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귀가 먼 탓인지, 자기 운명을 알아챘는지, 녀석들은 더 크게 울어댔다. 유별나게 울어도 이곳에서 다른 길은 없다.
다 죽여야 한다.
수의사는 ‘일찐이’ 앞다리에 주사바늘을 꽂았다. 주사 한 방에 동공이 풀리면서 ‘일찐이’는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마취제마저 생략된 듯한 강제 죽음, ‘일찐이’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일찐이가 죽자 누군가 사육실 문을 열고 무심하게 말했다.
“어떤 고양이 귀에 인공와우(인공 달팽이관)가 이식됐는지 확인해주세요.”
선배 연구원 B는 이 말과 함께 문틈 사이로 자석을 떨어트렸다. 육안으로 구분이 안 되니, 자석을 죽은 고양이 귀에 대 보라는 지시다.
만약 자석이 고양이 귀에 붙으면, 그 고양이에겐 인공와우가 이식된 것이니 수거해가겠다는 의미다. 인공와우(인공 달팽이관)는 난청 환자가 보청기를 착용해도 청력이 나아지지 않을 때 주로 이식받는 의료기기다.
공익제보자 이도희(가명) 씨는 B의 태도에 화가 났다. 고양이를 모두 죽이기 전에 이 씨는 입양을 추진해 보자고 제안했다. 선배 B의 태도는 분명했다.
“귀도 안 들리는 애들인데, 입양은 조금 그렇지 않나요?”
건강한 고양이 한쪽 귀를 망가뜨린 채 1년간 실험도 하지 않고, 입양 반대에 이어 이식된 인공와우 ‘수거’까지.
이도희 씨는 기분이 상해 흰둥이와 일찐이 사체를 사육실 밖 복도로 뺐다. 선배 B가 직접 사체를 확인하라는 취지였다.
사육실로 다시 들어와 할배, 회색이, 초록이를 순차적으로 보내줬다. 죽음을 맞이할 때마다 고양이 사체를 하나씩 사육실 밖 복도로 뺐다.
마지막으로 ‘노랭이’ 차례였다. 손을 뻗으니 노랭이는 앞발로 사람 팔을 꾹꾹 눌렀다. 누운 채 앞발로 사람 손을 잡아 끌기도 했다. 자기를 죽이러 온 줄도 모르고, 사람을 반긴 것이다.
노랭이를 마지막으로 이날 죽음 행렬은 끝났다. 어디서 어떻게 자라 이곳 서울대병원 실험실까지 왔는지 알 길이 없는 고양이 6마리를 죽이는 데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사육실 뒷정리를 마무리하고 나왔을 때, 고양이 6마리 중 사체 두 마리가 사라졌다.
실험실로 돌아가니, 고양이 두 마리 사체가 책상 위에 있었다. 왼쪽 귀 뒷편이 절개된 채 속이 훤히 보일 정도로 헤집어져 있었다. 선배 B가 이식된 인공와우를 빼느라, 고양이 두피를 의료용 가위로 뒤적거린 탓이다.
이 씨는 헤집어진 고양이 사체를 의료용 실로 꿰맸다. 이미 죽은 고양이들을 위로할 방법은 이뿐이었다. 미안함과 괴로움에 눈물이 났다. 2018년 8월의 일이다.
실험 목적과 절차, 고양이 출처에서 떼죽음까지. 납득하기 어려운 ‘수상한 고양이 실험’을 공익제보자 이도희 씨가 목격한 곳은 국내 제일로 꼽히는 서울대학교병원이다.
서울대학교병원은 실험동물의 인도적인 관리 및 처리를 장려하기 위해 설립된 국제실험동물인증협회(AAALAC)에서 인증을 획득한 연구 기관이다.
‘고양이 실험’의 총 책임연구자는 서울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A 교수.
A 교수는 2015년 8월부터 3년간 고양이를 대상으로 ‘인공와우이식기를 통한 대뇌청각피질 자극 모델’ 연구를 진행했다. 고양이 왼쪽 귀에 약물을 주입해 망가뜨린 뒤 인공와우를 이식해 청각 대뇌피질 변화를 측정하는 내용이다.
1년 이상의 기간을 승인받은 실험은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원회)에 1년 단위로 계획서를 재승인받아야 하는데, A 교수의 고양이 실험도 여기에 해당한다. 윤리위원회가 실험 상태를 주기적으로 관리해 비윤리적인 동물실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는 농림축산식품부 소관의 지정제도로 동물실험 시설 내에서 동물을 사육하고 사용하는 모든 사항을 감독하고 평가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공익제보자 이 씨는 2017년 7월부터 A 교수 소속 연구팀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마침 고양이 실험도 윤리위원회의 세 번째 재승인을 받아야 하는 시기였다. 연구 참여자는 새로 투입된 이 씨를 포함해 총 5명. 이 씨의 주요 업무는 동물실험 보조와 마약류 관리였다.
과거 이 씨는 동물병원에서 수의 테크니션으로 근무했다. 수의 테크니션은 동물병원, 실험 기관 등에서 진료를 보조하거나, 임상병리 검사 등을 담당하는 직업이다.
A 교수 연구팀은 이 씨의 동물병원 근무 이력을 반겼다. 연구 특성상 다양한 실험동물을 활용해야 하지만, 동물을 능숙하게 다룰 연구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A 교수 연구팀은 고양이 실험을 뒷수습을 말단 연구원 이 씨에게 맡겼다.
연구팀의 모습은 이상했다. 1년간 거의 실험을 하지 않고, 개체 관리도 소홀히 했다. 이 씨도 입사 3개월이 지난 후에야 사육실에 고양이가 있다는 걸 알았다.
“입사 초기 A교수님이 ‘고양이 실험’ 참여연구원에 제 이름을 넣기는 했지만, 저는 고양이를 데리고 실험한 적이 없습니다. 어느 날 선배 연구원 C가 제게 ‘사육실에 고양이 있는 거 아느냐’면서 ‘원래 연구원이 자기들 실험에 쓰이는 실험동물을 관리해야한다’라고 설명해줬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고양이 관리를 맡았습니다.”
2017년 10월께, 이 씨가 사육실에서 처음 만난 고양이들은 모습부터 이상했다.
페르시안 품종의 실험묘 ‘흰둥이’의 눈 주변엔 검은 눈꼽이 가득했다. 꼬리와 다리에는 오물이 묻었고, 언제 목욕했는지 가늠이 안 될 정도로 털은 엉켰다. 구내염을 앓아 벌어진 입 사이로 침도 흘렸다.
같은 사육실의 코리안 숏컷 ‘일찐이’, ‘회색이’, ‘초록이’, ‘노랭이’ 모두 위생 상태가 심각했다. 발톱은 털보다도 길었고, 고양이 감기 일종인 전염병 ‘허피스 바이러스’에 걸렸다.
품종묘 ‘할배’는 발이 쉽게 빠지는 구멍난 바닥을 피해 좁은 나무판 위에서 주로 생활했다.
한눈에도 방관한 티가 났다. 사육실 입구 쪽에 비치되어 있는 ‘개체 기록지’도 2016년 12월부터 멈춰 있었다. 1년 가까이 실험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제가 고양이 실험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에요. 실험을 하겠다고 고양이를 데리고 와서 멀쩡한 귀를 망가뜨렸으면, 계획대로 실험을 하던가요. 실험도 안 하고, 개체 관리는 엉망이고, 사육실 환경은 열악하고… 영문도 모른 채 실험실로 와서 그냥 방치된 상태로 살아가는 고양이들은 누가 책임지는 건가요?”
이 씨는 수시로 고양이를 돌봤다. 털이 엉킨 고양이에겐 미용을 해주고, 호흡기가 안 좋은 고양이는 네뷸라이저(의료용 분무기)로 치료해줬다. 발톱도 주기적으로 잘라줬다.
홀로 고양이를 돌본 지 약 8개월이 지났을 무렵, 이 씨는 서울대학교병원 전임상실험부에서 연락을 받았다.
“고양이 실험을 연장할지, 종료할지 결정해주세요.”
실험계획서상 고양이 실험 종료 시점이 약 2개월 앞으로 다가오자, A 교수팀에게 연락한 것이다.
이 씨는 선배 B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선배 B는 A 교수와 단둘이서 ‘랩 미팅’(lab meeting)을 진행했다. 논의 과정에서 이 씨는 배제됐다.
“저는 서울대학병원을 근무한 2년 동안 ‘랩 미팅’에 참여한 적이 네 번밖에 안 돼요. 늘 A교수 교수님과 B 선배 위주로 회의를 했습니다. 제게 실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준 적도 거의 없고요. 논의 과정에서 거의 매번 저는 배제됐습니다.”
2018년 8월 16일, A교수는 고양이 실험 종료를 결정했다. 실험 종료에 따라 고양이는 안락사 절차를 밟게 됐다.
안락사 이전에 이 씨가 입양을 추진했지만, B 선배가 반대했다. 결국 고양이는 병원 사육실에서 떼죽음 당했다. 고양이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온전히 이 씨의 몫이었다.
“고양이들이 귀가 난청이어도 순하고 건강한 편이었어요. 그동안 실험동물로 살아왔으니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고 싶어 입양을 추진했어요. 선배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죠. 고양이가 입양을 가면, ‘서울대학병원 실험실 고양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니까, 그게 부담스러웠던 것 같아요.“
이 씨는 “서울대학병원에서 실험동물 처우가 이렇게 열악한 줄 몰랐다”면서 “최고 시설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실험동물을 방치하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허술한 실험동물 관리 체계에 환멸을 느낀 이 씨는 2019년 7월 서울대학교병원을 떠났다. 고양이 떼죽음 트라우마 때문만은 아니다.
문제는 더 심각한 곳에 있다.
현대 사회에서 동물실험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동물실험은 실험으로 동물에게 주는 고통과 피해보다 사람이 얻는 이익이 더 크다는 걸 전제로 시행된다.
그럴 때도 동물실험은 동물의 고통과 개체 수를 최소화하는 한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실험동물에 대한 인도적 처우가 실험동물의 복지뿐만 아니라, 실험 자체의 유용성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자, 이제 가장 기본이면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자.
A 교수 연구팀은 도대체 왜 고양이 실험을 했을까?
실험 고양이들이 모두 죽은 때는 2018년 8월.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흘렀지만, A 교수 연구팀은 실험 결과물인 논문도 작성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실험윤리 절차 차원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농림축산검역본부·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공동으로 발간한 동물실험윤리위원회(IACUC) 표준운영규정에 따르면, 연구책임자는 동물실험이 종료된 후 7일 이내에 실험종료보고서를 작성해 윤리위원회 또는 간사에 제출해야 한다.
A 교수 연구팀은 실험이 종료된 지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실험종료보고서’조차 제출하지 않았다. 결국, A교수 연구팀은 결과물도 실험종료보고서도 내지 않고 고양이만 죽인 셈이다.
서울대병원에서 진행된 A 교수 연구팀의 ‘수상한 고양이 실험’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 실험 고양이들은 어디서 왔을까?
- 그 고양이들은 실험에 적합하기나 할까?
- 안락사는 정상적인 절차로 이뤄졌을까?
- 마약류 약품은 엄격하게 관리했을까?
무엇보다 핵심 의문은 이것이다.
‘연구 결과물이 없는 A교수 연구팀, 이들의 고양이 실험 진짜 목적은?’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제 하나씩 공개하겠다.
총 연구책임자인 A교수는 “변경된 연구계획서에 명시된 대로 추가된 연구 내용은 인공와우를 끄고 기다리는 것이라서 이 기간 동안 동물이 소리를 듣는지, 다른 부작용은 없었는지, 혈액 검사를 하는 등의 관찰 연구를 진행했다”고 23일 오전 기자에게 서면으로 답변했다.
이어 A교수는 “관찰기록은 연구자의 정보라서 공익제보자가 연구진의 진행 사항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발생한 오해라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공익제보자 이 씨는 “고양이 혈액 검사는 내가 추진해서 전임상실험부가 한 적 있다”며 “실험을 했다면 뇌파 변화, 청력 검사 등의 기록과 마취 기록이 개체기록지에 왜 없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이어 이 씨는 “나도 참여 연구자인데, ‘제보자가 연구진의 진행 사항을 확인할 수 없다’는 서울대학병원의 변명이 이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A교수 연구팀이 2017년에 제출한 고양이 실험계획서에서 ‘이번 연차에 실험할 내용’에는 “1년간 2회 이상 추가적인 청각피질 활성변화를 비교해보고자 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개체기록지상엔 2016년 12월 이후 기록된 연구자 기록이 없다.