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끝자락은 치열한 경마판이나 다름없다. 경주마가 되어 ‘학벌 트랙’ 위에 세워지면 학생들은 너나없이 ‘대학 입학’이라는 결승점으로 달려야만 하는 숙명을 안게 된다. 이런 틀 속에서 대한민국의 입시전쟁 잔혹사는 유구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본고사, 학력고사, 수능 등으로 게임의 양상이 조금씩 변했다.
수능으로 굳어졌던 그 판이 다시 요동친 것은 학생부 종합전형(학종) 때문이다. 학교생활기록부를 토대로 지원자를 판가름하는 학종이 크게 늘면서 수능 시대도 막을 내리는 듯하다.
현장을 경험한
두 명의 목격자
오늘은 그 격변의 현장을 경험한 두 목격자와 만날 예정이다. 1998년생인 두 사람은 올해로 만 20살이다. 살아온 방식은 달랐다. 한 학생은 평범하게 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한 학생은 교외에서 홀로 학업을 이어갔다.
하지만 돌고 돌아 결승점에서 만났다. 대학 입학을 위해 두 사람 모두 치열하게 고군분투한 것은 같았다. ‘학종 대세’ 입시판에서 두 사람은 학종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고자 한다. 학종 확대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교육계의 학종 개선 움직임에 대한 김선빈(20) 문종혁(20) 학생의 솔직한 대담을 이 자리에서 공개한다.
Q. 두 분이 참 다른 청소년기를 보내셨는데 각자 간단히 자기소개 해 주실 수 있나요?
문종혁
저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혁신학교에 다녔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대학에 갈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행복, 꿈, 열정’이란 교칙에 끌려서 이것 만이라도 3년간 성취해보자는 마음으로 입학했거든요. 그래서 점수나 등수 등에 연연하지 않고 공부했어요. 선생님들이 귀찮아하실 정도로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고3 때 대학에 지원할 때는 사실상 정시를 포기하고 학종 4개 논술 2개 이렇게만 준비했어요. 올해는 재수하면서 수시와 정시 모두 지원했어요. 수시는 모두 논술만 썼고요. 올해 대학에 입학할 예정입니다.
김선빈
저는 검정고시를 쳐서 고등학교에 가지 않았어요.
사실 검정고시 출신들은 대게 비슷한 공감대가 있어요. 학교를 안 나온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거든요. 저는 중학교 때 대안학교를 다니다가 미국 유학을 다녀왔는데 그 뒤로는 한국에 와서 태권도나 유도와 같은 운동을 했어요.
19살부터 기숙 재수 종합학원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수능 공부를 시작했는데요. 다시 수능 준비할 때는 대치동 학원가로 옮겨와 독서실 다녔습니다. 저도 올해 대학에 입학할 예정입니다.
Q. 혁신학교는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경기도교육감 시절에 공교육 정상화하겠다는 목적으로 도입했잖아요. 토론 등의 활동이 많아서 혁신학교 출신들이 학종에 유리하다고 알고 있는데요.
문종혁
제가 다닌 혁신학교에서는 토론 수업이 많은 게 특징이었는데, ‘진짜 공교육이 정상화됐냐’고 물으시면 저는 ‘미비했다’라고 답할 겁니다.
다른 학교는 50분 수업인데 저희 학교는 토론, 학생중심수업이라는 이름 하에 과목당 90분씩 수업했어요. 블록타임제 시스템을 사용한 거라고 했어요. 보통 선행학습을 해온 우등생이 토론문을 주도해서 쓰고 나머지 학생은 들러리였거든요. 그리고 ‘우리 모두 다 같이 했다’ 이렇게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포장됐어요.
토론형 수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토론 수업의 질이 어땠는지 지금껏 검토해봤느냐’고 묻고 싶어요. 조원들끼리 토론문 조작하고 그걸 학생부에 그럴싸하게 받아 적는 등의 꼼수를 검토하시지 않으셨으니까요.
외고 꼴찌는 합격,
일반고 1등은 불합격
수업 이수 시간, 교복 등으로
‘출신 학교’ 알 수 있어요
Q. ‘대학에서 알게 모르게 교교 등급제를 하고 있다’는 말은 많은데 혹시 보고 들은 사례가 있나요?
문종혁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는 외고 선배가 전교 꼴등 앞의 세 번째였어요. 내신 등급이 8점대였죠. 그리고 경기도 외곽 시골에 있는 일반고에서 전교 5등 안에 드는 친구가 있었는데요.
외고 선배는 성균관대에 붙고,외곽 일반고 전교권 친구는 한양대 떨어지고 경희대에 갔습니다. 둘 다 학종 지원이었어요.
대학에서 아무리 고등학교 블라인드 처리한다고 해도 특목고 수업 이수 시간은 일반고와 다르고, 이전 합격자 등을 통해서 지원 학생이 특목고 출신인지 아닌지 쉽게 알 수 있거든요. 면접날 교복을 입고 갈 수도 있어요.
‘학교 등급별 점수가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학교에서는 단순히 내신만 보고
적정 지원 대학을 찍어줘요
Q. 왜 학종은 사교육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하는 건가요? 학생부는 학교생활을 담는 거잖아요. 학종은 그런 학생부를 토대로 지원자를 심사하는 거고요.
정시는 ‘고인물 파티’일뿐
Q. 검정고시 출신은 학종을 포함해서 수시를 전혀 못 쓰나요?
김선빈
검정고시 출신은 쓸 수 있는 카드가 사실상 두 개뿐이에요. 논술과 정시.
논술은 점차 줄여가는 추세이니까 정시밖에 카드가 없다고 봐도 무방해요. 그런데 정시마저도 길이 많이 좁아졌어요. 저희끼리 하는 말로 “정시는 고인물 파티다”라고 해요. 정시로 입학하는 게 너무도 빡빡해서요.
제가 상대평가 과목 수능을 6개 틀렸는데 중앙대를 쓰거든요. 저는 잘 봤다고 생각했는데요. 물론 중앙대가 좋은 대학이지만요. 현재는 불과 1,2문제 차이로 대학 등급을 낮춰 쓰기도 해요. 사실 정시라고 해도 변수가 많은데요. 어떤 과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반영비에 따라 백분위가 달라져서 합격 불합격이 갈릴 수 있거든요.
수시 대폭 늘린다고
수능의 문제점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Q. 1,2문제 차이로 결과 뒤집힌다고 해서 수능 비중 줄이고 수시 늘렸던 거 아닌가요?
김선빈
수능 문제 있다고 수시를 대폭 늘린 건 전형적인 우리나라의 해결 방식이 아닌가 싶어요. 원인이 있으면 그 원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에 대한 해결점을 찾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수능이 문제니까 정시를 줄이고 수시를 늘리자는 거잖아요. 만약 1,2점 차이로 결과가 달라진다면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해봐야죠. 차라리 수능을 두 번 치게 해서 컨디션 난조 가능성을 줄이는 등의 방안도 있는 거잖아요.
각자의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검정고시를 선택한 학생들이 대입에서마저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암기식 ‘내신 시험’은 여전해
Q. 창의적이고 전공 적합한 인재를 뽑고자 하는 게 학종인데요. 학교 시험은 학종 확대 흐름에 걸맞춰 변했을까요? 학교 시험에도 창의성 여부가 반영됐나요?
문종혁
고등학교 3학년 내내 창의적인 문제가 학교 내신 시험으로 나온 적은 없었어요.
논술형 문제마저도 창의성을 본다고 하지만 그것도 사실상 다 암기거든요. 책을 그대로 암기해야 할 정도로요. 제 생각에는 오히려 내신 시험이 창의적 인재를 막는 거 같아요. 진도를 나가야 하는데 질문을 제가 많이 하면 선생님은 ‘내신에 나오지도 않고, 수능에도 안 나온다’ 하셨거든요.
김선빈
지금 수능도 그래요. 학종이 추구하는 인재상과 달라요.
4차 산업 혁명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비판적 사고해야 한다고 가르치잖아요. A 정보와 B 정보를 융합해서 새로운 사고를 하는 게 중요한데 수능에서는 그런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거든요.
수능에서는 오로지 ‘제시문을 잘 파악했니’만 묻거든요. 수능의 본질은 암기와는 떨어져 있습니다만, 창의적 인재와는 무관하죠. 반면 논술은 고차원적인 사고를 요구해요.
논술 전형이 학종보다
오히려 투명해요
Q. 논술 전형에 대한 각자의 생각도 궁금해요.
김선빈
논술 전형 또한 합격과 불합격의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지만, 이런 방향으로 입시가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해도 최상위권 대학의 논술 제시문은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준비하면서 많이 배웠고요. 그리고 논술 전형은 해설지나 우수 답안을 공개해요.
논술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드러내는 친구들은 확실히 특출 난 것 같아요. 사회에 나가서도 좋은 인재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문종혁
투명성 차원에서 비교하자면 논술 전형이 학종보다 훨씬 과정과 결과가 투명하다고 생각해요. 객관식 시험에 준할 정도로 기준이 잘 공개되어 있고, 대학에서 5, 6, 7월쯤에 모의논술 시험도 진행하거든요. 시험이 끝나면 기준표가 인터넷에 뜹니다.
대학에서 진행하는 모의논술의 경우에는 답안지 채점도 해줘서 자신이 무엇이 부족하고 왜 틀렸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어요. 하지만 논술의 최대 단점은 사교육의 꽃이죠.
사교육 도움 없이
‘논술 준비’ 불가능해요
Q. 학교에서는 논술 대비를 할 수 없는 건가요?
문종혁
제가 아주 명확히 말씀드릴 수 있는 점이 공교육에서는 논술 준비를 못 합니다. 일례로 사교육에서 이렇게 가르쳐요. ‘ㄱ대학 같은 경우는 온화하게 글을 써야하고, ㄴ대학 같은 경우에는 아주 공격적으로 써야한다.’, ‘ㄱ대학은 경제 관련 질문이 많이 나오고, ㄴ대학은 그렇지 않다.’ 이런 사실을 모르면 논박하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ㄱ대학은 붙고 ㄴ대학은 떨어지게 되죠.
논술이 사교육이 필수라는 점에서 사교육은 몇 년간 그 대학 논술만 파서 특정 대학 논술 노하우를 파시는데 학교 선생님은 논술을 전문적으로 하시기 보다는 문학과 화법, 작문 등 논술에 대한 일반론을 알려주세요. 일반론에 입각한 채 구체화되지 않은 논술이라면 논술 대입의 답은 사교육이죠.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식의 ‘학종 개선안’
Q. 교육부가 올해 8월에 학종의 신뢰성을 제고하는 개선방안은 내놓겠다고 말했는데요. 현재 검토 중인 것이 수상경력, 자율동아리 삭제를 포함해 학생부 기재사항을 축소하는 건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요?
문종혁
만약 교내 수상 없어지고 자율동아리 없애면 학생들은 어디에서 성취감을 얻을까요?
학교에서 대회를 열어도 어차피 학생부에 기재가 안 되니까 학생들은 그런 행사들에 참여는 안 하고 그냥 사교육만 밀어붙이겠죠.
김선빈
교내 수상을 못 쓰게 하면 학종 선발의 기준점이 뭐가 된다는 거죠?
‘수상경력 항목이 문제 많으니까 없애버리자’식의 판단인데, 그럴 것이 아니라 수상경력으로 학생의 학업능력을 판별할 수 없다면 교내 수상을 신뢰하도록 하는 대안을 내야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원하는 건
‘왜 뽑혔고 왜 떨어졌는지’
알려달라는 겁니다
Q.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최근 교육부에 학종 개선안을 제시했잖아요. 가장 대표적인 게 학종 입학자를 전체 정원의 3분의 1로 제한하자는 것인데 공감이 가는 지요.
김선빈
원인을 잘못 잡았다고 생각해요. 수시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붙어도, 떨어져도 이유를 모른다’ 예요.
3분의 1로 정원을 못 박는 것은 ‘애들이 반대하니까 이렇게라도 하자’식의 포퓰리즘 정책이 아닌가요.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의 경우 과학고 출신도 많고 진로도 미리 정해놓은 친구들이 많아서 수시가 많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특수한 사정을 가진 학교들도 있는데 모든 학교의 학종 정원을 천편일률적으로 묶어버리면 안 되지 않을까요? 교육청은 대학의 자율성을 파괴할 게 아니라, 수시 전형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감시하고 고민해야죠.
문종혁
학생들이 주장하는 것은 학생부 종합전형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에요. 그것을 이행하는 과정이 틀렸다는 겁니다. 그런데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학종 전체가 잡음이 있으니까 정원을 3분의 1로 제한한다고 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공산이 커요.
결국 교육 자체의
체질 개선이 필요해요
Q. 백년대계 교육이 한방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본인이 손볼 수 있다면 학종을 비롯해서 대입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문종혁
본래 교육이라는 게 과정에서 성취감을 얻고, 더 공부하고 싶으면 대회 같은 곳에 나가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건데 지금은 거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좋은 대학을 가는 것만을 목표로 두고 있잖아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아요.
교육의 본질, 코어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봐요. 단기적으로는 지금 마주한 현실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정책의 취지가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고 있느냐부터 확인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현장 진단이 제대로 되어야 그다음 스텝이 나오지 않을까요?
김선빈
프랑스에서는 우리나라 수능과 같은 바칼로레아를 위해 2조 원을 쓴다고 하잖아요. 채점을 위해 많은 인력(약 17만 명)이 동원되고요. 우리도 프랑스처럼 공정하고 납득 가능한 대입 심사를 위해 많은 예산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불어 내신과 수능, 면접의 역할을 나눴으면 좋겠어요. 내신은 절대 평가해서 과열된 내부 경쟁을 줄이고, 수능으로는 수학 능력 여부를 어느 정도 평가하고, 면접으로는 지원자의 우수함을 구별하는 거죠.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에 대한 완벽한 체질 개선이라고 생각해요. 대입이라는 꼬리가 흔들린다고 교육이라는 몸통까지 흔들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