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나의 이야기다. 마을버스 기사에게 성희롱을 당했고, 지난 한 달을 싸웠다. 경찰서를 찾아갔고, 구청과 마을버스 운임회사와 다퉜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는 여전히 운전대를 잡고 있다.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대중교통 기사에게 성희롱을 당해도 왜 경찰과 구청은 별다른 조치를 못 하는지, 이 사건을 통해 깨달았다.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결국 나는 졌다. 지지 않았으면 이 글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연재가 우리 사회의 이면을 진단하는 문진표가 되길 바란다.

“안전하게(?) 성희롱하시려면 휴대전화를 쓰세요.”

마포 13번 마을버스 기사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지인들에게 글을 썼다. ‘가해자는 처벌받을 것이다’는 생각이 경찰서에서 깨진 뒤의 일이다. 우리 법에는 내게 성희롱을 한 가해자를 처벌할 법 조항이 없었다. 성희롱의 ‘강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성희롱의 ‘방법’이 문제가 됐다. ‘휴대전화 화면’을 활용한 것이 가해자는 처벌하지 못하는 이유다. 

법에는 빈틈이 존재하고, 그 틈을 노리는 게 능력(?)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혹시 내가 당한 것도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사건이 벌어지고 한참 뒤였다. 가해자는 법망을 교묘히 피해갔다. 알고보니 유명한 성희롱 ‘수법’이었다.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될 정도로 이 수법은 알려져 잘 있다. 반 년 전에 나온 관련 보도도 있다.

이 모든 걸 서울 마포경찰서를 찾은 지난 3월 6일까지 알지 못했다. 당시에는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경찰서를 찾았다. 기자가 아닌 민원인으로 찾은 경찰서는 색달랐다. 신분증을 내고 방문증을 받아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친절한 대응에 기분이 좋았다. 여성청소년계 여자 경찰이 상담실로 나를 안내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마을버스가 성희롱을 해서요. 신고하려고요.”

난 혐의 입증에 자신 있었다. 마음도 가벼웠다.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에 버스에는 CCTV가 돌아가고 있었다. 거기에 버스 기사가 휴대전화로 내게 음란물을 보여주는 순간이 찍혀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물증도 있었다. 일이 벌어지고 나서 20분 후, 가해 기사와 나눈 대화에서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에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도 남아 있다.

‘피해자가 피해를 직접 증명해야만 한다‘는 게 어김없이 적용된 점은 유쾌하지 않았다. 지난 미투 운동을 보면서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직접 포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무고로 몰리지 않는다고 취재 과정에서 간접 경험으로 깨달았다. 사건 직후 버스기사와 다시 만나 문제의 대화를 동영상으로 담은 이유다.

정말 괴로운 일은 따로 있다. 일부 사람들 반응이다. 가해 버스 기사와 농담 몇 번 주고받은 적이 있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피해의 여지를 만든 것 아니냐’고 누군가 말했다. 미투 운동 후에도 피해자에게 성범죄 책임을 묻는 문화는 여전하다. ‘기자’라는 직업을 미리 알렸는지 여부를 묻는 이도 있었다. 왜 이 사실이 변수가 되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어렵게 찍은 동영상에서는 버스 기사가 문제의 사진을 다시 꺼내 보이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그가 화면으로 보여준 사진은 10대로 추정되는 여성이었다. 얇은 천으로 알몸을 살짝 가렸고, 누군가 그 천을 걷어 올리려는 모습. 기사는 카메라 든 나를 보고 당황했다. 그 모습도 영상에 담겼다.

“지금 고발하시려고요? 왜 찍으세요?

“아저씨. 아까도 지금도 제게 성희롱하신 거잖아요.”

“오해하신 겁니다.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친구가 이 사진을 보내고 나서 문자판이 안 열려요.”

“저는 정식으로 모든 조치를 취할 겁니다.”

마을버스 마포 13번 내부 모습. ⓒ이명선

자신했던 이 물증은 쓸모가 없었다. 경찰은 가해자를 처벌할 길이 없다고 했다. 그들은 “내가 당한 사건 자체가 범죄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버스기사가 성기를 찍어 보여줬다고 해도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화면‘으로 오직 ’한 명‘에게만 음란물을 보여줬기 때문에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법률이 없다고 했다. 공연성도 없고 통신망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찰이 설명한, 내 사건과 관련되는 법은 총 세 가지였다. 1)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13조(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와 2)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제44조7(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3) <형법> 제245조(공연음란).

<성폭력처벌법 제13조(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전화, 우편, 컴퓨터,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하여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제44조7 (불법정보의 유통금지 등)>

① 누구든지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정보를 유통하여서는 아니 된다.

1. 음란한 부호·문언·음향·화상 또는 영상을 배포·판매·임대하거나 공공연하게 전시하는 내용의 정보

<형법 제245조(공연음란)>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일단 공연성이 없기 때문에 적용이 안 됩니다. 한 명에게만 보여줬으니까요. 휴대전화라는 기기를 활용해서 성희롱하기는 했는데 ‘통신망’을 활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사를 개시할 수 없어요. 법적 근거가 없어서요. 현존하는 법의 한계죠. – 마포경찰서 여청과 관계자”

헛웃음이 터졌다. 경찰은 음란물을 나에게만 보여줬기 때문에 혐의 적용이 안 된다고 말했다. ’공연성‘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면,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사건은 버스에 나 혼자 있을 때 벌어졌다. 여성 혼자 있는 상황을 노리고 성희롱 한 것이라는 의심이 든 것은 그 때문이다.

경찰은 가해자가 ‘통신망’을 쓰지 않아 처벌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만약 버스 기사가 같은 사진을 내게 문자로 보냈다면 처벌할 수 있다. 전화, 우편, 컴퓨터, 그 밖의 통신매체를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해자는 법을 교묘하게 피해갔다. 무슨 방법을 써도 내가 느끼는 불쾌함은 같겠지만, 그런 건 고려 사항이 아니다.

내 일은 최근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된 ‘택시기사 야동 사건’과 닮았다. 지난 12월 한 직장인은 택시를 탔다가 음란 동영상을 보고 있는 택시 기사를 만난 후 인터넷상에 당시 상황이 찍힌 사진과 글을 올렸다. 글쓴이는 “택시 기사가 ‘(야한 동영상) 소리 좀 키울게요’라고 말하면서 동영상 내용을 설명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최근 보도된 경향신문 기사에서도 비슷한 피해 사실이 확인됐다. 지난해 7월, 지하철역에서 노숙하는 사람이 지나는 여성들에게 성기 사진을 보여준 A씨가 붙잡혔지만, 경찰이 혐의 적용에 어려움을 겪었다. 처음에는 ‘강제추행’ 혐의로 A씨를 불구속입건했지만, 나중에는 ‘공연음란죄’ 적용을 검토하는 등 경찰 내부에서도 적용 혐의를 두고 혼란을 겪었다.

‘택시기사 야동 사건’이든 ‘노숙인 휴대전화 음란사진 사건’이든 비슷한 사건이 벌어져도 가해자를 처벌하기는 어렵다. 홀로 피해를 당했고, 통신망을 이용해 음란물을 상대방에게 전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피해 사실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성희롱 버스기사는 오늘도 운전중’ 기획 1화가 나가고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저는 아이가 다니던 교회 어린이집 경비아저씨와 교회일 도와주는 아저씨 둘이 엄마들에게 음란물을 보여줬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한테도 ‘저기 애기 엄마, 핸드폰을 쓸 줄 몰라서 그러는데’하며 다가오길래 ‘저는 몰라요’ 하며 피했어요. 남편이 어린이집에 알리고 따졌지만 원장은 ‘그럴 분이 아니다, 순순한 분들이다’며 감싸더라고요. – 김 모 씨”

경찰서를 빠져나오며 찍은 사진 ⓒ이명선

사실 법의 빈틈은 이전에도 많았다. 법원은 내연남과의 성관계 동영상이 재생되는 컴퓨터 화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전송한 여성에게 지난 1월에 무죄를 선고했다.

다행히 지난해 12월에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이제는 성범죄 영상물을 재촬영해 유포해면 처벌받는다. 이런 식의 빈틈이 얼마나 많을까. 신민영 형사전문 변호사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나라는 죄형법정주의다 보니까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그 행위에 대한 기준이나 형벌이 규정되어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휴대전화 화면으로 음란물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우리 법에 없어요. 영상 장비를 누구나 들고 다니지만, 스마트폰을 활용한 범죄에 대해서는 법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 법무법인 예현 신민영 변호사”

경찰서를 빠져나오며 경찰서 정문을 사진으로 남겼다. ‘끝까지 싸워서 바꾸리라’ 마음을 먹고 돌아섰다. 제2의 피해자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혹시 내가 찍은 물증이 사라질까봐 여러 장치에 복사해 뒀다. 그 후 마포구청으로 전화를 걸었다. 형사절차 외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내 의지는 반감됐다. 싸움이 쉽지 않을 것이란 느낌이 확신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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