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3년 차가 되자 아무 생각 없이 좀비처럼 집과 회사를 오갔다. 회사 보도가 어떻게 굴러가든 상관하지 않았다. 자사 뉴스도, 심지어 내 기사도 방송으로 안 본 지 오래됐다. 담당 분야의 기사만 챙겨보고, 할 일이 끝나면 재빨리 인터넷 창을 닫았다.
뉴스 자체가 지겨웠다
데스크와의 언쟁에도 지쳤다. 취재 방향에 대한 불만을 표하면, 데스크는 그때만 잠깐 고개를 끄덕였다. 한가하게 ‘보도 공정성’을 논할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데스크는 일선 기자 못지않게 격무에 시달렸다. 부장 대부분이 데스크 업무는 물론이고 시사프로그램 진행, 방송 책임 프로듀서까지 맡았다.
회사를 바꿔보려는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한때 노조 설립을 추진했고, 회사 비전이 궁금하다고 경영진에게 대화를 요청하기도 했다. 5∙18 북한군 개입설 보도 때는 조건 없는 사과 방송을 내보내야 한다는 성명서도 썼었다.
그러나 다 소용없었다. 대다수 선배들은 노조 문제에 관심이 없었고, 보도 본부장은 기자들의 요구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같은 문제의식을 지녔던 기자들은 차츰 입을 닫기 시작했다. 나도 그랬다.
자연스레 분노의 날은 무뎌졌다. ‘어차피 바뀌지 않을 거 싸워서 뭐 하나‘ 자기 합리화를 시작했다. 돈을 자기 위안의 수단으로 쓰기도 했다. 종편은 월급을 적지 않게 줬다. 매월 25일이면 웬만한 대기업 신입사원 연봉에 준하는 월급이 통장에 입금됐다. 나는 그 돈으로 좋은 옷을 사고, 틈나면 바다 건너 해외로 떠났다.
나쁜 기사를 쓴 대가로 여유를 구매했다.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하면 참 편했다.
적당히 눈 감고,
타협하면 모든 게 쉬웠다
이것은 지금,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 앞에서 여전히 고개를 들 수 없는 이유가 됐다.
오늘 글에서는 나의 부끄러운 타협의 순간과, 종편의 시청률 공식에 대해 말할 예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도 사그라들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기사를 쓰는 데 익숙해졌다. ⓒ 셜록
음란 행위 CCTV를 찾아와라
세월호 참사가 터진 뒤, 회사는 유병언 뉴스를 뿌려대기 바빴다. 보도는 참 낯 뜨거웠다. ‘유병언 은신처에서 체액 묻은 휴지 발견’ ‘유병언 장남 유대균, 수행 여비서와 좁은 방에서 석 달 동안 단둘이 뭐 했나’ 등 선정적이고 황당무계한 기사들이 줄을 지었다.
나도 예외 없이 차출됐다. 후배들이 현장에서 취재해오면, 이를 토대로 기사를 찍어내고 스튜디오에 앉아 ‘설’을 푸는 것이 내 몫이었다.
그러던 중 제주에서 사건이 터졌다. 2014년 8월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이 길거리 음란 행위를 하다 발각됐다. 데스크는 내게 제주도 출장 지시를 내렸다. 이미 후배 기자 한 명이 내려가 있었지만, 혼자보다는 둘이 취재하는 것이 더 낫다는 데스크 판단에서였다.
내심 싫지는 않았다. 회사에 앉아 세월호 참사와 유병언 일가를 억지로 엮어내는 기사를 찍어내느니 제주도에 가서 음란 행위를 취재하는 것이 백번 나아 보였다. 머리나 식히고 와야겠다는 욕심도 생겼다.
설렌 마음에 퇴근을 하려는데, 선배가 나를 불러 세웠다. 선배는 명료한 말투로 내게 지시 사항을 말했다.
음란 행위가 찍힌 CCTV를 찾아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시 혐의를 부인했던 김 전 지검장도 잘못을 시인했고 명확한 피해자도 없어서, 경찰이 사건을 종결하려던 차였다.
무엇보다 성기가 노출된 영상을 확보했다 한들 내보낼 수가 없었다. 너무 선정적일 것이 분명했다. 의아한 마음에 선배에게 지시의 의도를 되물었다.
“선배, 어차피 성기 노출도 안 되고, 화면에 블러(화면을 불투명하게 처리하는 기법)치면 뭘 하는지도 잘 안 보일 텐데..왜 찾아야죠?”
“일단 확보하고, 내보낼지 말지는 나중에 결정하자.”
설득력 있는 이유나 의도는 없었다. 지시는 그냥 ‘일단 찾아라’였다. 사실 그때 기삿거리가 궁하지도 않았었다. 당시 정국은 세월호 특별법으로 난항을 겪고 있었고,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가 한 달 넘게 단식 중이었다. 뉴스에서 다룰 사건은 당시에 이미 차고 넘쳤었다.
의문은 가시지 않았지만 계속 따져 묻지 않았다. 똑같은 물음에 똑같은 답변이 반복됐고, 지쳐버렸다. 타협이었다. 결국 지시대로 나는 몇 날 며칠 사건 장소 주변 CCTV를 뒤지기 시작했다. ‘내가 음란 행위를 한다면 어디가 가장 좋을까..’ 가정하면서 골목 구석구석을 누볐다. 이미 기자들이 한차례 휩쓸고 간 뒤라 시민들은 협조적이지 않았다. 반말은 물론, 욕도 심심찮게 들었다.
하늘이 도왔다고 해야 하나, 하늘도 무심하다고 해야 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협의 입증에 결정적 증거가 됐던 CCTV의 위치를 알아냈다. 이곳도 역시 다른 기자가 들른 곳이었다. 안 될 게 뻔했지만, 면피용 보고를 위해서라도 일단 시도해보기로 했다. 박카스 한 박스를 사 들고 조심스럽게 가게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방송국에서 나온 기자인데..”
“정말 이 인간들이 왜 그래? 왜 자꾸 와서 영업 방해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혹시 김수창 영상을..”
“기자한테 CCTV 넘기지 않겠다고 경찰한테 약속했다니까. 다시 찾아오면 그냥 안 보낼 줄 알 테니까 당장 나가요.”
역시 예상대로 문전박대였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게는 첫 방문이지만, 주인장 입장에서는 잊을만하면 기자들이 찾아와 명함을 내밀었을 것이다. 기자들의 방문이 불쾌한 것은 당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길거리 음란 행위가 찍힌 영상을 달라고 하니, 얼마나 께름칙했겠는가.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되돌아 걸어 나오는 게, 그때 차릴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데스크는 왜 음란 행위 CCTV를 찾으라고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설득이 되지 않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란 행위가 찍힌 CCTV를 구해 보도했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앞서 말한 대로 당시 김 전 지검장은 변호인을 통해 범죄 사실을 인정했고,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상황이었다.
취재기자가 2명이나 달라붙어서 취재할만한 사안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었다. 고민을 거듭할수록 지시 근간에 대한 의심은 점점 시청률로 향했다.
기껏해야 ‘단독’을 크게 박아
떠들썩하게 장사하는 것 말고는
얻을 것이 없어 보였다
시청률이라는 단어를 먼저 입 밖으로 꺼낸 것은, 이 사건의 담당 경찰이었다.
“베이비로션이랑 음란 행위 혐의랑 아무런 관련도 없다니까. 왜 시사 패널들이 나와서 자꾸 막말하는 겁니까? 사람들한테 야릇한 상상하게 만들지 마요!”
“분명 지적했는데, 패널들에게 내용 전달이 잘 안 됐던 모양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시청률 때문에 그런 겁니까? 아무튼 우리는 다 끝난 사건, 키우기도 싫고 영상도 절대 못 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요.”
‘제일 답답한 건 접니다.’ 정말이지 이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꾹꾹 눌러 담았다. ‘저도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시켜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고 솔직히 말하기에는 우스운 노릇이었다.
나는 기자란 감투를 썼을 뿐
음란 행위 영상을 찾으며
시청률을 올리는 존재인가?
원했던 대로 성과 없이 제주도를 떠나게 됐지만, 결코 웃을 수 없었다. 시청률의 노예가 된 신세를 곱씹으며 조용히 침묵을 삼켰다.
시청률 경쟁이 만든 괴물
돌이켜보면, 시청률 경쟁이 모든 것의 원흉이다. 선정적 보도는 순간적으로 시청자들을 채널로 끌어들이기에 너무나 좋은 카드였다. 막말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감정에 치우친 날 것의 언어가 시청자들의 귀를 자극함은 분명했다.
특히 낮 시간대 시사프로그램 패널들이 이런 카드들을 자유롭게 꺼내썼다. 그들은 자극적이고, 검증도 안 된 추측성 말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이 과정에서 제일 신이 난 것은 본인들이었다. 그들은 메뚜기처럼 이 종편 저 종편을 떠돌며 1~2시간 출연으로 10~30만 원의 출연료를 챙겼다.
보도에 ‘타깃 마케팅’을 적용시킨 점도 우스운 일이었다. 회사는 시청률을 단기간에 높이기 위해 주 시청자인 50~60대 중∙장년들을 주로 겨냥해 기사를 생산했다. 보도가 우 편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당연했다. 발제 선정부터 패널 선정까지, 최소한의 ‘기계적 중립‘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파이 자체를 키우기보다 다른 경쟁사의 파이를 뺏어오는 데 혈안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메일로
배달되는 시청률 표는
전날의 성적표나 다름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날 시청률은 보도국의 아침 분위기를 좌지우지했다. 일단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이들의 아침 컨디션을 결정지었다. 누군가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출근하는 반면, 누군가는 침울한 표정으로 조용히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기껏해야 두 프로그램 시청률 차가 1~2% 남짓 차이였는데도 말이다.
진행자가 어떻게든 시청률을 높게 끌어올려 주기만 하면, 그에 대한 회사의 신임도 올랐다. 실제로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아 선거방송심의위로부터 ‘주의’를 받은 진행자가, 한 달 만에 메인 뉴스 앵커를 자리를 꿰차는 일도 벌어졌다. 그는 팩트를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앵커멘트를 고쳐 읽는 버릇으로 원성이 자자했지만, 정작 회사는 그를 스타 앵커로 키우려 애썼다.
솔직히 방송기자가 되고 매일 아침 전날 시청률을 전달받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 했다. 시청률 표는 생각 외로 매우 구체적이었다. 기사별 순간 시청률은 물론이고, 시간대별 시청률이 꺾은선 그래프로 표시되어 있었다. 심지어 시청률이 높게 나온 리포트에 포상을 해주는 종편사도 등장했었다.
보도 상업주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아침에도 어김없이, 전 직장 종편 기자들 메일함에는 시청률이 배달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시청률이 보도의 가치 판단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