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만난 동료의 표정은 밝았다. 호탕한 웃음소리도 그대로였다. 심신이 힘들어 여러 병원을 다녔던 과거와 비교하면 그는 확실히 행복해 보였다. 음식점에 들어서자마자 식사 메뉴를 재빨리 주문하고 그간 못다 한 얘기를 풀어놓을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화기애애함 속에서 몇 분 대화가 오갔다.
“요즘도 힘드세요?”
“아니요. 퇴사하지 않고 견디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예상치 못한 말을 듣고 순간 젓가락질을 멈췄다. 그는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내가 알던 그가 맞나‘ 싶었다. 불과 1년 전과 비교하면 그는 많이 달라졌다. 회사 보도 방향에 늘 불만을 토로했던 그다. 울기도 했다. 각자 퇴사 후 ‘플랜 B’를 서로 논의할 정도로 ‘퇴사가 답’이라는 말도 자주 했었다.
갸우뚱거리는 머리를 애써 고정했다. 안 본 지 1년 사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혹시 나의 퇴사가 회사에 충격이라도 줬나? 의아함을 참지 못했다. 견디길 잘한 그 이유를 되물었다.
“왜 견디길 잘했다고 생각하세요?”
“예전보다 일에 많이 적응됐고, 이전 부서에 비해 일찍 퇴근하는 편이예요.“
그의 말 곳곳이 불편했지만, 말꼬리는 잡지 않았다.
그의 기준대로라면 나는 적응하지 못해 떠난 패배자였다. 맞다. 사실이다. 재직 3년 내내 나는 늘 궂은 말만 내뱉고, 결국 회사의 보도 방향과 과도한 업무 강도를 견디지 못해 퇴사했다. 만족스러운 순간도, 기사도 손꼽을 정도로 적다.
감춰진 진실을 끝까지 추적해 밝히고, 자본과 권력을 감시하며,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대리인이 바로 기자라면 종편에서의 재직 3년 중 떳떳한 순간은 거의 없다. ⓒ 셜록
지난 3년 재직을 요약하자면 돈을 벌기 위함, 그리고 이직의 최소 조건 ‘경력 3년‘을 채우기 위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부끄럽다. 기자 일을 계속한다면 평생 안고 갈 기억이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조기 퇴근 욕구‘가 내 퇴사 결정의 핵심 이유는 아니다.
부끄러운 저널리스트로
살기 싫어서 떠났다
꺼내지 못한 말로 머리가 복잡했다. 대화를 다시 이어나간 것은 그였다. 그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는 말을 덧붙였다.
“여유가 생기면 북한대학원에도 다니려고요.”
“원래 북한에 그렇게 관심이 있으셨어요?”
“그런 건 아닌데요. 하다 보니 재밌더라고요. 종편에서 북한 이슈에 대한 수요가 크잖아요. 전문 영역 하나 만들면 좋죠.”
그는 외교부 출입 기자였다. 종편에서 외교부를 담당하는 것은 북한 기사를 맡아 쓴다는 것이다.
발령 부서에 대한 사전 지식을 충분히 쌓은 상태로 팀을 옮기는 일은 매우 드물다. 부딪히면서 배우고, 기존 방식을 답습하는 게 일반적이다. 재교육은 없다. 안 그런 부서가 없었고, 여전히 대부분의 언론사가 그렇다.
종편에서 북한 기사를 만들어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하루 종일 조선중앙TV를 시청하며
발제 거리를 찾는다
보도 본부 각층에 설치된 모니터 중 하나는 늘 조선중앙TV에 고정되어 있다. ⓒ 이명선
안보 이슈가 터졌을 때를 제외하고는 ‘조선중앙TV’에서 방영된 보도 내용을 기초해 기사를 쓰는 경우가 대다수다. 눈여겨보다가 특이점이 있으면 발제한다. 북한 이슈에 관심이 많은 일본 언론을 포함한 여러 외신들, 그리고 북한 이탈 주민들과의 인터뷰로부터도 기삿거리를 찾는다.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아도 제법 기사화된다. 김일성 일가의 호화 생활, 리설주 패션 등이 그 예다. 사안의 경중을 떠나서, 아무도 쓰지 않은 내용이면 단독을 붙여 보도한다. ‘김정은의 남다른 외제차 사랑’ ‘북한 상점에서 미니마우스 인형 판매’가 단독을 달고 나갔다.
퇴사 전 그와 나눴던 한 대화가 머리에 스쳤다. 신출내기 기자가 조선중앙TV를 보며 발제 거리를 생산하는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눴었다. 현장을 뛰어다녀야 할 신입 기자가 조선중앙TV를 지켜보며 기삿거리를 찾아내는 것이 적절한가에 관해 논했다. 신입 기자가 외교부 출입 기자가 되는 일은 종편에서 흔히 벌어진다.
북한의 동향 분석을 위해라도 누군가는 조선중앙TV를 들여다봐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북한과 외교 상황에 대한 지식이 적을 수밖에 없는 막내 기자가 꼭 맡아 해야 할까‘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적절치 않아 보였다. 그도 동의했다. 북한은 현지 취재가 불가능하고, 취재원 확보와 사안의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 또한 외교부 출입이 결정됐을 당시 북한 이슈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다. 취재 경력도 길지 않았다. 솔직히 신입과 그다지 다른 위치가 아니었다. 선배들이 썼던 기사들을 보면서 어떤 것이 ‘기사감’이 되는지 가늠하고, 타사 뉴스들을 흉내 내며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북한대학원을 졸업해 북한 전문 기자가 되겠다는 그의 포부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 ‘전문성 부족’이 ‘종편의 북한 보도 문제의 핵심인지’ 묻고 싶었다. 힘든 시기를 견뎌낸 것이 자랑스럽다는 그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의 바이라인이 달린 기사 중 북한 관련 신변잡기적 뉴스가 숱하게 검색됐다.
전문성을 논할 필요가 없다. 종편의 북한 보도는 저널리즘의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사실 확인’ 없이
소문이나 추측에 기대어 쓴
기사가 상당수였다
북한 뉴스에는 유독 ‘대북 소식통’이라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정보원이 자주 등장한다. 사실 확인이 됐다는 말보다는 ‘알려졌다’ ‘전해졌다’라는 표현이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한다. ⓒ 셜록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 관련 기사가 그렇다. 국정원이 ‘김정은이 왼쪽 발목에 난 물혹을 제거했지만 재발 가능성이 크다’라고 발표한 이후, 종편은 어느 누구보다 김정은의 건강을 걱정(?)했다. 쩔뚝거리는 모습이 조선중앙TV에서 포착되면 건강 이상설과 관련된 리포트가 어김없이 보도됐다.
추측성 기사에서는 늘 근거가 미약했다. 한 종편이 김정은의 손목에 붕대가 감긴 것에는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보도하면서 정작 근거는 없었다. ‘민생 행보를 이어가며 인민 사랑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 연출’이라고 풀이했지만 기사 어디에도 누가, 어떠한 근거로 그러한 분석을 내놓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근거가 될 확실한 팩트가 없었다.
근거는 다른 것이 대체했다. 누군가의 발언이 팩트와 근거를 대신했다.
단골 종편 패널의 말이
의혹을 설명하는 만능키처럼 쓰였다
지난 18대 대선 때 보도본부 분위기를 예로 들겠다. 당시 정치부 기자들은 밀려드는 기사 작성 요구를 소화하느라 상당히 버거워했다. 파견 근무를 간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치부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많이 헤맸다.
방송 기사 특성상 기사 한 개에 누군가의 말 ‘싱크’가 적어도 한 개씩 들어가야 했다. 촉박한 시간에 신뢰할 만한 전문가를 찾아가 인터뷰해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선택한 방법은 스튜디오 출연을 끝내고 내려오는 종편 패널들을 붙잡아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오늘 출연자 명단이 보도 정보 시스템 리스트에 올라오면, 녹화가 끝날 무렵 카메라를 대기시켰다가 필요에 따라 인터뷰를 했다. 원하는 답을 받았다고 해도 무방했다. 기사의 내용을 간략히 설명하면, 단골 종편 패널들은 필요한 싱크를 편집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짧고 명쾌하게 줬다.
막내 기자였던 내가 주로 이 작업을 맡았다. 스튜디오 분장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출연진이 녹화를 끝날 무렵 다가가 기사용 인터뷰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쉬운 작업이었다. 선배들이 질문 리스트를 주면 그것을 읽으면 그만이었고 ‘이런 식의 답을 받아라‘ 요청이 들어오면 원하는 대답이 나올 수 있게 질문을 짰다.
기자가 할 여력이 없으면, 보도본부 AD(사무 보조 담당자)에게 질문지를 넘겨 대신 인터뷰를 따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AD는 기사에 대한 이해가 아예 없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질문을 읽어 쉽게 인터뷰를 땄다. 단골 종편 패널들은 늘 정답(?)에 가까운 원하는 답변을 줬다.
종편의 북한 기사에서도
몇 명의 북한 전문가들이
‘돌려막기식’으로 등장한다
2013년 5월 TV조선과 채널A는 5·18 광주 민주화 항쟁에 북한군 개입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근거로 가명의 이탈 주민의 말을 인용했다. 구체적인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 5·18 기념재단
왜 종편은 북한 기사에 집착할까?
첫째, 북한은 반론∙정정보도를 신청할 수 없다.
김정은 일가에 대해 사실과 다르게 보도하더라도 직접적으로 문제 제기할 대상이 남한 땅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면 말고’식의 보도를 계속 이어가는 이유다. 오보가 나더라도 북한 기사는 ‘면책 특권‘을 누린다.
기자 스스로 팩트에 대한 강박이 적다. A와 B 간의 다툼에 대해 보도한다면, 양측의 목소리를 균형 있게 담는 것이 언론계 보통의 룰이지만 북한 기사는 예외다. 김정은에게 ‘손목이 진짜 아픈지 아닌지’ 등을 물어볼 수가 없다. 북한은 누구도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암상자 속에 있기 때문에 아무 검증 없는 외신의 북한 뉴스도 마구 받아쓴다.
둘째, 시청률을 견인한다.
북한 뉴스는 선정적이고, 가십∙조롱거리 여지가 많다. 종편의 주 시청자층 또한 북한에 대해 관심이 크다. 기사 쓰기도 간편하고, 잘 팔리는 콘텐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윗선에서 선호된다.
낮 시간 때 시사프로그램에서 이만한 ‘이야기 떡밥’도 없다. 조선중앙TV 자료화면을 틀어놓고, 패널들의 말을 흘려 보내면 시청률은 마법처럼 올라간다.
오늘 이 순간에도 종편은 조선중앙TV에 저작권료를 지불한다. 언론사별로 매년 수백, 수천만 원 규모에 이른다. 2009년부터 북한으로 직접 송금할 수 없게 되면서 저작권료는 현재 법원에 공탁되어 있지만 지상파와 종편, 보도 채널이 지불하는 총 저작권료는 연 1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북한 보도가 늘수록 액수도 커질 것이다.
채널A의 과거 기사들 중 상당 부분 페이지 연결이 불가능해 기사를 확인할 수 없다. 엉뚱하게 홈페이지 대표 화면으로 연결되는 기사도 많다. ⓒ 채널A 홈페이지 캡처 화면
동료와 식사 자리는 웃으며 잘 끝냈다. 퇴사 후 온전한 시청자가 된 뒤에 내가 느낀 종편, 특히 종편 북한 뉴스에 대한 솔직한 생각은 결국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3년간 그와 내가 쌓아온 인간의 정이 내 입을 가로막았다. 조목조목 따져 물어도 그는 또 다른 근거를 내세워 현재의 본인을 설득시킬 것 같았다
슬펐다.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예전의 그가 눈에 아른거렸다. 회사의 보도 방향에 분노하던 그가 그리웠다. 농담으로 던진 그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재밌는 얘기 해줄까요? 며칠 전에는 조선중앙TV에서 내 이름 말하면서 몸조심하래요. 하하하(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