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미지급자 ‘배드파더’ 박OO 씨의 전 부인, 기자 폭행이 이슈다. 그날 그 자리에 <셜록> 김보경 기자도 있었고, 폭행 피해를 당했다. 김 기자가 그날의 전체 이야기를 썼다. 경찰, 소방서장도 있던 그 난동의 현장. 공권력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가정폭력, 양육비 문제를 개인 문제 치부하듯이, 경찰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날의 이야기를 전한다.
칼을 든 가정폭력 가해자이면서 8년간 양육비를 주지 않은 남자의 점포 앞에 동대문소방서는 명패를 달아줬다.
‘의용소방대원’
아내를 때려 상해를 입힌 죄로 유죄를 선고 받은 남자, 법원의 명령도 무시한 채 자기 아이 양육비를 주지 않아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신상이 공개된 사람. 그는 누구를 지키겠다고 의용소방대원이 된 걸까.
강하나(가명. 38세) 씨는 의용소방대원이자, 전 남편인 박OO(38) 씨를 만나기 위해 서울 청량리 소재 청과물시장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인 나도 강 씨를 따라갔다.
지난 17일 오후 2시의 일이다. 그때 ‘전통시장 전문 의용소방대 발대식’이 박 씨 가게 앞에서 열렸다. 가정을 깨트렸지만, 아이도 책임지지 않지만, 어쨌든 전 남편 박 씨는 전통시장 안전을 지키는 의용소방대원이다.
시장 내 한 점포에 도착하자 박 씨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이런 글귀가 새겨진 주황색 조끼를 입고 있었다.
‘119 전통시장 전문 의용소방대’
그의 주변은 동대문소방서 관계자와 의용소방대원으로 북적였다. 박 씨의 가게 출입구 오른쪽, 흰색 천으로 덮인 의용소방대원 명패를 공개하기 직전, 강 씨가 전 남편 박 씨를 향해 소리쳤다.
“이 인간이 의용소방대원이라뇨! 저는 가정폭력으로 이혼한 피해자입니다!”
박 씨는 강 씨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로 징역 8월-집행유예 2년을 2014년에 선고받았다. 이혼 판결을 내린 서울가정법원은 2015년 박 씨를 유책배우자로 인정했다.
강 씨는 현장에 있던 김현 동대문소방서장에게 “저 사람이 양육비 미지급자인 건 아느냐”고 항의했다. 김 서장은 이렇게 말했다.
“(양육비는) 개인 일인데 왜 여기와서 이러세요!”
박 씨는 당황한 기색이 여력했다. 그틈을 타, 기자도 박 씨에게 물었다.
“재판에는 증인으로 참석하지 않으셨던데, 이 행사에는 어떻게 나타나셨습니까?”
박 씨는 양육비 안 주는 자신의 신상을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공개한 구본창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당사자다. 그는 검찰 측 증인이었지만, 14일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참여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박 씨는 기자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전 부인 강 씨를 밀쳐내기만 했다. 이 모습을 기자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자, 박 씨는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는 휴대전화 렌즈를 빤히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기자에게 팔을 뻗어 휴대전화를 빼앗았다. 그는 기자의 휴대전화를 본인 가게에 숨겼다.
박 씨는 그의 친척이 운영하는 옆 가게로 갔다. 그의 가게에서 친척 상점까지는 약 15걸음 정도다. 강 씨는 “밀린 양육비를 달라”며 박 씨를 쫓아갔다. 박 씨는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법대로 하라고 법대로, 이 씨XX이 진짜. 법대로하라고 이 씨XX아! 니가 니 새끼 키워라! 이 씨XX이, 진짜. 내가 돈이 X나 많아도 너한테 양육비 안 줘 이 XX야!”
박 씨는 2012년 12월부터 매달 60만 원씩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약 8년간 무시했다. 그가 지급하지 않은 양육비는 2019년 12월 기준 약 5000만 원이 넘는다.
박 씨의 다음 표적은 기자들이었다.그는 현장을 촬영하던 SBS CNBC 기자의 몸을 잡고 들어올려 친척 가게 쪽으로 끌고 갔다. 박 씨는 SBS CNBC 기자의 카메라를 손으로 잡아 빼앗으려 했다.
바로 옆에 김현 동대문소방서장과 대원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위급한 119 연락을 받으면 바로 출동한다는 이들은, 눈앞의 다급한 상황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SBS CNBC 기자는 카메라를 빼앗기지 않으려 사투를 벌이다 바닥에 넘어졌다. 기자가 끝까지 버티자, 박 씨는 윽박을 질렀다.
“내가 이 XX 때문에 벌금 수천 만원을 줘도 내가 카메라 뺏는다. (중략) 니가 나를 왜 찍냐고. 달라고 찍은 거. 내가 니들한테(방송사 의미) 몇번을 당한 줄 아냐.”
현장에 있던 3~4명의 의용소방대원은 바닥에 넘어진 SBS CNBC 기자를 돕지 않았다. 다친 기자를 둘러싸기만 했다. 그 상태에서 박 씨는 무릎으로 SBS CNBC 기자의 머리와 목을 땅바닥으로 눌렀다. 기자의 오른팔을 뒤로 꺾기도 했다.
현직 소방대원도, 의용소방대원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SBS CNBC 기자는 누워서도 카메라를 빼앗기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자 박 씨와 그 친척이 동시에 기자에게 달려 들었다. SBS CNBC 기자가 비명을 질렀다. 기자의 새끼손가락이 꺾여버렸다. 그가 사용한 카메라(액션캠)도 파손됐다.
기자의 비명에도 박 씨는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쓰러진 기자에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 귀를 잡아 당겼다. SBS CNBC 기자의 귀에서 피가 흘렀다.
소방대원 대신 강 씨가 나섰다. 강 씨는 상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누가 좀 도와주세요! 사람이 쓰러졌는데,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냐고요!”
기자 폭행 현장을 강 씨가 촬영하자, 박 씨는 그의 휴대전화도 빼앗았다. 박 씨와 말다툼을 하던 강 씨는 그의 친척 가게 안으로 밀려들어갔다. 그곳에서 박 씨의 친척이 강 씨의 뺨을 때렸다.
SBS CNBC 기자는 바닥에 누워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119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시장 바닥에 누워 고통스러워했다. 김현 소방서장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셜록> 기자인 내가 이런 상황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을 때, 어느 순간 박 씨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살짝 미소를 짓더니 기자에게 달려 들었다.
박 씨는 뒤에서 팔로 기자의 목을 감싸 조르기 시작했다. 기자의 몸은 들렸고,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손에 힘이 풀려 그대로 휴대전화를 놓쳤다. 박 씨는 기자의 휴대전화를 훔쳐가듯이 가져갔다.
피해자만 총 3명이 나온 이 폭행 사건은 10분 동안 진행됐다. 피해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와중에도, 몇몇 손님은 박 씨 친척 가게에서 과일을 사갔다.
경찰은 오후 2시 15분경 시장에 도착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약 7명. 하지만 경찰은 박 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않았다. 사건을 파악한 경찰은 오히려 취재진에게 한소리했다.
“그러니까 왜 이렇게 무리하게 취재를 하세요.”
SBS CNBC 기자가 “병원에 가겠다”고 요청하자, 경찰은 이렇게 말했다.
”박 씨는 본인 얼굴이 촬영된 영상을 삭제하길 원하는데, 박 씨 얼굴이 찍혔는지 영상을 보여주세요.”
SBS CNBC 기자는 “경찰서에 가서 영상을 삭제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다시 말했다.
“그러면 박 씨 얼굴 영상을 삭제해 줄 의향은 있는 거예요?”
박 씨는 경찰의 협조(?) 덕분인지, 취재진에게 위협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SBS CNBC 기자에게 “(액션캠에 촬영된 자신의) 사진을 지우라”고 윽박을 질렀다. 기자가 거부하자 박 씨는 그에게 다시 돌진했다. 경찰 약 5명이 박 씨의 몸통, 팔, 다리를 잡고 제지해도 말리기 어려웠다.
결국 SBS CNBC 기자는 촬영한 사진을 삭제하는 조건으로 현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후 그 기자는 서울 지역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박 씨는 그때까지 <셜록> 기자의 휴대전화를 돌려주지 않았다. 박 씨는 기자에게 “오늘 찍은 사진과 영상을 공유 및 배포하지 않겠다”는 자필 각서를 강요했다. 기자가 거부하자, 박 씨는 휴대전화를 돌려줄 수 없다고 버텼다.
기자는 현장에 있던 경찰에게 따졌다.
“(박 씨가) 제 휴대전화를 멋대로 가져간 건데도, 경찰이 찾아올 수 없는 건가요?”
경찰은 아무 말 없이 기자를 잠시 보더니 박 씨에게 갔다. 경찰은 기자에게 돌아왔지만, 빈손이었다.
<셜록> 기자 역시 박 씨 앞에서 취재 영상을 모두 삭제한 후 전화를 돌려받았다.
전 부인 강 씨의 휴대전화도 가져간 박 씨는 ‘앨범’ 앱 자체를 지운 후에 경찰에게 돌려줬다. 전화기 안에 있던 모든 사진은 지워진 상태였다.
결국 박 씨는 <셜록> 기자와 전 부인 강씨의 휴대전화를 강제로 빼앗았고, SBS CNBC 기자까지 총 세 사람의 사진과 영상을 삭제하도록 강요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오히려 박 씨의 요구를 도왔다.
경찰은 박 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않았다. 역시 그 덕분(?)인지 전 부인 강 씨와 기자는 당일 오후 5시께 치료를 위해 찾은 병원에서 가해자 박 씨를 또 만났다.
놀란 강 씨와 기자는 병원 밖으로 나왔다. 박 씨는 따라 나왔다. 박 씨와 강 씨의 다툼이 다시 시작됐다. 박 씨는 강 씨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멱살을 잡아 “경찰서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강 씨가 항의하자, 박 씨는 그를 바닥으로 던졌다. 그 과정에서 강 씨의 옷이 찢어졌다.
또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지만,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해달라”는 기자의 요구에도, 경찰은 약 5m 정도만 이 둘을 떨어트려 놓았다.
결국 두 사람은 공간 분리 없이 같은 병원에서 동일한 시간대에 진료까지 받았다.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박 씨는 오히려 “나도 강 씨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피의자로 신고했다. 경찰은 박 씨와 강 씨 모두에게 경찰서로 가서 조사를 받자고 요구했다.
일방적으로 맞은 강 씨는 박 씨의 쌍방폭행 주장에 서울 동대문경찰서에서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오후 6시 30분경 시작한 경찰 조사는 오후 8시 30분경에 끝났다.
현재 박 씨의 폭력으로 치료를 받은 사람만 모두 3명.
강 씨는 20일에도 서울 소재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의 병명은 뇌진탕과 어깨, 팔꿈치 타박상이다. SBS CNBC 기자는 오른쪽 새끼손가락 골절을 확진받았다. 전치 5~7주 정도의 부상을 당했다.
셜록 기자인 나는 왼쪽 손가락 찰과상과 출혈로 치료를 받았다. 박 씨에 의해 졸린 목 부위는 염좌 진단을 받았다.
양육자 강 씨, SBS CNBC 기자, <셜록> 기자 모두 특수폭행 및 상해 혐의로 박 씨를 고소할 예정이다.
여기까지가 17일 발생한, 가정폭력 전과자이면서 양육비를 안 주는 ‘배드파더’인, 의용소방대원 박 씨의 폭행사건 전말이다. 경찰은, 소방서장은 거의 방관자였고, 때로는 박 씨의 협조자였다. 다른 의용소방대원들은 무용지물이었다.
동대문경찰서 형사과장은 20일 <셜록>과의 통화에서 “경찰이 출동했을 때 싸움은 이미 종료된 상황이었고, 가해자는 인적 사항이 확인돼서 체포를 안 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가정폭력이 가정 문제로만 자주 취급 되듯이,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국가가 무력한 것처럼, 배드파더 박 씨의 난동에 공권력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양육비도 못 받고 혼자 아이 키우는 강 씨만 시장과 병원에서 두들겨 맞고 오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