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기획 에필로그입니다. 기획이 마무리 될 무렵 여러 언론에서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고민 끝에 거절했습니다. 대신 이곳에 그동안 말하지 못한 소회를 풀어놓습니다.

사람을 잃고, 얻다

친했던 전 직장 동료 몇 명이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끼니를 거를 정도로 괴로웠다. <나는 왜 종편은 떠났나> 기획 시작 이후 많은 사람을 잃었다. 종편이 옳은 방향으로 바뀌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기획이지만, 종편에 남은 일부 조직원들은 자신을 저격한다고 여겼다. 처음 이 기획을 제안받았을 때 극구 거절했던 이유도 이런 염려 때문이다.

‘직업인’ 개인,
‘정을 나눈’ 개인을
분리해낼 자신이 없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북풍몰이’를 하는 종편의 보도가 잘못됐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어도, 해당 보도를 한 기자가 나와 살을 부대낀 동료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쉽지 않았다. 주제에 맞는 예시를 찾았는데 해당 기자가 친한 동료면 망설여졌다.

인간관계가 끊어질 것을 감수해야 했다사실 퇴사 이후에도 회사에 남은 사람들, 다른 종편으로 이직한 많은 이들과 가깝게 지냈다. 혹자들은 종편을 하나의 괴물로 봤지만, 내게는 나와 호흡을 함께한 동료들이 속한 집단이다.

종편 기획에서 등장하는 대부분의 기자가 내게 호의적이었다. 기사를 마감하면 밤새 같이 코가 비틀어질 때까지 부어라 마셔라 술을 들이켰고,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후배인 나의 끼니를 매번 부담한 선배도 많다.

하지만 기자는 문장단어 하나로 누군가의 삶을 칼질할  있다.

기자로서의 직업윤리는
인간적인 정과 분리해
냉철하게 평가해야 한다

이명선 기자 ⓒ 셜록

그럼에도 애초에 계획했던 내용의 절반을 소화하지 못했다. 우선, 문제 삼을 종편 보도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해당 종편 보도를 어느 기자가 했는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써야만 하는 내용이 아니면 기자 개인이 드러나지 않는 사례를 넣으려 노력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신과 나의 경험담을 연재해도 되겠냐라고 묻기도 했는데, 대부분 거절당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굳이 회자시킬 이유는 없었다. 용기를 강요할 수도 없었다. 방송은 팀워크다. 내가 쓴 기사라도 연루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안면몰수하고 쓰기 어려웠다.

기획을 중도 포기할까 고민한 적도 있다. 나와 친했던 기자가 “어떻게 우리에게 그럴  있느냐라는 비난을 했다고 전해 들었을 때, 회사 차원에서 나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랬다. 골방에 모여 친구들끼리 나라 욕을 할 수 있어도, 외국인이 한국을 욕하면 기분 나쁘기 마련이기에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묵묵히 뒤에서 응원해준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

반면 “ 경험담과 의견을 적극 활용해달라라고 말하는 동료도 많았다. 큰 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힘들 때마다 통화로 위로의 말을 건넨 이들도 많다. 평소에 연락을 잘 안 하고 지낸 선배가 조용히 후원한 사실을 알고 큰 힘을 받기도 했다.

회사가 바뀔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 “좋은 선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문자는 사진첩에 저장해두고 무기력해질 때마다 꺼내 읽었다. 묵묵히 뒤에서 응원하는 이들이 없었다면 글을 끝까지 쓰지 못했을 것이다.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 셜록

독자들이 데스크가 되다

연재를 시작하고 예상치 못할 정도로 대중의 호응이 좋아 놀랐다. 여러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연재 시작 사흘 만에 펀딩 금액 절반이 모였고, 반 달이 지나자 목표 금액 500만 원이 다 찼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거라는 걱정은 기우였다

호응과 동시에 종편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연재 초반 많은 질타를 받기도 했다. “지난 3년간 낯부끄러운 기사를 쓰고, 이제 와서 반성하면 무슨 소용이냐”라는 말이 가장 많았다.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종편 재직자들이  댓글들을 보며 종편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알아줬으면 했다.

대다수의 기자들은 시청자, 혹은 독자들의 반응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다. 포털사이트에 오른 자신의 기사 댓글을 꼼꼼히 확인하는 종편 기자를 거의 보지 못했다. 일에 치여서이기도 하지만, 외부 반응이 내부에서 아무런 변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이에 반해 종편 기획을 시작하고, 놀라웠던 하나가 독자들의 반응을 직접 체감할 있다는 이었다. 연재에 달린 댓글도 댓글이지만, SNS 계정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메시지를 보냈다. 어떤 일이든 도와주겠다는 글, 해외에서 후원하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글 등 다양한 응원의 말들에 큰 힘을 얻었다.

독자들의 피드백이
당근이자 채찍질이 됐다

자신의 사연을 메일로 전하는 독자도 있었다. 감사했다.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제도권에서 포용하지 못하는 억울한 사연들이 세상에 참 많았다. 부족한 내 능력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날 일깨우는 큰 동력이다.

ⓒ 셜록

 흔한 반성문   썼습니까?

퇴사한 이후, 내가 다니던 조직에 입사한 한 기자가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냈다. 각자의 의도와 사정 있으니글로 후배들의 기를 꺾지 말아달라라는 내용이었다.

그가 말한 ‘각자의 의도와 사정’을 내게 적용해 봤다. 퇴사 전 나는 밥벌이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미래를 담보할 특출난 무언가도, 용기도 없었다. 서른을 앞둔 나이에 다시 신입 지원을 할 자신이 없었다. 이직이 훨씬 쉬운 길이었다.

또 여유로운 형편도 아니었다. 점차 통장 잔고 앞자리에 많은 의미 부여를 하게 됐다. 모든 직장인이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부양할 가족이 있다면 이직과 퇴사에 대한 결정권은 온전히 자기 것이 아니다.

비겁하게 찾은 해결점은 ‘3년을 채우고 이직하자였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숱하게 많은 낯 부끄러운 기사들을 세상에 뿌렸다. 마음 속으로는 순결한 직업인이 되고 싶어도, 현실에 굴복하는 내 자신이 참 싫었다. 결국 3년 뒤 나는 이직을 포기하고, 자발적 백수가 됐다.

각자의 사정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기자는 일반 직장인과 동등한 선상에 놓을  없다. 기자 각자의 의도와 사정이 타인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각자의 사정은 직업인 윤리를 다 지켰을 때나 용인된다.

난 과거의 나를
용서할 생각이 없다

돈을 벌고 싶으면 다른 직업을 선택하면 됐고, 대중으로부터 박수받는 기자가 되고 싶으면 차라리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되는 게 옳다고 봤다.

직장인기자로 산다면적어도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현재는좋은 직장으로언론사 선택한 이들이 적지 않다

개개인의 사정, 혹은 언론계의 관성을 봐줬다가 최악을 초래할 수 있다. 일례로 세월호가 참사가 그렇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팽목항을 찾은 모습 ⓒ 셜록

언론사 간 치열한 속보전 때문에 모든 언론이 해경의 말만 믿고 ‘전원 구조’ 오보를 냈다. 구조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해오던 관성대로다른 언론사들도 하니까, 정부의 발표를 의심 없이 받다 썼다. 수색이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거짓 보도를 냈다.

유병언을 수사하던 인천지검이 이례적으로 백브리핑을 많이 열었을 때도 이를 하나하나 꼼꼼히 받아쓴 것이 종편이다. 종편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많은 의제를 유병언 일가 뉴스로 덮었다유병언 도피극에 종편은 가장 중요한 조연이었다. 굳이 당장 보도하지 않아도 될 사안에 역량을 쏟느라, 꼭 보도해야 하는 뉴스가 뒷전 신세가 됐다.

언론의 힘은
보도해야 하는 사실을
보도하지 않을 때 나온다

어떤 기자는 유병언 관련 기사 중 틀린 내용은 없으며일견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당시 최선을 다한 것에 대해 질타하지 말아 달라고 한다. 유병언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거짓을 브리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해진 해운의 비리, 유병언 일가의 횡령 배임은 모두 사실로 밝혀졌다. 하지만 유병언 검거가 세월호 참사의 중심이 아님을 이제 모든 국민이 알고 있다.

세월호 인양까지 3년이란 시간이 걸린 데는 나와 종편 기자들의 책임도 있다세월호 참사 직후 유병언 일가, 청해진 해운, 구원파를 대대적으로 터는데 우리 모두 가담했다.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자판 몇 번의 두드림으로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지연시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팽목항을 찾은 모습  ⓒ 셜록

평생 기억해야 하고반성해야 한다. 윗선의 지시에 따라 쓴 기사라 해도 바뀌는 사실은 없다.

이것이 ‘각자의 의도와 사정’을 기억해 달라는 그 기자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우리의 사정을 논하기 앞서 반성부터 해야 한다. 당연히 해야 하는, 앵커 멘트 오류 수정은 노력이 될 수 없다. 우리도 내부에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달라는 그의 말이 진정성 있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흔한 반성문   낭독 없이, 자기 성찰 없이나아질  없다

후배들의 기는
떳떳한 보도를 하는 순간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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