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제처럼 혼자 밥을 먹는다. 곁에 앉거나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다. 동료 교사와 이야기하며 밥을 먹는 그 하찮은 자유를 잃은 지 오래다.
용기를 내 동료 교사가 앉은 식탁에 앉아 봤다. 곧바로 식판을 들고 일어나 다른 테이블로 가는 교사. 잡지 않았고, 같이 밥을 먹자는 말도 못 했다. 늘 그랬으니까. 그도 이 학교에서 살아 남아야 하니까.
동료들의 외면 속에서 혼자 묵묵히 밥을 씹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인가, 바퀴벌레인가.’
식사를 마치고 교무실에 가도 상황은 같다. 말을 걸거나 웃어 주는 교사는 없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를 거의 안 한다. 교사들이 모인 곳에 가면,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듯이 그와 동료들은 갈라진다.
학교에서 교사들과 웃으며 사적 대화를 나눈 게 언제가 마지막일까. 너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짧게 잡아도 10년은 된 듯하다. 그 시간을 곱씹으니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여기는 학교인가, 지옥인가.’
대구광역시 소재 사립 영남공업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교사 강철수(39세). 그는 영남공고 ‘10년 왕따 교사’다. 2006년부터 영남공고에서 일했으니, 교직 입문 3년여 뒤부터 잔혹사가 시작됐다.
교사 강철수가 걸어온 왕따의 역사는, 그의 할아버지 강시준의 소망이 뭉개진 길과 고스란히 겹친다.
송은 강시준(2016년 사망) 선생은 영남공고 설립자다. 그는 농사와 방앗간을 운영해 번 돈으로 1980년대 후반 영남공고를 설립했다. 20년 넘게 학교를 운영한 강시준 선생은 2009년 1월, 한국 사립학교 역사에서 보기 드문 선언을 했다.
“영남공고를 포함해 500억 원 상당의 가치를 지닌 재단 전체의 운영을 사회구성원들에게 맡기겠습니다. 사립학교 재단이 설립자 개인 소유물로 인식돼 후손들에게 대대로 물려지고, 또 돈으로 사고파는 행위가 벌어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건학 이념을 이어가기 위해선 교육에 대한 열정과 전문지식을 갖춘 이들에게 물려주는 게 바람직합니다.”
설립자가 직접 밝힌 학교 사회 환원. 여러 언론이 강시준 선생의 결정을 높이 평가했다. 강 선생은 2010년 2월 1일 발표한 ‘송은 선언문’을 통해 이렇게 못 박았다.
“설립자(송은 강시준)의 혈족 및 친인척은 향후 법인이사나 학교 경영에 일절 참여할 수 없고, 학교를 위해하거나 학교 발전을 저해하는 자는 어느 누구라도 학교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그의 여덟 자녀는 부친의 뜻을 따랐다. 이로써 선언문 앞의 내용, ’혈족 및 친인척 학교 경영 배제’는 쉽게 실현됐다. ‘송은 선언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영남공업고등학교 교직원들은 학교경영권의 사회 환원이라는 나의 정신을 계승하여 각자 주인의식을 가지고 투철한 국가관과 건전한 자유민주 시민정신, 애교심을 함양하여 2세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하여 우리 학교를 명문사학으로 만드는 데 최선의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영남공고는 어떻게 됐을까? 2016년 영남공고를 졸업한 정영훈(가명) 씨는 학교를 이렇게 추억한다.
“누가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냐고 물으면 저는 (고등학교를) 안 다녔다고 해요. 영남공고 이야기 자체를 안 해요. 거긴 거의 학교가 아니니까. 지금 1학년으로 돌아가면 저는 자퇴할 거예요. 동물의 세계였어요, 학교 자체가.”
동물의 왕국이 됐다는 학교. 현재 영남공고에서 근무하고 있거나 떠난 수십 명의 교사 증언에 비하면 ‘동물의 왕국’은 오히려 점잖은 표현에 속한다.
“정말 치가 떨려요. 학교를 장악한 허선윤 이사장은 깡패, 조직 폭력배 두목보다 비열한 사람이에요. 여성 교사들에게 임신포기 각서 강요, 교사 연애 금지, 이별–사직 강요, 노래방으로 교사 동원과 갈취, 폭행 교사, 채용 대가로 금품 요구… 인간이 할 수 있는 나쁜 짓은 다 했어요. 학교가 제대로 운영되겠습니까?”
여러 교사가 깡패, 조폭 두목으로 비유한 인물은 바로 허선윤 이사장이다. 영남공고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해 평생 근무한 허선윤. 그는 강시준 설립자가 학교 사회환원을 선언한 2009년 즈음부터 영남공고의 실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 즈음 허선윤 교장(2005년 2월~2014년 8월)이 설립자의 손자 강철수 교사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 허선윤은 강철수의 손을 꼭 잡았다.
“가까이 와바라. 니는 내 아들과 같데이. 믿제? 사람도 뿌리가 굵지 않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법이데이. 니는 주변 사람들 말 듣지 말고, 내 말만 들으면 된다. 알았제?”
늘 이런식이다. 앞에서는 “너는 내 아들” “우리는 한 가족” “같은 배를 탄 운명”이라고 했지만, 뒤에서는 이미 따돌림 지시가 내려진 상태였다.
“전날까지 밥 먹고 인사했던 선생님들이 갑자기 제 인사를 안 받는 거예요. 식당에서도 피하고… 갑자기 제가 징그러운 벌레가 된 기분이었어요.”
생애 처음 경험하는 왕따. 따돌림의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한 선배 교사가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윗분(허선윤)이 니랑 이야기를 하는 걸 싫어한다.”
학교를 장악해 가는 허선윤에게 학교에서 근무하는 설립자의 손자는 눈엣가시였을까? 그와 이야기를 하거나 식사라도 하는 교사는 부장교사나 교장, 교감에게 바로 호출을 당했다. 그들의 말은 구체적이고 분명했다.
“니 와 가랑 어울리노? 엉?”
“강철수랑 목례도 하지 말고, 이야기도 하지 마!”
질책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강철수와 이야기를 하거나 인사를 하면, 그도 왕따를 당했다. 기간제 교사는 정교사가 될 수 없다는 소문, 정교사는 기피 부서로 발령을 받거나 인사고과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학교에 정설로 퍼셨다. 살아남기 위해 동료들끼리 왕따 시키는 짐승의 시대는 그렇게 열렸다.
“모두가 저를 피하니까, 아침에 학교 출근할 때마다 죽으러 가는 기분이었죠. 자살을 꿈꾸기도 했고요.”
허선윤은 2014년 8월 31일 교장에서 정년퇴임해, 다음날 9월 1일 학교 이사장에 취임했다. 대구 시내 한 호텔에서 진행된 교장 퇴임식은 영남공고에 새로운 왕이 등극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자리였다.
평소 노래방, 노래주점을 좋아하는 허선윤 이사장을 위해 여러 기간제 교사 등은 퇴임식 때 무대에 올라 격정적으로 춤추고 노래했다. 어떻게든 잘 보여야 했으니까.
강철수에 대한 왕따는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됐다. 그는 많은 교사들이 참여하는 산악회에도 가입할 수 없었고, 여러 회식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학교 분위기를 잘 모르는 신입교사가 종종 학교 식당에서 강철수 앞에 앉곤 했다. 그러면 강철수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저랑 이렇게 밥 먹고 인사하면 다치십니다. 모른 척 하시고, 그냥 옆으로 가서 식사 하세요.”
2018년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영남공고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한 김OO 교사가 기억하는 강철수의 모습은 강렬하다. 그는 이렇게 증언했다.
“영남공고 교무실이 진짜 커요. 처음 출근해서 보니까, 강철수 선생님이 왕따라는 걸 바로 알겠더라고요. 아무도 그 사람에게 인사를 안 하고 투명인간 취급하는 거예요. 제가 좀 반골 기질이 있어서 애써 더 강 선생님과 친하게 지냈죠. 그러다가 저까지 왕따를 당했습니다. 간부들이 저를 불러서 ‘강철수랑 놀지말라’고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저는 영남공고에 아무 미련이 없어요. 기간제 계약 만료되고 바로 나왔습니다. 지금이 훨씬 행복합니다.”
김 교사의 말대로 영남공고에서 허선윤의 지시로 지독한 왕따를 당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수년 동안 왕따를 겪은 A교사는 이런 끔찍한 말을 했다.
“교무실에서 목숨을 끊어서 가해자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고통이 컸습니다.”
괴롭힘과 왕따를 겪은 한 여성 교사는 실제로 교무실에서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교사는 교무실에서 가위를 들고 자기 머리를 마구 잘랐다. 끝내 119로 실려 갔다.
허선윤이 영남공고 교장으로 일하기 시작한 2005년 이후 명예퇴직을 포함해 학교에서 사직한 교사는 100명이 넘는다. 교사는 이직률이 낮은 직업이다. 이들은 왜 이렇게 영남공고를 떠났을까. 한 교사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 번 당해보세요.”
10년 동안 당한 강철수는 왜 학교를 떠나지 않는 걸까.
“수백 번 떠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설립한 학교를 어떻게든 잘 지키고 싶습니다.”
혹시, 다른 족벌사학처럼 영남공고를 가문의 재산으로 여기는 건 아닐까?
“할아버지가 학교를 사회에 환원한다고 했을 때 저도 찬성했습니다. 어차피 저희 집안 사람들은 학교 이사진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학교버지가 그렇게 선언했으니까요. 교육자다운 사람들로 이사진이 꾸려져 학교다운 학교를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영남공고의 실내 체육관 이름은 ‘송은관’이다. 설립자의 호를 딴 이름이다. 운동장 쪽에는 강시준 선생의 동상이 있다. 학교 입구에는 ‘사회환원 기념비’가 있다. 곳곳에 강시준 선생의 흔적이 있는 학교에서 교사 강철수는 오늘도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모두가 가해자인 학교. 교사 수십 명이 왕따 지시자로 지목한 허선윤은 <셜록>이 취재를 시작하자 학교에 발길을 끊었다. 그는 반론을 거부하고 이렇게 말했다.
“저 심장이 약해요. 자꾸 전화하지 마세요.”
*허선윤 영남공고 이사장 승인 취소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