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빌리다’는 방송계 은어다. 기사 쓸 사람은 정해졌는데, 읽을 사람이 없을 때 누군가에게 ‘목소리를 빌려달라’고 한다. 부탁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쓴 기사 마지막 ‘OOO 기자입니다’에 자기 이름을 넣어 읽는다. 신문으로 치면, 실제 기사를 쓴 사람과 바이라인(기사 끝에 붙는 기자 이름)에 적힌 이름이 다른 것이다.

왜 자기가 쓴 기사를
다른 기자가 읽는 걸까?

일종의 방송계 불문율 때문이다.

1분 40초. 방송기자에게 허락된 시간은 야박하다. 100초 안에 앵커 멘트와 리포트를 다 담아야 한다. 앵커 멘트 20초, 리포트 1분 20초가 보통의 공식이다. JTBC 뉴스룸처럼 중요 이슈를 깊게 파고드는 ‘선택과 집중’ 방식은 아직 낯선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메인 뉴스는 꼬마 때부터 봐온 그 모습 그대로다. 앵커가 먼저 운을 떼면 기자가 리포트로 후창하는 방식이다.

효율성은 있다. 공장처럼 포맷이 정해져 있어서, 수습기자라도 금방 따라 만들 수 있을 만큼 간편하다. 기자들 간 분업도 쉽다. 너도 100초, 나도 100초만 책임지면 되니 취재기자들끼리 부딪힐 일이 거의 없다. 시청자는 넓고 얇게라도 하루의 뉴스를 정리할 수 있어서 좋다. 이렇듯 백화점식 나열 보도가 40년간 명맥을 이어온 이유다.

오랫동안 뉴스의 형식은 변하지 않았다. ⓒ 셜록

다만, 틀에 몸을 맞추려다 보니 맹점이 생겼다. 바로 하나의 뉴스 프로그램에서 같은 기자 목소리가 한 번씩만 나와야 한다는 점이 그렇다.

예를 들어 그날 기사가 30개라면, 기자 목소리도 30개여야 한다는 것이다. 대단한 특종을 물어와도 마찬가지다. 기사 분량이 1분 40초를 넘어가면, 특종 기자는 핵심 기사만 본인이 읽는다. 나머지 1분 41초부터는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목소리를 빌리다’의 개념은 바로 여기서 나왔다. 담당 기자가 처리하지 못한 곁다리 내용을 다른 기자가 처리한다. A 기자가 취재한 내용을 B 기자가 넘겨받아 대신 쓰고 읽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단순히 ‘대리 읽기’만 하는 사례도 많다. 남이 쓴 기사를 마치 내 것인 양 마이크 앞에서 읽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냐고? 이유는 없다. 그렇게 오랫동안 해왔고, 그래서 할 뿐이다.

방송기자는 서로의 목소리를
빌리고 빌려준다

목소리의 채권-채무 관계가 가장 복잡해지는 순간은 아침 뉴스 때다.

“오늘 야근자가 너니? 어제저녁 뉴스에 네 목소리 썼니?”

“네. 출입처 엠바고 때문에 제 기사 나갔습니다.”

“그 기사는 오늘 아침에도 내보내야 하는데..그러면 목소리 겹치잖아. 아침에 네가 처리한 기사들은 편집기자한테 목소리 빌려달라고 할게.”

처음에는 이런 문화가 내심 싫지 않았다. ‘네 거, 내 거’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우리가 생산하는 기사를 공동 재산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좋았다. 무엇보다 떨어지는 콩고물이 마음에 들었다. 목소리를 빌려주는 날은 “이미 목소리 빌려줬는데요”라는 말로 조기 퇴근 가능성을 한껏 높일 수 있었다.

조기 퇴근의 달콤함으로 덮을 수 없는 큰 사건은 입사 1년 만에 벌어졌다.

원치 않는 기사를
‘대리 읽기’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시키는 대로 읽어서 보내라

2012년 가을, 대선을 석 달가량 앞두고 정치부에 파견을 갔다. 대선팀 막내 기자였던 나는 늘 깍두기였다. 배정받은 출입 정당도 없이, 필요에 따라 이곳저곳 지시에 따라 취재 다니기 바빴다. 대선을 3주가량 앞둔 어느 날, 후보 유세 일정에 없는 지역으로 취재 지시가 떨어졌다. 부산이었다.

“선배, 부산에서는 어떤 취재를 해야 합니까?”

“일단 부산으로 출발해. 기사는 거의 준비됐으니까, 자세한 내용은 내일 얘기하자. 가서 현장 찍고 스탠드업(취재기자가 직접 카메라 앞에 나와 말하는 것) 잡는다고 생각하고.”

인력도 부족한데 나를 부산까지 보내다니. 단호한 선배 목소리에서 이번 취재가 꽤 중요하다는 감이 들었다. 동선이 긴 만큼 이른 새벽부터 서둘렀다. 부족한 잠은 차에서 잘 생각이었다. 대전을 지날 무렵이었을까, 아침 보고를 마친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알려준 주소로 일단 가. 부산시 서구..”

“네, 선배. 혹시 따로 준비해야 할 게 있나 해서요. 어떤 취재인지 제가 아직 모릅니다.”

“기사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는 현장 도착하면 지시대로 현장만 잘 챙겨주면 돼.”

짧은 통화를 끝냈을 때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현장만 잘 챙기면 된다니, 거의 무임승차였다. 선배가 지시한 내용이 맞는지, 아닌지만 현장에서 확인하면 그만이었다. 신이 났다. 취재만 끝나면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차에서 잘 수 있는 기회였다.

기대는 금세 박살 났다. 현장에 도착하고 뒤늦게 선배의 초고 기사를 읽는 순간 눈을 뗄 수 없었다. 오전에 본 발제 내용과 많이 달랐다. 발제가 단순한 의혹 제기에 그쳤다면, 선배가 대신 쓴 기사는 단정적이었다.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다운 계약서 의혹에 관한 기사였다. 문 후보가 2003년 부산 부민동의 4층짜리 상가건물을 팔면서 기준 시가보다 1억 원가량 낮은 가격으로 신고했고, 세금 탈루를 한 정황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논란을 확장시키는 뉘앙스도 풍겼다. 이번이 두 번째 다운 계약서 논란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정치적 편향성을 논하기 전에,
이 기사는 당장 팩트 확인이
불가능했다

과도한 속보 경쟁으로, 기본적인 검증조차 되지 않는 보도가 늘고 있다. ⓒ 셜록

대선 판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의혹이었지만, 나로서는 지금 당장 확인할 길이 없었다. 일단 나에겐 검인 계약서가 없었다. 계약서가 없으니, 문 후보가 거래한 가격조차 알 수 없었다. 탐문 취재도 통하지 않았다. 부동산 관계자, 동네 사람들은 2003년의 부동산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난감했다.

내게는 선배를 설득시킬 무기가 없었다. ‘당장 취재가 불가능한 사안이다’지, ‘취재해 보니 사실이 아니더라’가 아니었다. 팩트에 대한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만약 사실과 다른 기사가 나가면? 선배와 나, 회사 모두 신뢰도에 타격을 입는다. 무엇보다 대선 시기 아닌가. 문재인 후보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 이 발제는 팩트인지 아닌지 아직 불명확하지 않나요? 취재를 해도 오늘 하루 안에 안 될 것 같은데요.”

“취재 다 된 거야. 너는 ‘그냥’ 스탠드업 잡고, 기사만 읽어서 보내면 돼.”

선배 말속에서 ‘그냥’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나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냥’ 움직이면 되는 존재인가

강한 회의가 밀려왔다. 내가 막내니까, 많이 몰라서 그러는 건가. 그래도 이건 정말 아니었다. 사실 확인이 안 된 기사에 내 이름과 얼굴까지 전시할 수는 없을 노릇이었다. 아무리 1년 차 기자라지만, 최소한의 직업윤리라는 게 있다. 다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강수를 뒀다.

“선배, 저는 못하겠습니다. 대선이 3주 남은 상황에서 팩트 확인이 덜 된 기사를 꼭 보도해야 할까요? 제 이름 걸고는 못 내겠습니다.”

“야! 네가 뭘 안다고 자꾸 판단해?”

“만약 사실이 아니면 문재인 캠프에 타격이 있을 것 같아서요.”

“됐고, 너는 스탠드업이랑 내가 쓴 기사만 읽어서 보내면 돼!”

전화가 끊기는 동시에 눈물이 뚝 떨어졌다. 선배의 요구는 무조건적이었다. 군대식 상명하복 구조가 체화된 언론계에서 막내 기자의 외침은 늘 무시됐고,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시한 선배보다 더 연차가 높은 선배가 내게 동조하지 않는 이상, 내 발언권은 힘이 없었다. 결국 나는 무조건적 요구를 따르게 됐다.

내 것이 아닌 기사를,
마치 배우가 된 것처럼
카메라 앞에서 읽었다

앵커는 논란에 더 큰불을 지폈다. 앵커는 자기 마음대로, 의혹을 기정사실처럼 말했다.

“(중략) 민정수석 때 말입니다. 다운 계약서 썼다고 장관들 대법관들 다 떨어뜨려 주셨는데 본인들은 다 전부 다운 계약서 썼네요.”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은 크다. 매체에 따라 박수를 받기도, 질타를 받기도 한다. ⓒ 셜록

슬픈 예감은 적중했다. 다음날 국회는 다운 계약서 논란으로 오전부터 시끄러웠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난리가 났다. 새누리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문 후보 흠집 내기에 달려들었다. 민주통합당은 사실이 아니라며 크게 반발했다.

피해자는 당연히 야당이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악의적인 내용은 종일 매스컴을 통해 흘러나갔다. 야당으로부터 취재 경위를 묻는 전화를 받았지만, 나로선 할 말이 없었다. ‘꼭두각시처럼 읽기만 했다’고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는가? 선배가 주로 취재한 내용이라 잘 모른다는, 알량한 답변을 건네주었다.

결론을 말하면 이 기사는 오보였다. 2003년 당시 부산 부민동 일대 부동산에 변화가 생기면서 상가 가격이 폭락했고, 그 탓에 문 후보가 공시지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팔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보의 대가는 있었다. “편향성이 노골적이다. 보도의 최소 조건도 갖추지 못했다”라는 혹평을 들으며, 선거방송심의위원회로부터 ‘경고’ 제재를 받았다.

왜 선배는 무리해 기사를 썼을까? 왜 앵커는 갑자기 앵커 멘트를 단정적으로 고쳐 읽었을까? 여전히 미스터리다. 다만, 짐작은 할 수 있다. 과열된 보도 경쟁이 각자의 눈을 가리고, 자충수를 두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있다. 나에게 오보 책임을 묻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현장에 가고, 카메라에 얼굴을 내비치고, 이름을 내건 것도 나인데, 이 문제에 있어서 나는 완벽히 배제됐다.

따지고 보면 사실 코미디다. 애초부터 내 쓰임은 ‘얼굴마담’이었을까? 거짓 기사를 대리해 읽었어도 책임이 없단 말인가?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종편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닐 거다. 어쩌면 언론은 기자의 이름을 빌려, 회사가 말하고 싶은, 혹은 회사 뒤의 더 큰 존재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퍼트리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의 욕망을
대리했던 걸까?

당시 나는 누구에게 내 목소리를 빌려준 것일까? 그날의 기억은 나에게 상처와 슬픔, 부끄러움을 남겼다. 두고두고 성찰하게 될 사건이 됐다. 더는 내 목소리를, 이름 뒤에 붙은 ‘기자’ 타이틀을, 타인의 욕망을 대리하는 곳에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제는 ‘대리 기자’로 살지 않을 생각이다.

ⓒ 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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