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해 인천생활예술고등학교 교장에게는 ‘비밀 장부’가 있다. 교장을 대신해 학교 행정실 직원이 관리하는 문서다. 2014년 5월 13일부터 작성된 이 컴퓨터 파일의 이름은 ‘교장 선생님 지출’이다.
MS 엑셀 파일인 이 문서에는 비밀번호가 설정돼 있어 특정 직원만 확인이 가능하다.
관리 방식은 이렇다. 장부에 돈이 떨어질 때 쯤 교장이 교직원에게 돈을 건넨다. 그 후 담당 교직원이 교장의 지출 내역을 보고 받아 정리하는 식이다.
관리는 교직원이 했지만, 교장의 지출은 모두 사적인 데 쓰였다. 교장의 개인 세금, 병원비, 미용비, 신발수선비 등이 지출 항목에 빼곡히 적혀 있다. 아들인 김아무개 영어 교사 연말정산을 낸 이력도 문서에서 확인된다.
단순히 교장 개인 가계부라면, 이 ‘비밀 장부’ 자체를 문제로 지적하기는 어렵다. 교직원에게 교장의 가계부를 정리하게 한 ‘갑질’ 등은 지적할 수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다. 이영해 교장이 학생 돈에 손을 댄 정황이 다수 보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학교에 낸 돈 중 일부가 이 교장 개인 계좌로 흘러간 정황이 비밀 장부에서 확인된다.
교장, 학생들이 낸 ‘고3 졸업선물비’ 빼돌렸다
교장이 학생 돈을 빼돌린 것으로 추정되는 첫 번째 사례는 졸업생 선물 대금이다.
인천생활예술고에는 재학생들이 졸업생에게 졸업 선물을 주는 전통이 있었다. 1,2학년 학생들이 소정의 돈을 내면 학교가 이 자금으로 졸업생들에게 선물을 사주는 방식이었다.
”2018년까지는 후배가 선배 졸업 축하 선물을 주는 전통이 있었어요. 담임 선생님들이 재학생들에게 돈을 걷으면 학교가 그 돈으로 대신 졸업선물을 샀죠.” – 전직 교사 A씨
인천생활예술고에서 작성한 ‘2016년 3학년 졸업선물 대금’이라는 문서를 보면 1,2학년 학생들은 1인당 2000원씩 낸 듯하다. 이 문서에 따르면 2016년 당시 고1, 고2 학생 781명이 총 156만2000원을 모았다. 학교는 이렇게 모은 돈으로 졸업생 이름을 도장에 새겨 선물로 나눠줬다.
”졸업식 할 때 쯤 도장을 선물로 받았어요. 저도 선배들 졸업 선물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학교에 냈었고요.” – 2015년 2월 졸업생 B씨
‘2016년 3학년 졸업선물 대금’ 문서에 따르면 2016년에는 졸업생 선물 비용으로 134만 원가량을 썼고, 21만4800원이 남았다. 남은 금액이 크든 작든, 이런 경우에는 이듬해 선물 비용으로 이월하거나, 학생들에게 돌려주는 게 상식적인 일처리다. 하지만 인천생활예술고에서는 엉뚱하게도 교장 개인 장부로 흘러갔다.
교장 비밀 장부인 ‘교장 선생님 지출’ 문서의 2017년 2월 20일 수입란을 보면 ‘3학년 도장대금 잔액’이라는 설명과 함께 21만4800원이 입금된 것이 확인된다.
‘2016년 3학년 졸업선물 대금’ 문서에 적힌 잔액과 ‘교장 선생님 지출’의 ‘3학년 도장대금 잔액’이 ‘21만4800원’으로 정확히 일치한다. 결제 직후 입금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은 2017년도에만 벌어지지 않았다. 졸업생 선물 비용 중 일부는 2015, 2016년에도 이영해 교장 장부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교장 선생님 지출’ 문서를 보면 2015년 4월 6일에 ‘도장값 수입’ 명목으로 11만6000원이 입금됐다. 2016년 2월 11일에는 ‘도장 수입’이란 설명과 함께 29만8000원이 들어왔다.
문서상 금액을 합하면 학생들이 고3 졸업선물로 낸 돈 62만8800원이 교장 주머니로 흘러갔다.
”교장, 전학생이 낸 교비도 챙겼다“
이영해 교장 개인 장부에는 교육비도 등장한다.
2014년 7월부터 2015년 4월 사이 학생들이 낸 교육비 일부가 ‘교장 선생님 지출’ 문서에서 발견된다. 문서에는 학생 이름, 반, 금액이 적혀 있고, 그 앞에는 ‘보관’이라고 표시했다.
하지만 말처럼 ‘보관’은 되지 않았다. 이영해 교장은 학생 돈을 사적으로 썼다.
장부에 등장하는 학생은 모두 12명으로 1학년 11명, 2학년이 1명이다. 이들은 모두 전학을 온 학생으로 추정된다. 전학생은 출석부상 마지막 번호인데, 졸업생 진술에 따르면 상당수가 그랬다.
학생 12명이 낸 돈을 합하면 679만 원이다. 장부에 이름이 나오지는 않지만, 학생 돈으로 추정되는 금액까지 모두 더하면 총 737만 원이 교장 가계부에 입금된 셈이다.
학생 12명의 공통점은 또 있다. 모두 미용과 학생이다. 장부에 적힌 금액으로 추정컨대, 신입생에게 부과하는 미용 재료비일 가능성이 크다.
인천생활예술고 미용과 학생들은 입학할 때 미용 재료비 명목으로 약 60만 원을 납부한다. 3년 치를 한꺼번에 내기 때문에 다른 학과에 비해서 입학할 때 드는 비용이 크다.
“그 학교로 전학간 것은 맞아요. 엄마가 교육비를 냈는데 그때 CMS 이런 게 아니고 현금을 냈다고 하셨어요.” – 2018년 2월 미용예술과 졸업생 C씨
‘교장 선생님 지출’ 문서에 이영해 교장이 학생들을 위해 지출한 항목이 있기는 하다. 2014년 12월부터 2015년 4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약 139만 원이 미용 재료비로 지출했다. 하지만 이게 전부다.
많게는 학생들이 낸 돈 약 800만 원이 교장 개인 장부로 흘러간 듯하지만, 교육비로 지출된 건 139만 원에 불과하다.
“명절 인사 명목으로 교장에게 돈 줬다”
교사들도 이영해 교장에게 돈을 줬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전직 교사 D씨는 교무실 안에 ‘촌지 문화’가 오랜 기간 존재했다고 고백했다. 정교사들만 하는 일종의 성의 표시(?)라고 했다.
D씨는 “나도 과거에 교장에게 ‘조공’을 했다”면서 과거의 일을 풀어놨다.
“관례 같은 거였어요.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지만, 설날과 추석 모두 (이영해 교장에게) 돈을 준 적이 있습니다.” – 전직 교사 D씨.
현직 교사 E씨는 특이한 방식으로 ‘상납’을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아들 김아무개 영어 교사 결혼식 무렵에 이 교장은 “축의금을 2배로 내라”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여러 교사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이영해 교장은 “너희는 내 부하직원이기도 하지만, 아들 동료이기도 하니까 축의금을 2배 내라”면서 김영란법을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때 교장이랑 친한 선생님들은 축의금 10만 원 이상 냈을 거예요. 교장 아들 김 선생님 결혼식이 하필 추석 무렵이었거든요. 축의금과 별도로 명절 인사 명목으로 교장에게 돈을 더 준 선생님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 현직 교사 E씨
이영해 교장 “교사로부터 돈 받은 적 없다”
이영해 교장은 “교사에게 돈을 받은 적 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런 적 없다”고 부인했다. 이 교장은 “만약 그런 교사가 있으면 지금 바로 고소하라고 전해달라”고 말했다.
이 교장은 다른 질문에는 대답을 피했다. 학생 교육비를 개인 장부에 넣었는지 여부, 졸업생 선물 비용을 사적으로 유용했는지 여부를 묻자마자, 이 교장은 기자의 접촉을 피하기 시작했다. 전화와 문자메시지에 일체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더불어 학교 측은 여전히 전현직 교사들을 상대로 회유를 진행중이다.
교장 아들인 영어 교사 김 씨는 이유 없이 수업에 안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다고 재학생 F씨가 전했다. F씨는 “<셜록> 기사가 발행되는 날에는 김 선생님이 수업에 안 들어온다”고 말했다.
“기사 나올 때마다 김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안 들어와요. 출장 갔다고 하는데, 보니까 학교에 있더라고요. – 재학생 F씨”
다음 기사는 ‘교장의 또 다른 갑질’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