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오지 말고, 오전 10시까지 ○○중학교로 바로 와.”
신입생 모집 홍보기간이 다가오자 A 학생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2017년 가을의 일이다. 백아무개 부장 교사는 영업인력(?)으로 차출된 A 학생에게 “등교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한 해 전인 2016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신아무개 교사가 A 학생에게 결석해도 된다고 허락했다.
A 학생 집은 경기도 시흥에 있었다. 홍보를 갈 ○○중학교도 시흥에 위치했다. 당시 교사들은 일종의 배려 차원에서 A 학생에게 등교를 하지 말라고 말한 듯하다.
이런 방식으로 A 학생이 등교하지 않은 날은 1년에 대략 5일 정도. A 학생은 2년 연속 차출됐으니, 신입생 홍보 때문에 학교에 못 간 날은 총 열흘 정도다.
인천생활예술고는 이렇게 등교하지 않은 학생들의 학생부를 출석한 것으로 꾸몄다. 학생부를 조작해 이 사실을 감췄다.
“홍보 때문에 출석 못 했다고 하면, 선생님들이 알아서 출석 체크 해준다고 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애도 그렇게 처리해준다고 들었고요.” – 2018년 2월 졸업생 A씨.
B 학생의 사정은 더 했다. 그 학생은 시험을 보는 도중에 동원됐다. 아침 일찍부터 권아무개 교사가 B 학생을 포함한 아이들에게 “대충 (답을) 찍고 나오라”고 공지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시험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B 학생은 교사의 ‘동원 명령’에 따라 답을 엉터리로 찍고 나왔다.
당시 B 학생은 고3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르는 중이었다. 졸업고사라고 부르는 고3 기말고사는 하루에 한 과목만 보기 때문에 열흘 가까이 진행된다. 신입생 홍보는 이때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오전 10시면 시험이 끝나기 때문에, 홍보 담당 교사들은 이 기간에 학생들을 아침 일찍부터 데리고 나갔다.
“제가 거기서 교사로 일하면서 시험 감독을 한 적이 있는데요. 갑자기 어느 선생님이 ‘빨리 찍고 나와’ 이렇게 학생들에게 얘기하는 거예요. – 전직 교사 C씨.
시험기간에 학생들을 신입생 홍보 활동에 동원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시험기간에 일찍 하교하면 많은 학생은 다음날 시험을 대비해 공부를 한다. 인천생활예술고는 이런 시험기간을 오히려 홍보기간으로 활용했다. 학교 측은 오전 10시에 시험을 마친 학생들을 이끌고 오후 4시가 넘도록 신입생 영업을 시켰다. 홍보기간은 통상 2주 정도다.
“홍보 스케줄 표 같은 게 있어요. 거기에 맞춰서 움직이는 거예요. 만약 홍보 담당 선생님이 ‘1교시에 출발할게요’ 이렇게 말하면 저희는 시험도 못 보고 끌려가는 거예요. 만약 4교시부터 홍보를 나선다고 하면, 학교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도 그때까지 선생님을 기다려야했어요.” – 2019년 2월 졸업생 B씨.
“대충 찍고 홍보 나서라”… 시험 성적은 ‘공결’ 처리
신입생 영업에 끌려가느라 시험을 보지 못한 학생들의 성적은 어떻게 처리될까.
여기서 ‘공결’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시험을 보지 않고 홍보를 갔다면 학교는 해당 학생의 성적을 임의로 처리했다. 국어, 영어 같은 주요 과목은 중간고사 성적을 그대로 줬고, 체육 등 예체능 과목은 학과 평균 점수를 줬다고 다수가 증언했다. 이런 과정을 “공결처리”로 불렀다. 실제로 졸업고사를 보지 않았는데 공결처리한 정황은 여럿 존재했다.
“학교 시험 중 학생들을 교실에서 무작위로 빼내 작년과 똑같은 점수 혹은 평균점수를 주고 홍보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출석부와 생활기록부 조작은 큰 범죄인 것으로 압니다.” – 현직 교사 D씨.
학교의 이런 조작은 학생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올해 인천생활예술고를 졸업한 E 학생은 고3었던 지난해에 특별한 진로를 준비하고 있어서 졸업시험 의미가 컸다. 고등학교 내신 성적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상황이었다. E 학생은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신입생 홍보 영업을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고2때도 신입생 홍보 일에 차출됐던 E 학생은 교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영업 경험자이니 교사들은 이번에도 E 학생이 나서주길 바랐다. 결국 E 학생은 교사들의 성화에 못 이겨 고3 졸업시험을 치는 와중에 영업을 다녔다.
“시험 10분 안에 다 풀고 나올 수 있지? 9시 ○○분까지 요 앞에서 모이자.”
고3이라고 학교에서 배려해주는 건 없었다. 홍보 담당 교사의 태도는 그대로였다. ‘시험을 빨리 치면 그만 아니냐’는 식으로 말했다. 당시 E 학생은 ‘공결’의 개념을 알지 못했다. 졸업고사 시작 10분 전 담임 교사가 카카오톡으로 “홍보에 나가는 학생 중 공결처리를 원하는 사람은 말하라”라고 했지만, E 학생은 그 때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해 답하지 못했다.
E 학생은 홍보 담당 교사가 말한 집합시간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험을 대충 찍고 밖으로 나갔다. 계산이 필요한 문항이 많아 시간이 필요한 시험이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E 학생은 결국 아무렇게 답을 표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사들이 고3 졸업시험보다 신입생 홍보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E 학생은 생각했다.
뒤늦게 친구를 통해서 ‘공결’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E 학생은 담임 교사와 홍보 담당 교사를 찾아가 “‘공결’이 무엇인지 몰라서 신청을 못 했고, 신입생 홍보 때문에 시험을 다 찍고 나왔으니 이제라도 공결처리를 해달라”요구했다. 교사들은 “이미 다 끝난 문제니 돌이킬 수 없다”고 말했다.
E 학생은 형편없는 점수를 받고 졸업해야했다.
“홍보를 부탁해서 나갔지만, 저에게 득은 없고 중요한 점수만 떨어진 거죠. 나중엔 선생님이 ‘나 몰라’ 하시고 오히려 내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말씀하셨어요. 어떤 선생님은 저한테 ‘10분이면 다 풀 수 있는 거 아니냐’라고 다그치기도 했어요.” – 2019년 2월 졸업생 E씨.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결시생에게 임의로 성적을 주거나, 출석하지 않은 학생에게 출석을 했다고 표기해서는 안 된다. 학생부 조작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인천생활예술고 2018년도 규정집>에도 이런 사실은 적시되어 있다. 천재지변이 벌어지거나 법정 감염병에 걸린 경우 등이 아니면 출석으로 처리할 수 ‘없다’고 나와 있다.
올해 개정한 규정집에서는 관련 규정이 더욱 강화됐다. <인천생활예술고 2019년도 규정집>에 따르면 ‘과목별 지필평가나 수행평가에 참여하지 못한 학생(결시생)의 성적처리’를 위해서는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정집은 허울에 불과했다.
“모든 학생들이 공평하게 따라야 할 학칙을 본교 노래연기과 재학생이 데뷔했다는 이유로 ‘예외’를 적용했어요. 매주 금요일 방송을 촬영하는 학생의 출석을 공결처리 하였고, 교사들끼리 암묵적으로 결석한 학생들의 출석부를 조작해 생활기록부에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 현직 교사 D씨.
“집에는 알아서 돌아가라”.. 비싼 등록금에도 ‘보충 수업’ 없어
신입생 영업에 동원된 학생들은 자비를 쓰기도 했다. 학교는 종종 2천 원 정도의 교통비를 지급했지만, 안 주는 경우도 많았다. 학생들을 길에 두고 교사만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학생들은 ‘알아서’ 집에 가야했다. B와 E 학생은 지난해 경기도 시흥이 있는 오이도에 ‘버려지는’ 바람에 30분 동안 하염없이 걸었던 일을 기억했다.
B와 E 학생에 따르면, 당시 백아무개, 신아무개 교사가 학생들에게 “알아서 귀가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길가에서 스마트폰을 이용해 가까운 역을 찾았다고 말했다. 당시 집으로 갈 차비가 없던 고2 학생이 있었는데, 이 후배를 위해 고3 선배들이 몇 백 원씩 걷었다고 전했다.
“‘오이도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 많을 거예요. 선생님이 다음날 학교에서 교통비 주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말을 바꾸시는 거예요. 결국 교통비를 주지 않았어요.” – 2019년 2월 졸업생 E씨.
학교는 신입생 영업에 동원된 학생들에게 ‘봉사시간’을 줬다. 영업을 나간 학생 처지에서는 이런 부당거래도 없다. 노래연기과 학생에게 이 거래는 진학에 더 방해가 됐다. 노래연기과 학생들은 홍보를 나가면 노래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중학교 반마다 돌아다니면서 짧은 공연을 해야 했기 때문에 대입 실기시험을 앞두고 목이 상하는 일도 벌어졌다.
“교사보다 학생들이 더 바빠요. 2주에 걸쳐서 풀타임으로 홍보를 뛰는 경우도 있거든요. 입학에 관심 있는 중학생이 뭔가 물어보면 받아줘야 해서 학생들이 자기 휴대전화 번호나 SNS 계정을 알려주기도 해요. 하교 후에도 일을 하는 거죠.” – 전직 교사 F씨.
인천생활예술고 노래연기과는 등록금도 비싸다. 실기 수업비용과 시설이용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분기별로 60만 원 가까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나머지 35만 원은 정부에서 지원한다. 하지만 학교 측은 홍보 때문에 학생들이 며칠씩 수업을 빠져도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사실 홍보기간 뿐만 아니라, 노래연기과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단축수업을 자주 한다.
“(영업 때문에) 전공시간을 빠지면 보충수업 같은 걸 해줘야 하는데 안 해줘요. 저희가 얘기를 해봐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항상 넘겼습니다. 저희는 다른 과에 비해 몇 배나 더 비싼 돈을 내는데, 보충수업은커녕 그냥 계속 넘어가버립니다.” – 재학생 G씨.
교사들 실적 압박 시달려.. “너는 실적 낮으니 적게 먹어라”
인천생활예술고는 왜 이렇게 학교 홍보에 매달릴까.
학력인정학교인 인천생활예술고는 100% 지원을 통해서 신입생을 모집한다. 신입생 지원자 수가 줄면 정원을 채울 수 없다. 정원이 줄면 국가가 주는 지원금이 줄어든다. 지원금이 줄면 학교 존폐가 흔들린다. 고로 학교의 존립을 위해 학생 학습권까지 침해하며 홍보에 매진하는 것이다.
매년 홍보에 동원된 학생은 100여명으로 추측된다. 학교 정원이 1100여명인 것을 감안하면 매년 10분의1 규모다. 학교는 스쿨버스까지 활용했다. 스쿨버스로 학생들을 태워서 영업할 학교에 내려줬다. 스쿨버스가 학생들을 다시 학교로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일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학생과 교사들이 말하는 홍보의 문제점은 더 있다. 학교 측에서 ‘예쁘고 키 큰 학생들’을 선별해서 영업을 보냈다고 공통적으로 말했다.
일부 교직원이 “넌 예쁘니까 홍보 가야지”라며 학생을 설득했다고 다수가 증언했다. 관련 지시를 이영해 교장이 직접 내렸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교직원들에 따르면 이 교장은 회의시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홍보에 예쁘고 키 큰 애들을 데려 가세요.”
“얼마나 학교가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냐면, 노래연기과는 오디션을 통해서 학생들을 뽑는데, ‘가창력’, ‘액팅’ 이런 항목들이 평가요소로 들어가요. 근데 조아무개 부장이 ‘외모’를 평가항목으로 넣자고 제안한 거예요.
기간제 선생님들이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도 나중에 ”그럼 메모란에라도 외모에 대해 적는 게 어떠냐” 식으로 얘기했어요. 노래연기과 선생님들이기 그 얘기를 자주 하면서 학생들에게 미안함을 많이 느꼈어요. 말을 못하니까요.“ – 전직 교사 C씨.
이렇게 뽑힌 학생들은 ‘홍보 멘트 외우기’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학교는 신입생 홍보를 위해서 팀을 구성했다. 홍보 멘트를 외우게 하는 당번 교사를 정했고, 학생들이 ‘잘 외웠나’ 확인하도록 했다. 학생들이 외워야하는 홍보 멘트는 한글 문서에서 글자 크기 10포인트로 A4 용지 1장이 넘어갈 정도로 길었다.
“홍보 멘트가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보안에 신경쓰도록 당부했어요. 족보처럼 내려오는 종이를 그대로 외우게 시켰어요.” – 전직 교사 F씨.
<‘2017 중학교 홍보용 안내 멘트’ 일부 발췌>
학교 인정을 받으려면 시설 인정과 학력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저희 학교는 운동장 규모가 조금 작아 학력인정고등학교이나 일반 고등학교와 같이 대학진학에 있어서 타 학교와 차이가 없으며 모든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졸업장이 수여됩니다. (기자 설명 : 실제로는 대학 진학에 제한이 있다.)
현재 대학입시는 정원의 70% 이상을 수시모집을 통해 뽑는데 수시모집은 내신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인문계에서의 1등급과 전문계에서의 1등급이 같기 때문에 전문계 고등학교에서 내신 관리를 잘하는 게 대학 입시에 있어 매우 유리하다.
* 대학 소개할 때 반드시 팜플렛에 나와 있는 대학 현황을 꼭 말해주세요
교사들이 느끼는 압박도 심했다. 영업 실적(?)이 좋지 않으면 이영해 교장은 은근히 교사를 타박했다고 한다. 이 교장은 “네가 제대로 안 해서 신입생이 적은 것”이라면서 공개적으로 담당 교사를 비난했다고 증언이 있다. 이 교장은 회식 때에는 신입생 모집을 상대적으로 적게 한 교사에게 “너는 많이 먹으면 안 되지”라고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제가 무슨 영업사원도 아니고, 학생들이 물건도 아니고, 신입생을 실적으로 생각하는 게 바로 이영해 교장이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요. 제가 퇴사를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그거예요.“ – 전직 교사 H씨.
인천생활예술고 “스쿨버스가 홍보학생들 하교 도왔다”
이런 문제에 대해 인천생활예술고는 스쿨버스나 전세버스로 홍보를 마친 학생들을 다시 학교에 데리고 왔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이영해 교장은 “하교 시간 전에 홍보가 끝나면 버스를 통해 다시 인천생활예술고로 돌아오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애들이 낯선 곳에서 하교하는 건 어렵죠. 학교에서 직접 하교하는 게 좋기 때문에 학교로 다시 학생들을 데려오도록 했습니다.” – 이영해 교장.
인천생활예술고의 신입생 홍보 전략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셜록>의 보도 이후 과거에 이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이영해 교장이 교감이던 시절부터 학생을 동원해 공격적으로 신입생 홍보에 나섰다”고 말했다.
“저도 홍보반으로 뽑힌 사람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우선 홍보반은 외모를 제일 처음 보고, 그 당시 (이영해) 교감이 어느 정도 선출합니다. 잘생기고 예쁜 아이들만 뽑고요. 물론 홍보를 희망하는 학생을 받긴 해요. 근데 교감이 외모차별을 심하게 하면서 차별대우를 합니다.” – 2007년 2월 졸업생 I씨.
다음 기사도 학생에 대한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