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노숙 70일을 넘기자 아빠마저 기력을 잃었다. 인천공항으로부터 난민심사를 거부 받은 앙골라 가족의 가장 루렌도 이야기다. 루렌도 가족은 지난해 12월 28일 입국이 불허된 이후, 인천공항 제1터미널 4층에서 두 달 넘게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
루렌도가 아픈 이유는 거식 증상 때문이다. 루렌도 몸이 음식을 거부하고 있다. 구토가 일상이 된 지 벌써 몆 주째다. 네 자녀와 아픈 아내를 위해 먹는 걸 양보해 왔는데, 이젠 적은 양조차 소화를 못하게 됐다.
“제발 먹는 데 돈 아끼지 마세요. 충분한 영향을 섭취하셔야 해요.”
루렌도 가족을 변호하는 공익사단법인 두루의 이상현 변호사는 먹는 것만큼은 신경을 쓰라고 당부하고 있다. 루렌도 가족 전체가 앓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내 바테체는 인천공항 도착 때부터 계속된 복통으로 체중이 눈에 띠게 줄었다. 아이들은 공항 소파 생활 때문인지 이유를 알 수 없은 가려움증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바테체는 최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받은 후 약을 처방 받아 복용하고 있다. 앙골라에 있을 당시 경찰로부터 당한 성폭행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긴 탓이다. 복통 약에 정신과 약까지 먹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세 끼를 다 먹어야 한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돈이 없어 하루 한 끼만 먹었던 루렌도 부부는 오랜 노숙으로 생긴 질환으로 세 끼를 먹게 됐으니 말이다. 특히 바테체는 약을 먹지 않으면 견딜 수 없고, 약을 먹으려면 공복일 수 없다. 하지만 루렌도 부부는 끼니를 챙겨 먹을 때마다 줄어가는 예산을 보며 마음이 편하지 않다.
“공항에서는 모든 게 비싸요. 비슷한 음식만 계속 먹다 보니까, 영양 불균형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 가지고 있는 돈으로 한 달 정도 견딜 수 있습니다.”
루렌도 가족은 여러 한국인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견뎠다. 난민과함께하는공동행동, 수원이주민센터,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녹색병원 등이 구호물품과 생활비, 의료 서비스를 대가 없이 제공했다. 얼마전에는 안경사협회에서 바테체 씨의 부러진 안경을 새로 맞춰줬다.
최근 루렌도 가족을 위한 페이스북 페이지도 만들어졌다. ‘루렌도 가족과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는 페이지에 물품 전달 상황 등이 공유되고 있다. 난민과함께하는공동행동은 최근 루렌도 가족의 식비, 의료비, 통역비를 마련하기 위해 후원계좌를 개설했다.
“우리 가족을 돕는 한국 사람들을 위해서 매일 감사 기도를 해요. 말로 다 표현을 못할 정도입니다.”
불회부 결정서에 ‘일련번호’ ‘직인’ 없어… “실제로 교부됐는지 의문”
지난 7일 루렌도 가족의 첫 재판이 열렸다.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이 인천지방법원에서 진행됐다. 루렌도 가족이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의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이 부당하다며 낸 행정소송이다. 루렌도 가족은 재판에 참석하지 못했다. 루렌도 가족 변호인들이 원고석을 대신 채웠다.
재판에 앞서, 인천지방법원 앞에서는 루렌도 가족을 응원하는 시민단체와 체류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이 연달아 열렸다. ‘난민과함께하는공동행동’은 “정부가 제대로 된 심사도 하지 않고 난민 신청자들을 ‘가짜 난민’으로 낙인찍고 있다”고 비판하며 법원에 입국 허가를 요구했다.
반면, 난민 반대 단체 ‘난민대책 국민행동’은 “‘가짜 난민’ 루렌도 씨 가족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난민 신청이 대한민국에 장기적인 체류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맞불 기자회견을 연 두 시민단체는 루렌도 씨의 재판을 함께 방청했다.
이날 재판의 가장 큰 쟁점은 난민 불회부 결정 통지서였다. 루렌도 가족에게 불회부 통지서를 전달했다고 주장하는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에 대해, 루렌도 가족 변호인단은 ‘그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법정에서 따졌다. 불회부 결정 처분 과정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게 변호인단 주장이다.
변호인단 주장대로, 법무부가 재판과정에서 공개한 난민 불회부 결정 통지서에는 문서 일련번호나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 청장 직인 등이 없다.
이를 근거로 루렌도 가족 변호인단은 ‘이 문서가 실제로 교부됐는지, 재판 증거로 사용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 재판부에 의문을 제기했다.
“통상 이런 문서에는 기안을 올린 사람이 적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문서에는 없습니다. 이 문서가 실제로 당사자들에게 준 문서가 맞는지 알고 싶고, 외국인청이 여기에 대해서 자세히 밝히지 않으면 이 문서가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 재판부에 묻고 싶습니다.”
불회부 결정 통지서가 교부를 받는 사람이 알아볼 수 없는 언어로 적혀 있다는 점이 재판과정에서 증명되기도 했다.
통지서는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로만 기재되어 있었다. 불어와 포르투갈어만 할 수 있는 루렌도 가족이 알아볼 수 없는 셈이다.
현재 법무부는 불회부 결정 통지서를 루렌도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하는 상황. 법무부는 <셜록>이 낸 서면 질의서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불회부결정서를 전달하면서 인수증에 신청자의 서명을 받는데, 루렌도 씨가 인수증에 서명을 거부한 사실은 있으나 불회부결정서는 수령하였다”
하지만 루렌도의 견해는 다르다. 그는 “한국어와 영어로 적혀 있는, 무슨 내용이 쓰여 있는지 모르는 문서에 사인하라고 강요당한 것은 맞지만 그때 사인을 하면 앙골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문서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저는 영어를 잘 못합니다. 한국어는 전혀 모릅니다. 근데 한국 직원에 영어와 한국어로 적힌 문서를 가리키면서 사인을 하라고 했어요. 무슨 문서인지도 모르는데 시키는 대로 사인하면 다시 앙골라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테이블에 종이를 놓고 나왔어요.”
루렌도 가족, 오는 21일 재판 ‘전원 참석’ 가능할 듯
재판 끝난 후 이상현 변호사는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 과정의 정당성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전체 난민 신청자 중 난민으로 인정되는 사람들이 4%에 불과한데, 루렌도 씨 가족처럼 ‘명백히 이유 없는 난민신청’이라 판단된 사람 중에도 나중에 정식 난민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천공항이 ‘명백히 난민이 아니다’라고 판단했지만, 나중에 난민이 된 사례는 많다. 북수단 정부의 강제징집에 응하지 않아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입국한 수단인의 경우, 인천공항 외국인청으로부터 불회부결정을 통보받았지만, 2016년 3월 서울출입국으로부터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루렌도 가족처럼 공항에서 노숙 생활을 하던 이집트 국적 난민신청자도 마찬가지였다. 불회부결정 취소소송 끝에 2018년 5월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인천공항 외국인청은 ‘난민인정 신청이 명백히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정작 난민 심사를 받았을 때는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루렌도 가족 변호인단은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의 정당성을 묻기 위해 법원에 문서제출명령 신청서를 냈다. 총 세 가지 자료 공개를 요청했다. 난민인정 심사 내부 심사 보고서와 면담 녹화 영상, 난민심사 내부 규정 전체를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으로 부터 받아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다음 기일에는 공항에 체류 중인 루렌도 씨 가족이 직접 법정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 변호인단이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에 협조를 요청했고, 외국인청이 이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법정에서 밝혔다.
다음 재판은 오는 21일 오전 11시 50분 인천지방법원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