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와 갑질로 물의를 일으킨 허선윤 이사장 체제의 영남공업고등학교가 교직원 연수에 태극기부대 출신 인사를 강사로 불러 부적절한 강연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강연에서는 “문재인 치매”를 비롯해 5.16은 쿠데타가 아닌 혁명, 1948년 건국절 이야기 등이 나왔다.
학교에 진출한 태극기부대 출신 인사는 김욱주 새마음포럼 회장이다. 그는 여러 보수–극우 집회에서 “박근혜 탄핵 반대” “문재인 정권 퇴진”을 외쳐 왔다.
그의 페이스북 커버사진에는 ‘탄핵 기각, 춘천의 him 김진태’가 적힌 피켓이 나온다. 사진에서 김욱주는 조원진 우리공화당 의원,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故 정미홍 전 대한애국당 사무총장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있다.
논란이 된 그의 강연은 2017년 7월 19일 경상북도 경주시 K호텔에서 열린 영남공고 ‘취업역량강화를 위한 1박2일 교직원 워크숍’에서 진행됐다. 당시 워크숍에 영남공고 교직원 약 130명이 참여했다. 학교 예산 1000만 원 정도가 쓰인 공적 행사였다.
김욱주 강사가 진행한 강연은 1일차 행사였다. 강연 주제는 ‘취업역량강화를 위한 교사 전문성 제고 방안’. 주제에 적합한 강연이 이뤄졌다면, 강사의 정치적 성향만을 두고 문제 삼기는 어렵다. 하지만 김욱주는 강연 주제와 관련 없는, 정치적으로 편향된 이야기를 주로 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두고 “치매에 걸린 것 같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반면 이승만, 박정희에 대해서는 찬양 일색의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총알 사진과 함께 “언제나 역사는 전쟁과 함께 해왔다“는 글귀가 담긴 PPT 자료를 강연장 화면에 띄우기도 했다. 그러면서 취업역량강화를 위해서는 애국심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꺼내들었다.
“(교사들이 애국가 제창하는 모습을 보고) 애국심이 결여되어 있구나. (중략) 노래방이나 주점 가서 다른 노래 부르지 말고! 애국가를 1절부터 4절까지 가사 다 외우십니까? 목청 높여 부르시고, 어떤 행사를 가든지 애국가 나오면 알아서 여러분들이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중략) 역량 강화를 위해서 (애국심을) 배워야 합니다.”
김욱주가 강연에서 풀어낸 이야기의 핵심 주인공은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5.16은 쿠데타가 아닌 혁명이라고 주장했다.
“우리 박정희 대통령은 비록 1961년도 5.16군사혁명이죠. 지금은 쿠데타가 됐지만. (중략) 오로지 박정희 대통령을 폄하하고, 이승만 대통령을 매국노라고 하고, 친일이라고 깔아 뭉길 때, 젊은이들 사이에는 그 사람이 현실적으로 애국자라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잘못된 겁니다.”
김욱주는 오늘날 대한민국은 이승만–박정희 덕에 먹고 산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같은 거물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먹고 사는 사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했을 겁니다.”
김욱주는 한국 사회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좌익 사상이 전국을 선동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독립군 때문에 1945년도에 광복을 맞이했다고 보는 건 큰 오산”이라며 일제시대 항일 독립운동을 박하게 평가했다.
이어 김욱주는 “우리 백성들은 까막눈”이라고 폄훼한 뒤 “이승만 박사가 배워와서 건국을 했다”면서‘건국의 아버지 이승만’과 ‘1948년 건국절’을 강조했다.
“우리 백성은 쇄국 정책에 눈을 못 떠서 민주주의가 뭔지를 몰랐어요. 우리 백성들은 까막눈이었죠.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지만 너무 무식해서 몰랐던 거예요. 오로지 이승만 박사만이 그만큼 배워와서 우리나라를 건국했다는 겁니다. (중략) 1948년 8월 15일은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기념일을 지정한 날로 보는 게 정상입니다.”
‘1948년 건국절’은 일부 극우세력이 항일 독립운동의 의미를 깎아내리면서 펼치는 주장이다.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 ‘건국’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서 비롯됐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1948년에 이뤄졌다.
김욱주는 북한 정권을 거론하며, 문재인 정권을 비난했다.
“지금까지 민주당, 문재인 대통령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독재자로 폄하하는 거 여러분 들어보셨습니까? (중략) 우리나라 대통령 마인드가, 사고가 이런데, 우리는 지금 역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합니까. 저도 그런 문재인은 평가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때 김욱주는 “응원해 달라”며 박수를 유도했으나 교직원들은 호응하지 않았다. 강연장에는 정적이 흘렀다.
김욱주의 발언 수위는 강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지난 2017년 6월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백악관 방명록에 ‘대한미국’이라고 쓴 일을 두고 김욱주는 ‘건강 이상설’과 ‘치매’를 거론했다.
“미국 백악관에 들어갔을 때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아닙니까? 대한미국이라고 쓴 글자 보셨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만약 건강상에 (문제가) 있는 거라면 건강 고쳐야합니다. (중략) 그분이 여기서도 날짜를 기입할 때 날짜를 잘못 써서 치매가 있느니 없느니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김욱주는 이날 예정된 강의시간에서 30분을 초과해 총 90분간 무대에 섰으나, 취업역량 강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2017년 교직원 워크숍에 참가했던 박소진(가명) 교사는 태극기부대가 학교까지 찾아온 상황에 대해 “‘대통령이 치매에 걸렸다’는 식으로 강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며 “전체 교직원을 상대로 그런 강연을 진행해 놀랐다”고 말했다.
대구광역시 한 공립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김아무개 교사는 “(태극기부대의 강연은) 공립학교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개인의 관점을 전체 교직원에게 강요하는 듯한 강연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영남공고에서 벌어진 일을 고려하면 ‘태극기부대 교사 연수’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허선윤 이사장은 교사 임용 면접 등에서 교육과 크게 관련 없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질문을 자주 했다.
영남공고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던 권주현(가명) 교사는 2011년 정식 임용 면접시험에서 허선윤 교장(현 이사장)한테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노?”
당시 허 교장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한 권 교사는 솔직하게 말했다.
“한미 FTA 반대합니다. 물론 좋은 측면도 있겠지만, 저희 아버지가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서요.”
허 교장은 못마땅한 눈치를 권 교사에게 보냈다. 일주일 뒤, 허 교장은 권 교사를 교장실로 불렀다. 허 교장은 갑자기 임용 면접 때 이야기를 꺼내며, 권 교사를 질책했다.
“그때 면접에서 왜 그렇게 얘기했노? 한미FTA에 대해 다시 한 번 얘기해봐라.”
그때서야 허 교장의 의도를 파악한 권 교사는 과거 답변을 시정했다.
“면접 때는 제가 잘못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한미 FTA 찬성합니다.”
도경수(가명) 교사도 2014년 기간제 교사 임용 때 정치적 성향을 확인하는 질문을 받았다. 면접관으로 참여했던 장상교 교감은 집요하게 물었다. 옆에는 허선윤 교장(현 이사장)도 앉아있었다.
장상교 교감 : “선생님은 진보입니까, 보수입니까.”
도경수 교사 : “저는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장상교 교감 : “그래도 진보와 보수, 둘 중 하나를 골라주세요.”
도 교사는 당시 면접 질문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임용 면접이 아니라 질책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질문을 해놓고 예상과 다른 답을 하면 본인이 생각한 정답을 설명해줬습니다.”
이외에도 교사 상당수가 임용 면접 때 정치적 성향을 확인하는 듯한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전교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부고발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학교 측 말을 안 듣는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부에서 본인 집 앞에 고압 송전탑을 설치한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회식 시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2월, 이창숙(가명) 교사는 부장교사 회식 자리에서 장상교 교감한테 이런 말을 들었다.
“참이슬 빼소! 손혜원(현 무소속 국회의원)이 이름 지은 거 아잉교? 참이슬 전부 빼이소.”
허선윤 이사장에게 충성하는 일부 교사들은 장 교감 말에 맞장구치며, 박장대소했다. 허선윤 이사장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창숙 교사는 웃지 못했다.
“어떤 브랜드 소주를 마시느냐도 윗선의 눈치를 봐야하는 건가 싶어 서글펐습니다. 영남공고에서는 제가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위에서 먹지 말라면 먹지 말아야 합니다.”
허선윤 이사장은 영남공고에서 학사 문제는 물론이고 교사들의 복장, 연애, 휴가, 심지어 회식 장소 결정까지 본인 뜻을 강요해 왔다. ‘허선윤의 뜻’이 아니면 영남공고에선 진행되는 일이 거의 없다. 태극기 부대의 학교 진출은, 허선윤의 의지라는 것이 영남공고에서는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김욱주의 문제 강연에 대해 영남공고 측은 “답변하기 싫다”고 밝혔다. 김욱주 강사는 지난 21일 <셜록>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강연 내용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치매 걸린 것 같다”는 표현에 대해 “발언이 지나칠 수도 있지만, 상대방이 듣기에 따라서는 적당한 표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월 5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신년 태극기 집회’에서 이런 발언도 했다.
“2019년 올해에는 무조건 문재인 끌어내려야 합니다. 한 명이 끌어내리고 죽어버리면, 오천만 국민이 행복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