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가의 마늘 냄새는 사라졌지만,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맵다. 회장님의 말은 짧았다.
“입 벌려.”
회장님은 된장 찍은 마늘을 입에 강제로 넣었다. 회장님이 한손 가득 쥐고 있던 마늘로 입안이 가득 찼다.
“흘리지 말고 다 씹어 먹어.”
천천히 씹었다. 회장님의 말을 거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에 멈추지 않고 씹었다. 입안 가득한 매운맛보다 잘근잘근 씹힌 모멸감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회사를 떠났고, 그로부터 3년여가 흘렀다. 회장님을 다시 만났다. 3월 26일 오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증인석에서 3년 전 기억을 증언한 남자는 고통에 한숨을 쉬었다. 피고인석에 앉은 회장님은 종종 미소를 지었다. 가끔 노려보기도 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가슴속 상처도 그대로, 회장님도 그대로였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전 회장에 대한 2차 공판은 달라지지 않은 것들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1부(최창훈 부장판사) 주재로 열린 26일 공판에서는 검찰 측 증인으로 일명 ‘마늘 피해자’ 유아무개 씨가 출석했다. 유 씨는 법정에서 말했다.
“피고인 양 회장은 회사에서 제왕으로 군림했습니다. 인사 문제나 사내 분위기 등 양 회장은 회사 전반을 장악했습니다.”
유 씨는 이지원인터넷서비스 등 양 전 회장 소유 회사 두 곳에서 2010년 8월부터 약 5년간 법무팀장 등으로 근무했다.
그는 양 회장의 강요로 술과 생마늘을 먹은 피해자이자, 지난해 10월 말 <셜록><뉴스타파> 보도에서 양 회장의 엽기행각에 대해 인터뷰를 한 당사자이다. 양 전 회장은 지난 2월 21일 공판에서 상습폭행과 강요 혐의에 대해 부인한 바 있다.
유 씨는 양 전 회장의 강요 등에 대한 검찰의 질문에 겨자, 생마늘 등을 강제로 먹은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2011년 2월경 사무실 근처 중국집에서 양 회장이 국자 가득 올린 겨자를 내 입에 억지로 넣었다”면서 “워크숍에 갔던 직원이 상추를 잘 씻지 못해 해고됐다는 소문을 들어 (양 회장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경우 인사상 불이익이 올까봐 (겨자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연수원에서 생마늘 한주먹을 강제로 먹었던 일화도 소개했다.
“양 회장이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따라서 한 번에 마시게 한 후 건배사를 하라고 수차례 요구했습니다. 이후 안주라면서 주방에서 마늘을 한 주먹 가져와서 쌈장을 덕지덕지 발라 본인 입에 억지로 넣었습니다.”
그는 “양 회장이 무조건 (마늘을) 다 먹으라고 말했고, 뱉으면 더한 걸 먹어야 할 수도 있어 뱉을 수 없었다”면서 “눈물을 머금고 마늘을 억지로 먹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피고인석에 앉은 양 전 회장은 입가에 웃음을 띤 채 유씨를 바라봤다.
정체불명의 알약을 직원들에게 먹였다는 진술도 이어졌다. 유 모씨는 “2014년 4월 이지원인터넷서비스 회장 직무실에서 정체불명의 알약 2개를 먹었다”면서 “직원들 사이에서는 설사약이라고 소문이 났고, 본인은 설사를 각오하고 먹었다. 결국 그 알약을 먹고 설사를 7번 했다”고 말했다.
양 전 회장 측은 이를 영양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양 전 회장 변호인은 반대 신문에서 유씨가 먹은 약이 설사약이 아니라는 취지의 질문을 했지만, 유 씨는 “(양진호 회장이) 피로회복제를 나눠준 적 없다”고 반박했다.
유 씨는 양 회장이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전 직원 강아무개 씨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뺨을 두 번 내리쳤던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직원 강 씨를 향한 양 회장의) 타격 장면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강 씨가 사무실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면서 “(내가) 근무하는 자리에서 직원 강 씨를 향한 양 회장의 폭행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그는 “(제3자가 보기에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당시 회사 분위기에서는 직원들이 어떤 액션을 취하면 본인들에게 불이익이 올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면서 “양 회장은 직원들이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권력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유 씨는 양 회장이 ‘제왕으로 군림한 한 사례’를 설명했다.
“2011년 서울구치소에서 양 회장이 보석으로 석방될 때 모 임원의 지시로 대리급 이상 직원 20~30명 가량이 구치소로 마중을 나갔습니다. 그때가 9월 말 오후 9시로 추운 날씨에 2~3시간 대기하다가 양 회장이 나올 때 박수를 쳤습니다.”
검찰 측의 증인 신문이 끝나자 양 회장의 변호인이 반대 신문을 했다.
변호인은 전 직원 강아무개 씨가 양 회장을 사칭해 사내 게시판에 게시물을 작성한 일을 언급했다. 그는 유 씨에게 이렇게 물었다.
“양 회장이 아무리 대표 이사지만, 직원을 폭행한 사람인데 법무팀장으로서 (양진호 회장을) 왜 고발조치를 하지 않았습니까?”
유 씨는 한동안 질문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잠시 뒤 유 씨는 “법무팀은 전 직원 강 모씨 폭행한 혐의로 양진호 회장을 고발하지 못했다”라고 짧게 답했다.
변호인은 직원 부당해고는 소문에 그친 것이 아닌지 캐묻기도 했다. 그는 “법무팀장으로서 어떤 직원이 억울하게 해고를 당하였고, 누구한테 그 이야기를 들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유모 씨에게 요구했다.
유 씨는 “부당해고를 당한 직원을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지만, 양 전 회장 변호인의 추궁이 이어지자 “내가 부당해고를 당했다. 그러면 질문에 충족한 것인가”라고 반박했다.
이어 유 씨는 “양 회장의 부당해고에 대해 (내가) 고소를 할 예정이라 답하기 어렵다”며 더 이상의 답을 피했다.
검찰 측은 “증인 유 씨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용기를 갖고 공개 재판에서 나왔다”면서 양 전 회장 측 변호인의 질문에 대해 판사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양 전 회장 변호인은 “<뉴스타파> 보도 다음날 경기남부경찰청 직원이 강릉경찰서로 와서 진술을 받았고 그 직후 양 전 회장의 수사가 진행됐다”며 “경찰이 유 씨의 번호를 어떻게 알고 직접 연락해 출석을 해달라고 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며 유씨의 경찰 조사 시점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제3차 공판은 다음달 29일 오후 4시에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