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문에 식칼이 꽂혔다. ‘쿵’ 소리와 함께, 심장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품에 안긴 두 살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칼을 내던지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지금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겠구나.’
안방 문을 가로 막고 선 남편의 명령은 단호하고 분명했다.
“방으로 들어가. 너희 친정 식구들도 죽이는 수가 있어.”
강하나(가명, 당시 만 28세) 씨가 남편의 폭력을 못 견뎌, 친정으로 가겠다고 선포할 날이었다. 그날 남편 장원기(가명, 당시 만 28세)는 결국 칼을 들었다.
강 씨는 다리가 휘청거렸다. 곧장 아이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잠을 재우기 위해 눕힌 아이를 보니 눈물이 흘렀다.
안방 문 넘어엔, 남편이 있었다. 코미디 TV 프로그램을 보며 웃는 남편의 소리가 문틈 사이로 들려왔다. 아이와 그녀에게 방금 칼을 겨눈 사람이 맞을까,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날 강 씨는 겉옷을 입은 채로 잠들었다. 남편이 언제 눈이 돌아 또 칼을 겨눌지 몰랐다. 2012년 1월경의 일이다.
사흘에 한번 꼴로 이뤄지는 남편의 폭력. 2010년 결혼 이후 신혼생활 1년 차 때부터 시작했다.
키 183cm, 몸무게 110kg, 남편은 강 씨의 팔과 다리를 주먹으로 내리꽂았다. 머리 채를 잡고 방안을 질질 끌고 다녔다. 그 옆에는 늘 어린 자녀가 누워있었다. “그만하라”는 그녀의 사정에도, 남편은 꿈쩍 않았다.
남편의 주먹보다, 그에게 돌아온 대답이 오히려 강 씨 마음에 비수를 꽂기도 했다.
“너는 왜 이렇게 맷집이 없냐?”
남편의 폭력에 몸을 다친 강 씨가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있던 날이었다. 일터에서 돌아온 남편은 또다시 행패를 부렸다. 그는 강 씨가 덮고 이불을 거칠게 빼앗았다. 힘없이 누워있던 그녀는 그대로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은 한가지였다.
‘죽거나, 죽이거나. 우린 둘 중 하나겠구나.’
2012년 2월, 강 씨는 두 살배기 아이만 데리고 신혼집을 도망쳤다.
곧바로 강 씨는 가정폭력범인 남편과 이혼 소송을 준비했다. 이혼만 하면, 자신에게 주먹을 휘두르던 남편과 영원히 연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혼 소송은 감정의 골을 더 깊게 만들었다.
소송 중 법원에서 남편을 계속해서 마주해야 했다. 가사조사관에게 조사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정폭력범인 남편과 한 공간에 나란히 앉아 그간의 피해를 설명해야 했다. 조사 도중 감정이 격해진 남편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고성을 지른 적도 있었다.
“(아내 강 씨를 향해) 내가 언제 그랬어! 이봐(가사조사관 지칭), 내 말 끝까지 들으라니까?”
동시에 강 씨는 남편을 상해 혐의로 고소했다. 그동안 기록해왔던 일기장, 3차례의 병원 진단서, 폭력 후 남편이 쓴 각서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인 2014년 7월, 서울북부지방법원은 남편 장원기 씨에게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서울가정법원은 2015년 9월 이혼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남편의 폭언과 폭행을 고려해 남편을 유책배우자로 인정했다.
법원은 유책배우자인 남편에게 위자료 3000만 원을 청구했다. 양육비는 2012년 12월부터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매달 60만 원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짧은 혼인 기간으로 재산분할은 기각됐다.
전 남편의 폭력에선 벗어났지만 홀로 아이를 키우게 된 강하나 씨. 강 씨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자 고민이 깊어졌다. 이혼 소송 당시 두 살배기 자녀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됐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니 유치원 때보다 귀가 시간이 낮 12시 정도로 빨라졌어요. 아이가 학교에 있는 시간에 일을 하자니 급여가 적어 생활이 어렵고, 시간을 투자해 더 많은 돈을 벌자니 아이가 집에 혼자 방치됐습니다. 그렇다고 아이만 볼 수도 없잖아요.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싱글맘 강 씨는 아직 어린 자녀에게 일정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귀가하기 전까지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다녔다. 급여는 반토막났다.
하루는 한부모 가정끼리 고민을 나누는 모임에 참가했다. 강 씨는 그곳에서 오간 이야기가 남일같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오후 1시에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가 돌아오는 오후 8시까지 혼자 있다는 거예요. 그동안 찬밥이나 인스턴트를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거죠. 요즘은 주거침입 성범죄도 많이 일어나잖아요. 그 모임에서 제 미래를 보는 듯해 너무 불안했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위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제가 가정폭력범인 남편과 이혼하면서도, 마음에 걸렸던 건 아이예요. 비록 좋은 환경은 못 되어도, 두 부모가 있는 것과 엄마 혼자서 아이를 기르는 건 차이가 있잖아요. 한부모 가정 아래 자라야 할 아이지만, 두 부모에게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처럼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고민했죠.”
강 씨는 양육비로 시선을 돌렸다. 2012년 12월부터 2016년까지 전 남편이 미지급한 양육비는 2000만 원을 넘어섰다. 그녀는 자녀를 ‘나몰라라’하는 무책임한 전 남편에게 양육자의 권리를 찾아오고 싶었다.
망설임 끝에 읍소에 가까운 문자를 전 남편에게 보냈다. 3년 넘게 받지 못한 양육비를 이번엔 받고자 다짐했다.
“나야..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데 우리 아이 문제니까 연락주길 부탁해…”
가정폭력으로 이혼한 강 씨는 전 남편이 두려웠지만, 아이만 생각했다. 비양육자가 양육비를 줄 때까지 엄마로서 가만히 기다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 전 남편의 대답은 이렇게 돌아왔다.
“아이랑 같이 와서 내 앞에 무릎 꿇고 구걸하면 양육비 주는 걸 생각해볼게”
강 씨는 실낱같은 희망을 믿었던 자신이 한심했다. 그녀는 국가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여성가족부 산하 기관인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 전 남편에게 ‘양육비이행명령’ 소송을 걸었다. 가정폭력 피해자로서 전 남편을 혼자 다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소송은 총 4년이 걸렸다. 전 남편은 이미 이혼 소송 중 재산, 아파트, 가게 등을 다른 사람의 명의로 돌려놓았다. 자영업자인 그는 4대 보험도 들지 않아, 국세청에서 소득을 파악할 수 없었다. 서류상 거주지도 실거주지가 아닌, 친척 집으로 등록했다.
긴 싸움 끝에 법원은 전 남편에게 과거 양육비에 대한 ‘이행명령’을 선고했다. 하지만 전 남편은 법원의 판결을 무시했다. 결국 법원은 그에게 ‘감치’ 집행 10일을 명령했다. 구치소에 연행된 이후에도 전 남편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강 씨 입장에선, 남편이 양육비를 고의로 주지 않는 게 분명했다. 카카오톡엔 그의 사치스러운 일상이 그대로 노출됐다. 전 남편은 양육비는 주지 않으면서 골프, 수상레저 등 취미 생활을 즐겼다. 그는 외제차와 명품 모자 등도 애용했다.
근본적으론 미흡한 법이 문제였다. 수십 년간 양육비를 주지 않아도, 현행법상 미지급자를 처벌할 규정이 없었다.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제재는 감치 정도다. 비양육권자가 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버틸 수 있는 배경이다.
“돈이 없어서 양육비를 못 준다고요?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부모로서 아이를 위한 돈을 가장 먼저 마련해놔야죠. 그 이후에 사치를 하든 말든 상관없어요. 양육비를 주지 않아도 법적으로 처벌 조항이 없으니, 전 남편이 멋대로 행동하는 겁니다.”
문제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였다. 초등학생 아이는 주변 친구들을 통해 아빠의 부재를 알아갔다. 하루는 아이가 휴대전화 화면을 강 씨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엄마, 아빠는 내 양육비는 안 주면서 불우이웃은 돕나 봐.”
아이가 보여준 화면에는 기사 사진이 떠있었다. 서울 지역 청과물시장 상인회인 전 남편이 동대문구청을 방문해 700만 원 상당의 돈을 기부했다는 기사였다. 양복을 빼입은 전 남편은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옆에 서있었다.
“요즘 애들은 초등학교 저학년도 휴대전화를 만질 줄 알잖아요. 아이가 휴대전화로 포털에 아빠를 검색해보다가 우연히 기사를 발견했나 봐요. 아이에게 늘 ‘우리가 아빠와 같이 살지 않지만, 아빠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곤 했는데… 정말 억장이 무너지죠.”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강 씨만의 고통이 아니다. 여성가족부 발표에 따르면, 이혼한 한부모 중 약 80%가 전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 양육비해결총연합회에 따르면, 양육비 미지급으로 고통받는 피해 아동은 100만 명이 넘는다.
한 개인이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는 건 어렵다. 미지급자가 막무가내로 버티거나, 행방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사례가 많다. 가정폭력 피해자인 강 씨처럼 전 배우자를 직접 대면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2018년 7월 <배드파더스> 사이트가 탄생했다. <배드파더스>는 이혼 후 양육권자에게 양육비를 주지 않는 ‘나쁜 부모’들의 얼굴과 신상(이름, 거주지 등)을 공개한 온라인 사이트다. (배드파더스 바로가기)
<배드파더스> 사이트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한 취지를 설명한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bad father’를 공개하는 취지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아빠들이 양육비를 주도록 압박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압박이 정당성을 갖고 있는 근거는, ‘아빠의 초상권’보다 아이의 ‘생존권’이 더 우선되어야 할 가치라는 믿음입니다.”
<배드파더스> 해결 건수는 2019년 12월 기준 총 111건이다. 공개 건수 400건 대비 해결 비율 27.5%는 사이트가 개설된 지 1년 만에 이룬 성과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의 해결률(32.3%)과 비교하면, 의미 있는 수치다
강 씨의 전 남편 역시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신상이 공개되어 있다.
강 씨는 직접 발로도 뛰어다녔다. 전 남편의 위장전입을 밝히기 위해 서류상 거주지인 그의 친척 집 앞에서 밤 12시까지 잠복했다.
수시로 1인 시위도 나선다. 시위 장소는 전 남편의 서류상 거주지, 일터, 경찰청 등을 가리지 않았다. 그녀는 전 남편의 얼굴 사진을 내걸고,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피켓을 들었다.
시위를 시작한 올해 6월께부터, 전 남편은 양육비 60만 원 중 10만 원을 매달 주기 시작했다. 법원의 명령도 무시한 전 남편에게 시위 효력은 먹힌 셈이다.
하지만 2019년 12월 기준 미지급 양육비가 5000만 원을 넘은 현재, 양육비 10만 원은 마치 그녀의 노력을 비웃는 듯했다. 가정폭력 가해자이자, 양육비 미지급자인 전 남편은 현재 연락처와 주소를 바꿔가며 잠적했다.
“가정폭력 피해자인 제가 목숨 걸고 직접 전 남편의 행방을 쫓고 있는 상황입니다. 비양육자가 자발적으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국가에서 아이의 복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양육비 지급에 강제력을 갖게 해야죠. 정말 속이 터집니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 해결은 아직 아득하기만 하다. 사적 문제로 치부하며 방임하는 사회 탓이 크다.
강 씨는 이런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다. 그녀는 국회에 계류 중인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형사 처벌 법안이 통과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살기 위해 전 남편에게 도망친 그녀가 다시 그를 찾아 나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