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이미 정해졌고, 교사들은 주는 대로 먹어야 했다. 메뉴판은 본 적 없고, 식탁에는 물도 없는 이 식당. 누군가 용기(?)를 내 물을 달라고 하면, 사장은 물 대신 눈치를 줬다.
식당 사장이 학교의 ‘넘버2’, 낮게 잡아도 부장교사 급은 되는 듯했다. 평교사 누구도 식당 사장에게 군소리를 못했다.
대구광역시에 있는 사립 영남공업고등학교 교직원은 약 10년간, 물도 안 주는 그 식당에서 회식을 했다. 다른 곳에서 모임을 하면 불이익을 받았다. 문제의 그 식당에 국민 세금 1억2570만 원 넘게 쓰였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꼭 가야만 했던 식당. 허선윤 영남공고 교장(현 이사장)은 그곳에서 세금을 자기 마음대로 썼다. 때로는 식당 매출을 자기가 관리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약 10년간 같은 식당에서 회식 강요. 이것은 집착인가, 유착인가.
“저희도 알고 싶어 죽겠습니다. 경주에서 1박2일 행사를 해도, 해남 땅끝마을 워크샵을 가도, 지리산 산행행사를 가도 마지막 저녁 식사는 꼭 그 식당에서 했습니다. 국민 세금 수백 만 원을 식당 사장에게 그냥 몰아주는 겁니다. 세금이 자기 용돈입니까?”
김민호(가명) 교사는 오랜 세월 끌려 다니며, 주는 대로 먹어야 했던 ‘짐승같은 세월’에 한이 쌓인 듯했다. 이쯤되면 의문은 하나 더 추가된다.
식당 사장 송OO과 허선윤 이사장은 동업자인가, 남남인가.
허선윤은 교사들의 회식 장소와 메뉴까지 꼼꼼하게 조종했다. 개인 사정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교사들은 퇴근 이후 약속이 있거나, 먹고 싶은 메뉴가 따로 있어도 무조건 이 식당으로 가야 했다.
“말 안 해도 아시죠? ‘거기’로 오십쇼.”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 위치한 A식당. 허선윤 영남공고 이사장은 대부분의 학교 행사가 끝난 후엔 이 식당으로 교사들을 불러 모았다.
“무조건 A식당으로 가야 합니다. 그게 허선윤 이사장의 코스입니다. 이 식당을 가기 위해 일부로 학교 행사로 만들 정도입니다.”
학교 간담회 및 협의회, 친목회, 교과협의회, 분과협의회, 목요산악회, 부장 및 신임 워크샵, 부장 친목회, 교사 멘토–멘티 모임…
다 열거하기도 힘든 수많은 행사가 끝나면, 회식은 주로 A식당에서 이뤄졌다. 일주일에 최소 한 번, 많을 때는 네 번도 열렸다.
작년 대구교육청 감사 결과, 2010년부터 9년간 회식비로 A식당에 들어간 국민 세금만 약 1억2570만 원. 영남공고 간담회 전체 금액의 83%를 이 식당에서 썼다. 이 긴 세월, 이토록 많은 세금을 쓰는 동안 교사들이 겪은 일은 막장 그 이상이다.
영남공고에서는 목요산악회 가입과 등산은 때로 학생교육보다 중요했다. 2018년까지 매주 1회 목요일마다 등산을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불어도 산행을 했습니다. 목요산악회 끝나면 무조건 A식당으로 향합니다. A식당을 가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산행을 했다고 봅니다.”
교사 10명 중 9명은 목요산악회에 가입할 정도로 분위기는 강압적이었다. 산 아래 집합 장소에 모이면, 목요산악회 총무들은 가장 먼저 교사 출석체크를 했다.
“A식당에 몇 명 가야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출석 체크를 하겠습니다.”
산행을 마치면 산 아래에 맛집 있어도 갈 수 없다. 멀리 떠나도 마지막 코스는 A식당이었다.
“윗선에서는 목요산악회와 회식에 참여하는 걸 충성도로 파악했습니다. 알파벳 등급으로 비유하자면, 목요산악회 모임에 가고 이 식당도 가면 A, 목요산악회는 안 가고 이 식당만 가면 B, 목요산악회 갔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가면 F입니다.”
식당에서 자리 배열과 상 구성은 늘 같았다. 허선윤 이사장에게 잘 보이고 싶은 교사 순서대로 그와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초기 상 구성은 4명 기준으로 소주 1병, 맥주 1병, 음료수 2개. 물은 없었다.
“영남공고 회식할 때는 A식당에서 물도 주지 않았어요. 그래야 돈이 되는 음료수를 먹으니까요. 물뿐만이 아닙니다. 식당 사장한테 반찬이라도 더 달라고 하면, 주지도 않고 저희에게 눈치를 줬습니다. 사실상 식당 주인이 학교 부장교사 급이었습니다.”
메뉴 주문도 전에 또 다시 교사 출석체크가 진행됐다. 목요산악회 총무가 나서 산행 후 집으로 도망가는 교사는 없는지 일일이 확인했다.
“OOO 교사 어딨습니까? 안 계신가요?”
그 사이 시키지도 않은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해물탕을 파는 식당이지만, 교사들은 소고기를 구워먹어야 했다. 2011년부터 일주일에 최소 한 차례 이상 회식에 참석했다는 김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단 한 번도 A식당에서 주문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메뉴판은 본 적도 없습니다. 고기가 1인분에 얼마인지도 모릅니다. 저희는 그냥 식당 주인이 주는 대로 먹어야 했습니다. 짐승처럼.”
식당에서 주는 대로 먹어야만 하는 식당. 음식의 질은?
“저희끼리 ‘고기가 땀을 흘린다’고 말할 정도 였어요. 육즙이 아니라, 그냥 물이 흘러나오는 거죠. 색깔도 검디 검었습니다. A식당 갔다가 설사한 적이 많습니다.”
이런 식당에서 교사들은 허선윤 이사장 앞에서 충성을 맹세해야 했다. 주로 기간제나 신입 교사들이 식당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줄을 길게 섰다. 허선윤이 따라주는 술을 받아 마시기 위해서다.
“존경하는 이사장님. 모든 건 이사장님 덕분입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학교에 뼈를 묻겠습니다!”
허선윤 이사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만약 교사들이 A식당을 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이사장이 아무 이유 없이 결재를 반려하면서 교사들을 집요하게 괴롭혔습니다. 따로 이사장실로 불러 질책하기도 했습니다. ‘학교 행사에서 개별 행동하고 잘하는 짓이다’라며 고함을 질렀습니다.”
허선윤 이사장은 A식당에 세금만 몰아준 게 아니다. 교사들 개인 돈까지 합하면, 수억 원 정도 쓰인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채수용(가명) 교사의 말이다.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오는 분과협의회, 교과협의회, 교직원 워크숍 등을 제외한 친목회 비용은 모두 교직원 사비입니다. 부장 교사는 의무적으로 10만 원 정도 추가로 찬조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사장, 교장은 회비를 낸 걸 본 적이 없습니다.”
2016년 7월 2일 때 일이다. A식당은 한우 전문점에서 육회 전문점으로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간판도 내리고, 영업을 잠시 중단했다. 그래도 영남공고 회식은 A식당에서 열렸다. 허선윤 이사장에게 리모델링 공사는 문제가 아니었다.
채 교사는 공사중인 식당에서 평소처럼 소고기를 구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눈앞에 연기가 자욱했다.
“환풍 시설 공사도 마무리가 안 됐습니다. 영업을 하면 안 되는 시점이었습니다. 식당 전체가 연기로 가득 차서 정말 놀랐습니다. 교사들이 밥 먹다 말고 식당 밖으로 나와서 숨 쉬고 다시 안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했습니다.”
송 사장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영남공고 회식이라 다행이지. 다른 손님이면 큰일 날 뻔했네.”
A식당을 향한 허선윤 이사장의 집착은 방학에도 이어졌다. 그는 봄, 여름, 겨울 그 어떤 방학도 가리지 않았다. 특히 부장 교사들은 A식당에서 수차례 식사 대접까지 해야 했다. A식당에서 허선윤을 여러 번 대접을 했다는 이해영(가명)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부장 교사들은 방학 때 이사장과 교장을 ‘모시고’ 그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사야했습니다. 윗선은 매번 공짜 밥을 얻어 먹었습니다.”
이 교사는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카드내역을 내밀었다. 여기서 확인되는 것만 총 3차례, 점심값은 전부 40만원에 달했다.
2015년 4월 18일 OO해물탕아구찜 95,000원 지불
2017년 5월 13일 OO해물탕아구찜 221,000원 지불
2018년 1월 12일 OO해물탕아구찜 65,000원 지불
여러 교사들은 허선윤 이사장이 A식당 수익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민호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교사들이 먹지 않고 그대로 남긴 음료수, 술을 결제에서 제외하려고 한 적 있는데요. 갑자기 허 이사장이 노발대발 화를 내는 거예요. 허 이사장이 직접 매상을 확인한 적도 있었습니다.”
영남공고 친목회 총무를 담당했던 남종수(가명)는 허선윤 이사장이 A식당 경영에 개입되어 있다고 느낀 기억을 풀어냈다.
“허선윤 이사장이 회식비에 보태겠다면서 봉투를 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봉투 안을 보니 허선윤 이사장 자필로 ‘5만원 상품권’이라고 적힌 A식당 명함이 들어 있더라구요. 모종의 관계가 아니라면 ‘자필 상품권’이 가능하겠습니까?”
사실 허선윤 이사장과 A식당 사장은 무척 밀접한 관계다.
A식당 송OO 사장은 영남공고 급식비리에 연루된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허 이사장은 교장일 때인 2006~2007년, 송 사장과 학교 매점 수의계약을 맺어 교육청으로부터 ‘주의’ 처분을 받았다.
허선윤은 끈질겼다. 2008년에도, 2009년에도 송 사장과 학교 매점 수의계약을 맺었다. 그는 교육청으로부터 각각 경고 처분, 정직 요구를 받았다. 허선윤과 송 사장은 멈추지 않았다.
2009년, 영남공고 대학진학반 학생들 저녁급식을 학교식당이 아닌 송 사장이 매점에서 준비했다. 급식비를 지급할 땐 돈 세탁처럼 현금을 돌렸다. 일단, 담임 교사가 학생들에게 급식비를 현금으로 받았다. 이걸 모 학부모에게 전달한 뒤, 그가 송 사장에게 돈을 지급하도록 했다.
당시 송 사장은 조세 포탈 혐의로 국세청 조사를 받았다. 학교에서 나간 송 사장은 2010년 대구시 수성구 욱수동에 식당을 차렸다. 그러자 허선윤이 다시 그 식당에 교사를 동원해 세금과 개인 돈 수억 원을 쓰게 만든 게 지금까지 서술한 기사 내용이다.
처음 의문으로 돌아가보자.
‘이것은 집착인가, 유착인가. 허선윤과 송 사장은 한몸인가, 남남인가.’
괜한 의심 아니다. 허선윤과 송 사장의 역사를 살펴본 대구교육청도 작년 감사보고서에 이렇게 적었다.
‘현 이사장(허선윤)과 OOO(송 사장)의 밀접한 관계가 의심되는 부분이며,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식당 사장인 OOO과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음.’
그럼에도 감사 결과는 허무했다.
“허선윤 이사장이 유착관계를 부인하고 있어 사실 확인이 어렵습니다.”
허선윤 이사장은 작년 교육청 감사 때 거짓말을 했다.
“특정식당 이용에 대해서 지시하거나 관여한 적 없습니다.”
지난 7월, 송OO 사장을 찾아갔다. 그는 현재 경북 구미시에서 OO해물탕을 운영하고 있다. 송 사장은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 영남공고 때문에 내가 손해를 봤다”며 기자를 밀어냈다.
대구교육청 감사팀은 송 사장을 만나지도 않았다. 그러고선 “사실 확인이 어렵다”는 부실한 보고서를 냈다. 왜 그랬을까? 사실 대구시교육청도 문제의 식당과 깊이 연루돼 있다.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은 작년 지방선거 때 후보 자격으로 이 식당을 찾아 허선윤과 불법 행위를 도모했다. 김규욱 달서공고 교장은 대구교육청 장학관 시절, 이 식당에서 술접대를 받았다. 이상석 교장이 수업하는 여성 교사를 불러내 술시중 들게 한 장소도 이 식당이다.
이쯤되면 의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허선윤 이사장과 강은희 교육감, 김규욱 장학관. 이들은 그 식당과 한몸인가 아닌가. 이들의 관계는 애착인가, 유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