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렌도 가족 전원이 처음으로 인천국제공항을 벗어났다. 재판 출석을 위해서다. 콩고 출신 앙골라 국적의 루렌도 가족 6명은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21일 인천지방법원에 출석했다.
불회부 결정을 받은 외국인이 직접 법정에 출석하는 일은 이례적이다.
루렌도 가족 대리인단은 인천공항 출입국 외국인청에 “원고들이 법원에 출석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요청했으나 거부당한 적 있다. 그 후 대리인단은 재판부에 “원고 출석을 명령해달라” 요구했고, 재판부가 지난 7일 첫 변론기일에 직접 외국인청에 협조를 요청하면서 루렌도 가족의 법정 출석이 성사됐다.
재판에 앞서 인천지방법원 정문 앞에서는 루렌도 가족의 난민 인정에 대한 찬반집회가 열렸다.
인권단체 ‘난민과함께공동행동’은 난민 수용을 찬성하는 2100여명의 서명을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들은 루렌도 가족의 입국 수용을 요구하는 집회에서 “재판 당일이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인만큼, 루렌도 가족과 공항에 구금된 난민들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기를 원한다”고 외쳤다.
“루렌도 씨의 부인 바테체 씨는 요로결석이나 골반염이 지나간 흔적이 있습니다. 충분한 의식주와 함께 적절한 의료 서비스가 제공돼야 건강상태가 악화되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반면 ‘난민대책국민행동’은 루렌도 가족의 입국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가짜 난민들이 많아지면 많은 (외국) 사람들이 한국으로 몰려들 것”이라며 “난민이 많아지면 혈세가 낭비되고 치안이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콩고인이면 그냥 콩고로 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난민법 폐지법안을 통과시키고, 무사증제도를 없애야 합니다.”
루렌도 가족은 후원자들이 제공한 겨울옷을 입고 외국인청의 인도를 받아 법원에 도착했다. 처음 겪는 한국의 겨울 추위 탓에 루렌도 가족이 고통 받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이 이들 가족에게 음식과 옷 등을 제공했다.
이날 루렌도 씨는 자신과 가족을 응원하러 법원을 찾은 사람들과 포옹을 하며 인사를 나누다 울음을 터뜨렸다. 바체테 씨도 자신들을 지지하는 시민단체 운동가들의 손을 일일이 잡았다.
재판에서 루렌도 가족의 대리인단은 외국인청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것을 문제 삼았다. 앞서 법원은 루렌도 가족 측이 신청한 문서제출명령을 받아들여 외국인청에게 난민인정 회부 심사 보고서와 면담 녹화 영상 등을 제출할 것으로 요구했다.
이에 대해 외국인청은 “심사 보고서는 내부 결재용”이라면서 제출이 어렵다는 취지로 말했다. 면담 녹화 영상에 대해 외국인청은 “난민심사 회부 과정이 100% 녹화된다”면서 추후에 CD로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난민심사 내부 규정 전체를 받아보고 싶다는 루렌도 측 요청에도 외국인청은 소극적인 태도다. 외국인청은 루렌도 가족의 경우는 난민법 시행령 제5조가 규정한 난민심사 불회부 사유 중 ‘난민인정 신청이 명백히 이유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판이 끝난 뒤, 찬반집회를 벌인 시민단체 간 마찰이 벌어지기도 했다. 루렌도 가족 대리인단이 재판 결과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반대 집회 참석자들이 루렌도 가족에게 욕설을 하면서 서로 고성이 오갔다. 루렌도 가족이 인천공항으로 돌아갈 때는 물통이 날아들기도 했다.
법원은 이날 재판에서 루렌도 가족의 진술을 직접 듣고자 통역사를 지정했다. 하지만 통역사가 출석하지 않아 직접 진술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음 변론기일은 4월 4일 오후 4시 3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