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초 교육계는 학생부 종합전형(학종) 문제를 두고 뜨겁게 달아올랐다. 학생부 기재 항목이 10개에서 7개로 줄어드는 교육부 학생부 간소화 방안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고, 서울시교육청은 ‘학종 선발 비율을 3분의 1로 줄여야 한다’며 정부와 대학에 학종 개선안을 강력히 제안했다. 서울교대에서는 교육부 주최 ‘제3차 대입정책포럼’이 열려 학생과 학부모, 선생님들이 학종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번 기사에서는 학종 논란을 둘러싼 교육계의 움직임을 담고자 한다.
조희연, “학종, 비교과 줄이고 선발 비율 1/3 상한선 두자”
학종의 ‘대수술’을 제안한다
지난 6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학생부 종합전형(학종) 논란에 칼을 빼 들었다. 집도(執刀)는 아니다. 대입전형은 교육청 관할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교육감은 칼은 빼 들 수는 있어도 휘두를 수 없다. 제안만 가능하다.
하지만 조 교육감은 기자회견에서 그간 주저했던 이유를 솔직히 고백하면서 “현재의 학종은 칼을 대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며 교육부와 정부, 대학에 과감한 학종 개편을 제안했다.
조 교육감이 마이크 앞에 선 것은 학종과 고교 교육 정상화 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탓이다. 조 교육감은 기자회견에서 “고교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감으로서 학부모와 학생들의 학종에 대한 불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동시에 고교 교육의 정상화라는 학종의 본질적 취지를 살리기 위해 학종이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하는가를 제안하려는 것”이라며 본격적인 기자회견에 앞서 그 배경을 먼저 밝혔다.
학종으로 1/3만 선발하자
기자회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선발 인원 제한이었다. 조 교육감은 주요 대학의 학종 선발 비율이 너무 높다며, 학종의 선발 인원이 전체의 3분의 1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8학년도 대입 모집인원 중 학종 선발 비율은 23.6%. 하지만 표본을 서울 시내 주요 15개 대학으로 국한시키면 그 비율은 43.3%로 뛰었다. 서울대는 무려 78.4%에 이르렀다. 즉, 세칭 일류대학이라 불리는 대학일수록 학종은 대세 중의 대세였다.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들에는 학종, 학생부 교과전형, 수능 간 선발 비율이 1:1:1 정도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해 학종이 전체 선발 비율의 1/3을 넘지 않도록 상한선을 두고 대입정원의 일정 비율 이상을 학생부 교과전형으로 선발하도록 해야 합니다. –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지난 6일 서울시 교육청 기자회견)”
공공 입학사정관을 운영하자
공공 입학사정관 도입도 주장했다. 입학사정관의 일정 비율을 대학, 전·현직 교원, 교육청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외부 입학사정관을 둬서 공공성과 투명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자사고의 자기주도 학습 전형의 경우 공성정과 객관성 제고를 위해 교육청 위촉 면접전형위원을 참여시키는 상황인데, 그와 같은 방식으로 공공 입학사정관단을 구축해 해마다 추첨을 통해 대학에 순환 파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개선안들 또한 파격적이었다. 조 교육감은 학생부 기록에 학교 밖 비교과 영역을 쓰지 못하게 하고, 자율동아리 활동 반영 비율을 축소하며,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는 폐지 내지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조 교육감은 ‘학종 공정성 평가위원회’를 운영할 것을 주장했다. 교원, 학부모, 교육청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꾸려 매년 학종 운영의 공정성을 평가하고 그 결과를 각 대학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등의 개선안을 내놓았다.
“최소한 현존하는 대입전형 중 학종은 개개인의 미래역량을 대학입시로 연결시키기 위한 유효한 도구입니다. 그렇다고 학종을 무조건 옹호하는 편향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학종의 공정성, 신뢰성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는 현시점에서 학종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은 불가피합니다. –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지난 6일 서울시 교육청 기자회견)”
교육부, 학생부 기재 항목 30% 삭제 고려 중
교육부의 ‘학종 고쳐 쓰기’ 작업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일 교육부의 학생부 간소화 정책의 구체적인 설계도가 언론에 나왔다. 앞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취임 100일 기자 간담회에서 학종의 대대적인 손질을 약속했었다.
입시부담 완화와 공정성 제고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로 학종을 꼽으면서, 학생부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 기재 항목을 정비하고 선생님들의 기재 역량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학종 전형요소인) 자기소개서나 교사추천서는 부작용이 있어 축소 내지 폐지하는 방향으로 잡고 있습니다.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는 점, 너무 다양한 요소를 요구한다는 점은 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지난해 10월 23일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
일단 교육부가 내년부터 삭제를 고려하고 있는 학생부 기재 항목은 수상 경력이다. 교내 대회는 학교별로 개수 차이가 크고, 특정 학교에서는 몰아주기가 벌어진다는 점 때문에 그간 형평성과 공정성 논란이 일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이 지난해 10월 공개한 ‘2016년 고고별 교내상 수여 현황’에 따르면 1년에 상을 하나도 주지 않는 학교가 5곳이었던 반면, 경북 문경의 한 학교는 연간 224개의 상을 수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 유발 ‘자율동아리’ 삭제 후보
자율동아리도 삭제 후보에 올라와 있다. ‘창의적 체험활동’을 구성하는 동아리, 봉사, 진로, 자율활동 가운데 특히 동아리는 학생부의 꽃으로 불릴 정도로 중요도가 높은 항목이었다.
하지만 자율동아리는 정규 동아리와 달리 담당 교사의 관리에서 벗어나 있어 사교육이 손을 뻗칠 가능성이 큰 항목으로 분류됐다. 실제로 서울 대치동의 한 컨설팅 업체에서는 소논문 작성과 발명, 책 출판 등을 통해 동아리 활동을 풍성하게 채울 수 있다고 광고하는 상황이다.
(참고) 4화. 돈으로 대학을 살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진로 희망 사항을 빼고 인적 사항과 학적사항을 합치는 방안, 자격증 인증 취득사항을 대입 지원에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 또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과 ‘창의적 체험활동’ 글자 수도 현행보다 줄어드는 것도 논의 대상이다.
지금까지 언론에 공개된 수정 사항들을 고려하면 학생부 기재 항목은 10개에서 7개가량으로 감소한다.
“소논문과 교외 수상 실적 등 사교육이나 부모 지원 정도에 따라 편차가 심한 학교 밖 활동은 배제하기로 원칙을 정했다. 학내 활동 중에서도 교과과정과 무관한 항목은 제외하는 쪽으로 검토 중이다. 교내 수상 실적 역시 교육과정과의 연관성을 따져 배제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지난 12일 한국일보 인터뷰)”
학생 학부모 교사 ‘학종 개선 요구’ 봇물
교육부 주최 포럼에서는 학종에 대한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생생한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 8일 서울교대에서 열린 제3차 대입정책포럼에서는 ‘학생부 종합전형 공정성 강화 방안’란 주제로 뜨거운 설전이 벌어졌다.
앞서 진행된 1차, 2차 포럼에서는 교육 전문가와 교수가 주요 패널이었다면 이번 포럼에서는 학종을 직접 경험하고 있는 당사자들이 나선 것이 특징이다. 학생, 학부모, 교사 각각 세 명씩 나와 학종 개선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학종, ‘주도적인 학교생활’
가능하게 한 점 긍정적
패널로 나온 학생과 학부모, 교사 대부분은 학종의 긍정적인 면에 공감했다. 학생이 주도적인 학교생활을 하도록 이끈다는 점이 좋은 점으로 꼽혔다. 많은 교사들이 수업 변화를 모색하고, 학생들도 수능 체제 때보다 적극적으로 학교 생활에 임한다는 것이다.
일반고 재학생은 대학 진학의 폭이 넓어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주변에 그럴싸한 사교육기관이 없어도 학교 생활에 충실하면 학종 입학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학생부 종합전형이 확대되자 학생들이 주가 되는 참여 수업이 증가하고 다양한 수업방식이 학교에 도입되어 공교육의 다양화는 물론 질까지 한층 올리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 오승진 서울 도림고 학생”
학생부에 대한 신뢰 ‘바닥’
하지만 학종 운영에 대한 믿음은 바닥을 드러냈다. 학생들은 특히 학생부를 신뢰하지 못했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일일이 관찰해 기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직접 쓰는 일이 많고, 교사가 쓴다고 해도 성적 등급에 따라 학생부 기재내용을 ‘긁어 붙여넣기’를 하는 일이 잦다고 성토했다.
교사들은 입학사정관조차 학종에 대해 명확한 질의응답을 못하는 경우가 있다며 심사의 공정성과 명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했던 활동, 역할, 느낀 점 등을 담당 선생님께 글로 써서 제출하고 그러면 그 선생님께서 글자 수 한계에 맞게 조정해서 적으십니다. – 김세현 강원 북평고 학생”
“입학사정관이 해당 내용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가장 황당합니다. 가끔은 계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소속 대학의 전형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답변을 듣거나, 평가 기준 등에 대해 답변을 못하는 입학사정관도 있습니다. – 박재현 진해고 교사”
학교와 선생님에 따라 ‘입시 결과’ 뒤집혀
점차 정보전이 되어가는 지점도 꼬집었다. 평가 기준이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데다 투명하게 기준을 공개하는 곳이 없어 준비에 애를 먹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러한 이유로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동아리 등 비교과 활동을 왕성하게 지원해줄 수 있는 고등학교를 가야 하는데, 갔다고 해도 교사가 또 다른 변수가 된다고 했다. 선생님이 자기소개서와 추천서를 얼마큼 신경 써주냐에 학생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것이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선수와 코치가 함께 달리기를 하는 경기라는 말도 있습니다. 훌륭한 코치를 만나면 잘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선수가 아무리 잘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 우창영 서울 휘문고 교사”
“대학에서 투명한 입학상황을 보여주는 기준도 학부모로서 알아보기 힘들고 연령층이 높은 학교 선생님과의 상담은 한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 박귀옥 서울 배명고 2학년 학부모”
이 밖에도 해결해야 하는 숙제는 산더미다. 학생부와 수능 반영비율을 대학의 자율에 맡기는 ‘대입 자율화’ 방침을 지켜 달라는 대학계의 요구를 어떻게 수용할지, 확 줄어든 학생부로 변별력 있는 선발을 할 수 있을지, 학교별 비교과 격차는 어떻게 해소할지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려줘야 한다.
이제 남은 시간은 6개월. 오는 8월에 공개될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에서 학종이 어떤 새 옷을 입게 될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