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의 운명이 내 글발에 달렸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교사들은 전장에 나서는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는다. 바로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를 쓰기 위해서다. 부담은 상당하다. 모니터 위 깜빡이는 커서가 교사를 계속 재촉하는 듯하다.

‘선생님, 꼭 좀 잘 써주세요.’

‘우리는 같은 편 맞죠?’

어젯밤 학생들의 아우성이 분명 커서 속으로 숨어들어 간 게다.

학종은 선생님과 학생의
‘이인삼각’ 경기다

학생이 아무리 뛰어나도 선생님이 제대로 기록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게 바로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이다. 학생과 선생님 발목에 묶인 줄은 매년 더 조여지고 있다. 학종이 입시에서 대세 중 대세로 빠르게 자리매김 중인 탓이다. 선생님은 어떻게든 제자의 잠재성을 학생부에 담아내고자 애를 쓴다. 하지만 때때로 그 노력은 도를 지나치기도 한다. 윤색을 넘어 과장과 거짓을 학생부에 담는다.

오늘은 교단에서 학종을 경험한 교사들을 만날 예정이다. <대한민국에서 교사로 산다는 것> 저자이자 충북 청주시 청원교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는 김재훈 교사와 <교육대통령을 위한 직언직설> 저자이면서 서울 미양고에서 국어 교사로 일하는 이기정 교사다. 김 선생님은 <오마이뉴스>에서, 이 선생님은 <경향신문>에 교육 관련 글을 쓰고 있다.

전직 교사이자 교육 전문가 두 분도 대화에 참석했다. 중학교 사회교사로 재직하다 전교조 활동으로 강제 해직된 후 교육학 박사가 된 안선회 중부대 교수, 중학교 윤리교사로 재직하다 역시 전교로 활동으로 강제 해직되고 나서 스타 학원 강사가 된 이현 우리교육연구소장이다.

대담자 네 사람 모두 학종 확대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네 사람이 학종 확대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를 듣고, 더불어 교육계의 학종 개선 움직임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들어봤다.

(왼쪽부터) 김재훈 청원고 교사, 이현 우리교육연구소장, 이기정 미양고 교사, 안선회 중부대 교수. ⓒ허란

Q. 학종의 전신 압학사정관제 도입된 시점부터 계산하면 학종의 역사가 10년이 됐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요?

이기정

가장 큰 변화는 ‘비교과가 입시에 들어왔다’는 점이에요. 일례로 학생들이 정규 동아리 1개에 자율 동아리 1~2개씩 보통 하거든요. 봉사 활동도 늘고요. 예전에는 비교과 활동이 너무 부족해서 문제였는데, 양이라도 늘었으니 긍정적 변화라고 봐야죠.

또 하나는 수업의 변화입니다.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을 그럴듯하게 적어주려면 선생님들이 토론이나 발표 수업 등을 해야 하거든요.

하지만 학교 수업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두 가지, ‘내신 시험’과 ‘수능 시험’이 안 바뀌었잖아요. 내신 시험은 여전히 암기식이고, 수능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방식이 그대로고요.

김제훈

단점만 말씀드리면 3학년 2학기 수업 분위기가 엉망이 됐다는 겁니다. 재학생이 학종을 지원하는 경우 3학년 1학기 때까지의 학생부만 내면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3학년 2학기가 되면 학교생활을 소홀히 하는 학생들이 늘어났어요.

비교과 활동 확대,
내신과 수능은 그대로

이기정 미양고 교사 ⓒ허란

Q. 교사들은 학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기정

교사는 학생의 활동을 객관적으로 기록해야 하는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학생을 도와 더 좋은 대학에 학생을 입학시켜야 하는 ‘선수’이기도 해요. 입시판의 선수가 학생부를 기록하고 있는 건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선생님이 학생부를 안 좋게 기록해줄 수 있겠어요.

‘학생부 부풀리기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죠. 어떤 이들은 ‘교사가 힘이 너무 세진 게 아니냐’ 하시는데, 제가 볼 때는 ‘교사가 기록의 노예가 됐다’는 표현이 더 어울려요. 학생부가 중요해지니까 학생과 학부모의 눈이 상당이 높아졌거든요.

학원에서 대신 써와서 교사에게 들이밀어도 마냥 거절하기 힘들어요. 지금 교사들은 ‘학생부를 너무 윤색해준 것 아닌가’ 괴로워하면서도 ‘좀 더 좋게 써줬어야 했나’ 미안해하고 있어요.

‘학생부 부풀리기’ 교사,
기록의 노예 되다

김재훈

제가 한번 따져보니까 과목 수업을 하면서 담임을 맡은 교사가 담당 학생들의 학생부를 기록해야 하는 양이 A4 용지 기준 100페이지더라고요. 교육부가 제시한 기재요령에 나온 글자 수에 맞춰 계산한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선생님들이 1년에 책 한 권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30명 학생을 놓고 영어수업을 한다고 가정해봐요. 수업이 50분이잖아요. 관찰이 100% 된다고 보장 못 해요. 수업 도중에 관찰 기록을 쓰면 수업 리듬이 다 깨지고요.

교사별 학생 수도 학교마다 차이가 커요. 영재학교는 교사 1명당 학생수가 5명인데 일반고는 17.5명이에요. 단순히 그런 환경적 요소들만 비교해도 학교별로 차이가 너무 커요.

학생 성향에 따라 기록이 달라지는 것도 문제예요. ‘”저요, 저요” 하면서 적극적인 애들이 있는 반면 태생적으로 소심한 친구들이 있거든요. 똑같이 활동했어도 잘 드러나지 않는 아이들이 있어요. 실력은 더 나을 수 있지만 그런 ‘소심한 인재형’ 학생들은 ‘퍼포먼스 인재형’ 학생들보다 학생부가 얇을 수밖에 없는 게 학종입니다.

‘소심한 인재형’ 학생,
‘퍼포먼스 인재형’ 비해 불리

김재훈 청원고 교사 ⓒ허란

Q. 일명 좋은 대학일수록 학종을 선호하는 이유가 뭔가요?

안선회

일단 직접적 이익이 있어요. 재정 지원금을 받을 수 있거든요. 학종을 늘리면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에 선정이 되는데 이게 대학 입장에서는 메달이나 다름없어요. 최소 2억원에서 20억원까지 받을 수 있어요. 사실상 입학사정관의 봉급은 거기서 나온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대학 입장에서 또 학종이 좋은 것이 ‘선발 과정에서 아무것도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돼요. 입학사정관의 핵심이 ‘대학의 자율성’이기 때문에 대학이 입학 과정을 소상히 밝힐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까 학종이 ‘깜깜이 전형’이라는 별명을 얻은 겁니다.

학종 선발 대학,
정부 지원금 최대 20억원 받을 수 있어

이기정

학종은 ‘학생부 종합전형’이 아니라 사실상 ‘입시 종합전형’이에요. 학생부만 입시에 반영되는 게 아니에요. 서울대 학종 구술 면접만 해도 ‘이건 본고사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수준이 높거든요. 수능 최저등급 있는 경우 많고요. 비교과에는 교과 내용 이상을 묻는 경시대회가 포함되죠. 거기에 내신까지 몽땅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으니까 대학에서 선호할 수밖에 없어요.

안선회 중부대 교수 ⓒ허란

Q. 서울대도 학종 비율이 많이 커졌는데요.

이현

서울대가 수시 전체에 입학사정관(학종의 전신)을 적용시키기 시작한 2013학년도 입시 이전까지 수시가 지역균형선발(지균)과 특기자 전형 이렇게 두 가지였어요. 지균은 내신만을 보고 선발하기 때문에 합격자의 99%가 일반고 출신이었고, 특기자 전형에서는 외고 과고 학생들이 절반 가량 차지했었죠.

하지만 서울대가 알음알음 특기자 전형을 늘려갔습니다. 2006년에는 특기자 합격자가 560명쯤 됐었는데, 2010년에 2배가 됩니다. 전체 정원의 3분의 1수준인 1150명이요. 그런데 특기자 전형이 2013학년도 대입부터 ‘수시 일반전형’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특기자 전형과 모집 요강이 완전히 똑같은데 가면을 바꿔쓴 거죠. 특기자란 이름으로는 모집 인원을 늘리기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결국, 2013년에 이르러서는 서울대가 전체 정원의 무려 절반인 1700명을 수시 일반전형, 기존의 특기자 전형 모집요강대로 뽑습니다. 서울대에 학종이 본격적으로 정착되기 시작하고, 이 과정을 통해서 특목고 자사고 출신 학생들이 획기적으로 늘어나게 됐죠.

서울대, ‘특기자 전형’을
‘수시 일반전형’ 이름만 바꿔

Q. 특목고 자사고 합격자 비율이 높은 게 왜 문제가 될까요?

이현

많이 뽑히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에요. 정당성이 없다는 게 문제예요. ‘저 친구는 수능 성적이 탁월해서 붙었어’라는 식의 명확한 합격 기준이 있다면, 다른 차원의 문제 제기는 있을지언정 공정성에서 문제가 불거지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학종은 그렇지 않아요. 붙고 떨어지는 이유를 아무도 몰라요. ‘저 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뽑히는 것 같다면 받아들이기 어렵죠. 뽑히는 과정이 불투명하고 불공정해 보이기 때문에 문제인 겁니다.

이현 우리교육연구소장 ⓒ허란

Q. 학종은 왜 투명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건가요?

안선회

입학사정관들이 학생들을 평가하고 전산시스템에 점수를 각자 입력한다고 해도 요소별 가중치를 입학사정관 개인들이 속속들이 알 수 없어요. 가중치를 어떻게 두냐에 따라 점수는 판이해지거든요. 대학에서는 이 가중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고요. 이것을 확인하려면 로그 기록이 있어야 하고, 어떻게 가중치가 결정되고 그걸 누가 결정하는지 알아야 하거든요.

평가 요소별 ‘가중치’ 공개되지 않아

이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교사의 주관적인 평가가 담긴 기록을, 입학사정관들이 주관적인 기준으로 평가한다.’ 주관적인 것을 주관적으로 평가한다는 얘긴데요. 이 과정에서 부정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죠.

입학사정관이 지원자 1명을 평가하는데 보통 얼마나 걸릴까요? 15분 정도라고 합니다. 과연 이 짧은 시간 동안 학생의 학업 능력, 전공적합성, 인성, 발달 가능성을 꿰뚫어본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부정 가능성을 논하기 전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기정

저는 학종의 치명적인 단점이 노골적인 부정부패에 있다고 보지 않아요. 기록의 객관성이 담보될 수 없는 게 가장 큰 난제예요. 교육부 학생부 기재요령 안내문에 보면 이런 예시문이 나와요. ‘실험 도구를 잘 다룬다.’ 실험도구를 다루는 정도를 교사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Q. ‘한 줄 세우기’식 입시가 문제여서 수시가 늘고 학종이 생긴 것 아닌가요? 아직은 시행착오 중이고 결국은 학종 선발로 갈 수밖에 없다 보는 분들이 있는데요.

이현

학종은 줄 세우기 안 하나요? 경희대를 예를 들겠습니다. 학종(네오르네상스 전형) 서류 평가 점수가 700점입니다. 입학사정관들은 여러 평가요소별로 A,B,C,D 점수를 줍니다. 그리고 알파벳은 점수로 나중에 점수로 합산되죠. 그러면 700점 만점으로 지원자들의 등수가 나오겠죠? 이건 줄 세우기 아닙니까? 줄 세우기가 문제라는 거짓말은 그만합시다.

학종이 인재 선발의 타당도가 높다는 것은 사실 입증된 바가 없어요. 지난해 경희대 입학처장이 발표한 ‘학종 3년의 성과와 고교 교육의 변화’ 심포지엄에 따르면 ‘학생부 위주 전형으로 선발된 학생들의 학점이 상대적으로 높더라’ 주장하셨는데요. 자료를 가만히 보면 사실 수능, 논술, 학종, 교과, 특기자 전형 합격자 중 학점이 가장 높았던 부류는 학종이 아니었어요. 학생부 교과전형이었죠.

합격 후 학점이 제일 높았던 전형을 우수한 인재 선발 기준으로 세우셨는데 왜 교과전형을 늘리지 않죠? 경희대는 지금 교과전형으로 단 한 명도 뽑지 않아요. 서강대, 성균관대도 교과로 한 명도 안 뽑아요. 인재 선발 타당성의 근거로 학점을 내세우면서 입학 후 학점이 제일 높았던 교과 전형은 배제하고 왜 학종으로 학생을 대거 선발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학점 가장 높았던 전형은
‘학생부 교과전형’

ⓒ허란

Q. 교육부에서 학생부에서 수상경력, 자율동아리 항목을 삭제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하는데요. 과연 효과가 있을까요?

이기정

학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은 아니지만, 학생과 교사들의 부담은 덜 수 있겠죠. 작은 개선인데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봐요. 교내대회가 학생들의 경쟁을 심화시킨 것은 맞고, 동아리도 1~2개만 하면 되는데 동아리조차 양으로 승부하려는 경향이 있거든요.

안선회

개선을 추구했지만, 결과적으로 개악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정책은 선한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잖아요. 학종 개선안이 나오면 그 미명 하에 그것이 학종 확대에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8월에 있을 교육부의 대입제도 종합 개편안에서도 ‘수능 절대평가, 특기자 전형과 논술 전형 폐지’ 방향으로 발표될 가능성이 크잖아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학종 비율이 늘어나겠죠? 학종의 공정성, 신뢰성, 고교서열화 등의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고 심화할 겁니다.

학생부 기재 항목 줄이기,
근본적 해결책 아니야

ⓒ허란

Q. 서울시교육청에서 내놓은 학종 개선안을 보면 ‘학종 선발 인원을 정원의 3분의 1로 제한하자’ ‘공공입학사정관을 선발해 대학에 임의로 배정하도록 하자’ 등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재훈

생산물 자체가 공정하지 않은데 3분의1로 정원을 제한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수능, 수시, 대학별고사 선발 비율을 1:1:1로 못 박는 게 차라리 나은 것 같아요. 국가에서 만든 시험인 수능으로도 뽑고, 교사들이 작성한 학생부를 기준으로도 뽑고, 대학도 자체적인 기준으로 뽑는 거죠.

이기정

교육부가 전략적인 목표를 설정한 것 같지 않아요. 8월에 교육부가 내놓은 개선안에 의해서 상당한 혼란이 도래할 거로 생각해요. 그것과 별도로 교육부의 세부적인 학종 개선안들이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다고 봐요. 학생들 입장에서 한숨 돌릴 수 있는 게 어딥니까. 학생들이 체감하는 고통을 줄여줄 수 있는 고민도 필요하거든요.

학생들 부담 줄여주는
‘개선안’은 필요

이현

저는 근본적으로 학종과 같은 전형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전형을 유지해야 한다면 서류의 신뢰성, 평가 과정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데 몇 가지 뺀다고 해서 그 신뢰성이 제고된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공공 입학사정관제는 정말 황당한 얘기를 하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64개 대학의 전임과 위촉 모두 포함해 입학사정관 수를 계산하면 4400명 정도예요. 여기에 20~25% 비율을 공공 입학사정관으로 채운다면 1100명 정도를 집어넣어야 해요. 어디서 뽑을까요? 교육을 누가 시킬까요? 대학 내 입학사정관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나요?

공공 입학사정관제,
현실적으로 운영 힘들어

안선회

정부의 추구하는 가치가 평등, 공정, 정의 아닙니까? 학종의 본질이 이런 가치들과 거리가 먼데 그런 전형을 3분의 1이나 유지하는 게 올바른 일일까요? 만약 사회적 약자를 뽑기 위해 학종의 비율을 전체의 3분의 1로 고정하는 건 정의롭다고 봐요. 전형 기준과 과정, 가중치, 결과까지 투명하게 밝히지 않으면 학종의 본질적인 문제가 절대 해결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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