, 2017년 12월 국책연구기관 소장이 됐다.
A 씨에 대한 학점 특혜 사건이 교육부에 민원으로 접수된 된 것이 2017년 7월. 그에 따라 서울신대가 자체조사 결과 백 소장 및 교수 세 명에게 ‘경고’ 징계를 했다고 교육부에 보고한 것이 8월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3개월 뒤인 11월 13일, 국무조정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백 소장을 육아정책연구소 소장후보자로 선정했다. 12월 8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회는 백 소장의 선임을 최종 결정했다.
백 소장은 남편 김연명 전 중앙대 교수와 함께 문재인 정부에서 핵심인사로 거론됐다. 백 소장이 소장으로 선임될 무렵, 김연명 씨는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포용사회분과위원장 겸 국정과제지원단장이었다. 현재는 청와대 사회수석이다.
백 소장은 ‘이사장 조카 학점 특혜 사건’ 의혹에 나온 내용이 대부분 맞다고 인정했다. A 씨가 학칙에서 나온 규정보다 적게 수업에 나온 것은 맞지만, 면담 과정에서 학교에 적응이 힘들다고 호소해서 학습을 독려하기 위해 한 선택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자기는 어떻게 (수업에서)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하면서 수업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느꼈었나봐요. 근데 학생이 이미 F를 받은 상태여서 저까지 F를 주면 학사경고를 받는 상태였어요. 앞으로 수업에 잘 참여하겠냐고 물으니 그러겠다고 해서 ‘그럼 과제를 내라’라고 기회를 줬던 겁니다. ”
백 소장은 “A 씨가 수업을 대다수 빠진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학칙에서 세운 ‘3/4 이상 수업에 참석해야 한다’는 기준보다 한두 번 정도 더 빠졌을 뿐이고, 자신이 가르치던 수업이 아니라 다른 수업 때문에 문제가 불거진 거라고 말했다. 이사장 조카라는 사실도 한참 후에 알았다고 했다.
“2015년 당시에 서울신대 사회복지대학원 정원이 미달이었어요. 지원한 학생들은 다 붙었습니다. 장학금을 받은 사실에 대해서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학교 본부에서 정하는 일입니다. 2016년에 학점 특혜 의혹이 제기되면서 A 씨가 이사장 조카인 것을 알았습니다. ”
백 소장은 학과 대학원장으로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도 인정했다. 다만, “학교 내부비리를 고발하던 한 교수가 이미 ‘이사장 조카 학점 특혜’ 의혹을 비롯해 여러 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상태이기 때문에 따로 진상조사 등의 조치를 마련할 생각을 당시에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한 백 소장은 “A씨의 입학과정이나 장학금 지급 부분, 학부 교양과정 강사 임용 등은 신청인이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알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