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아이를 보지 않은 전 남편은 연말정산 기간엔 자식을 찾았다.
“아이 의료비는 이번 연말정산에서 내 앞으로 신청할 거야. 내년에는 내가 주는 양육비도 신청할 거니까 그리 알아. 내년에 보자, 올해는 그냥 넘어갈 테니.”
그의 문자메시지는 새롭지 않다. 협의 이혼한 2017년 2월 그날엔 이런 일도 있었다.
아내 최은혜(가명, 37세) 씨는 서울가정법원에 네 살 자녀 수진(가명)을 데려 갔다. 별거 1년간, 남편 임명수(가명, 42세)가 아이를 보고 싶어할 거라 생각했다.
딸은 오랜만에 본 아빠를 반가워했다. 아빠의 관심을 끌려는 의도인지 맨발로 법원 바닥을 기어다녔다. 아빠에게 “같이 밥 먹자”는 말도 했다.
아버지 임 씨는 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혼 협의가 끝나자마자, 임 씨는 곧장 법원을 뜨려했다. 아이가 “가지 말라”고 사정하자, 임 씨는 못 이기는 척 최 씨에게 말했다.
“협의이혼서 구청에 제출하고 다시 법원으로 돌아올 게.”
최 씨는 전 남편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일방적으로 가출하고 ‘잠수’ 타는 게 그의 오랜 수법이었으니까. 아이에게 ‘아빠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었다. 돌려 말하는 게 최선이었다.
“수진아, 아빠가 조금 늦나 보다. 아빠 이해해줄 수 있지?”
4시간을 기다리다 지친 딸은 유모차에서 잠들었다. 최 씨는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충청남도에 위치한 친정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전 남편은 아이를 속이고 애인과 여행을 떠났다. 최 씨는 그날 일을 이렇게 정리했다.
“아이가 아빠에게 버림받은 기분을 간직한 채 살아갈까 걱정이에요.”
최은혜-임명수는 2010년 결혼해, 2015년께부터 별거를 시작했다. 남편의 장기간 가출이 주요 이혼 사유 중 하나다. 집을 나간 남편은 아내의 연락처도 차단한 채 일명 ‘잠수’를 탔다. 본인 모친이 사망한 날에도 부인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남편의 외도까지 발견한 최 씨는 2017년 2월 임 씨와 협의 이혼을 결정했다. 딸의 친권, 양육권은 엄마 최 씨가 맡았다.
양육비는 2017년 2월부터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 매달 130만 원으로 합의했다. ‘양육비 산정기준표’에 맞춰 아이의 나이와 임 씨의 소득을 고려한 결과다. 당시 임 씨가 실수령하는 월급은 약 400만 원.
아빠가 아이를 만나 교류하는 시간인 면접교섭은 매달 2주에 주말 한 번으로 정했다. 전 남편은 이혼 이후로 3년간 딸을 만나지 않았다. 최 씨가 면접교섭을 요청해도, 그는 ‘연락 차단’으로 응수했다.
최 씨는 매달 지급되는 양육비를 보며 그나마 작은 위안을 받았다. 전 남편이 아이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전 남편의 약속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2018년 11월께부터 양육비를 안 줬다.
SNS를 보니, 남편은 애인과 연애 하느라 바빴다. 그는 아이를 위한 양육비는 주지 않으면서, 애인에게 ‘5만 원 권 돈 꽃다발’과 명품가방을 선물했다.
전 남편은 애인과 재혼도 준비했다. 하필이면, 재혼식 날이 딸 수진의 생일이었다.
“자식 생일에 재혼 날짜를 잡는 아빠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전 남편이 수진이를 보러 오면, 이해라도 하겠어요. 아예 아이를 머릿속에서 지우지 않는 이상 이럴 수 있을까요.”
최 씨는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달 약 200만 원을 벌었다. 자신을 대신해 아이를 돌보는 친정 엄마와 딸을 위한 생활비만 매달 최소 100만 원이 필요했다.
폐렴, 수족구 등 잔병으로 입원을 자주하는 아이의 병원비도 한 해 약 400만 원이 들었다. 매달 나가는 학원비에 어린이집 비용까지, 혼자서 감당하기 벅찼다.
양육비가 3개월쯤 밀렸을 때, 최 씨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 양육비 ‘직접지급명령’을 요청했다.
직접지급명령은 가정법원이 비양육자의 고용주(소득세 원천징수 의무자)에게 “비양육자의 급여 일부를 양육자에게 지급하도록” 명령하는 규정이다. 비양육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2회 이상 양육비를 미지급하는 경우에 활용할 수 있는 제도다.
대기업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임 씨의 월급 일부가 압류돼, 양육비 130만 원이 매달 최 씨에게 지급됐다.
최 씨는 그동안 미지급한 양육비에 대해 ‘이행명령’ 소송도 제기했다. 2019년 7월 기준, 전 남편이 미지급한 양육비는 약 1040만 원이다.
최 씨가 소송을 제기하자, 전 남편은 법원에 낸 답변서를 통해 지난 8개월간 양육비를 못 준 이유를 설명했다.
“본인은 2018년 7월부터 2019년 6월 말까지 육아휴직 사용해 월평균 80만 원 정도를 지원받았습니다.”
최 씨는 답변서를 보고 놀랐다. 4년간 아이 앞에 나타나지도 않은 아빠가 육아휴직이라니. 육아휴직 급여 부정수급이었다.
육아휴직은 노동자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사용하는 휴직이다.
원칙상 육아휴직 급여는 아이를 실질적으로 돌볼 때 받을 수 있다. 비양육자도 육아휴직 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자녀 등·하교 등 최소한의 육아를 해야 한다.
고용보험법 116조(벌칙)에 따르면,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육아휴직 급여를 받은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 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전 남편 임 씨가 부정수급한 육아휴직 급여는 매달 약 80만 원. 육아휴직 기간인 1년으로 계산하면, 부정수급 총액은 약 1000만 원에 이른다.
양육비를 못 받은 기간에도 아이는 자랐다. 딸은 종종 아버지를 보고싶어 했다. 최 씨가 친정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눈 어느 날, 아이가 울며 물었다.
“엄마도 아빠가 있는데, 나는 왜 아빠가 없어요?”
불안감 때문일까. 딸은 최근 1년 동안 야뇨증을 앓고 있다. 야뇨증은 만 5세가 지난 아동이 취침 시간 동안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증상을 말한다.
최근에 받은 심리검사에서도, 딸은 자기이해·자기조절 능력 수치가 평균보다 낮게 나왔다.
기자는 지난해 11월 말, 양육비 ‘이행명령’ 조정기일에 참석한 임 씨를 대전가정법원 OO지원에서 만났다. 아이를 키우지 않지만, 육아휴직을 쓰고 급여까지 받은 남자. 그는 육아휴직 12개월 중 8개월간 양육비를 안 준 이유를 설명하며 이상한 계산법을 동원했다.
“제가 육아휴직 4개월간 전 부인에게 매달 130만 원씩 줬어요. 그 돈을 나머지 8개월 동안 나눠서 쓰겠지 생각했죠.”
이어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기자님, (양육비) 매달 130만 원 누구 편하자고 주는 거예요? 엄마가 편하겠죠.”
이날 최 씨는 전 남편이 미지급한 양육비 약 1000만 원을 500만 원으로 합의 조정했다. 전 남편이 조정 당시 “앞으로 아이를 정기적으로 만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최 씨는 전 남편의 약속을 마지막으로 믿어보고자 한발 물러났다.
하지만 전 남편은 면접교섭 당일인 1월 13일 아침 9시께, 전 부인에게 통보했다.
“길에서 애 얼굴 10분만 보고 다시 서울로 돌아갈 테니까. 얼른 데리고 나와.”
8살 아이에겐, 4년간 사라졌던 아빠가 갑자기 나타나 10분 만에 또 사라지는 꼴이다. 전 남편은 최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나한테 뭘 기대하냐? 나 걔(딸 수진)한테 할 말도 없어. 네가 만나자고 하니까 애를 억지로 만나는 거 아니야 지금.”
결국 임 씨와 딸의 면접교섭은 성사되지 않았다. 최 씨는 아이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전 남편과 마주하면 속에서 화가 올라온다.
“애는 아빠 만난다고 들떠 있는데, 전 남편은 아이 얼굴을 잠깐 보고 돌아간다는 식으로 만남을 거부하는 거죠.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에게 온전한 가정을 만들어주지 못해 너무 미안해요.”
세금 절약과 휴직을 위해서는 아이를 이용하지만, 정작 만남은 회피하는 아빠. 그런 아빠를 보고싶어 하는 아이.
그런 전 남편과 딸 사이에서 최 씨의 속은 까맣게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